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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항상 조심하며 지내더라도, 언제나 우리 주변에는 위험 요소들이 널려 있기 마련이다. 신호를 지키면서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갑자기 달려든 차량에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가 탈선이나 기기의 이상으로 의도치 않게 사고를 당했던 이들에 관한 보도도 접하고 있다. 그밖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환경은 그만큼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른바 근대사회가 바로 그러한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위험사회’라고 진단하면서, 책의 내용을 통해서 위험사회로 인식되는 각각의 요소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목과 그에 첨부된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하는 부제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지만, 역자는 이 책의 내용을 누구에게나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당연시 되는 구조적 및 인지적 맥락을 밝히고, 이 위험천만한 풍요의 시대를 안전과 평화의 시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절박한 과제를 추구’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위험’으로 번역된 ‘리스크(risk)’라는 용어는 원래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 정도로 이해된다. 흔히 ‘모험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등과 같은 용례에 사용되기도 한다. 당장 위험이 닥치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위험사회>라는 책의 제목은 산업화된 이후를 지칭하는 근대가 언제든지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회임을 전제하고 있다.
저자에 의해 40년 전(1986)에 저술된 내용이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오히려 ‘위험의 가능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미래’의 상황을 예견한 듯한 내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면서도 그 체제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그로 인해 부자는 더욱 경제력을 집중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는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도 저자에 의해 ‘위험사회’에 대한 하나의 징표로 해석되고 있다. 전문화된 지식의 영역 특히 과학 분야마저도 ‘증명되지 않았다’라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인해, 인류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의 가능성을 무마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른바 '유전자 변형 작물(GMO)'나 '일본 방사능 처리수 방류' 등에 대해 '위험성이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앗다'라는 주장으로 뒷받침하는 과학계의 발언들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거론할 수 있다. 여기에 이미 구조화된 사회의 불평등마저도 개인주의화로 치부하고, 젠더 갈등과 노동 혹은 고용의 문제까지도 그러한 면모로 치환하는 근대사회의 민낯을 해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은 과학과 정치의 영역에서도 일반화로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전문화된 분야의 지식인들도 자기의 전공 영역을 벗어나면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지난 2020년 전 지구를 강타했던 ‘코로나19’의 사태에 ‘백신 무용론’ 혹은 ‘백신 위험론’을 주장했던 이들을 그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가깝게는 난데없이 벌어진 작년 12월의 ‘계엄령’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당사자가 파면되었음에도 여전히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또한 정치 분야의 ‘위험 요소’로 지적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정보의 유통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기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가짜 뉴스’의 폐해도 전문가의 외피를 두르고 마구잡이로 생산되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자신의 주장을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이러한 요소 또한 근대사회가 지닌 ‘위험 요소’임이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단순히 책의 내용이 지닌 유용성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를 돌아보고 냉철하게 진단할 수 있는 논거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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