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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많은 성격인지라, 간혹 글을 읽다가 어떤 단어나 표현의 정확한 의미나 어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다. 그 단어가 한자어인 경우에는 한자의 뜻을 좇아서 정확한 의미나 조어법에 대해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고유어인 경우 해당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기도 한다. 예컨대 우리 식탁의 가장 기본적인 반찬인 ‘김치’는 흔히 ‘딤채’나 한자어인 ‘침채(沈菜)’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문헌 기록에만 의존한 주장이라 그것조차 확실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한 우리가 자주 가는 가게를 일컬어 ‘단골’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과거 전라도의 민중들이 개인이나 집안의 우환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갔던 무당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처럼 어떤 단어는 때로는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파생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어에서 파생된 표현들이 정착하여 우리말로 자리잡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히려 외국어의 표현들을 우리말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 영어의 어원을 탐구하고, 그 표현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배경까지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여겨졌다. ‘흥미진진 영어를 둘러싼 역사와 문화, 지식의 향연’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서양과 미국 대륙의 역사를 통해 다양한 영어 단어와 표현들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21세기에 사용되고 있는 표현들에 대해서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제목으로 정한 바와 같이 <어원은 인문학이다>라는 것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자신을 ‘영어 표현연구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영어가 아닌 인문학에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이 책의 내용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단지 특정 단어와 그에 얽힌 어원을 따지고 다양한 파생어와 표현들만을 살피는 것으로 채워졌다면, 아마도 나와 같은 독자라면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서양의 역사를 배경으로 제시하고,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에 대해서 문화적인 측면의 설명을 곁들이고 있었다. 때문에 서양사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특정 단어의 유래와 어원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그리스 신화로부터 유래한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에 대해서 새삼 음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시대별로 영어 단어의 어원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제1장의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화의 세계에서 발견한 영어’, 그리고 최초의 고대 국가로 자리를 잡았던 제2장 고대 로마에는 ‘영어 속에 남아 있는 고대국가의 흔적’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특히 로마 시대를 다룬 내용 가운데 흥미롭게 여겼던 것은 바로 달력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동양에서도 달력은 철저히 농사의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농경생활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달력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제일 큰 덕목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 로마에서 달력을 만들었을 때, 지금의 1월과 2월에 해당하는 내용이 빠져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두 달을 추가하여, 각각 1월과 2월로 정하면서 매월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어원으로 보아 2달씩 밀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로마의 황제였던 시저와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이름을 7월과 8월의 명칭으로 대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은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었다.
서양사의 흐름에 맞춰 서술된 각 시대별 분류와 해당 시기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제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제1장, 고대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서 발견한 영어
제2장, 고대 로마 –영어 속에 남아 있는 고대국가의 흔적
제3장, 중세 –영국 역사와 함께 흘러온 역사
제4장, 근세(전) -종교개혁과 문예부흥
제5장, 대항해시대 –항해 용어가 일상용어로
제6장, 근세(후) -혁명과 변화의 언어
제7장, 아메리카 대륙의 개척시대 –원주민과 유럽의 만남
제8장, 근대 –과학과 기술의 시대
제9장, 세계대전 –전쟁 속에서 탄생한 말들
제10장, 전후‧21세기 –새로운 질서, 새로운 언어
이렇게 목차만을 제시해 보면, 언어에 관한 책이 아니라 서양 문화사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는 영어 단어와 표현들의 어원을 밝히기 위한 저자의 구상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이해된다. 흔히 힙합을 하는 가수들이 남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표현하는 스웩(swag)이라는 단어가 영국의 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밖에도 셰익스피어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나 표현들이 3천여 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어쩌면 필요에 의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실은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제국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신대륙의 곳곳에 영국 여왕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이름을 명명했다는 것이었다. 수 년 전에 캐나다에 1년 정도 지내면서, 내가 머물던 밴쿠버가 유럽의 선장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에도 다양한 지명들에 서양 사람의 이름이 붙은 경우를 확인할 수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신대륙과 전혀 상관없이 한 번도 왔던 적이 없던 사람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러한 명명법 역시 서양의 제국주의적 발상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로서는 서양의 문화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영어 단어나 표현들이 지닌 어원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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