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있는 열대야
부부싸움의 꼬투리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다. 그가 물 달라는 말을 "물 내,"했을 때, 나는 명령을 하달 받은 시녀가 된 느낌이었다. "당신은 손이 없수, 발이 없수,"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사로웠고, 그래서 고분고분 응해 왔던 지시조의 말투도 언제부턴가 못으로 와 꼽힌다. 오랜 세월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길들여저 왔던 숱한 일상사들이 부당하고 억울하다 여겨진 탓이리라. 그런 모순만 아니었어도 갈등의 깊이는 덜했으리란 생각이다. 비판 없이 무조건 따른 것이며 나만의 세계를 시도해보지 못한 후회가 아직도 남은 남성의 위세를 만나면 불현듯 되살아난다.
그날 밤이다. 부엌 쪽에서 어렴풋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휘청대는 몸과 정신을 데리고 불을 켠 순간, 허연 물체 하나가 손살같이 내닫는다. 고양이다. 종아리를 스친 실팍한 체중의 감촉이 한참 동안 섬뜩하다. 놈은 저만큼 가다 말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홱 몸을 돌리더니 겨루기 좋을만한 거리쯤에 와 아기작 앉았다. 그러느라 자글자글 발톱소리가 났다. 집중된 힘을 실은 눈동자가 내 눈에 와 꽂히자 어둠이 섬광처럼 빛났다. 오만하고 위협에 찬 얼굴이다.
당골찬 태도도 그렇거니와 늘 슬픔의 덩어리라 여겨왔던 눈동자며, 동화 같던 몸매조차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당돌함에 기가 질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눈길을 거두고 신발 한 짝으로 쉿, 쫓는 시늉을 해 보았다. 미동도 없다. 허기야 뒤로 발짝을 물리지 않았나, 소리란 게 나오다 말고 삼켜졌으니 반응이 있을 리 없겠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열대야였다. 닫아 두던 부엌문을 시골집처럼 열어젖혔을 때, 그 곳에는 비록 문짝만하나 하늘이 내려 와주었다. 축축한 대기를 뚫고 내려 온 별 한 둘은 누워서도 헬 수 있었고 바람마저 선들 한 번씩 들어 왔다. 걱정은 밤손님이나 탐을 낼만한 물건이 없다 싶어 마음을 놓은 터다.
있건 말건 문을 닫고, 그토록 맛들인 먹이가 무엇일까 둘러 보았다. 제기상자 위에 얹어 두었던 제물로 썼던 대구포, 그것을 싼 종이가 반쯤 찢겨져 있다. 이것이구나 이미 입을 댔을 터 떼어주마, 종이를 벗기는데 무엇이 꿈틀하더니 희끄무레한 털 뭉치 하나가 또 불쑥 튀어 나와 방금 닫은 문쪽으로 냅다 달아난다. 이번에도 고양이다. 놈은 문짝 오르기를 두어 번 시도하나 여의치 않자, 방금 나온 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날렵하기가 빛처럼 빠르다. 새벽은 멀다.
두근대는 가슴이 가라앉고 나니 둘 사이가 궁금하다. 담대함을 보아 바깥 것은 수컷일시 분명하고 참하고 새잡은 몸피로 봐서 방에 든 놈은 암컷으로 보인다. 수컷의 시위가 먹이 때문이 아닌, 제 짝의 안위에 있음을 알고 나자 숙연감이 찾아왔다.
습성상 고양이는 지금쯤 야간집회에 갈 시간이다. 그러나 무한자유를 마다하고 수컷은 짝을 지킨다.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상이 소중하다는 뜻 아닌가. 무논의 개구리처럼 어울린 저 소리는 서로의 염려일 것이다. 나는 놈이 나가도록 부엌문을 열어 놓은 후 내 방의 입구, 벽에 기대어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부럽다 못해 샘이 났다. 그러자 진작 슬픔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휩쌌다. 눈만 디밀어 방을 살폈으나 어디쯤에서 소리가 나는지 분간할 순 없다. 문갑의 틈샌가 하면 자다 나온 홑이불 속인가 싶기도 하다.
동물은 탈출에 의해, 인간은 동물이 그리 해주므로 자유 그 아름다운 것을 얻는다. 그것에 대한 간절함은 서로가 팽배한데 배우자의 태도는 천지차이다. 바깥에서 초조한가 하면 침대 위에서 태평하다. 쓸쓸하다는 느낌이 다시 한 차례 전신을 훑었다. 어느새 수놈은 담을 타고 뒤 곁으로 갔나 보다. 멈칫하던 울음소리가 자지러진다. 어떻게 해요, 걱정 마,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암컷의 소리는 교태를 담았다.
내키지 않았으나 부득이 남편을 깨웠다. 눈치를 챘음인가 놈들의 소기라 뚝 끊겼다. 등산용 지팡이를 들고 온 그가 장롱과 벽 사이, 문갑 뒤를 사정없이 들쑤신다. 사람이 일을 내고 있는 건 단잠을 방해 받았다 여겨서일까. 나는 놈이 찔려 장롱 뒤에 쓰러져 누울까봐 전전긍긍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보다 장롱을 들어내고 치울 일이 꿈만 같았다. 문갑 위의 스탠드가 쓰러졌고 장롱에 붙었던 원앙새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그가 내 얼굴을 받쳐 들었다. "눈 크게 떠 봐. 찬 것만 먹어대더니 헛것을 본 게 아냐? 없어, 고양이 같은 건 없어. 약이나 몇 첩 지어 먹지 그래." 마주 본 이마에 땀이 수증기처럼 맺혀 있엇으나 담 위 고양이의 울음 절반의 감동도 전해 오지 않았다.
씻기 위해 그가 욕실로 가자 나는 걸레를 들고 방에 들어섰다. 거의 4시간 만에 딛는 방이다. 장식장 칸 사이의 먼지를 닦다가 액자가 넘어지며 소리를 냈을 때다. 아름다운 착지였다. 냉정한 균형 감각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놈은 장식장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던가 보다. 천정 높이 올랐다가 내머리 위레 긴 포물선을 그으며 가볍게 부엌문 앞에 내려 앉았다. 유연성의 덩어리, 무늬도 없는 흰 단모가 햇솜처럼 눈부시다.
놈이 나가기 전 사람처럼, 사람 중에서도 승리자처럼 지그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아한 자태였다. 내 안의 열등감이라도 꿰뚫어 보려는가 예민하게 반짝이는 눈길이 무언가를 이르고 있었다.
퍼뜩, 스치는 게 있었다. 그랬다. 나는 놈이 나가 주길 그토록 원하면서도 그의 퇴로인 방문 앞에 죽치고 앉아 있었던 거다. 그러니 '흥, 피해주기만 해도…….' 했을 것이다. 뿐인가. '재미도 없이 살면서…….'라고도 했을 터이다. 인간이 밤새 휘둘러 본 무기는 그의 탈출과는 무관했다. 멍청한 전략과 과잉전투, 무덤덤한 부부애를 보인 인간, 질 낮은 삶을 살고 있다는 패배감에 수치심이 엄습해 왔다.
나는 빼앗긴 우리의 하룻밤과 잘려 나간 원앙새의 꼬리를 떠올렸다. 먹이사슬 중에서도 하위권이라 하여 업신여긴 동물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만물으 영장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생존하는 것치고 인간이 만만히 볼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게 아닌가. 본능에 따라 열심히 사는 점이나 이해력 등 모든 생명체가 평등한 구조로 짜여 있는데도 유독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실 인간이 우수하다 하나, 그 곳에 따르는 내면의 고독과 아픔, 그리고 외로움등 반대급부로 오는 감정적인 고통을 따져 본다면, 생명체 중 빼어난다 하여 우월감에 도취할 성질만은 아닐성 싶다.
어느새 문 앞에는 수컷이 대기하고 있었나 보다. 엉키듯 뛰어든 짝을 맞아 환호하는 소리에 맞춰 2중주, 그 경쾌한 발장단이 계단을 타고 멀어졌다. 새벽이라고 하나 다를 것 없는 열기였다. 그 속으로 그들이 피워 올릴 것 같은 사랑의 빛깔 닮은 안개가 서서히 올라 오고 있었다.
- 박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