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살림남’들의 역설(임종업)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정창권 지음 l 돌베개 l 1만5000원
‘조선시대는 가부장제 사회다.’ 그 시대 남정네는 집안일을 나 몰라라 했다는 추론의 전제다. 박지원의 <허생전> 주인공이 그 예시다. 널어둔 나락이 폭우에 떠내려가도 모르쇠하고 글만 읽었다는.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지은이는 정반대 주장을 편다. 남자들이 아이를 키우고, 교육을 하고, 요리를 하는 등 집안 살림에 적극 참여했다는 것이다. 옷을 짓거나 임신, 출산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잘 찾으면 사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 좀 쓴다는 유명짜 선비들의 일기, 편지, 문집 등에서 지은이가 뽑아낸 팩트를 종합하면 그렇다. 집안 살림까지 오로지했다는 측면에서 ‘조선시대는 가부장제 사회다’라는 명제에 쾅 도장이다. 허생의 예는 무능.
조선의 가장들이 육아를 했다는 것은 뻥이다. 남자애는 봉제사 할 놈이니 요래 키워라 조래 키워라 간여했을 따름이다. 교육도 그렇다. 퇴계 이황. 큰아들한테 공부해라, 과거 봐라 도학자 치고 어찌나 잔망스러운지. 서른 넘도록 뜻대로 안 되자 옜다, 음직 참봉자리를 마련해준다. 육아일기인 <양아록>을 쓴 묵재 이문건.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체벌하며 키웠으나 과거급제 미달. 과유불급이다.
요리는 무슨~. 요리책을 썼다는 남자는 궁중요리사다. 간여했다는 음식의 예는 장과 술이다. 장이야 한번 실패하면 1년 쓴맛이니 잔소리 목에 차고, 술은 제 빚어 제 마시자는 것이니 장히 쳐줄 바 아니다.
가족 부양과 재산 증식. 살림을 했다기보다 가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지은이 말마따나 벼슬자리라는 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일종의 비정규직이다. 과거로 정식 출사를 했어도 돌아갈 제 고향에 땅 마지기 있어야 하고, 제 식솔 굶기지 않아야 하고, 두 자 여섯 자 저 묻힐 묏자리 있어야 하지 않는가. <미암일기>의 유희춘. 녹봉을 치부책처럼 기록했다. <쇄미록> 오희문. 왜란 뒤 닭 치고 벌 친다.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다.
원예 취미와 정원 가꾸기. 번듯한 집 지어, 뜨락에 정원수, 연못에 금붕어.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 로망이다. 연암. 안의현감일 때 창고 헐어내고 그 자리에 정원 꾸몄다. 다산. 유배지 강진에서 기암괴석 석가산 만들었다. 로망 넘어 고황이다.
누이 문집을 만들어준 허균, 임정주, 기녀 매창의 시문집을 엮은 부안의 아전들, 아내의 유고를 펴낸 충주 윤광연. ‘외조하는 조선남자’ 타이틀에 들어맞기는 하다. 단, 예외의 예외. 얘기를 뒤집으면 시스템 밖 여성의 비극이다. 다만,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와 시를 간직했다가 문집을 만들어 헌정한 미암. 돌출이지만 가히 아름답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조선시대 남정네들이 살림을 했다고? 예외적이지만 그런 사례가 있다고? 우리 조상들이 ‘남녀 공존의 역사’를 영위했다고? 조선을 지나 대한민국인 시방, 너 나 우리 여기 있음이 남녀가 공존했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오케이.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