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감잎과 홍시
종심(從心 - 칠십이 되어서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는)을 넘긴 노화백께서 잡으신 화필은 불유거(不踰秬)다. 천 년만에 한 번 춘다는 단정학의 춤사위처럼 바야흐로 입신의 경지다. 화선지 위에 붓긑이 스치기만 해도 홀연 섬을 안은 바다가 포효하고, 청산이 우뚝, 청송이 만고상청의 기개로 가지를 떡 펼친다. 어떤 땐, 젊은 아낙이 생선 몇 마리 어판에 벌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있는 세간(世間)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그럴 때 노화백의 표정은 어둡다.
펼쳐 놓은 화선지 위에 갈필로 쭉 그은 획 몇 개가 서로 얽히더니, 늦가을 잎 떨어진 나뭇가지가 분명하다. 가지엔 어느새 꼭지가 돋아나고, 그 아래 매달린 원형의 홍시 한 알, 청자빛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빛 볼이 탐스럽다. 그 옆에 나란하게 홍시 하나 메단다. 또 하나 끼어 넣는다. 네댓 개의 잘 익은 감이 화선지를 메운다. 천의무봉의 신기(神技)다.
탐스럽게 익은 홍시를 바라보는 노화백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보석처럼 돋아나 있다. 땀을 닦으실 생각도 잊은 듯, 노화백께서는 붓을 놓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홍시에 얽힌 옛일이라도 회상하는가. 미동도 않는다.
열어놓은 창호지 문틈으로 가을 바람이 소슬하다.
한 걸음 뒤로 물러앉은 나도 화백의 흉내라도 내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고향의 가을, 뒤뜰에는 나보다도 나이든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이맘때면 늘 발갛게 익은 홍시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았다. 그 중 어떤 것은 스스로의 성숙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단결 같은 껍질이 벌어지면 곱디고운 속살을 드러내 놓기도 했었다. 산호 빛 속살은 언제 봐도 나를 목마르게 했다. 햇볕 받아 더 영롱했던 그 속살, 손 뻗쳐도 닿지 않은, 아스라하게 높은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의 살짝 드러난 속살, 그건 나에게 송강의 시조에 나오는 '생깁 적삼(생명주 적삼)밑에 드러날 듯 말듯 비친, 나는 듯 날씬한 여인의 어깨'였다.
사과는 틀림없이 이브를 그 영롱한 빛으로 유혹했으리라. 감각기관에 이상이 없는 한, 아침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과를 보고, 미각의 유혹을 받지 않는 사람은 드물리라. 처음, 홍시도 나에게 그렇게 빛깔로 다가왔다. 다음은 맛이었다.
기나긴 겨울 밤, 할머니께서 장독에 숨겨 두셨다가 꺼내 주시던 홍시는 으스스 몸이 떨릴 만큼 차가웠지만, 만지면 몰랑몰랑한 것이 입맛부터 돋우었다. 한 입 베물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던 그 달디단, 할머니의 정겨운 손등처럼 설지 않은, 불망의 미각, 유소년 시절 나와 홍시의 통로는 이렇게 빛깔과 맛이란 복합감각이었다.
회상에 잠기듯 지그시 눈을 감고 계셨던 화백께서 눈을 떴다. 그 동안은 담배 한 대쯤은 피울 만한 시간이었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리신 다음, 다시 붓을 잡은 화백께서는 이번엔 홍시 옆에 감나무 잎사귀 하나, 그려 넣는다. 홍시와 조화를 잘 이룬, 빨갛게 물든 감나무 잎사귀 하나를, 자세히 보니 그 잎사귀에는 아직도 단풍이 들지 못한 진한 초록과 붉은 색 사이에 병들어 시꺼멓게 얼룩지고 커다랗게 뚫린 상흔 하나가 나 있었다.
노화백께서는 주섬주섬, 흐트러져 있는 화구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옆에서 화백의 찬찬한 몸놀림과 마무리된 화폭을 번갈아 보고만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친, 감나무 잎사귀가 병들어 시커멓게 멍든 상흔과 잘 익은 홍시의 대비, 그 의표의 착상은 가히 화룡점정의 경지였다. 열매의 단 맛 속에 묻혀 있는 '삶의 의미'의 묵시.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쾌재'를 부르짖으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 김상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