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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아리랑(1)
“엄마 – 가요? 엄마! 꼭 또 와요. 엄마! 밥 많이 먹고 가요. 이 치약 갖고 가요……”
“엄마, 엄마, 엄마 !……”
아둔한 몸짓, 부정확한 발음으로 “엄마! 엄마!……”를 외치며 날 잡고 꼭 부둥켜안는다.
곧 떠나야 하는데 붙들린 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젖먹이를 떼어내듯 안녕을 고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흐르며 목이 멘다.
2박 3일 동안 아픔, 슬픔, 안쓰러움으로 내 기운을 있는 힘껏 쏟아 바친 충북 음성 꽃동네 <애덕의 집>.
한낮 인적 드문 꽃동네의 고운 빛깔 단풍들이 가을볕에 더욱 짙게 물들고 있는데 난, 울적한 여운만 가득 안은 채 ‘홀로 아리랑’을 떠올리며 꽃동네의 단풍길을 떠나왔다.
2019. 『하하문화센터 1인 1박 2일 여행』
*여행을 떠나며 준비한 것들
어디를 갈까
어떻게 갈까
누구를 만날까……
여행지, 날짜, 차편, 숙소, 먹거리 등 나 혼자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외국이 아닌 국내 여행인데도 혼자 하는 여행이라서인지 다소 긴장되고 두려움이 어른거린다.
여지껏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계획하고 진행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전혀 기억에 없다.
남편을 비롯하여 ‘하하’의 몇몇 회원들은 이미 1인 여행을 다녀왔다.
한해의 끝. 11월이 시작되고 겨울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여행 계획이 점차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며 선택의 시점이 다가왔다.
선택지를 고심하고 있는 내게 뜬금없이 섬광처럼 떠오른 ‘음성 꽃동네’.
난 망설임 없이, 정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음성 꽃동네’로 결정했다.
남편이 2번 봉사를 다녀와서 중증 지체 장애우들을 돌보며 무척 힘들었었다고 했던 곳. 또 가까운 지인이 봉사를 다녀왔던 곳.
그래서 내겐 봉사의 대명사처럼 새겨져 있던 ‘음성 꽃동네’.
내 생전에 꼭 한 번은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있던 곳이기도 했다.
생소한 지역, 먼 거리, 특별한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는 말씀 아래, 예수님 신앙이 철저히 실천되고 있는 ‘음성 꽃동네’.
평범한 세상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누구도 동행하지 않은 채 혼자 가야 하는 길이기에 겁이 나기도 했다.
떠나기 보름 전부터 꽃동네 봉사실 수녀님과 몇 차례 통화를 하여 봉사 날짜와 기간을 예약하고, 차편까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안내를 받았다.
2019.11.19.
올 들어 가장 추운 아침, 찬바람까지 가세해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겹겹이 옷을 포개 입고 목도리까지 챙겼다.
오늘은 나 홀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하하문화센터 화요반 강의가 있고, 이어서 일움학교 점심 후원 봉사와 하하모두나누제에서 나눌 ‘도라지배청’을 만드는 날이다.
무진교회에 도착하니 하하의 운영위원장이신 가온 씨가 벌써 도착하여 차에 가득 싣고 온 부식재료들을 나르고 있었다.
2019년 하하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하하의 탈정(脫井), 하하의 비전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가며 솔선수범, 헌신하는 가온 씨. 그리고 이에 함께 호흡하며 한몸인 것처럼 열과 성으로 하하를 건재하게 하는 하하님들의 모습은 늘 감동의 울림을 준다.
하하의 공동체에 관한 강의가 끝난 직후 바로 여행길에 오르려니 오후 늦은 시간까지 분주하게 애쓸 하하님들이 눈에 밟혀 미안함으로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하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11:20분 청주행 버스에 올랐다.
*청주행 고속버스
* 청주에서 맹동행 버스표
*맹동행 시외버스
일반고속 맨 앞자리를 혼자 차지하는 행운을 누리며 2시간 20분 후에 청주에 도착했다. 중간 휴게소를 경유하지 않아 30분이 단축되었다.
청주에서 맹동을 가기 위해서는 광주 유스퀘어터미널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청주 고속터미널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 했다. 맹동면 가는 버스가 오후 2:02분에 출발하여 1시간 30분을 달리니 면 단위치곤 꽤 발전된 맹동면에 도착했다. 친절한 어느 주민의 안내로 막 도착한 군내버스를 타고 꽃동네에 이르니 시간은 오후 3시 40분이 되었다. 총 4시간 20분이 소요된 셈이다. 차편 연결이 잘 되어 예상했던 시간보다 빨리 꽃동네에 도착했다.
『꽃동네』
*꽃동네 표지석
입구에 우뚝 솟은 돌비석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새겨진 문구가 나를 맞이했다. 한참을 돌비석 앞에 서서 시선을 고정하였다. 인적 없이 가끔 차량만 씽씽 달리는 도로가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해 기울기 시작한 산마을의 한기가 허기진 나를 더 춥고 쓸쓸하게 했다.
점심거리로 준비해 온 김밥을 먹기로 했다. 꽃동네 입구 맞은편 언덕에 올라 찬바람을 맞으며 떡처럼 굳어진 김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남편이 보았다면……. 내가 생각해도 참 궁상맞다.
드디어 일어섰다.
*집에서 준비해 간 떡이 된 김밥
잔뜩 긴장감을 안고 꽃동네에 들어섰다. 산을 깎아 만든 꽃동네는 규모가 대단했다. 도로 또한 경사가 지긴 하지만 넓고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적은 드물고 고요하기만 했다. 먼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매점에 들러 귀가할 차편을 확인했다. 인상 좋은 매점 주인의 안내와 꽃동네 배치도를 따라 오르막길을 가다 보니 꽃동네 설립자인 최귀동 할아버지의 묘소, 기념비, 동상 등 꽃동네의 상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귀동 할아버지 동상
*최귀동 할아버지 묘소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나를 엄습해 왔다. 조용히 묵념을 올렸다. 최귀동 할아버지를 마주하고 나서 왠지 뿌듯한 마음이 되어 다음 행선지인 봉사안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화 통화를 하였던 봉사실 수녀님을 만나 내가 봉사할 영역을 안내받고, 숙소를 배정받았다.
신체, 지적 장애가 있는 여자부랑아들이 기거하고 있는 <애덕의 집>. 2박 3일 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보살피는 일을 해야 한다.
*나를 환영하는 <애덕의 집>
<애덕의 집> 사무실에 가서 입소 신고를 하고 내일 할 일과 그에 따른 주의 사항을 들었다. ‘부랑아’라는 단어가 자꾸 마음에 걸리고 궁금증을 갖게 했다. 내일 당장 내가 만나게 될 입소자들의 실체가 조금은 두렵기까지 했다. 소심해진 나는 4층 숙소에 오르며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입소자들과 낯설고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그들을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다른 시설의 사람들과 다르게 옷매무새나 용모가 깔끔하고 단정했다. 표정들도 어둡지 않았다. 건물 내 복도, 강당, 엘리베이터의 내부도 아주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내가 묵을 ‘믿음’방도 널찍, 깔끔, 아주 단정했다. 4층 전체는 자원봉사자들이 따로 기거하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이틀을 묵었던 '믿음'방
내 방 바로 옆 ‘평화’방엔 사회복지를 전공한 아가씨 2명이 봉사차 오랜 기간 묵고 있었다. 생각 외로 쾌적한 환경이 감사하기도, 한편 호사인 듯 싶어 멋쩍기까지 했다.
해 질 녘 꽃동네의 아름다운 야경과 싸-한 저녁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되는 저녁 식사를 하러 1층 식당으로 갔다.
*'믿음'방에서 바라본 꽃동네의 저녁 노을
*꽃동네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생명의 양식
1시간 전에 김밥을 먹었음에도 양송이 스프, 김치, 과일 사라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었다. 혼자라는 의식이 수시로 내 자신을 보호, 건사하게 했다.
저녁 식사 내용을 사진에 담고 싶어 맞은편에서 식사 중인 수녀님께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럽게 한 컷 찍었다.(시설 내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 후 공기 좋은 꽃동네 여기저기를 산책하고 싶은데 어두운 데다 인적까지 없어서 숙소로 곧장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다.(남편과 함께 왔으면 ……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저녁 7시에 미사가 있어서 1층 공동실에 갔더니 수녀님들, 자원봉사자들, 입소자들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 미사포를 쓰고서 신부님의 설교, 찬송,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신심이 아주 두터워 보였다. 신부님 말씀을 스스로 판단해 “예, 아니오“ 대답을 하고 기도문을 줄줄이 외고, 찬송을 하는 모습들이 지적 장애를 가진 이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낯섦, 의아함, 호기심으로 자꾸 주위를 돌아보는데 모두 미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만일 공인된 종교 시설이 아니었다면 유사종교집단으로 생각했을 법한 분위기였다.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 수녀님에게 안기며 애정 어린 사랑을 주고받는 입소자, 휠체어에 의지한 채 힘겹게 움직이는 입소자, 온몸을 질질 끌며 몸이 뒤틀린 채 걷는 입소자, 정상인처럼 보이는데 어딘가 장애가 느껴지는 입소자들.
이방인 같은 내가 낯설 텐데도 ”안녕하세요“인사하는 모습이 유치원생 마냥 천진해 보였다.
”하나님, 저들을 위해 힘껏 쓸 힘을 제게 주옵소서. 저들은 내 엄마, 내 언니, 내 동생입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저들을 품을 온전한 사랑을 허락하시옵소서“
첫댓글 역시 사모님!!!
'나홀로 여행이란 이런것이었구나'
알게되었군요
알찬봉사로 고귀한 여행을 하신 사모님의 은정을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이렇게 큰 그림의 1인 여행? 다녀 오셨어요?
생각 포인트가 사모님 덕분에 아주아주 넓어 졌어요~ 떡이된 김밥 ᆢ사모님 모습이 정말 천사 같아요~~😂
2탄 기다릴께요^^⚘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오셨어요.넓게 깊게 멀리,사모님의 생각,기도가 하늘까지 닿습니다.
언어들이 익숙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저를 기분 좋게 한 일이 또 있어요.곰돌이 수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