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봉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우리의 일터에 경건한 분배를
3. 새로운 시대, 새로운 봉급제도
4. 봉급, 성경적으로 사용합시다
봉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봉급에 대한 기본원리
하나님은 사람들이 일을 하기 전에 먼저보상을 주셨다. 이미 사람들이 경제적인필요를 다 채울 수 있도록 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일하라고 하신 것이다.(창2:8,9,15,16) 일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은 창조원리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보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을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주님의 일을 빙자해서 마땅한 보상 없이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겠지만 성경적으로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이 문제에 변화가 있었다. 경제적인 보상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순서가 바뀌었다. 즉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고 했고,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창3:19)”라고 하신 것이다. 소득이 하나님의 은혜의 섭리라기보다는 인간의 땀과 노력의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 결과로 경제적인 보상을 받게 되었으며 노동은 경제적인 보상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성경 속에 나타난 봉급에 대한 갈등과 교훈
경제적인 보상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언급은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라반은 자기 집에서 일하는 야곱에게 일에 대한 보수를 주기로 하고 구체적인 계약을 했다.(창29:15) 이때 야곱이 요구한 것은 경제적인 보상이 아니라 아내였다. 그래서 야곱은 레아와 라헬의 두 아내를 얻기 위해서 14년을 일했었다.
야곱으로 인해 경제적인 축복을 받은 것을 깨달은 라반은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기를 원했다.(창30:27-28) 30장 후반에 이에 대한 야곱의 지혜로운 경제활동이 잘 기록되어있다. 얼핏 보면 삼촌은 야곱에게 정당하게 대한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야곱이 한 일에 대해 경제적인 보상을 정당하게 하지 못했다.(창31:7,41)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성실하게 일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지 않았다.(창31:38-42)
여기서 우리는 봉급과 관련된 갈등은 이미 오래 전에도 있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계약을 파기하더라도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아끼지 않으신다.
모세의 율법은 일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에 관해서 아주 강하게 명하고 있다. 이 교훈은 주로 고용주들을 향한 명령이 많다.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19:13)”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신24:14)”
선지자는 일꾼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고용주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렘22:13)”
같은 맥락에서 야고보는 이 문제에 대해서 특히 목소리를 높였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5:4)”
반면에 일에 대해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피고용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위한 율법의 교훈은 많지 않다. 단지 하는 일이 정당하지 못한 경우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보상도 하나님 앞에서 용납되지 않음을 강조했다. “창기의 번돈과 개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니라(신23:18)” 같은 맥락에서 부정한 소득에 관해서 잠언이 경고한다.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13:11)” 특히 부정한 돈-뇌물에 대해서는 여러번 경고를 한다.(잠15:27,17:23,28:21,29:4)
성경은 봉급과 관련해서 주로 경영자들을 향해 권면과 책망을 하고 있으며 피고용인들을 향해서는 다분히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신약에 들어와서 예수님은 영적인 교훈을 하는데 비유를 가지고 일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의 문제를 다루었다. 유명한 포도원의 비유는 품삯을 정하는 것은 주인과의 계약이 중요한 것이므로 때로는 그것이 상식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마20:1-16) 이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개념을 가르쳐 주셨다. 암시적으로 월급은 계약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일을 경제적인 활동으로 생각해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고 했으며 자신의 사역과 경제적인 보상과의 관계를 말하면서 육신을 사용해서 한 일이든 신령한 일이든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고전9:7-11) 불로소득에 대한 비난이나 무노동 무임금 제도의 성경적인 근거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크리스천 직장인에게 필요한 자세
현실 사회에서 살고 있는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원리에 따라 살게 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크리스천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첫째로 자신의 가치를 봉급의 액수로 환산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소득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경향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크리스천들은 이런 경향에 휩쓸리지 말도록 해야 한다. 야고보 사도가 부자들을 환대하고 가난한 사람을 박대하는 그 당시 사람들을 향해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약2:1-4)고 한 것은 이에 대한 주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준다.
둘째로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봉급으로 환산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육체노동의 가치가 형편없었다. 그 이유는 육체노동에 대한 경제적인 보상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땀을 흘려 일하기 보다는 쉽게 돈을 버는 길을 찾는 것은 일 자체의 가치보다는 돈의 가치로 일을 환산하기 때문이다. 일은 경제적인 보상액에 관계없이 일 자체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의 한 일이 다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목회자의 사역을 거룩하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듯이 거액을 벌어들이는 직업을 더 가치있다고 의미 부여를 해서는 안될 것이며 봉급이 작다고 그 일을 낮게 평가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봉급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셋째로 봉급은 자신의 경제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통로이다.(빌4;19,골3:24) 내가 어떤 수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종류의 일을 했기 때문에 얼만큼의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게 경제적인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직업이라는 통로로 공급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은 수입이 많더라도 그 수입에 따라 지출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데 수입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필요에 대한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그것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누군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기준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율법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되고만다.
이 말은 봉급의 증가를 자신의 가치의 증가나 자기가 한 일의 가치의 증가로 생각하지 말고 필요 이상의 수입의 증가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의 증가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고 했던 바울사도는 바로 이 원리를 제대로 깨달았던 것이다.
조금은 이상적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크리스천이 이 문제에서 세상 사람과 구별되지 않으면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크게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해졌던 재물의 통용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월수입의 증가분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않고 이웃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면 오늘 우리들도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봉급의 액수와 무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일의 가치를 인식하자. 그리고 주어지는 봉급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자.
우리의 일터에 경건한 분배를
경건한 크리스천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봉급에 만족해야 한다. 사도바울이 말씀했듯이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딤전6:6)”이 되기 때문이다. 야곱처럼 부당한 대우에도 참고 기다리면 자신의 신앙도 성숙하게 되며 결국은 하나님이 더 많이 채워주신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가치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생활에 직접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공적인 차원에서는 다르다. 즉 소수를 위한 이익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크리스천의 자세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사회적인 불의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5:4-5)” 기업에서의 현실이 야고보가 묘사한 경우와 같을 때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그 부르짖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어야 하며 일단 들었다면 그들을 위해서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정의의 칼을 뽑아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이런 목적에 사용될 때 동참해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조합은 이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또 순수하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결단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성경적인가 아닌가? 크리스천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의 질문은 흑백논리로 대답할 성질의 것은 아니며 전문지식 없이 함부로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주제인 봉급의 문제와 관련해서 임금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 몇가지 생각들을 크리스천 직장인들과 나누고 싶다.
공평한 분배란 획일화된 분배가 아니다
기업 내에서 노사간에 분배가 공평하지 않을 수 있고 상하간에도 분배가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획일화된 분배가 공평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마25:15) 다른 양의 달란트를 맡기신 것은 이에 대한좋은 예가 된다. 감정적 만족을 위한 획일화가 오히려 불공평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개인 이익과 공동체 이익의 균형
개인과 공동체는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개인의 이익은 항상 공동체의 이익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개인과 가정, 개인과 교회,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가 그렇듯이 개인과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위해 개인이 희생이 되어서도 안되며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느라고 회사의 공동적인 이익이 무시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개인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는 금물
임금에 대한 불만은 대체로 경영자들의 불의한 대우에 기인한다. 성경에서도 불의한 경영주에 대해서는 강하게 책망하고 있으므로 이런 불만은 정당화될 수 있다. 다만 불의를 지적하는만큼 임금에 대한 의견은 철저히 공의에 기초를 두어야지 개인적인 이익이나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에 공의를 위한 주장으로 인해 자기들과는 다른 그룹에게 불공평한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것은 모순된 행위가 된다. 자신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들의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공의는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만이 남게 된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임금 문제를 고려
이제 세계화의 바람은 임금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개인의 이익, 회사와의 타협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세계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임금이 국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동시에 한국내에 와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이런 사항들을 고려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 그 수고의 땀은 가치가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봉급제도
연봉제가 확산되고 있다. 합작기업이나 외국기업의 경우는 진작부터 시행하고 있었지만 우리네 전통의식등 여러 여건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던 연봉제는 초일류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일어나면서 널리 도입되고 있다. 금융계, 연구 기술직, 디자인 광고직, 영업직은 물론 심지어 대학교수에까지 연봉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봉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현재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연봉제는 미래 직장인의 봉급체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예측을 가능케 한다.
연봉제란?
연봉제란 개별종업원의 능력, 실적 및 공헌도를 평가하고 계약에 의해 연간 임금액을 결정하는 능력중시형의 임금지급 체계로 미국에서는 관리직과 전문직에 일반화되어 있고 일본에서도 최근들어 관리직, 전문직, 계약직 사원 등에 연봉제를 채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연봉제를 도입했을 경우 다음과 같은 장점이 예상된다.
첫째, 능력과 실적이 임금과 직결되어 능력주의, 실적주의로 종업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의욕적인 근무를 가능케 하며, 둘째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관리자, 전문직 종사자 등 필요한 인재를 종래의 연공급체계로 확보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연봉제를 통해 우수 인재확보가 가능하다. 셋째 연봉제를 도입함으로써 경영자에 준하는 책임감을 부여해 자신이 달성한 업무와 연봉과의 비교를 통해 경영감각을 배양할 수 있으며 연봉제를 도입하면 복잡한 임금체계와 임금지급 구조를 단순화 시켜 임금관리가 용이해 지므로 임금관리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증대된다.
반면 연봉제의 단점도 많이 있다.
고유한 사회문화적 전통인 유교의 장유유서 의식과 선임자 우대원칙과의 갈등이 예상되고 평가의 객관성, 공정성의 문제와 감액이 되는 경우 사원의 사기가 저하될 가능성이 있으며 종업원 상호간의 불필요한 경쟁심을 유발해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연봉제 어디까지 왔나?
1) 국내기업의 예-두산그룹
두산그룹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95년 1월 중순까지 그룹의 과장급이상 관리자 1천8백명과 연봉계약을 맺었다. 연공서열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평가를 토대로 연봉이 결정됐다.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한 두산의 경우 등급을 5개로 나누어 전체인원의 5%가 최고등급(A), 10%가 B등급을, 70%가 C등급을 받고 D,E등급은 각각 10%와 5%이다. A등급의 임금인상률은 10%, 다음은 8%, 6%, 4%, 2%의 순이다. 여기에 보너스 성격이 짙은 능력평가 임금인상이 더해지는데 이 경우도 차별화가 이루어지므로 종업원간의 한해 임금 인상률은 11%에 달하게 된다.
두산의 연봉제는 연공급을 토대로 능력급을 가미한 ‘한국형 연봉제’이다. 두산은 이를 통해 인화바탕의 온정주의 연공서열의 전통을 깨고 능력자가 대우받는 조직풍토를 만들고자 한다.
2) 연봉제를 실시하는 기업, 직종
그외에도 외국 합작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은 진작부터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그러나 이곳에서도 미국식의 연봉제를 그대로 도입해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연봉결정 과정에서 연공급을 가미하는 등 한국적 문화풍토를 고려하고 있다.
직종별로 살펴보면 아무래도 전문직종에 대한 연봉제의 실시현상이 두드러진다.
의류디자인업계나 광고업계에선 연봉제가 보편화 되다시피 했는데 모 의류업체 여성 디자이너의 경우 연봉 7000만원을 계약하기도 했다. 그밖에 연구·기술직, 금융업계, 보험영업직등으로 연봉제의 실시는 확대되면서 능력에 따른 대우를 정당화 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실력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연봉제’의 실시는 일견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미래사회에서는 이러한 제도가 더욱 당연시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실시와 정착에도 주의깊은 준비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는 개개인의 능력 및 실적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종업원간에 평가결과에 대해 승복하는 ‘평가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무중심의 인력관리와 임금관리가 이뤄져야 하며 관리직이나 전문직에만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적용대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봉급, 성경적으로 사용합시다
평소 자신의 봉급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 저는 회사에서 고객상담을 맡고 있습니다. 이 일은 오랜시간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힘이 듭니다. 그런 면을 고려할 때 제가 받는 봉급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액수 그 자체로는 많지만 고된 일에 비해서는 적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공무원인데요 다른 일반 기업체와 마찬가지겠지만 봉급이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액수도 적어서 불만입니다. 사실 저의 상황으로 볼때 봉급이 적습니다. 좀 더 많이 받고 싶고 어쨌든 현실에 맞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봉급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채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용 내용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볼때 우리들은 더 많이 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는 봉급을 거의 받질 못했습니다. 직장을 옮긴 후에야 봉급을 받았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는데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용하고 싶습니다.
◆ 월급이 증가할때 이것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데만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의 필요이상을 우선 친척들을 돕는데 사용하고 싶습니다.
◆ 봉급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필요를 아시고 그 만큼 채워 주시더군요. 예를 들어 식사를 하게 되면 상사인 제가 돈을 내는 경우가 많지요. 또 여러 경조 행사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봉급으로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더군요.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간구했더니 채워주시더군요.
◆ 봉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늘 감사하고 다만 봉급에 대한 성경적인 사용을 하지 못해서 불만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근면 검소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다음으로 저의 필요 수준을 정하려고 합니다. 저의 필요 이상을 성경적으로 사용해볼까 합니다.
◆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생활은 참 어렵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빌려서 메꾸고 그 빚을 다음 달 봉급으로 다시 갚는 생활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봉급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고 주어지는 것에 만족하고 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꼭같은 문화 생활은 어림도 없습니다.
◆ 처음 봉급을 받았을때 너무 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받고 살 수 있나하는 생각도 했죠. 그러나 지금은 봉급이 하나님의 공급임을 느낍니다.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는 재정이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 얼마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높기때문에 생활이 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택시 타는 것도 주저하고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그들의 옷차림 또한 우리들보다 훨신 검소해 보였습니다. 그런 그들에 비교해 볼때 우리의 소비 생활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저축하는 것을 좋아 했는데 앞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사용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인 차원으로서의 임금 문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 회사 외부 용역 업체 직원이 봉급이 너무 적어서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는 신우회에서 저와 같이 활동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그가 다니던 회사 사장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면서도 신앙의 형제에게는 인색했던 것 같습니다. 사장의 태도가 성경적이 아니었던 것이 그는 형제의 문제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그 문제를 다루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습니다.
◆ 저는 직업과 관련된 믿음 생활에 대해서 두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나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이 두가지 모두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관계가 있는데요, 신앙의 결국은 천국이라는 점에서 볼때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봉급에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약 봉급을 더 받는다면 봉사하는 일에 사용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궁리끝에 제 사후에 쓰여지도록 장기를 기증했습니다.
◆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잘못된 점들을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간부 사원들이 모여 식사할때는 그 비용이 공금 처리되는 반면에 일반사원들 경우에는 각자가 부담합니다. 정직하지 못한 기업은 이윤을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습니다. 물론 각각의 상황과 정확한 근거에 의해서만 그러한 판단을 내려야 하겠지요. 어느 정직한 기업인은 남는 장사는 못하지만 직원 월급은 꼭 준다고 말하더군요. 그 기업인처럼 개인의 만족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두의 만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기업에서는 여자 직원을 대부분 임시직으로 채용한 탓에 그들과 기존의 정식 여직원 간의 갈등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른바 촉탁 고용 제도의 폐해라고나 할까요. 일반 제과점에도 2-4시간짜리 임시직이 있는데 정식 직원에 비해서 적은 임금을 받습니다. 기업들이 그런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아마도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얼마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크리스천의 목소리가 적은 것에 대해 불만이 큽니다.
◆ 무엇보다도 임금을 둘러싼 노사간의 갈등에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크리스천 직장인으로서 노조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어쩌면 몹시 조심스런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당한 상황이나 불의한 조건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만이 크리스천다운 모습도 아니지요. 지혜로운 방안이 필요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임금문제등으로 노사간의 갈등이 첨예화될 때면 몇몇 크리스천 동료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곤 합니다. 이 외에 지혜롭고 현실적인 크리스천의 자세를 정립해 나가는 것도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