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가 말하는 유아의 사고력
피아제는 189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인지발달 이론가입니다. 1980년 세상을 마칠 때까지 아동심리학에 몰두하여, 전 세계적으로 그 분의 이론이 아동 교육에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니 그의 이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아제는 어린이가 이해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학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발달심리학의 대표자로 생각하고 있지요.
피아제는 어린이가 자신의 독자적인 현실 모형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재창조하면서, 한 단계가 지날 때마다 단순한 개념들을 통합해 좀 더 높은 수준의 개념으로 조직화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린이에게는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는 사고력 발달의 시간표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인지발달 4단계를 밝혀냈습니다.
태어난 뒤 2년 동안, 즉 영아기에는 주로 자신이 타고난 신체적 반사 능력을 터득하고, 그 능력을 확대해 나가는 데 관심을 갖습니다. 그는 이 시기를 감각운동기라 합니다. 이 시기에 어린이는 자신을 처음 인식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주위의 물체도 역시 별개의 영속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2세부터 7세까지 계속되는 두 번째 단계는 전조작기입니다. 이번 연구노트에서는 이 시기의 사고력 발달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합니다.
‘전조작’이란 발달의 불안정성을 의미합니다. 이 시기에는 언어발달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사고의 발달과 개념 획득 능력이 빠릅니다. 그러나 물질적 존재나 현재 상황과 연결된 개념들은 쉽게 형성되는 한 편, 추상적 개념 형성은 한정됩니다.
전조작기 사고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이 시기의 유아는 놀이 활동에서 비언어적인 상징 행동을 많이 사용합니다. 막대가 총이 되기도 하고 베개가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 놀이도 곧잘 하게 되는데 이런 역할놀이를 가상놀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활동이 표상활동이며 막대와 같은 정신적인 표상을 ‘기표’라고 하고 그 대상인 총을 ‘기의’라고 이름 붙입니다. 우리는 ‘기표’를 ‘상징’이라고 하지요. ‘기표’는 나중에 낱말이나 숫자로 발전합니다.
②전조작기 유아는 그들 자신의 눈만을 통하여 사물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보는 바와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입니다.
③물질의 수량이나 길이, 면적 등의 형태나 위치를 변화시키면 달리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다섯 개의 과자를 위에 늘어놓고 아랫줄에 다섯 개의 과자를 하나하나 짝을 맞추어 늘어놓으면 위아래의 과자가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만, 아랫줄 과자를 띄엄띄엄 벌려 놓은 뒤 위아래의 과자 중 어느 것이 많은지 물으면 아랫줄 과자가 많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보존개념이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유아들에게는 보존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④세상 만물이 모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는 빛을 주기 때문에 살아있고, 자전거나 구름, 강물도 움직이니까 살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를 물활론이라고 하는데, 물활론적 사고는 4-6세경에 현저하게 나타나서 11-12세가 되면 사라집니다.
⑤전조작기의 유아는 자신이 꾼 꿈을 다른 사람도 본 것으로 생각합니다. 꿈은 하늘로부터 또는 바깥의 빛으로부터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꿈은 자기 주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꿈의 실재론이라고 합니다.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으려면 초등학교 학령기가 되어서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⑥이 시기의 유아는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개의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 연결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산을 가지고 왔더니, 오후에 비가 왔다.’거나 ‘아직 낮잠을 자지 않았으니 오후 2시라 하여도 지금은 오후가 아니다.’라는 추론을 하게 됩니다. 우산이 비가 오는 원인이 되고 낮잠이 오후가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⑦전조작기 유아들은 동일한 양의 주스가 담긴 두 개의 컵 중에서 하나를 넓적한 그릇에 부었을 때 두 그릇의 주스 양을 비교하는 데 혼란을 겪습니다. 넓적한 그릇의 주스를 원래의 컵에 다시 부으면 주스 양이 같다는 ‘역조작’의 사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이를 비가역성이라고 합니다.)
⑧이 시기의 유아들은 사물(사람, 동물, 장난감 등)의 그림들을 주고 비슷한 것끼리 모아보라고 하면 크기나 모양에 따라 분류하게 됩니다. 색깔만을 고려하여 나누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모양과 크기 등 두 개 이상의 분류기준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가 동물이라는 상위 유목에 포함된다는 것, 장미꽃이 꽃이라는 상위 유목에 포함된 다는 것 등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전조작 사고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보면, 유아는 실제로 그렇게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자들이 유아에게 친숙한 대상물을 과제로 사용했을 때, 4세 유아는 다른 사람의 견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유아의 보존개념 및 언어표현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최근의 연구들은 피아제가 유아의 물활론적 사고를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합니다. 유아의 물활론적 반응은 생명이 없는 대상물이 살아 있다는 신념 때문이 아니라 대상물에 대한 유아의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유아에게 그들의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쉬운 과제를 제시했을 때, 유아는 피아제의 연구에서보다 더 이른 연령에 비논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다른 연구에서 유아는 친숙한 상황에서 인과의 개념도 이해하며, 자신의 경험을 인과관계의 견지에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유아기 사고가 전조작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할지라도 취학 전 유치원 또는 어린이집 교사들이나 부모님들이 전조작적 사고의 특징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들의 눈높이를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속되는 3번째 단계는 7-11세의 구체적 조작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어린이의 사고 과정에 논리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사물을 유사점과 차이점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시간과 수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합니다.
마지막 단계인 형식적 조작기는 11세에 시작해서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되는데, 사고방식에 질서가 잡히고 논리적 사고력을 터득해, 좀 더 유연한 정신적 실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지발달단계에 대한 피아제의 개념은 아동과 학습 및 교육에 관한 이전의 견해들을 재평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고 과정이 유전적으로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발달한다면, 단순한 강화만으로는 개념을 형성시키는 데 충분하지 못합니다. 어린이의 정신 발달이 그 개념들을 흡수하기에 적절한 단계에 도달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아제의 말을 빌리자면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어린이가 스스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2009.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