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의 용기와
자신의 글을 사랑하는 그 정신에 박수를 보냅니다.
제가 교정을 본 한 사람으로서 말씀을 드립니다.
편집실에서 가장 골치아프고 애를 많이 먹는 게 비문과 시제일치입니다.
문단 경력이 10-20년이 된 분들도 실수를 많이 하십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시제를 건드리지 않고 내용을 살리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현재형으로 현장감을 살리자라는 선생님의 의도는 정확히 알겠습니다.
제가 원본을 정확히 대조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작품에서 몇 가지 간과하신 게 있습니다.
원문 도입부 첫 문장의 서술종결형이 현재인 <~반짝인다>,
둘째 문장의 종결형은 과거형인< ~걸었다>
3~8까지 현재형, 9와 10은 <~늘어놓았다>와 ,<젖었다>로 과거형,
11은 생각, 12, 13는 <생각했다>와 <같았다>로 과거형
그리고 시간적 여백을 두기 위해 한 줄 떼고 14는 <뜬다>현재형,
15는 <건져냈다>과거형, 16은 생각.
자, 도입부부터 이러니 어느 누가 현재형으로 실감나게 하려고 했다고 인식하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음악이나 미술 등의 다른 예술 장르와는 달리
문학은 정확한 문자나 글로 소통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몫이 큽니다.
또한 시와 다르게 수필은 내가 주체가 아닐 때는 주어는 반드시 써 줘야 하고
때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제대로 드러나야
독자들이 혼선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문의 뒤쪽에서도 현재형으로 현장감을 살리기는커녕,
또 현재형 과거형이 뒤섞여 있습니다.
<풍긴다><끼얹었다><뿌렸다>그 다음 현재형들.
선생님 스스로가, 작품 안에서 시제의 통일성이 전혀 없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모두 과거형으로 쓰는 게 더 낫습니다.
꼭 본인의 의도를 살리려면 제가 언급한 과거형들을 모두 현재형으로 바꾸면 됩니다
그런데 추억을 쓰는 작품은 과거형으로 쓰는 게 흡입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지난 겨울에세이 20선 중<엄마와 꽃상여>읽어보시기를 권장합니다.
꼭 현장감을 살려야 하는 작품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카메라의 시선이 일일이 따라가야 하는 축구경기 모습, 팽팽한 시위 광경,
아슬아슬함과 긴장을 주는 일들, 공장등, 현장 체험, 히말라야 등정을 따라가는 모습, 노을 속에 한 컷 등등...
자신의 글에 심취하면 다른 것이 안 보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글에는 좀더 냉정하고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객관적, 보편적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글 쓰는 모든 사람들이 안고 생각해 봐야 할 일입니다.
이 기회가 좋은 글을 향하여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이의제기를 해 주십시오.
못다 한 이야기는 3월 <이야기합시다>에 나오셔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편집위원 정경희 올림
첫댓글 현장감을 살리자는게 아닙니다. 제 글에 본인 스스로 심취한게 아닙니다. 묘사는 본인의 주관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우선 말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원작자에게 말을 안하고 고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주희 님 작품에서 첫 문장인 "눈이 그치고 햇빛이~"는 현장감을 살린다는 차원에서는 '반짝였다'가 아니라 '반짝인다'가 맞습니다. 이 문장은 작은따옴표('')가 없다 뿐이지 사실상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정경희 님 작품 '이러큼 해서 저러큼 하면'의 두번째, 세번째 문장인 "길잡이가 곧 가이드 아닌가? 아예 귀찮을 성싶은 요청은 싹수를 잘라버리자는 수단이다"에서 작은따옴표 처리를 안했지만 현재형으로 썼듯 말입니다. 심주희 님의 작품에서, 첫 문장 이후로는 시제의 일치에 따라, 과거형으로 통일하는 것이 부드럽다고 생각합니다. 첫 문장까지 과거형으로 만든 것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원작을 사전예고 없이 편집실 마음대로 고치게 되면, 논란을 불러올 뿐입니다. 왜 원작자의 동의가 없이 이런 일을 하시는지(아무리 좋은 의도라지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작가라면, 다른 작가도 존중해야지요.
글쎄요.. 저도 읽어봤지만 시제 혼란같은걸 느끼지 못했고.. 문장의 표현도 괜찮다고 생각되네요.. 그치만..아무리 편집을 한다해도 동의없이 글을 수정하고 내보내는점은 이해가 잘 안가네요...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었습니다. '현재'를 '과거'로 수정한 곳이 대충 열 곳쯤 되는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교정을 보았다면 다시 여섯 곳을 더 수정하고 싶습니다. 콩나물 기르는 과정에서 말입니다. "붓는 소리 때문이다" "원을 그리며 떨어진다" "머리를 솟구친다" "아삭아삭 소리를 낸다" "병정들처럼 가지런하다" "또 머리를 내민다" 입니다.,,아무리 과거에 있었던 일이더라도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서 '현재'로 쓸 수도 있겠으나 같은 이야기에서, 더구나 한 단락에서 시제가 바뀌면 독자는 혼란을 느끼지요.
편집부에서는 이렇게 시제가 많이 바뀌는 글에 대해서 작자에게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납득이 간 후에 실었더라면 이렇게 얼굴을 붉힐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을요. 유감입니다.
한 점 티끌이 없는 원고는, 제 경험으로 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맞춤법이나 문장론은 물론 어떠한 면에서라도 필자가 아닌 다른 사람(독자, 특히 편집자)의 눈에는 흠집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하다못해 正誤가 아닌 견해 차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편집자로서는 당연히 원고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편집자로서 마땅한 책무, 나아가서는 의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편집자가 임의대로 고칠 수 있다는 말은 당근 아니지요. 당연히 필자와 교류가 있어야겠지요. 이번 경우처럼 거리가 멀어 직접 상면할 수 없다면 전화나, 이메일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요.
그래서 이번의 경우에는 수정한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그 방법이나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어떨까요. 출판사에서 더 나은 책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심선생님과 사전에 한마디만 의논이 있었더라도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심선생님께서도 마음을 다치셨겠지만, 시야를 넓히는 계기로 삼으시고 널리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논의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그래야 모두 발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에세이광장 코너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우리 에세이문학 파이팅!
김선식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편집자의 고충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필자와 사전 의논을 거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요. 필자는 마음을 많이 상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 이번 일이 본보기가 된 것으로 마음을 가라앉히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글들을 소화해야 하는 편집부의 애로를 생각하셔서요. 모든 것이 <에세이문학>에 좋은 글을 실어 필자나 편집부 모두가 흐뭇해지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습니까? 시제 문제는 누구에게나 골칫거리입니다. 글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려다 보면 부딪히게 되는 문제죠.
문학이란 읽는 독자에게 문학적 쾌감을 주는데 있습니다. 어떤 글이든 작가의 혼이 분명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글은 작가 자신이 고쳐야만 감동적인 글로 재탄생될 것입니다. 우리는 첨삭지도를 받기 위해 에세이문학에 글을 낸 것이 아닙니다.. 탈자, 오자, 띄어쓰기에 대한 수정도 아니고 번번히 글을 고쳐 글을 쓴 사람을 슬프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너 자신을 알라"...모두 완벽한 글을 쓰고 계시나요? 이 아침에 제 자신에게 던지는 말입니다. 시제 완벽히 쓰는 사람 많을까요? 글은 쓰는 시점이 중요한데요. 그리고 글을 편집자가 고치면 개성이 살아있나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시제인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시점에서 보면 과거 아닌 것이 있나요. 우리가 배울 때는 처음 문장에서 "백화점에 갔다" 하고 과거형으로 했으면 다음부터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재형으로, 현재진행형으로 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들었읍니다. " 이것 저것 신기한 것이 많아 눈이 저절로 돌아간다"...이럴땐 굳이 돌아갔다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고치기 전에 작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좋은 의견이 오가서 발전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렇지요. 백화점에 간 것은 며칠 전이지만, 일단 백화점으로 들어가서는 바로 현재상황으로 전개하는 것이 현장감 있으니까요.
저는 교정에서 시제 문제에 부딪히면 일단 필자의 생각이나 감정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글의 전개과정을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 필자의 의중을 더듬어 보는 거지요. 그러면 대개 아하, 이래서 이런 시제가 나왔구나 하고 이해가 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냥 두는 거지요. 많이 서투른 필자의 글이 아닌 이상, 그 의도를 존중해 주는 것이 편하기도 하고. 거 왜 영어에 'put in one's shoes.'라는 표현있지 않습니까. '입장 바꿔 생각해 봐'라는 말. 필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이해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아니라고 보이면 고쳐주는 것이 좋겠지요. 반드시 필자의 양해 하에.
저는 그런 경우에는 필자를 출판사로 나오시라고 해서 같이 앉아 교정을 봅니다. 서로 공부도 되고,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필자들 열에 아홉은 아주 좋아합니다. 물론 바쁠 때면 일일이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요.
역시 글쓰기는 어렵네요--선생님들 말씀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