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가를 찾아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비폭력 운동으로 흑인들의 인권과 평등을 가져온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1929년 3대째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평생 인권운동을 펼치고 온갖 핍박과 협박을 이겨내고 196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1968년 39세의 이른 나이에 암살당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는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라는 흑인 여성이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체포된 뒤 버스 탑승 거부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일 년 후 대법원에서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이후 흑인들은 물론 가난한 이들의 인권 개선에 앞장서지만 비폭력으로 일관한다. 일부에서는 비판도 일었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간디의 영향을 받아 폭력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트홀에는 마틴 루터와 간디와 함께 한 사진이 걸려 있었고 기념관 밖에는 간디의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비폭력 운동을 전개한 두 인물,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두 사람의 공통점을 강조한 듯하다.
그는 독일을 방문 후 종교개혁가였던 마틴 루터의 영향을 받아, 마이클 킹 주니어에서 마틴 루터 킹으로 그의 이름을 바꿨다. 1929년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그의 생가, 기념교회, 기념관, 아트 센터 등을 방문하였다. 비폭력 행진 그리고 워싱턴에서의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 관련 각종 사진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칼을 쓴 자는 칼로 망한다.”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다.”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따뜻한 햇볕”이었다는 것을 마틴 루터는 일찍이 깨달은 듯하다.
워싱턴에서의 그의 연설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이후 1964년 시민법, 1965년 선거법이 바뀌어 “짐 크로 법”(흑백 인종 분리)이 폐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피해자가 자라서 가해자를 찾아 복수하는 내용들이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과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지만 이는 성경의 내용과는 다르다. “원수를 용서하라”, “원수를 위해 사랑하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비록 더디고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보이지만 성경적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지만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가 치유와 자유함을 가져온다. 링컨의 노예 해방과 그리고 마틴 루서 킹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운동이 수많은 결실과 인권을 개선했지만, 아직도 이 사회는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 편견과 차별은 곧 교만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진정한 치유와 자유함을 가져온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나마저 그들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인정해 주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 아닐까.
이진종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