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방황
안유환
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해변마을 어디쯤에 있을 것 같았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바다 쪽으로 접어들어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고 있다. 부산에서 일박을 하고 오전 10시가 좀 넘어 이모의 전송을 받으며 집을 나선 영민은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넘어 조금 전 송정을 지났다.
“어디가든 몸조심해라. 쯧쯧.”
이모는 조카가 몇 년째 마음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 안쓰러웠다.
“예, 이모님도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시간 나는 대로 또 들리겠습니다.”
이모와 주고받던 대화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다. 조카를 중매하기위해 열 곳도 더되게 선을 보도록 주선했던 이모에게 바라는 답을 주지 못했다. 이모의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의욕에 차있던 아들의 방황이 늘 마음에 걸렸다. 1년 휴직을 했던 고등학교 교사직을 이제는 영영 그만두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아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줄만한 참한 색싯감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아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며느리를 그리워했다.
누구나 처녀 총각 때는 한 두 번 쯤 수녀나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결혼을 미루기도 한다. 그러나 영민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노년의 어머니를 모셔야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가정도 갖게 되었다. 그는 결혼을 하고 나서 왜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결혼을 재촉하며 성화인지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개념으로 아는 것은 포장지 겉에 붙은 상표와 같은 것. 포장을 뜯고 그 속에 든 것을 먹어보거나 사용해 봄으로 그 상품의 가치를 아는 것처럼, 남녀의 사랑은 결혼을 해보아야 안다는 것을 영민은 깨달았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톱니바퀴가 맞아 돌아가며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것처럼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틈이 보이지 않는 틈을 두고 안과 밖이 꼭 맞았다. 영민은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궁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꿈은 서서히 기초를 다져가고 얼마 있지 않아 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꿈의 기초란 뒤늦게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아내가 설계하기 시작했고 영민의 미래는 아내의 가슴속으로 녹아들었다.
꼭 맞는 톱니바퀴는 서로를 거부하지 못한다. 시계바늘이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의 작동에 의해 정확한 시간을 만들어 내듯이 두 사람의 가슴은 하나의 심장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영민이 그리던 이상적인 여인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모여 앉으면 좋아하는 여인상으로 쉽게 영화배우들의 이름을 들먹였다. 영민이 내세운 이름은 영화 <산파브로>에서 나왔다. 스티브 맥퀸과 열연했던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캔디스 버겐. 약간 갸름한 얼굴에 깊고 잔잔한 호수 같은 큰 눈동자, 선교사로 일하는 그녀는 한 생명을 구원하려는 가슴속의 사랑과 열정을 그 얼굴로 나타내고 있었다.
감기 한번 앓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던 아버지가 쓰러져 입원을 했을 때 영민은 대학 졸업반이었다. 중소기업 CEO인 아버지의 병실은 1인 특실이었다.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하룻밤 어머니를 대신해서 병상을 지키던 날이었다. 영민이 아버지 옆 침대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담당 간호사가 들어왔다. 영민은 자칫 물 컵을 떨어트릴 뻔했다. 처음 보는 순간 그네는 흡사 캔디스 버겐 같았다. 하얀 손으로 아버지의 이마를 짚어보고, 뺨을 쓰다듬고, 베개를 고쳐 베어주고, 시트 깃을 여미는 동작이 자기 가족을 돌보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간호사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영민은 처음 보는 감동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는 따끈한 물수건 두 개를 가져와 하나는 영민에게 건네주고 하나로는 아버지의 얼굴과 손발을 찬찬히 닦아주었다. 그러나 그네에 대한 생각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복잡한 사업의 뒤처리를 하면서 잊히고 말았다.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면서 영민은 아버지의 간병 때 보았던 간호사를 떠올렸다. 물 컵을 떨어트릴 뻔했던 일을 생각하며 영민은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간호사 지원은 그대로 근무하고 있었다. 신이 예비한 짝은 아무도 달아나지 못하고 서있는 자리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지원은 영민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그들은 마치 오래도록 사귀어왔던 사람들처럼 한 마음이 되었다.
‘간절곶 입구’이란 표지판을 보고 국도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들었다. 한반도에서 가장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새해가 될 때면 사람들이 몰려가는 강릉의 정동진보다 5분이나 더 빨리 해가 뜨는 곳이라고 들었다. 커피라도 한잔 하며 쉬었다 가려고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외국인 부부 한 쌍이 어린 아이 손을 잡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가장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이 세운 하얀 풍차였다. 토산물 전시관 앞쪽에 세워진 풍차공원에는 꽃양귀비, 샤피니아 등 수입화초와 함께 금잔화와 원추리가 빨갛고 노랗게 주변을 색칠하고 있었다. 음식점도 찻집도 휴업이었다. 영민은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떠올렸다.
먼 바다는 잔잔하면서도 인접한 해변의 바위에는 파도가 치고 물결이 치솟아 오른다. 고기잡이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하얀 모자상을 쳐다보며 자기의 처지를 생각했다. 높이가 5m나 되는 거대한 소망 우체통이 있는 언덕 위에는 젊은 부부가 바다를 배경하여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있을 뿐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한산 했다. 아내는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방학이나 연휴 나들이 때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호젓한 바닷가를 찾았다. 영민은 만약 지원의 영혼이 이 땅으로 나들이 한다면 그곳은 어느 갯마을이 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영민을 바닷가 마을을 헤매게 하는 지도 모른다. 간절곶을 빠져나와 송개, 진하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언뜻 언뜻 보이던 바다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길은 복잡해졌다. 이때까지는 갈림길이 나오면 해안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바다와 나란히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예측은 빗나갔다. 마을 이름이 분명한 표지판을 보고 해안 쪽으로 꺾어 들었으나 그 길은 덤프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드나들고 있었다. 주변엔 붉은 황토가 드러나고 몇 대의 포클레인이 큰 공장 부지를 조성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 양쪽에는 승용차가 길게 줄지어 주차하고 있다. 어디선가 밀려오는 공장매연이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숨쉬기도 거북스러웠다. 새벽같이 집을 나와 작업현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부산을 출발할 때 조금씩 내리던 비가 이슬비로 바뀌고 구름 속에서 햇빛이 얼비치고 있다. 이따금 차창에 뿌려지는 는개가 새벽잠에서 깨었을 때처럼 시야를 뿌옇게 하고 있었다. 공업탑을 지나면서 울산시를 가로지르고 있다. 흐린 하늘아래 온 시가지를 뒤덮은 운무 같은 매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유람하듯 차를 운전하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언젠가 학생들을 데리고 견학한 적이 있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으로 접어드는 길을 왼쪽으로 두고 현대 미포조선소를 지나면서 해안길이 다시 나타났다. 화살표와 함께 ‘경주, 대구’ 표지판이 두어 차례 보였다. 어쩌다 삼거리가 나와도 오른쪽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을 잡으면 숨었던 바다가 다시 얼굴을 내밀곤 했다.
부산을 떠난 지 세 시간이 훨씬 지났다. 시장기를 달래보려고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바닷가 마을 도로변 공터에 주차를 하고 ‘영덕식당’이란 간판이 붙은 집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손님들은 아무도 없었다. 통로처럼 보이는 주방에는 딸인 듯한 아가씨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60대 초반의 아줌마가 갖다 주는 물 컵을 받아놓고 오른쪽 벽면의 메뉴를 쳐다보았다. ‘참 맛있는 정식 6000원, 김치찌개 6000원, 된장찌개 6000원, 생칼치 찌개 8000원, 삼겹살(1인분) 8000원’. 메뉴판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로 ‘※쌀·김치 국내산, 김치와 된장은 직접 담금’ 이라 적혀있었다. 영민은 ‘참 맛있는 정식’을 주문했다. 한참 후에 나온 반찬 접시는 모두 열 개. 김치와 버섯 조림, 애호박나물, 젓갈, 꼬막, 쌈장과 양념간장, 나물고추 찜, 호박잎, 구운 가자미 한 마리, 그리고 밥과 국이었다. 이름 그대로 정식은 참으로 맛이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성구 액자가 걸려있다.「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영민은 식사를 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낌없이 반찬을 차려내는 식당이 빨리 창대하면 좋을 텐데-.’ 꼬막과 젓갈은 수저를 대지도 않았다.
“어디서 오셨어요?”
‘꼬막이 참 싱싱한데 좋아하지 않으신가 보지요.’ 라고 혼잣말을 하며 주인은 물었다.
“부산 쪽에서 왔습니다.”
방황하는 사람의 대답이었다.
“요즘 외지에서 이곳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혼자 오셨습니까?”
“혼자가 편하잖아요. 아무데서나 머물고, 먹고 자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곳을 찾는 분들은 대체로 부부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
“여기 어디 그럴만한 곳이 있습니까? 농촌도 아닌데―.”
“아마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텃밭도 가꾸고―.”
“그곳이 어디 입니까?”
“예, 조금만 더 가시면 왼쪽으로 평평한 산을 낀 마을이 나옵니다. 최근에는 해수온천탕을 개발되어 주말엔 멀리서도 손님들이 찾아온답니다.”
“이름 그대로 정식이 참 맛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차리고 남는 것이 있습니까?”
“맛이 있다니 감사합니다. 하하하.”
영민은 밥값을 치르고 일어섰다. 귀촌 지역 위치를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 그대로 조금만 가면 그곳이 나타날 것 같았다. 오른 쪽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왼 쪽으로 멀리 산을 쳐다보기도 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따금 뒤에서 클랙슨이 울리면 길가 쪽으로 차를 붙여 뒤차를 먼저 보냈다. 이십분쯤 달렸을까? 길가에 ‘해수온천’ 입간판이 보였다. 이윽고 ‘민박’ 간판도 잇달아 나타났다. 왼 쪽에는 야트막하게 산자락이 흘러내리고 오른 쪽에는 조그만 해수욕장을 낀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어디에도 해수욕장 간판은 보이지 않았으나 반타원형의 포구는 피서를 하기에 좋은 사장을 갖추고 있었다. 영덕식당 아줌마가 말하던 귀촌지역은 평평한 산자락을 끼고 조성되어 있었다. D건설에서 미래를 위한 야심작으로 주문주택을 하나씩 세워가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높은 산은 도시인들이 주말등산 코스로도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었다. 바다와 산과 텃밭이 있는 전원주택이 현대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영민처럼 목적지가 뚜렷하지 않게 여행하는 사람들도 쉬어가고 싶은 아늑한 지역이었다. 넓은 주차장이 달려있는 해수온천은 큰길에서 한걸음 들어가 있었다. 주말이면 가까운 울산을 비롯한 경주 등지에서도 이곳을 찾아오지만 아직 크게 소문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주중에는 한산한 편이었다. 하지가 가까워지면서 낮이 한껏 길어졌어도 벌써 해는 서산마루에 다가서고 있었다. 영민은 해수온천 마을에서 쉬어가기 위해 목욕탕이 가까운 곳에 민박집을 잡았다.
영민은 늦잠을 자고 오후에는 전원주택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나 산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마을에 가려진 바다가 조금씩 위로 올라갈수록 뚜렷이 보였다. 편백나무 숲이 잘 가꿔진 산자락엔 일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고 어두워도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나란히 다운라이트를 설치해놓았다. 천천히 능선위로 올라갔다. 점심을 늦게 먹었더니 배도 고프지 않았다. 해안선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발아래까지 밀려올라왔다. 영민은 지원과 함께 이런 곳에 도심의 즐비한 요양병원과는 차별화된 보금자리를 세우고 밀려나는 신중년 세대들에게 일하며 살아가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영민은 오후 한나절을 산에서 보내고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여 해수온천탕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는 불도그처럼 생긴 남자가 앉아 있었다. 멀리서 오는 목욕탕 손님을 맞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없었다. 아니, 그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면 더욱 이상해 보일 것이다. 목욕탕 내부 시설은 깨끗했다. 온탕을 비롯해 열탕과 미지근한 이벤트 탕까지 다양하고 냉탕도 살을 에는 듯한 초 냉탕까지 설비해 고객들의 기호에 맞추려는 흔적이 보였다. 영민은 한 시간 쯤 목욕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카운터에는 우락부락한 남자 대신 예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영민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얼굴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퍽 눈에 익은 모습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큰 눈을 깜박이며 여인은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들어갈 때 앉아있던 무뚝뚝한 남자의 인상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는 상냥한 태도였다. 아내의 모습 같기도 하고 캔디스 버겐의 얼굴을 닮았다.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살짝 비틀려 올라가는 갸름한 얼굴의 눈동자에 영민의 모습이 눈부처로 담겨있었다. 누가 만약 영민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내의 영상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영민은 어느 정도 비슷한 점만 보여도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영민은 동해안을 굽이굽이 돌며 천천히 북상하려는 마음을 잠시 접고 해수온천 마을에서 꼬박 2주간을 머물렀다. 셋째 날 오후에도 편백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벤치에 앉아 타원형의 포구를 내려다보았다. 바닷가에는 갯마을 같은 옛 모습의 집들이 바다를 껴안고 있고 몇 척의 자망·통발 어선이 멀지않은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깊은 바다는 물이 차기 때문에 고기들이 연안 가까이로 몰려든다는 얘기를 어제 점심때 횟집에서 들었다. 경사진 땅에는 기존의 별장과는 다른 귀촌주택들이 빈자리를 메워가고 있었다. 영민이 생활 요양원을 구상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아내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부의 자리로 들어왔다. 지원은 처음 시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약간 망설였다. 그러나 그네는 영민이 건네준 수필집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를 읽으며 그의 생각을 접기로 했다. 책은 이웃을 향한 아버지의 숨은 사랑,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족 돌봄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깊고 넓은 ‘인간사랑’을 엮어내고 있었다. 특별히 ‘마지막 남은 마당’에는 옛날의 집들이 갖고 있던 넓은 마당의 애환과 정서를 그리고 있었다. 아파트가 높이 솟으면서 사라져가는 옛날의 마당을 지키고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려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지원은 영민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 좋았다. 학창시절에는 시를 써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글을 끼적이면서 막연히 동경하던 작가가 그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했다. 지원은 그 사람과 함께 간호사의 꿈을 더 큰 꿈으로 키워보고 싶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원은 사이버대학 과정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현대인들의 마지막 안식처인 생활요양원을 생각했던 것이다. 품앗이처럼 서로 돕고 살아가는 자유로운 공동체생활!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한곳으로 유치해 어린이와 노인이 공생을 이루어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외로운 어린이들은 할머니들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맛보게 하고, 노인들은 그리운 손주들을 대하듯 고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을 것이었다. 간호사의 자상한 마음과 작가의 선한 상상력은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나타낼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영민은 지원의 제안을 듣고 곧 마음을 확정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꿈을 꾸고 그 꿈을 함께 이루어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영민의 가슴은 뛰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려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지만 지혜로운 아내의 더 큰 꿈을 함께 이루어간다는 것은 가슴 부푸는 일이었다. 영민은 그의 캔디스 버겐으로 하여금 인간애를 실천하는 일꾼으로 만들고 기꺼이 충실한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톱니바퀴는 맞아 돌아갔다. 영민이 신문 칼럼을 쓰거나 작품을 쓸 때면 지원은 첫 번째 독자였다. 그네는 영민의 글을 읽을 때마다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영민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은 글의 울림과 격조를 더했다. 때로 올바른 지적이 아니어도 영민은 아내의 말로 인해 더 완벽한 표현과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한적하게 보이던 귀촌주택지역에는 해거름이 되면서 한 쌍씩 산책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다 젊어 보이는 장년들은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곳에서 운동을 했다. 그들의 모습은 모두 이곳 사람들이 아니라는 표지를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차림새나 모습이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품위가 있었다. 27도를 웃도는 달려온 여름 날씨가 조금만 걸어도 등이 땀으로 함박 젖었다. 돌아오는 길에 영민은 해수온천탕으로 갔다.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안녕하세요.”
카운터에 앉아 인사하는 여인의 모습이 볼수록 아내를 닮았다.
“반갑습니다. 어디서 뵌 분 같은 데요―.”
“어제 저녁때 보았잖아요. ㅎㅎ.”
여인은 약간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그렇던 가요―.”
영민은 그의 농담이 썰렁해진 것이 송구스러웠다.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여인은 다시금 표정을 가다듬으며 정중히 물었다.
“부산 쪽에서 왔습니다.”
영민은 영덕식당 아줌마가 물었을 때처럼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세요? 부산에 계신 분들도 간혹 귀촌정보를 물어오기도 한답니다.”
여인은 묻지도 않은 귀촌주택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D건설의 주민 설득작업이 주효한 것이었다. 지역주민들은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마을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물론 목욕탕도 잘 될 것이었다. 영민은 3층 목욕탕으로 올라갔다. 넓은 시설에 사람들은 몇 명 없었다. 아무래도 주말이나 공휴일에 찾아오는 고객이 많은 것 같았다. 영민은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도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누려고 생각했으나 오늘은 첫날 보았던 그 남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몇 사람이 교대를 하며 카운터를 지키는 모양이었다. 영민은 해수온천 마을에 붙잡혀 있었다.
이튿날 영민은 승용차 뒤 트렁크에서 등산장비를 꺼내 착용하고 민박집을 나섰다. 마을 뒤편 높은 산을 올라보고 싶었다. 지향 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영민이 건강을 지키는 방편은 산행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숙소를 정할 때면 오를만한 산이 있는 곳을 찾을 때가 많았다. 등산을 하고 나면 목욕은 필수적이다. 정상에 올라 대도시의 시가지를 내려다보거나 올망졸망한 산촌이나 들판의 평화로운 마을을 바라보면 어느새 시름은 가시고 온갖 욕심도 사라졌다. 그런 날은 꿈도 꾸지 않고 단잠을 자게 된다.
그 다음날은 새벽 산책에 나섰다.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맑았다. 저만치 앞에 한 여인이 챙이 큰 차광모를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편백나무 숲이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간격이 좁아졌다. 알고 보니 해수온천탕 여인이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얼굴모습만 보았기에 걸어가는 뒷모습으로는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조그만 생수통을 들고 가는 여인의 키나 몸매도 아내와 비슷했다. 영민의 마음은 첫날부터 자기도 모르게 그 여인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영민은 여인의 뒤쪽에 바짝 다가서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인은 인사한 사람이 영민인 줄 알고 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반갑습니다. 이지역이 어떻습니까?”
여인은 그가 귀촌할 장소를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참 좋은 곳이네요! 좋은 이웃이 있다면 이곳에 살고 싶습니다.”
영민은 숨겨두고 있는 마음 한쪽을 흘리고 있었다.
“아침 산책을 좋아하세요?”
“특별히 좋아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걷는 것이 좋아 생각만 나면 집을 나섭니다.”
“저는 이른 아침 산책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집안의 일들을 거들어주려면 이시간이 제일 적당하거든요.”
여인의 대답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일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들어주기만 하나요? ㅎㅎ. ”
영민은 반농담조로 한 말이지만 프라이버시를 건드리는 것 같아 좀 미안했다.
“오빠 집에 살고 있어요. 식사 시간 때 한 두 시간 씩 카운터를 지켜줍니다.”
여인의 대답은 궁금증을 더했다.
그러나 영민은 더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편백나무 숲에 들어섰을 땐 길이 갈렸다. 여인은 옹달샘 쪽으로 내려갔고 영민은 오르막 산책로 쪽으로 향했다. 영민이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운동을 마치고 옹달샘 쪽으로 내려가 보았으나 여인은 가버리고 없었다. 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민은 이날은 점심식사 후에 목욕탕으로 갔다. 일만 원 권을 받고 거스름과 함께 표를 내미는 부드러운 손이 뜻하지 않게 영민의 손과 부딪쳤다. 영민은 이상한 느낌을 받고 흠칫 놀랐다. 2주간동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목욕탕에 갈 때는 마치 어느 한쪽이 의도한 것처럼 몇 차례나 두 사람의 손끝이 닿았다. 한번은 여인이 목욕표를 불쑥 내미는 바람에 영민이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말았다. 영민은 “죄송합니다.”라고 멋쩍은 사과를 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더욱 쑥스러웠다. 영민은 여인이 카운터를 지키는 시간에 맞춰 거의 매일 목욕탕을 찾았다. 어떤 때는 단체손님들을 대하느라 바쁜 모습을 보고 인사도 하지 않고 나올 때면 언제 보았는지 큰 소리로 “오셨어요-.”하고 뒤에서 인사를 던졌다.
어느 날은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카운터에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흘 째날 여인은 눈 아래쪽 광대뼈자리에 거스를 붙이고 모습을 드러냈다. 영민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주차장 쪽에서 돌 뿌리에 걸려 넘어져 다쳤다면서 반창고를 떼 내고 환부를 보여주었다. 바로 눈 옆에 찰과상이 있었다. 영민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여인은 “잘 낫지 않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는 어느새 아주 친밀한 사이이거나 가족 간의 대화처럼 격의가 없었다. 상처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은 여인의 얼굴은 화장을 했을 때보다 더 곱고 아름다웠다. 마치 어린아이 살결처럼 티 없이 투명해보였다.
“상처 때문에 산책도 못하시겠네요.”
영민은 아쉬움을 표했다.
“요즘도 꼭대기까지 가십니까?”
여인은 반창고를 다시 붙이면서 말했다.
“평소에는 산책로를 돌아오지요. 꼭대기 까지는 두어 번 다녀왔습니다.”
길어야 이삼일씩 머물다 다른 곳으로 떠나던 영민이 한곳에서 2주간이나 머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느 날 여인은 카운터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표지를 살펴보니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며칠 후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펼쳐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영민은 날마다 그 여인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영민은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도 이상하게 보여 이곳을 떠나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이곳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새벽산책에서 여인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날은 목욕을 하고 나오면서 지나가는 인사처럼 “내일아침 산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바깥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오랜 가뭄에 단비가 내리고 있지만 영민은 비가 원망스러웠다. 망설이다 우산을 펴들고 숙소를 나섰다. 그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 때문이었다. 그러나 옹달샘이나 산책로 어디에도 사람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다음 날은 맑게 갠 새벽이었다. 산위에 떠있는 흰 구름이 아침햇살을 솜처럼 함박 머금고 있었다. 운동기구에서 제일멀리 떨어진 벤치가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였다. 여인은 물통에 생수를 담아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영민은 옆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엊그제는 연휴도 아니었는데 단체손님이 많았습니다.”
여인은 생수를 컵에 따라주며 반가워했다.
몇 사람씩 새벽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맨손체조를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 벤치에 앉아있다. 여인에게는 대부분 얼굴이 익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똑같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조금 더 올라가실까요. 한가로울 때 제가 자주 가는 자리가 있습니다.”
여인은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러는 게 좋겠군요.”
영민도 일어서서 산책로를 따라 비스듬히 위로 올라갔다. 올라 갈수록 산책로는 형체가 사라지고 낙엽이 짙게 쌓여 있었다. 그 앞쪽으로 관목 숲에 둘러싸인 편편한 곳이 있고 납작한 돌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여기가 제 자리입니다.”
여인은 영민에게 자리를 권하고 옆자리에 앉았다.
“평소 누구와 함께 오시는가 보지요? 늘 혼자인 것 같았는데―.”
“그래요. 늘 혼자입니다. 언젠가 함께 앉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혼자 쿡, 쿡 웃었다.
“그 누군가가 바로 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영민도 쿡, 쿡 웃으며 바다 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영민의 말을 듣고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
“왜 멀쩡한 사람이 오빠 집에 얹혀사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여인은 한참 만에 침묵을 깨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쎄요. 궁금한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됩니다. 특별한 일도 없어 뵈는 사람이 왜 낯선 마을에 이처럼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지―?”
“제가 먼저 궁금증을 풀어드릴까요. ―저는 참 멋있는 남편을 만난 줄 알았습니다.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소개를 해준 대학동기 친구가 그 남자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대학에 출강하고 있으며 교수가 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화배우 차인표 씨 같았습니다.”
여인은 여기에서 다시 말을 잠간 멈추었다.
“······”
영민은 배우자가 대학교수였다는 여인의 신분이 궁금했다. 그리고 무슨 영문으로 서울에서 천리나 되는 이곳에 떨어져 살고 있는지 궁금증은 더했다. 영민은 잠잠히 그 다음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는 결혼기념일이 돌아오기도 전에 돈 많은 연상의 여인을 좇아갔고 유학, 대학교수는 모두 속임수였습니다.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만 좋으면 된다고 우겼던 철없는 생각이 삶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첫사랑인 그 남자는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갔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난 뒤에도 한동안 내 마음을 되찾아올 수 없었지요. 할 수 있으면 복수라도 하고 싶지만 나는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더 견디다 안 되면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가는 길만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인은 낙엽을 만지작거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영민은 이번에도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저토록 아름다운 모습과 선한 눈매를 가진 사람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복수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의 말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여인의 오빠나 친지들과 힘을 모아 원수를 갚는 길을 모색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민은 여인이 털어놓는 마음의 비밀을 다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감추어 둘 수 없었다.
“내게도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홀시어머니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여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이상향을 펼치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내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칠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아내의 영상을 찾아 떠돌이처럼 헤매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첫날 목욕을 하고 나올 때 너무 놀랐습니다. 댁의 모습이 아내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용서해주세요. 목욕탕을 드나들 때마다 내 가슴은 잔잔한 기쁨으로 채워지곤 했습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이렇다 할 위로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가슴만 더 무겁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영민은 산을 내려오는 길에 내일 아침 일찍 이 마을을 떠날 것이라 말했다.
막 솟아오른 아침 해가 해수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안개 속에 묻혀있던 마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는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부터 오랜 친분처럼 느껴졌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아늑한 눈길을 대하면서 선생님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꼭 잡아주기를 막연히 기다렸습니다. ―전송을 못해드려도 용서해 주세요. ―그동안 한 번씩 선생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숨겼던 마음을 열어 보이는 여인의 음성이 애처로웠다.
“그건 제가 해야 할 말입니다. 이런 낯선 고장에서 내 생애동안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쁨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행복을 빌겠습니다.”
영민은 고개를 돌려 슬쩍 여인의 표정을 살펴보았으나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숙소로 돌아와 서울의 어머니에게 문안전화를 드리고 이모에게도 거처를 알렸다. 그날 하루는 온통 방안에 들어박혀 있었다. 영민은 자리를 펴고 누워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생각에 잠겼다. 집을 떠날 때마다 언젠가는 방황을 끝내리라 생각해보지만 이젠 더 오랜 방황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방황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기까지 방황을 계속하는 것이다. 해수온천을 드나들며 부풀어 올랐던 마음은 어둠속으로 잦아들었다. 은은하게 해조음이 들리는 갯마을의 밤은 적막했다.
“똑, 똑, 똑!”
조심스레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는 밤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민은 흠칫 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히 문을 열었다. 여인이 나들이 하는 사람처럼 곱게 단장을 하고 서있었다. 영민은 여인의 손을 잡아 방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주서서 예를 다하듯 가볍게 안아주었다. 여인은 말없이 영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영민은 여인을 다시 한 번 힘 있게 꼭 껴안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처음으로 안아보는 여자의 몸이다. 여인도 남편과 헤어진 후 처음 맡아보는 남자의 체취였다. 그럴만한 기회가 몇 차례나 유혹으로 다가왔지만 여인은 그것을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의 방황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한편으로 여인은 단 한번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자기를 버린 남자에게 보복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인에게 이 새로운 사실은 그만큼 큰 사건이었다. 여인은 돌아앉아 조용히 옷을 벗었다. 그리고 영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영민은 여인의 큰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성이 이성을 대하는 자연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분노가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일을 저지르려는 충동에 붙들려있는 것 같았다. 그가 해수탕을 드나들 때마다 대하던 따스한 느낌은 싸느랗게 변해 있었다. ‘마음을 빼앗아간 그 사람에게 보복하고 싶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영민은 보복의 공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을 막 건져 올린 것처럼 홑이불로 그녀의 알몸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여인은 영민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비 맞은 아기 참새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영민은 아내가 떠나던 순간을 떠올렸다. 절대자가 이끌어가는 것을 바라만 보았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야 말로 너무도 비통한 일이었다. 해주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 평소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 사소한 것들이 무수한 못으로 가슴에 깊이 박혀있었다. 영민에게는 이 여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을 꼭 붙잡아주는 것이었다.
“나와 함께 갑시다. ―이젠 방황을 끝내면 좋겠습니다!”
영민은 그녀를 꼭 껴안으며 힘 있게 속삭였다. 다른 대답이 나오기 전에 얼른 그의 입술을 여인의 입술에 포갰다. 그녀의 상처 진 가슴에 다시 따뜻한 사랑의 움이 돋을 때까지 영민은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산에는 소쩍새가 구슬피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