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18)
*입석암 노승과의 작별*
마지막 글자가 붓끝에서 떨어지자 이를 지켜보던 좌중의 시객들은 숨을 헉하고 쉬었다.
순식간에 싯귀를 써내려가는 재주도 비상하였지만 화선지 위에서 용이 꿈틀거리고 있는 듯한 서체며 그 글자들이 토해내고 있는 뜻들은 천하의 일품이었다.
장내는 시감에 몰입되어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한 시객이 무릎을 치며 입을 열었다.
"기가 막히군. 대체 이런 글이 단숨에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을 신호로 시객들이 다투어 김삿갓을 칭찬했다.
그중 한 사람이 김삿갓을 요모조모 띁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선 혹시 입석암 시승과 다투어 이겼다는 바로 그 김삿갓이 아니시오?"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불초가 바로 김삿갓 올시다. 지금은 입석암 대사에게서 글공부 가르침을 받고 있지요."
"허허, 이거 뜻하지 않게 고명하신 분을 모시게 되어 무상의 영광이로소이다."
시객들은 김삿갓을 상좌로 모셨다. 모두들 기쁜 표정이었다.
술상이 지체없이 나왔다. 김삿갓은 술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비록 시인이 아닐지라도 초가을 금강산의 미칠 것 같은 이 풍치를 보면서 어찌 술을 사양할 수 있으랴.
김삿갓은 술 좋고 안주 좋아 두주를 불사하고 마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술을 마실수록 외로움과 막연한 그리움이 전신을 휩쌌다.
"선생, 청컨데 한수만 더 보여주십시요. 시를 즐기고 배우는 우리들은 삼가 귀감으로 삼겠습니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붓을 들었다. 사실인즉 그들을 위해 시를 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시를 읊었다.
장하거연 근소추 / 탈건포말 보사루
長夏居然 近素秋/ 脫巾抛襪 步寺樓
긴긴 여름 물러나고 가을이 다가와 / 건을 벗고 맨발로 절간을 거니네
파성통야 순장적 /알색화연 요옥부
波聲通野 巡墻適/알色和煙 繞屋浮
시냇물은 졸졸 담을 끼고 감돌고 / 아지랑이 빛은 연기와 함께 집에 자욱이 퍼지네
주도공허 생폐갈/시유여채 상미수
酒到處空 生肺喝/詩猶餘債 上眉愁
술을 다 마시고 빈병만 남으니 갈증만 더하고/시만 자꾸 생각하니 수심만 맺혀지네
여군분수 파초우/응상귀가 일몽유
與君分手 芭蕉雨/應相歸家 一夢幽
그대와 파초잎에 비내리는 이곳에서 작별을 하면/집에 돌아가서도 꿈속에 그리울 걸세.
김삿갓은 이렇게 시를 써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수심이 가을 하늘처럼 파랗게 깊어져 눌러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발길이 닿는대로 바위를 기어오르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산길을 미친듯이 헤매다 저녁 나절이 되어서야 입석암으로 돌아왔다.
"꽤 늦었네 그려"
노승은 법당에서 그를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사님, 산길을 좀 걸었습니다."
"그래 시회는 볼만하던가?"
"술 몇잔에 제 시만 두어 수 뺏기고 왔습니다."
"하하 그럴테지. 자네 시를 보고 모두 오금을 펴지 못했겠지... 헌데 술을 마신 사람같지 않구먼."
" 산길을 짐승처럼 헤매다 보니 어느새 다 깨어버렸군요."
노승은 김삿갓의 심중을 헤아리는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보름이 지나 추석도 지났다. 김삿갓은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불문에 귀의할 것도 아니면서 더이상 무료한 세월을 보내며 노승의 신세를 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그는 자기의 생각을 노승에게 전했다.
노승은 묵묵히 앉아 있더니 다음과 같이 시 한수를 지었다.
백척단암 계수하 / 자문구불 향인개
百尺丹岩 桂樹下/紫門久不 向人開
백척 붉은 바위 계수나무 아래/ 싸리문은 오랫동안 닫혀 찾는 사람이 없네
금조홀우 시선과 / 환학간암 걸구래
今朝忽遇 詩仙過/喚鶴看庵 乞句來
오늘 아침 홀연히 지나가는 시선을 만났으니 / 타고가는 학을 불러 암자로 그를 청해 불렀다네.
이별을 아쉬워 하는 노승의 김삿갓을 뜨겁게 사랑하는 시였다. 김삿갓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도 필을 들어 시를 지어 노승에게 건넸다.
촉촉첨첨 괴괴기/ 인선신불 공감의
矗矗尖尖 怪怪奇/人仙神佛 共堪疑
꼿꼿하고 뾰족하고 기이함이 더욱 신비해서/시선도 부처님도 신령님도 깜짝 놀라네
평생시위 금강석/ 급도금강 불감시
平生詩爲 金剛惜/及到金剛 不敢詩
평생 소원은 금강산을 읊으리라 별러 왔는데/ 막상 금강산을 대하니 시가 나오지 않도다.
"역시 명시야. 자네 떠난 후로도 몸조심하게."
"예, 발길이 닿으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날 노승과 점심상을 마주 대하고 석별의 정을 나눈 후 김삿갓은 눈시울을 적시면서 입석암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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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소, 명연담(鳴淵潭)》
강원도 회양군 장양면 금강산 내금강 만폭동 아래에 있는 소.
3대 부각상의 남쪽 벽류의 윗 쪽에 있다(넓이 약 600㎡).
소위에 3~4길 높이의 폭포가 있는데 물소리가 바위벽에 부딪쳐 마치 우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하여
《울소》(한자말로 《명연담》, 《명운담》)라고 부른다.
1982년 6월 《건립》 소에는 시체바위(또는 감동바위)가 있고 소 앞의 판돌에는《형제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고려때 개성에 진동(陳同, 혹은 金同)이라는 이름난 부자가 살고 있었다.
말년에 진동은 금강산에 들어와 중이 되어 이곳의 바위벽들에 불상을 새기며 부처공양을 하였다.
불문에 들어온 진동의 속마음은 부처님을 섬기면 자기의 재부가 더욱 늘어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때 이곳에 지공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부처님을 마음속으로부터 공경하지 않고 치부를 꿈꾸는
진동에 대하여 좋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지공법사와 진동은 불도를 닦는 문제와 관련하여 다투게 되였다. 다툼 끝에 서로 약속을 하였는데,
자기 주장이 옳지 못한 자는 즉시 이 못에 빠져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공은 말하기를 만일 내 주장이 옳지 않다면 나는 천벌을 받을 것이요, 내가 옳다면 네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면서 그 여부를 물으러 마하연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과연 못 부근에서 뇌성벽력이 일어
진동은 벼락을 맞아 죽고, 그의 절간은 큰물에 휩쓸려 통째로 못 속에
처박혀 흔적도 없어졌다.
진동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세 아들은 아버지를 부르며 못가에서 울고 울다가
그대로 바위로 굳어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진동이 죽어서 굳어진 바위를 《시체바위》 또는
《김동바위》, 세 아들이 굳어진 바위를 《삼형제바위》라고 불렀고 밤이면 못에서 아들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여 못 이름을 《울소》라고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