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일보
괘 씸 죄
이 창 현(법무법인 세인 대표변호사)
형법전에 괘씸죄가 있다고 믿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가 괘씸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법조인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런 죄는 절대로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더욱 어려워진다.
뺑소니 사실을 부인하던 불구속 피고인이 재판 중에 법정 구속이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그 피고인은 서울에 있는 모 변호사의 소개를 받았다며 필자를 찾아왔는데 수사기관에서 억울하게 뺑소니범으로 몰렸다며 법정에서 무죄를 다투던 중이었다. 기록을 검토하니 피고인이 운전하던 승합차와 부딪힐 뻔했던 버스의 승객이 버스의 급정거로 가볍게 다친 것이고 피고인이 신호대기로 1분여 정차를 하다가 진행한 점등을 보면 피고인이 사고 자체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필자도 열심히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재판장은 피고인이 뻔한 거짓말을 한다며 변호사가 보는 자리에서 구속을 시켜버린 것이다. 그런 후에 피고인은 별다른 변동사항도 없는 상황에서 선고시에 집행유예로 바로 석방이 되었다. 피고인은 뺑소니범으로 구속이 된 것이 아니라 괘씸죄로 구속이 되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사건의 죄질을 떠나 다른 이유로 재판장이나 검사의 심기를 건드려 괜히 곤혹을 당하는 경우는 아직도 드물지 않는 것 같다. 어느 민사법정에서 재판장은 더운 날씨라 넥타이만 메고 양복 상의를 입지 않은 한쪽 당사자를 향하여 복장상태가 불량하다면서 차라리 넥타이를 풀라고 호통을 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그 복장불량자(?)는 그날부터 재판결과가 나올 때까지 괘씸죄에 걸리지나 않을 지 노심초사할 것이 분명하다.
검사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필자가 담당한 사건과 관련하여 아는 친지들로부터 피의자의 엄벌을 요청 받기도 하지만 피해자로서 억울함을 털어놓기 위하여 검찰청에 가는 것인데도 잘 봐달라는 내용의 부탁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 이것도 혹시나 검사에게 잘못 보여 낭패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형평성의 의심을 받는 수사나 재판을 하는 경우에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괘씸죄에 걸렸다고 오해를 하게 마련이다.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는 경우에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반발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일 것이다. 국민이 부여한 힘을 가진 분들의 균형감각과 포용성 그리고 보다 세심한 노력을 통하여 ‘빽’이 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잘못보다 괘씸죄로 당한다며 오해하는 경우가 말끔히 사라지기를 소망한다. 어쨌든 괘씸죄는 정말 괘씸한 것이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