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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브뤼셀에서 자고나니 로마인가? 하실까봐 실토합지요.
사실 순례기를 아씨시에서 시작했잖습니까? 그리고 쭈욱 로마에서 라테라노와 카타콤베라든가 트레비 분수를 둘러본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그리곤 파리로 날아왔는데 그래요, 바티칸 시국, 교황님이 계신 베드로 성전을 둘러본 이야기를 쓰기에는 제 필력이 딸리더라고요. ‘감히’라는 말로 할까요? 파리를 거쳐 벨기에까지 갔다가 이건 아니지 하고선 필(자판)을 들었습니다.
제가 용감하다고요? 무식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래도 머리를 싸매고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쓴 거, 용서해주시기 바라면서 베드로 성전에서 보낸 하루를 두 차례에 걸쳐서 올립니다.
로마에서 첫 째 날이었지요.
세상 어디서나 러시아워는 매한가집니다. 로마의 출근시간, 도로는 자그마한 차들이 어깨를 나란히한 채 앙증맞은 걸음을 합니다. 그래서인가 밀린다고 짜증을 내기보다 웬지 유쾌합니다. 우리나라도 삐까번쩍하는 승용차보단 자그만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기아차 레이가 예쁘던데...(내 딸이 티브이 광고하걸랑요)
원래는 성 베드로 성당의 커다란 광장 앞에서 일직선으로 난 500여 미터의 넓은 도로를 일컫는 "화해의 길"에서 걸음을 시작하여 회개와 용서를 통해 영적인 화해를 하면서 성전으로 가는 계획을 세웠으면 좋았을 텐데. 헌데 순례코스는 성당의 왼편 옆구리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 버스를 주차하고 아주 가파른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갑니다.
눈요기나 하는 관광이 아니라 그토록 갈망하던 ‘그분’과의 만남이 우선시 되는 코스로 우리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소회를 가져 보았습니다. 시즌이 아닌 덕에 붐비지 않아서 관람하기에 여유가 많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유물 땜에 마음 이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역시 "빨리 빨리 관광"이 되나 봅니다.
이태리에서 제일 큰 규모의 바티칸 박물관은 고 이집트와 아시리아, 옛날 그리스와 로마, 초대 교회와 중세 박물관으로 여덟 군데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박물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데 적어도 한 달이나 걸린다지요. 대충 훑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 죄송스러웠지만 어떡합니까. 저야 몇 차례나 온 터라 여유가 있지만 다들 가슴이 벅차 발이 땅에나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집트관을 거쳐서 보는둥 마는둥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오면 바티칸 박물관의 뒷마당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 있지요. 로마의 상징인 커다란 솔방울 조각과 성 베드로 성당의 쿠폴라(둥근 지붕)가 덩실 솟아있는 정원에서 모두들 베드로 성전의 쿠폴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쁩니다. 그래요 성베드로 성전을 기준으로 지붕 높이니까 웅장한 돔과 제 눈이 높이를 나란히 합니다.
그리곤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복사화 앞에 모여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습니다.
이게 그렇습니다. 시스티 나의 걸작 중의 걸작을 보기 위해서 미리 가이드 설명을 들어야 하거든요. 인류가 가진 최고의 걸작을 대면하려는 준비를 소흘히 할 수 없잖아요. 바티칸 박물관 내에서 백미 중의 백미는 아무래도 시스티나 소성당(Cappella Sistina)이 아닐까요. 이곳은 교황님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비공개 교황선거)"가 개최되는 교황 전용의 소 성당이지만, 수많은 관람객들은 그보다 미캘란젤로를 만나기 위해 줄지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군요.
시스티나 성당의 이름은 당시의 교황 시스토 4세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길이40.23 미터, 너비 13.41미터, 높이 20.7 미터의 장방형의 바실리카 구조의 이 성당은 1480년에 완공되었고 후임인 율리 오 2세가 소성당의 천장을 화려하게 벽화로 장식하려고 미켈란젤로에게 일임하면서 인류를 위한 걸작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 1508년 5월 10일 미켈란젤로가 천장 밑에 발판을 세우면서 역사적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먼저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는 1512년 10월에 완성되었고 시스티나 소성당의 교황 제단 뒷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1536년 바오로 3세 교황의 명으로 미켈란젤로가 다시 작업을 시작하지 요. 조수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낸 작품으로 1541년 10월 축성 되었다는군요. 세상에나 하루 종일, 몇 년을 누워서도 아니고 서서 그림을, 그것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그리다니요! 약 200제곱미터에 달하는 벽 위에 구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두 391명의 인물이 벽화에 묘사되어 있는 작품이라, 시스티나 소성당에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앞에서 압도되어 버립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는 프레스코화입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다 석회 반죽을 얇게 바른 다음, 반죽이 마르기 전 신선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프레스코, '신선하다'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리면 석회 반죽 자체가 마르면서 안료가 착색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색이 잘 보존됩니다.
미술사학자들이 흔히 이야기 중에 '견오백지천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단 그림은 오백 년, 종이 그림은 천 년 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프레스코화는 잘만 다루면 종이보다도 더 오래 가요. 게다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면 색의 순도가 아주 높아서 눈에 확 들어옵니다. 프레스코 그림은 석회 반죽에 안료가 들어가 그대로 굳은 거라 거의 변색이 없어요. 그에 반해 유화는 기름에 안료를 개어서 그리는 기법이니 시간이 지나면 약간 노랗게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프레스코화 대신 유화 그림이 많은가요? 프레스코화는 약점이 있습니다. 먼저 바탕이 뒤틀리거나 변형되면 그림이 손상되기 때문에 두꺼운 벽체 위에만 쓸 수 있고요. 또한 석회는 습기에 약해 습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사용하기 곤란합니다. 영국에서도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졌지만 제대로 남아 있는 작품이 드물지요. 하지만 건조한 기후를 가진 이태리 중부 지방에서는 프레스코 기법이 잘 유지됩니다. 또 하나 단점은 석회 반죽이 마른 뒤에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기 때문에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는 화가는 하루하루 그날 그릴만큼만 석회 반죽을 바르고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
프레스코화는 벽화 화법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원전부터 로마인에 의해 그려져 왔는데 이탈리아 유명한 성당의 벽화는 거의 프레스코화입니다. 이렇게 프레스코화는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보이다 17세기 이후 유화에 밀려납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네요. 유화는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고 새로 그리거나 언제든 마음대로 쉬었다가 다시 그려도 되는 편리한 방법이라면 프레스코화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렵기 짝이 없어요. 대개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의 그림을 복원하는 작업은 일본의 NHK방송이 비용을 부담하지요. 시스티나 성당은 10여 년이 걸렸다는데 복원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답니다. 시스티나를 비롯하여 유명한 성당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수위 아저씨가 쫓아와서 촬영을 방해하지요. 지적 초상권이라 하나요? 일본 방송국에서 독점적으로 초상권을 가지고 있답니다.
참, 혼자서 배낭 여행을 가신다면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겨울에도 와보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여름에도 와봤지만 십 미터 채 되지도 않는 거리에는 어김없이 한국인 가이드가 인솔하는 단체 관람객이 있어 어디서나 한국말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아쉬울 거 없답니다.
그럼, 시스티나 천장화부터 이야기 해 볼까요.
이름 그대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는 창세기의 세계,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천지창조가 우리를 압도합니다. 빛과 어둠의 분리에서 술에 취한 노아까지 아홉 가지의 그림 중에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아담의 창조이겠지요.
아담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날아오는 한 노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지엄한 하느님입니다. 한 점 욕정도 없고 오직 성스러운 의지로 충만하여 더없이 숭고한 하느님은 백발과 흰 수염을 휘날리고 있는데 무척 건장하지요. 범선의 돛처럼 부풀어 오른 커다란 망토 속에 아기천사들을 데리고 옷자락을 펄럭이며 다가오는 모습이 역동적입니다. 가만히 누워서 기다리는 아담의 정적인 모습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하느님은 빠르게 다가오며 아담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하느님의 시선은 온통 손가락과 손가락의 만남에 집중되고 있지만 생명을 건네려는 그의 집게손가락은 아직 아담의 검지에 닿지 않지요. 오히려 아담의 손은 아래로 떨어뜨려져 있는 것 같군요. 아직 준비가 안 된 걸까요? 이렇게 뭔가를 건네주려는 능동적 손가락과 그것을 받는 수동적 손의 모습을 통해 동적인 하느님과 정적인 아담의 대조적 자세가 더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창조가 전적으로 하느님의 능동적 행위로 이루어졌음을 상징하는데 안성맞춤인 장면이지요.
어떻게든 생명을 넣어주시려는 하느님의 손가락에 비해 또 다른 하나는 무기력한 인간의 검지입니다.
영원하신 분의 팔로부터 아담을 삶에 깨어나게 하려는 힘이 흐르고 있는 이 그림을 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시려는 하느님의 모습은 우리를 향해 몸을 던져 오시는 데 반해 우리는 몸을 뒤로 빼면서 마지못해 그 크신 사랑을 어정쩡 수용하고 있는 모습이 자못 안타깝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주객전도라고 할까요? 아무튼 홀 겹의 옷을 입으신 하느님의 몸은 근육이 잘 발달한 터미네이터 같아요. 역동적이며 인간을 사랑하시고 한 없이 부어 주시기만 하는 능동적인 하느님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는걸요. 미켈란젤로가 그리는 하느님의 모습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위대한 창조의 힘찬 동작과 하느님의 전능함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고안해 낸 이 방법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 가운데 하나다." 고 탁월한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말했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닐 겁니다.
우리를 찾아 나서는 ‘그분’, 당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시려는 의지를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천지창조에 관한 그림이 천장 중앙에 위치하고 양 옆으로는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 예레미아, 에제키엘, 이사야, 요엘, 요나들이 그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예레미아가 제 눈을 끄는군요. 당시 예루살렘이 하느님을 배신했답니다. 예언자는 알지요. 배신에 따라오는 예루살렘이 받아야할 벌에 대해 괴로워하는 예레미아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제같으면 이놈들, 혼나봐라, 할 것 같은데 착하디착한 예언자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립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거든요. 예레미야가 그토록 애를 쓰며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으려는 인간의 배신, 그 중간에서 이 모든 허물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괴로워하는 노쇠한 예언자의 안타까움이 저를 한없는 련민과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라 하나보죠? 우리도 주위를 좀 더 둘러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지나치거나 외면하고 있지나 않은지 마음의 귀를 열어 두어야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뱀에게 유혹을 받고 있는 하와의 모습이 너무 육감적이어서 나도 마음이 설레던걸요. 악을 향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이리도 사무치게 서러울 수 있을까요? 곱게도 흘러내리는 성숙한 여인의 나신과 분홍빛의 젖꼭지가 진저리치게 아름답더이다. 엄숙한 종교화에서 이리도 인간의 육체를 향한 욕망과 아름다움을 숨김없이 그림으로 그려낸 것은 이 시기에 태동하고 있던 르네상스의 영향이었을걸요.
[1512년 10월의 마지막 날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설레는 가슴으로 성 시스티나 성당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17명의 추기경과 수행원들까지. 지난 4년 1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다리던 성당 천장화가 완성되어 처음으로 공개되는 날이거든요.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그리는 동안에는 그곳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조수도 쓰지 않고 바닥에서 무려 20미터나 높이 붙어 있는, 폭 13.2미터. 길이 41.2미터의 드넓은 천장에 구약성서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재현했습니다. 천재적 재능과 초인적 열정으로 완성시킨 대작입니다. 이 천장화에 300명도 넘는 인물이 아담과 화와는 물론이고 신을 제외한 상당수가 완전히 알몸이거나 몇 군데만 겨우 천으로 가린 나체로 그려졌습니다. 젖가슴과 궁둥이, 심지어 성기까지 보란 듯 내놓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의 육체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16세기 르네상스의 구호를 거세게 외쳐대는 듯합니다. 성스런 성당의 천장 위에 걸터앉거나 드러누워 있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상상해보세요. 그 아래 선 고매한 추기경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고, 폭군이라고 불리던 교황마저 꼼짝없이 숨을 죽였습니다. 다음 날에는 지체 높은 귀족들과 세력가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천재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성전 천장에 나체가 그려졌다는 사실에 당혹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은 성스러워야 할 성전을 공중목욕탕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불평도 나왔지요.]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김용규 지음에서)
드디어 최후의 심판이군요.
시스티나 소성당의 전면에 자리한 교황 제단 뒷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주제가 압도하는 만큼 바티칸에 들르는 많은 관람객으로 부터 제일 주목받는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각자 믿고 있는 종교와 관련 없이...
제 생각으로 이건 미켈란젤로가 그렸다거나 작품성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바에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저승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통해 이 세상 다음으로 건너가야만 하는 세계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습니까?
중앙에는 아름답고도 싱싱한 표정의 젊은이가 오른팔을 약간 구부린 자세로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네요.
바로 예수님이에요. 이제껏 많이도 주님을 보아왔건만 이처럼 싱그러운 젊은이의 모습을 본적이 없는걸요. 이 세상 고뇌를 대신 짊어지고 힘들어 하는 평소의 모습보다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쳐다보는 제가 참 마음이 편해지던걸요. 그러나 예수님의 다섯 상처, 오상의 흔적이 너무나 선명하여 제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잘 생긴 젊은이어서 그 상처가 더욱 아파보였는지 몰라요. 바로 옆에 성모님이 오른편으로 약간 몸을 튼 체 앉아 있는데 연주황색이던가요, 온몸을 감싸는 옷에 푸른빛의 천으로 무릎께를 덮고서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있네요. 어쩌면 좌우로 온통 벌거벗은 남정네들이 넘치는 터라 시선을 둘 곳 없어서인가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왼편 약간 밑 부분에 묵주를 붙들고 구원 받는 두 사람을 기억하세요? 이 그림을 두고 묵주기도를 많이 하면 구원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최후의 심판, 그림에는 뭐니뭐니해도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이드가 아주 생소한 설명을 하던걸요. 묵주를 붙들고 있는 두 사람이 바로 흑인인데 그 당시에 미켈란젤로가 인종차별 없이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선구자적 발언을 했다는군요. 사실 두 사람은 얼굴색이 어두워 흑인인 듯 했지만 여러 가지 참고 서적을 뒤져봐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채 끝내지 못 했으나 한때 신학공부를 하고 수도자였던 가이드가 쓸 데 없는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 오른편 하단에 머리에 수염이 치렁치렁한 바르토메오 사도가 얼굴을 자신이 벗긴 건지 오른 손에는 단검을 들고 왼손에는 자신의 얼굴 가죽을 움켜쥐고 있는데 벗겨진 얼굴의 형상이 이 그림을 완성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는군요. 혹시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기억나십니까? 일그러진 얼굴에 단순히 검은 눈동자와 비틀린 입술모습, 엄청 단순한 몇 가지의 선으로 보여주는 인간의 공포와 비명을 그린 절규를. 인간이 가장 절망에 부닥칠 때 보여주는 극심한 절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그렇습니다. 그는 외모가 몹시 추했다지요. 왜소하며 병약한 몸이 평생 그를 괴롭힌 콤플렉스였답니다. 그 스스로가 "내 얼굴은 겁나는 데가 있지"라고 했습니다. 후 전기 작가가 일러 "추한 모습은 미켈란젤로의 내면적 자부심을 고취하면서 여자와 자연스러운 사랑과, 결혼까지도 멀리하게 했다"면서 "그는 타인을, 특히 자신에게는 없는 청년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데 만족해야 했다"고 말했답니다. 그가 평생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거인과 영웅의 모습을 즐겨 조각했고, 그의 대표작 '다비드'가 청춘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거인으로 표현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지요. 미켈란젤로의 이러한 결핍이 우월감, 선망, 근성으로 승화돼 예술적 소명의 바탕이 되었다고 이해하면 어떨까요.
"자부심은 그 자신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감정이 되면서 고상해진다. 선망은 위대한 인물과 지칠 줄 모르는 경쟁심 속에 녹아든다. 근성은 인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유에 필요한 물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열망이다." 제가 따온 미켈란젤로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에나!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온 몸의 피부를 벗겨내는 참혹한 방법으로 순교하셨잖아요.
정말이지 우울한 듯 고뇌하는 천재의 자화상이 거기 있는데, 가진 재주가 뛰어날수록 인간 내면의 갈등과 방황은 더한 것인가 봐요. 또한 이렇게 치열한 고뇌와 갈등 속에서 위한 예술작품이 창조 되어왔다는 엄연한 진리 앞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저는 고개 숙입니다. 이때, 무언지 어렴풋이 제 가슴에 잡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도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해냈다는 희열에 찬 모습을 최후의 심판에서 그리면서 외려 미켈란젤로는 안으로 움추려 들며 자신의 부끄러움과 한계를 느꼈나 봐요. 위대한 천재 미켈 란젤로가! ‘그분’을 따라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사도들 앞에서 이 세상 아무도 "내 잘났소" 하고 나설 수야 없겠지요.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이지 않겠어요? 어쩌면 "최후의 심판", 이 위대한 작품 앞에서 다들 지옥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상상하고 찔끔하면서 제 자신을 반성하겠지요. 이렇게 주눅이 든 우리를 ‘그분’은 얼마나 슬퍼할까. 뜬금없이 혼자 생각해 봤어요. 그래요, 위대한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제 나름의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좋아요.
그림 중앙 바르톨로메오 사도 밑에는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있는데 오른편 지옥 쪽으로 내려다보는 천사가 펼쳐 쥐고 있는 책은 아주 크고 두꺼운데 반해 왼편의 구원 받는 사람들을 향한 천사의 책은 아주 작고 얇더이다.
유혹의 말은 저리도 크고 많지만 선한 곳으로 이끌어주는 유익한 말은 참 작기만 한가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의 숫자는 많고 구원으로 이끌어지는 영혼은 저리도 적은가? 하고 제 마음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이드 말을 들으며 실소한 것은 그림 제일 하단 오른편에 자리한 지옥의 심판관 미노스 그림입니다.
당나귀 귀를 한 미노스의 온 몸을 감고 있는 커다란 뱀이 미노스의 심볼을 꽉 깨물고 있는 그림 말예요. 끔직하지만 또 어찌 보면 아주 희극적인 이 그림을 보셨는지요? 미노스의 모델이 바로 교황의 전례비서인 체세나의 비아조 신부라는군요. 당시 교황조차도 자신의 작품에 간섭하지 못하게 이곳 출입을 금했던 콧대 높은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온통 나체로 그렸답니다. 이것을 천박하다고 험담을 하던 비아조 신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비아조 신부를 지옥의 심판관으로 만들고 뱀을 꼬여 신부의 심볼을 깨물고 있으라고 시켰을 테지요. 처음에는 너무한 거 아닌가 했지만 거의 5년에 걸쳐 홀로 외로이 이 작품을 완성한 노 화가가 이정도의 심술도 부리지 못해서야 하고 한 번 웃고 말았습니다. 제가 퍽 너그러운가요? 그래도 두어 번 넘게 와본 덕인지 제법 꼼꼼하게 살펴보는 여유를 가지며 소성당의 왼편 구석에도 섰다가 반대편 쪽으로 가 앉아서도 쳐다보면서 제 일생에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까 하고 부질없는 상상도 하면서 처음 보았을 때 보다 훨씬 이 작품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비장감이 도는 지옥불과 지옥으로 당겨지는 순간, 공포에 질린 악한 영혼의 처절함이 내 어리석음을 질책합니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그래도 정숙하게 옷을 차려 입은 성모님과 싱그러운 젊은이의 모습으로 중앙에 서 계시는 예수님의 살아 움직이는 역동감이 나를 참 편안하게 해주던걸요.
‘그분’을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막 뛰고 나도 싱그러운 풀 이파리 한 잎 물고서 널디넓은 풀밭을 마구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그분’은 푸른 풀밭으로 우리를 불러내고 싶은 게 분명해요. ‘그분’은 생명 자체인가 봐요. 그저 최후의 심판 앞에서 끝없이 펼쳐진 풀밭과 싱그러운 봄바람을 느끼며 참으로 저는 행복했습니다. 가시거든 이 그림 앞에서 눈을 감아보세요. 푸른 풀밭과 예수님을, 그리고 성모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는 어디에 견줄 게 아니더라고요. 그림이란 말은 그리움에서 나온 말이라잖아요. 그림은 꼭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닐걸요?
사실, 순례자로 붐비니 제가 이토록 보고 싶었던 시스티나를 마음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작년이었던가요. 중앙일보 음악 전문 기자가 신문에 소개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가 마음에 와 닿아 당장에 씨디를 샀지요. 집에서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온 몸이 전율했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시편 51편의 시작하는 말, 미세레레를 따서 흔히 미세레레라고 부르고 있는 곡 말입니다. 시편 중에 서도 가장 많이 암송되고 있지요. 왜 연도에서 세 번째 기도문이라면 "아~"하시는 분이 많겠지요. "선한 분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애련함이 크오시니, 저의 죄를 없이 하소서...." 바로 다윗이 자기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바쎄바를 빼앗고는 거기다 아무 죄 없는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패륜을 저지릅니다. 한 가지의 죄를 짓게 되면 연달아 죄를 짓게 되는 인간의 간악함이 여실히 들어나는 대목이지요. 이 때 예언자 나단이 홀연히 나타나서 다윗을 꾸짖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요. 바로 이 순간 다윗 왕은 미세레레로 시작하는 참회의 시로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연도에도 사용될 정도로 이 참회의 노래는 유명하답니다. 기사에 의하면
당시 교회 전통에 따라 교황은 부활절을 앞둔 성 삼일, 새벽 3시에 교황전용 기도소인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홀로 침묵 중에 드리는 "테니브리"(어둠이라는 뜻)를 갖습니다. 촛불 하나만 남기고 불을 끈 다음 교황께서 시스티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 때 교황청 성가대는 어둠 속에서 무반주(아카펠라)로 "미제레레"를 부릅니다. 이 미사곡을 당시 교황청 악장이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에게 명해서 작곡을 시켰는데 이 곡이 유명한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라고 불리지 요.
1629년에 작곡한 이 곡은 일화가 참 많아요. 교황께서는 얼마나 이 곡이 맘에 들었는지 교황청 밖에서 연주 되거나 악보가 복사, 유출되는 것을 금지시키고 이를 어기면 파문시키겠다고 경고했답니다. 교황은 악보가 음악을 담는 유일한 그릇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이때 소년 모짜르트가 열두 살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바티칸에 와서 미제레레를 듣고서는 숙소로 돌아와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오선지 위에 써내려갔답니다. 이 이야기는 흔히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일화로 삼지요. 9개의 파트로 구성된 두개의 합창단이 부르는 이 합창곡은 약 12분 정도 걸리지요.
어둠 속의 주님 수난 새벽, 시스티나 성당은 촛불만 외로이 켜 있고 홀로 기도하시는 교황님의 근엄한 모습, 합창단원이 부르는 미제레레가 경건하게 중앙제단을 감싸고 돌아 최후의 심판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 닿습니다.
"...저를 씻어 주소서 / 눈에서 더 희어지리라./ ....당신의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옵시고 / 당신의 거룩한 얼을 거두지 마옵소서 / 당신 구원, 그 기쁨을 제게 도로 주시고 / 정성된 마음을 도로 굳혀 주소서.... 하느님, 저의 제사는 찢어진 마음/ 하느님께서는 찢어지고 터진 마음을 /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이 거룩한 현장에 참석할 수 없겠지요. 미제레레에 얽힌 에피소드를 듣고서 욕심이 제법 났는걸요. 돌아 나오면서 시스티나를 또 한 번 돌아봅니다 제 눈에 꼭 담아두려고요... 제 이야기 듣고 꼭 미제레레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클레오베리가 지휘하는 케임브리지 합창단과 보이 소프라노 사울 쿼크의 녹음(데카)은 영혼을 울리는 맑은 소리와 주옥같은 선율이 일품이지요. 감히 제가 추천하지요. 제가 본당 홈피에 올렸더니 어느 해인가 수난제대 묵상에 미세레레가 계속 울렸더랬지요. 사순기간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묵상에 잠기신다면 그대는 형언할 수 없는 환희로 만족해할 거예요.
바티칸 이야기는 시스티나의 미켈란젤로만 가지고 한 편을 끝낼게요. 다음은 성베드로 성당의 이모저모를 올려볼래요.
미술관으로 넘어가는 회랑의 창문으로 로마의 겨울 햇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시스티나에서 이룰 수 없을 줄 알았던 꿈이, 마침내 다다랐다는 환희를 그대에게 전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