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 속에 배반이 있었다
네 말 속에 집이 곰팡이가 기어오르는 벽이
그 벽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네 말 속에 방이 있었다
방 속에는 대포가 총이 있었다
만년설을 지나가던 하늘이
총구 속에 파랗게 질려 있었다
면도칼을 들어 네 말을 잘근잘근 자르는
네 말도 있었다
네 말 속에 네 말 속에
현관에서 울고 있는 내 목도리가 있었다
네 말은 내 신발 속에서 잘려가며 젖는다
네 말 속에는 박히지 못하는 못이 철넝쿨이 되어
내 입을 점령하고 있었다
<허수경의 ‘네 말 속’ 전문>
누군가의 말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내용에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시인에게도 상대방의 말을 듣고 배반을 당한 것처럼 느껴진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아가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화자는 마치 ‘곰팡이가 기어오르는 벽’이 있는 집에 갇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 말은 들은 누군가는 ‘그 벽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상대방이 내뱉는 ‘네 말 속에는 방이 있’어 화자가 좀처럼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 ‘방 속에는 대포가 총이 있었’고, 그 말에 싸늘해진 화자의 마음은 이미 ‘만년설’이 되어 ‘지나가던 하늘이 / 총구 속에 파랗게 질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상대방의 말은 ‘면도칼을 들어 네 말을 잘근잘근 자르는’ 것처럼 생각되어, 화자의 마음 곳곳에 상처를 남기며 더욱 깊이 박혔을 것이다.
그래서 상처를 입고 ‘현관에서 울고 있는 내 목도리’는 화자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리라.
‘네 말은 내 신발 속에서 잘려가며 젖’고 있기에, 쉽게 신을 수 없어 그곳을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네 말 속에는 박히지 못하는 못이 칡넝쿨이 되어 / 내 입을 점령하고 있’기에, 그 말에 대한 한 마디 항변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네 말’을 그대로 ‘내 말’로 바꾼다면, 혹시 말로 인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경험이 없었던가에 대해서 자성하는 계기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 말은 누군가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