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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는 문학 작품을 통해서,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짚어보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읽었던 한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토대로, 작품 속의 세계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출현했는가에 긍금증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스토리 전개보다 늘 역사나 배경이 되는 다른 이야기가 더 궁금’했기에, 이 책을 저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 다른 책을 찾아 읽으며 어릴 적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대체로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들은 내용을 축약할 뿐 아니라, 교훈과 재미를 배가시키는 방향으로 편집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중에 축약되지 않은 원본을 읽어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작품의 기억과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저자 역시 성장해서 원작을 읽으면서 자신의 기억과 다른 내용에 대한 당혹감을 간혹 토로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서양사와 서양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듯, 이 책에서 주로 다뤄지는 작품들은 유럽과 미국 작가에 의해 저술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아주 드물게 ‘콩쥐팥쥐’ 등의 한국 전래 동화가 거론되기는 하지만, 스토리가 유사하게 전개되는 ‘신데렐라’와 견주는 내용 속에서 언급될 뿐이다.
모두 4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는 먼저 ‘세계사의 악당, 조연, 그리고 마녀’라는 1부에서 모두 6개의 주제가 다뤄지고 있다. 서양 동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백마탄 왕자’들은 장남이 아니기에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숲 속의 괴물’은 결국 공동체에서 소외된 존재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숲과 이들의 기피하는 문화가 만들어낸 형상이라는 것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밖에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존재와 의미는 물론이고, ‘빨간 머리’가 차별의 상징이었던 문화적 배경도 설득력이 있게 서술되고 있다. ‘마녀 왕비’의 형상 역시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만들어낸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적 기제였으며, 중세부터 유렵 사회에서 만연했던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작품에서 샤일록의 형상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즉 작품 속에서 마녀 혹은 악당으로 등장하는 형상들은 당대의 문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며, 그것이 오랫동안 유럽 문화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왔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잘난 영웅, 억울한 영웅, 이상한 영웅’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로빈 후드’를 비롯한 작품에 등장하는 영웅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두 집 안의 갈등 속에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에는 카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전제되어 있으며, ‘노틀담의 곱추’로 잘 알려진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지고지순한 인물로 형상화된 콰지모도를 통해 장애인이 천시되던 당시의 문화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도 잔 다르크나 드라큘라, 돈 키호테와 삼총사, 그리고 근래에 발표된 해리포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관심은 작품에 등장하는 모티프들이 서양의 문화와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풀어내는데 많은 관심이 할애되어 있다. 작품 속 영웅의 형상에만 주목하지 않고, 그들의 형상 속에 담겨있는 문화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하겠다.
3부에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역사’를 통해서 모두 6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4부에서는 ‘역사는 비슷한 운율로 반복된다’라는 제목으로 7개의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적지 않은 작품들에 등장하는 소재들에 관해서 문화와 역사를 살펴 그 배경을 읽어내는 작엄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상 이 책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에 관한 내용은 그리 자세히 서술되지 않고 있지만, 저자는 ‘이야기 속에 남겨진 역사와 사회의 모습’을 탐구하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야기와 역사를 읽고 현실을 의식적으로 새롭게 이야기하는 힘으로 삶을 바꾸고 세상이 나아지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고 토로하는 저자의 언급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어떤 작품이든지 내용에 언급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설득력이 있게 설명되어야만 좋은 감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문학 작품에 담긴 소재들을 깊이 천착하여 다루고,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통해 그 의미를 풀어내는 저자의 관심이 도드라져 보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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