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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학이 꿈꾼 공생의 삶’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고전소설과 야담 등의 서사물에서, 자신이 가진 재물을 덜어 다른 이들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타(利他)’를 ‘행위 주체가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감내하면서 타자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과거의 문헌에서 ‘재화의 일방적인 잉여’를 ‘베풀어주다’라는 의미의 ‘시여(施與)’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에, 저자는 조선 후기 서사문학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타와 시여>라는 제목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저자가 다루는 소재는 <흥부전>과 <심청전> 등의 고전소설과 함께 조선 후기 저자거리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을 한문으로 기록한 야담(野談)이 주요 논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행위가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은 당시 대가없이 베푸는 것이 누군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지고 있던 재물을 흩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면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지만, 반드시 그 사실만은 기록해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시여’의 대상자는 절대적 빈곤에 놓인 사람들이거나 혹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라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비록 고전문학에서 주제를 취해 다루고 있지만, 저자는 전통 시대 행해진 이러한 사안들이 자본의 집적만을 추구하는 현재에도 필요한 것이 아니겠냐는 반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 해당하는 ‘책 머리에’의 마지막 부분에 ‘덧붙임’이라는 항목으로 제시한 두 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추운 겨울 커피 한 잔 사달라는 노숙인에게 자신의 점퍼를 벗어 입혀주었다는 신문기사를 제시하고, 또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어른 김장하>에서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정신이 현재에도 살아있는 ‘이타행’의 정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타’가 아닌 자기만을 위한 ‘이기(利己)’의 정신으로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저자가 ‘끚맺음’에서 마지막 구절로 제시한 다음의 질문에 대해 독자들은 각자 나름의 답변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
“끝으로 묻는다. 지금 여기 이기적 욕망에 기초한 화폐의 부단한 축적과 제한 없는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건 없는 증여를 기초로 공생을 지향하는 이타적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궁금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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