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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과 유튜브의 대중화로 많은 이들이 영상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문자보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문장이 조금만 길어도 읽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두 사람의 대담으로 이뤄진 이 책은 영상매체가 대중화된 시대에, 문장의 해독력에 대한 생각들을 주제로 풀어내고 있다.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두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동영상이나 그림에 익숙한 이들에게, 기나긴 글을 지루함을 안겨주는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그 내용을 따지기 전에, 긴 글에 대해서 일단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상매체가 대세가 된 이 시대에 문장해독력이라 할 수 있는 '문해력' 혹은 '리터러시'에 대한 고민들을 풀어내는 저자들의 대담은 진지하지만 특별한 느낌을 자아낸다. 아마도 두 사람이 모두 대학 강단에서 혹은 대중들에게 강의(강연)을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이 문제가 중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나 역시 학생들과 소통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니,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영상이나 사진보다 문자 텍스트를 더 좋아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한창 유행할 때 사진 찍는 것을 즐겼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사진보다 머리와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담의 내용에 더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책의 소멸이 뉴스의 주제로 다뤄지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수많은 책이 출간되고 있으며 그것을 찾는 독자들은 적지 않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는 2~30년 전부터 계속 제기되어온 질문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SNS가 보편화되면서, 활자 문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영상 매체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의 문장에 대한 이해력이 예전과 다르게 감소했다는 인상도 받는다. 호흡이 긴 문장은 잘 읽지 않고 가급적 짧은 문장으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시대, 두 사람의 대담으로 문자 해독 능력으로 변역될 수 있는 '리터러시'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상세하게 펼쳐지고 있다.
모두 5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두 사람의 저자는 가장 먼저 ‘리터러시, 위기인가 변동인가’라는 주제로부터 대담을 시작한다. 그동안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란 의미로 ‘문식성’이나 ‘문해력’이라는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리터러시(literacy)’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래서 저자들 역시 이러한 용어를 혼용하면서도, 이미 보편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리터러시’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 그 극단에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증상을 뜻하는 ‘난독증'이라는 표현이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누군가에게 난독증이라고 하는 말이 ‘근대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사람을 모욕하는 잔인한 방식’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글을 읽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읽기는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 다매체 시대의 읽기라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SNS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들이 논리 정연한 글쓰기를 통해서 대중들과 소통하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비논리적이고 선동적인 언사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글들도 적지 않다. 또 누군가는 그런 글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태도에는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익명성에 숨어 배설과 다름없는 댓글을 양산하는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확증편향'이나 '진영 논리'를 떠나서, 누군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하는 글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라 할 것이다.
저자들은 ‘읽기에서 보기로, 미디어와 몸’이라는 주제를 통해, 글쓰기의 윤리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다. ‘리터러시, 어떻게 다리를 놓을 것인가’라는 주제를 통해서는, 학교 교육에서 이미 보편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정성’이라는 척도가 때로는 ‘기술만 익히는 수업’을 양산할 수도 잇다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을 위한 리터러시 교육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무엇보다도 ‘자기 삶과 닿아 있는 글쓰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 역시 자신의 생각과 삶을 글 속에 투영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저자들의 말에 공감한다. 작문 수업을 하다보면 많은 학생들이 일단 글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드러낸다. 그러면 일단 주제에 대해서 자료를 모으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하도록 조언을 한다. 그리고 조사한 자료를 단순하게 인용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 글을 구성하도록 이끌어준다. 지금 시중에 출간되어 있는 많은 글쓰기 교재들은 단지 방법만을 제시하고 있어, 한 두 편의 글은 그러한 형식에 맞추면 일단 글이 완성된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글 속에 쓴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 글의 '저자'가 될 수 없다. 그것이 이른바 '독창성'이고, 다른 용어로는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글의 주제에 맞게 자기 생각을 끝없이 접목시키는 것이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체라고 생각한다.
리뷰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요약하는 것에 그쳐버리고, 그 책을 읽은 자신의 생각을 접목시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글이 될 수 없다고 하겠다. 결국 ‘리터러시’라는 표현은 결국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건대, 독서나 글쓰기는 모두 습관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에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무언가를 억지로 쓰도록 하기보다는 그것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리터러시’를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독자들을 향하고 있지만, 결국 저자들 자신이 이러한 주제애 대해서 대담을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리터러시’ 능력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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