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항일 투쟁의 영웅' 김구
입력 2015-08-14 18:25:12 | 수정 2015-08-15 03:26:25 | 지면정보 2015-08-15 A2면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 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白凡) 김구의 ‘나의 소원’ 중 한 구절이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주석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고, 동학농민운동에 몸담았다가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해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 등을 역임했다. 한국광복군을 중국에서 훈련시키며 일본군과의 전투를 통한 자력 독립을 희망했지만,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이 같은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1949년 서울 종로구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 의해 저격당해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됐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 김구
1876년 8월29일 출생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1949년 6월26일 별세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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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金九)와 장남 김인이야 훌륭하지만 그 자손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미지에 먹칠했거나 하고 있다.
사실 아들 김신은 박정희와 함께 군사쿠데타를 했으니 군인으로서도 민주주의에도 반하는 행도을 한 것이고 손자 김진과 김양은 김구의 애국독립운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현대판 음서와 같이 기용된 것인데 둘 다 부패한 행동을 해서 뒷 맛이 씁쓸하다.
김구와 아들 손자들의 행적 비교
이름 | 관계 | 주요 업적 및 공과 |
김구(金九, 1876.8.29~1949.6.26) | 본인 | 1893년 동학 접주 1928년 한국애국당 총재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 피살 |
김인(金仁, 1918~1945) | 장남 |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군 장교 |
김신(金信, 1922.2.11~) | 차남 | 공군 복무. 1961년 5·16 구데타 참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 제6대 공군 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주 타이완 대사 제9대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1976~1980) |
김진(金振, 1949,10.30~) | 장손 | 대한주택공사 감사 사장, 참여정부 시절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두 차례 형사처벌 |
김양(金揚, 1963~) | 차손 | 상하이 총영사, 보훈처장, 2011∼2014년 해군의 차세대 해상작전 헬기로 와일드캣(AW-159)이 선정되도록 힘써주는 대가로 해당 기종 제작사인 아구스타웨스트랜드(AW)에서 고문료 명목으로 14억여원을 챙긴 혐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