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서범석의 시와 풀꽃 사랑에서 발췌)
양수리
양소은
물과 물이 만나는 어귀
뼛속 서늘하게
무수가 무시였다가 무우가 되었다가 무가 되는
하얗게
뽑아낼 때까지
홀로 남은
그해 안개가
사람들을
묻고 있었다
강이 강과 만나서
사람을 받아 적고 있었다
― 『시와 소금』, 2023, 봄.
<시 읽기>
양수리라, 두 물이 만나는 곳, 남한강과 북한강, 그러니까 두 한강이 하나로 합쳐져 진짜 한강이 완성되는 곳.
두 물이 만나 넓은 호수를 만들고 그 물 위에 산 그림자 어리고 거기에 물안개가 휘감아 꿈 같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곳, 양수리.
서정적 자아는 이 양수리에 박힌 ‘그해’의 ‘안개’를 추억하고 있다. 그 추억의 갈피에는 흐른 시간만큼이나 희미한 이미지의 공간들이 축조된다. 그것은 행과 행 사이가 모두 떨어진 1행1연의 시 형태로 나타나고, 그래서 느린 호흡이 만들어져 아주 천천히 추억 속의 길을 더듬게 한다. 더듬어 거꾸로 올라가다 보면 하얀 안개는 마치 ‘무’처럼 백색으로 나타난다. ‘하얗게’ ‘홀로 남은’ 무로. 어쩌면 모두 없어져 무(無)가 된 세계에서의 ‘자아’처럼. 그래서 ‘뼛속 서늘하게’ 된 자아의 고적감이 안개 속에 묻히던 역사. ‘무수가 무시였다가 무우가 되었다가 무가 되는’ 오랜 역사적 아픔으로 ‘사람들을 묻’던 양수리. 그래서 두 강은 ‘사람을 받아 적는’ 아픈 추억의 기록자로서 지금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려진 오래된 절망감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민족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다. 민족적인 ‘사람들’(제8연)의 한 서린 역사의 장소에서 개인적인 ‘사람’(제11행)의 이별의 한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것일까. 그 한강이 서정적 자아의 지금을 하나로 완성해 주는 시린 추억의 강으로 흐르고 있는 한 장의 수묵화, 양수리. (서범석)
블로그 서범석의 시와 풀꽃 사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