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순당 12월 달마순례길 - 강진
두더지. 푸른솔. 해바라기. 막내이모. 함박꽃. 예원맘이 다녀왔습니다.
바람이 무심히도 불어대던 금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4-5개씩 싸야했던 분주한 아침.
아이들을 겨우겨우 보내놓고
9시 청암대 주차장에서 만났을 때 이미
엄마들은 가지가지 사건을 저지른 후였습니다.
#1. 해바라기
배낭 매고 막 나가려는 효안에게
"잠깐만! 어묵이... 통신문 어딨지? 어머 나 어떡해..."
어묵 반찬을 해 오랬더니
그냥 어묵을 걍 봉지 채 넣어준 엄마.
"효안아, 국이라도 끓여서 먹어~ 미안"
#2. 함박꽃
순천역에서 만나 승보누나네 집결지인 드림내과로 향하는데
"어, 왜 여기로 가요?"
"드림내과잖아~"
"어머 나 어떡해!! 우리 주연이 모두편한내과로 택시 태워보냈어요"
(함박꽃 당수치 최고조로 올라 실신할 뻔 했음)
다행히 엄마보다 똑똑한 우리 주연이
알아서 드림내과 대기실에 (춥다고) 들어가 있었음.
#3. 푸른솔
승보 현보 누룽지 해 보내겠다고
아침 내내 전기후라이팬에 눌렸는데
아무리 해도 안되어 보니 고장난 팬이었다나요?
결국 허둥지둥 가스레인지에 다시 눌려보냈다는...
(그런데 그 누룽지를 해바라기 표현으로 '눈만 흘겨도 찢어질듯한'
얇은 생협 비닐에 넣어오셔서 누룽지가 비닐 밖으로 탈출했음)
그런데 비단 이 분들 뿐이었겠어요?
(갑자기 태식이 순례 가방 생각나 자꾸 웃음이 ㅋㅋ)
아, 생각난 김에 하나 더...
#4. 현승맘
토요일 오후 2시반경 순천역에서 아이들 픽업 후
(제가 서울 갈 일이 있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너무도 우아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현승맘.
"왜 여기로 왔어요? 순천역에서 현승이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 전날의 함박꽃이 현승맘에게 빙의가 된 줄 알았슴다.
우리 어머니들... 정말 애쓰셨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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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첫 순례지는 시인 김영랑의 생가.
영랑 생가 입구에서 입이 딱 벌어진 이유...
수령이 족히 백여년은 되어 보이던 이 나무 한그루에 잠시 취했습니다.
너무도 친숙한 이 詩.
너무도 친숙한 이 맞춤법.
<아름다운 동행>에서 많이 보셨지요~?
영랑의 생가는 참으로 번듯했습니다.
강진에서 손꼽히는 지주가문이었다고 하네요.
뒷켠에서 발견한 요강! 반가웠어요.
우리 레인보우 아이들은 이게 뭔지 알았을까요?
대나무와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집터
별채까지 구경하고 난 후
두더지와 엄마들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 학교 이렇게 지어 이사가자!"
여기가 씨앗반!
이번 순례길에서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다산과 황상의 만남
잠시 강진군수님과 레인보우 가족의 만남에 함께 했습니다.
아이들이 계속 '군장님'이라 했다죠?
군장님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뒷줄의 군장님 비서와 사뭇 대조)
유자차를 대접받고 해벌쭉~~
일부님 강진 목회 시절 친분을 쌓으셨던 분이라 하십니다.
바깥 바람이 차가워 염려했는데 강진군청 회의실을 내어 주셔서
우리 아이들 따뜻하게 밥모심을 하게 됨을 감사.
가장 사랑받았던 선호의 도시락.
(함박꽃은 세 개나 먹었대~~요)
끝까지 뺏어먹는 함박꽃
(그러니까 준혁이가 먹던 젤리를 모자에 넣었지유~)
밖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던 우리 아이들.
이렇게 큰 회의실을 단독 밥모심장으로...
아이들과 작별하고 우리의 길을 갑니다.
갈대가 흐드러진 늦가을
강진만 길목 풍경에 넋을 잃었습니다.
바람 소리가 보이나요?
바람을 사랑한 갈대의 노랫소리.
숙연해 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
저 시린 하늘과 구름과 바람에 취하다
낮 12시가 되었음을 깨닫고 잠시 차를 멈춰 기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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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피할 어디라도 좋으리~
남녘교회가 바라다 보이던 작은 마을 정자에 잠시 쉬어갑니다.
감사히도 샷시로 울타리를 쳐 놓은 럭셔리한 마을 정자.
바람과 자연을 창너머로 바라보며 밥모심.
스카이라운지 안 부러웠지요.
소박하고 정갈한 밥모심.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순례을 위해 기도도 드리고
유쾌하고 정겹게 오가는 웃음들!
이제는 한가족의 밥상같은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도우넛에 커피로 우아한 디저트까지~
강진에는 이런 귀여운 백구들이 참 많아요.
특히 백련사에 가시면 어미개와 강아지 두마리!
참, 두 발로 서 있는 개도... (일부님! 진짜로 서 있었다구요)
다산초당에서 촌스럽게 기념사진 한 컷!
(두더지..초당지기 어르신같죠? 여성 방문객들 옆에서 어색하게 웃음짓는)
정갈하면서 기품있는 다산초당에선 안온한 정서가 느껴졌는데
풍경소리 11월호에 실린 글을 읽으면 그 느낌이 더욱 진해집니다.
보정산방. 추사 김정희가 유배중이던 정약용에게 보낸 글씨랍니다.
다산초당의 담백한 건축물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
다산 정약용이 있기까지는 혜장선사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일부님의 설명도 듣고...
천일각에 올라가 강진만을 굽어 봅니다.
백련사 가는 길.
가을 낙엽 참 오랜만에 밟으니
사각사각 발치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백련사 가는 길에서 만난 차 밭.
막걸리에 띄워 마신다며
모~올래 녹차꽃을 딴 후 흥에 도취된 주부 도박단.
레인보우 아이들과 반가운 두번째 만남!
맞습니다. 쵸컬릿은 함박꽃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제가 준 걸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백련사는 공사중.
동백꽃이 아름다운 철에 다시 오고 싶어졌습니다.
강진의 청자로 빚었다는 백련사의 풍경들...
다시 억새밭을 헤쳐 길을 걷는 어순당.
세찬 바람에 몸이 날아갈 뻔...
무장공비들처럼 억새밭에 몸을 납작 엎드려 걸었습니다.
어른들도 이렇게 놉니다.
여섯명 모두 나온 단체 사진은 달랑 요거 한 장.
레인보우와의 세번째 조우!
막걸리로 목을 축이다 딱 걸렸습니다.
신난다에게 막걸리 한 잔 건낼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
우리 아이들, 정말 불량식품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을텐데
어느 누구도 군소리 없이 신난다가 나눠 주신 와플만 맛있게 먹고
이렇게 씩씩하게 길을 또 떠납니다.
헤어짐이 아쉬워 막걸리집에서 줌인을 이빠이(!)로 땡겨 찍었습니다.
두더지의 지령으로.
다시 길을 떠납니다.
해질녘 스산한 기운이 옷깃을 파고 들 즈음...
이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이 여인네들은 뜻깊은 의례를 치렀습니다.
두더지는 그 장관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함이 천추의 한이라고 하셨습니다.
(힌트: 다섯명이 단체로 자리에 앉았다.)
밤길을 따라가는 순례길.
멀리 보이는 불빛만을 좇아 침묵으로 걷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모두인듯 혼자서 길을 걸으니
절절했던 만남들이 가슴에 사무쳐왔습니다.
만남.만남.만남...
밤늦게 윤수파. 윤수맘. 지영. 무심. 예파의 반가운 합류.
아빠들이 손수 지어주신 맛있는 저녁밥에 차도 한 잔.
(해바라기와 저는 일찍 곯아 떨어져서 그 이후는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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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부님께서 준비해 주신 아름다운 글을 함께 읽었습니다.
<삶을 바꾼 만남 - 정약용과 강진 시절 제자 황상>
열다섯살 소년 황상이 다산을 만나
운명이 바뀐 아름답고 절절한 이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큰 복이
좋은 스승님 만나는 복이란 말씀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
좋은 스승님께 모든 걸 맡기며 살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모두에게 참 좋은 글과 이야기 나눔시간이었습니다.
(일부님께서 글을 한 번 올려주시면 어떨까요?)
아침을 먹고 채비를 하고 다시 걷는 아침 순례길
어린 순례자 지영이 덕분에
어른들 모두 내내 행복했습니다.
"고마워 지영아"
맘이 꽉 찬 순례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소중한 만남을 기억하며...
소박하고 아름다웠던 12월 강진 순례길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