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광
점토가 배달되어 왔다 얼굴을 만들었다 귓바퀴를 붙이기가 어려웠다 말을 만들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오래 응시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멍든 말이 해 저무는 창가에서 내게 발을 내밀었다 들어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가 문 앞에서 무너지기 전에 등 뒤로 화살 광선이 쏟아졌다 내 방은 가시덤불로 무성했다
글자를 썼지만 일어나면 없었다 구청 직원이 평수를 재고 갔다 내 삶의 실평수는 점토보다 작었다
모든 하루가 역광이어서 세상의 사물들이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였다 하찮았다 사진을 찍어도 나오지 않았다
마법책을 받은 날
천사가 선물한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들었다.
좌표를 보며 개펄을 찾아간 것은 늦여름이었다.
여름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샌들을 벗어둔 채 펄로 들어갔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졌지만, 조금 더 외진 곳 깊숙이 추적하다 보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레블 버그의 최종 위치는 수평선 너머로 확인되었다.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폭격을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햇빛을 걷어차며 해변을 걸었다.
천천히 옆으로 걸어 너를 만났다. 넌 읽던 책을 덮고
보물을 찾아다니는 이유를 나에게 묻는다.
발견해도 소유할 수 없는 보물이라고? 심지어
그 보물이 돌멩이나 조개, 스터커나 쪼끄만 피규어라니 비참하지 않니?
나는 여름을 사랑했다. 발견해도 소유가 불가능한 보물처럼.
나는 나의 해변 절벽으로 올라온다. 오래전 포병이 모두 떠난 돈대이다. 포를 발사하던 구멍들이 무참히 있다. 이리로 바람이 불고 새 떼가 날아든다. 새똥을 뒤집어쓴 채 서서, 너는 크고 흰 새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여행 마지막 날이다. 너는 버리고 갈 책들을 내게 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 행복을 부르는 습관, 이런 마법책을 나는 읽지 않는다.
여름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랑이 어디에나 있다고 사람들이 말했지만 내겐 천사의 말도 사람들의 노래도 소리가 없는 음악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