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萬曆) 15년 정해년(1587) 3월 24일(계축)
맑음. 아침 식사를 한 뒤 출발하여 재송정(栽松亭)에 들어가 쉬고 대동강(大同江)에 도착하였다. 평안도 관찰사 유극화(柳克和)[훈(塤)]와 도사(都事) 심원하(沈源河)가 배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서풍이 세차게 불었지만, 배 안에 둘러앉아 서로 취하도록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파도가 배를 치는지도 몰랐다. 서윤(庶尹) 윤안성(尹安性), 찰방(察訪) 홍세공(洪世恭), 판관(判官) 정응소(鄭應韶)도 참석하였다. 종전의 금주 계율을 처음으로 깼다. 나는 여색(女色)을 범처럼 두려워하고, 술을 독약처럼 간주하며, 한평생 처신의 방책으로 삼았지만, 오늘 만 리 길 변새의 바람 속에서는 양생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비로소 술잔을 가까이하여 조금 취하였으니 혹시 본성을 파괴하는 도끼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국기일(國忌日)이라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대동관(大同館)에서 묵었다.
晴 食後發行 入憩栽松亭 到大同江 箕伯柳克和 都事沈源河 艤船待之 西風大作 匝坐舟中 相與醉話 不知波濤之衝舟也 庶尹尹安性 察訪洪世恭 判官鄭應韶亦與焉 從前酒戒始破之 余以畏色如虎 視酒如藥 爲一生持身之方 而今於萬里塞風 不可不衛生 始親酒杯微醉 或能免伐性之斧耶 以國忌不作樂 宿大同館
▶ 본성을 파괴하는 도끼 : 원문은 ‘벌성지부(伐性之斧)’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본성(本性)〉에 고운 몸매에 하얀 이와 정・위(鄭・衛)의 음악을 스스로 즐기기 위해 힘쓰는 것을 이름하여 본성을 파괴하는 도끼라고 한다.[靡曼皓齒 鄭衛之音 務以自樂 命之曰伐性之斧]라는 구절이 있다. 鄭・衛의 음악은 《시경》 〈국풍(國風)〉에 실려 전하는데 음란한 음악을 대표한다.
《국역 배삼익 조천록》 p151, 김영문(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