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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겨울 배움지기 학부모 공동수련
관옥 선생님 말씀 1-1
제가 이 자리에 앉았으니까 무슨 말씀을 드리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잠깐 말씀 드리고 그런 다음에 여러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될 수 있으면 기탄없이 서로 생각들을 나누는 것이 제가 경험해보니까 좋더라구요. 혼자 얘기하고 끝내는 것 보다는…. 저도 멀리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나라도 배워서 가야될 것 같아요.
제가 저기 뒤에 앉아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고 하니, 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분들이 여기 왜 왔을까? 왜 이분들이 한꺼번에, 같은 시간에 모여 앉아서 노래도 같이 하고 도대체 뭘 하자고 모여 있는 걸까? 여기에 올 수 밖에 없는, 와야 했던 이유는 뭘까? 잠깐 저 혼자 궁리를 해봤어요. 제 생각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여러분들은 다 자식들이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맞죠?(예~) 그리고 그 자식들이 아마도 이 학교에 다니는가 보다.(웃음) 그게 여러분들의 공통점 같아요.
공통분모, 우리가 수학시간에 공통분모에 대해서 공부 많이 했잖아요. 모든 분수가 공통분모 안에 들어가면 다 서로 포함되잖아요. 그렇죠? (예~) 한 사람도 제외되지 않고 포함되는 게 공통분모인데, 여기 계신 분들의 공통분모는 자식들이에요. 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지요, 맞죠?(예~) 결론은 심각할 것 하나도 없는 얘긴데 이걸 왜 진지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아주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기본 상식, 이런 게 아주 땅에 떨어졌어요. 그래서…. 가만있자, 내가 저 사람하고 어떤 점에서 똑같지? 이런 걸 한번 확인해보면 도움이 돼요. 특히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살다보면 문제가 자꾸만 생기잖아요.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거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한 일들이 생겼을 때 저 사람하고 내가 얽혀서 뭔가 문제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 그때는 공통분모가 뭔가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요. 왜 이 학교에 왔나? 왜 내가 내 아이를 이 학교에 입학 시켰을까? 그런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결정했을 것이지만 가끔은 우리가 돌이켜볼 필요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말씀을 많이 들으셨을 거예요.처음 마음을 지켜라.처음 시작할 때 품었던 그 마음을 잊어버리지 마라.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잘 나가다가 잘못되는 경우가 있단 말이지요. 그게 왜 그런고 하니, 처음 시작할 때 그 순수하고 깨끗했던 마음을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길을 잃어버린 거예요. 내가 어디로 가야 되는가? 목적지를 분명히 알고 나침반을 가지고 방향을 잡아가면 길을 잃지 않지만, 그걸 게을리 하거나 하지 않으면 가는 데에 바빠서 근본적인 걸 잊어버리고 처음 시작은 잘 하는데 끝에 가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돼요. 살면서 그런 걸 많이 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확인해봐야 합니다. 당신하고 내가 어떤 점에서 통하는가? 통할 수 있는 통로가 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분위기를 좀 잡아야겠어요.(웃음) 오늘 뭐 집안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다 잊어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여기서는 환한 얼굴로 우리 서로 대합시다.(웃음)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니 좌중 웃음) 이게 뭐냐 하면, 상대방에 대한 시위예요 시위! 그러면 상대방이 좀 활발한 사람이면 상관없습니다만, 나같이 소심한 사람은 ‘아, 저거는 내 얘기를 듣고 싶지 않구나!’하는 감이 금방 와요. 그러면 나오려고 하던 말도 자꾸만 기어들어가요.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해보셨지요?(예~) 어떤 사람을 만나면 생각하지도 않던 얘기가 술술술 막 나옵니다. 그런데 얘기하러 갔다가 그 사람 얼굴만 딱 보면 “아이고!”하며 기어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원래가 그래요, 원칙이 그래요. 왜냐하면 말이라고 하는 것이 꼭 둘이서 하게 되어 있거든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둘이 같이 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에요. 방송은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대화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둘이 해야 하는 거예요. 여기 계신 선생님처럼 너무 열심히 들으실 건 없지만.(웃음) 소리를 해주시고 그러면,얘기가 통하는 구나!하고 신이 나서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면 저도 좋고 여러분도 좋고, 그렇지 않나요? 아시겠어요?(예~) 그렇게 한번 해봅시다. 그래도 정말 재미없으면 안 해요. 그런 적이 몇 번 있어요.(웃음)
사랑어린배움터라, 이 학교 제목이 그렇습니다. 사랑어린배움터, 여러분은 이 말에서 뭐가 퍼득 연상됩니까? 이 동네 이름 갖고 해룡 무슨 무슨 초등학교 이럴 수 있잖아요. 옛날 초등학교가 대개 그렇잖아요? 제가 남산초등학교 졸업생인데, 남산이 뒤에 있었거든요. 자기 마을 이름을 따서 대개 그렇게 했는데 왜 여기는 사랑어린학교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하게 생각해보신분들 있으세요? 그게 궁금해 본적 없어요? 학부모들 가운데서, 왜 이름이 그래요? 그런 생각해보신 분 없어요? 아, 있어도 얘기 안 하신 줄 압니다.(웃음)
그래서 학교 교장이나 대표교사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왜 학교 이름이 이렇습니까? 이런 게 소통의 방법이고 관심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이름 가운데 사랑어린학교라고 했을까? 그럼 도대체 이런 제목을 갖고 있는 학교에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이런 것들도 생각하고, 교사들도 그냥 하나의 이름이라고만 하지 않고 ‘사랑어린학교 선생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사랑어린’이라는 말에서 ‘아, 여기는 사랑이 꽉 차 있는 그런 배움터구나’ 또는 ‘그렇기를 바라는 배움터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사랑, 사랑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말 가운데 정말 좋은 말이에요. 너무 생각 없이 함부로 막 써서 단어가 좀 천박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게 무섭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기피할 수는 없다고 봐요. 얼마나 좋으면 사랑하면 예뻐진다고 하잖아요. 사실 맞거든요. 그러니까 이 학교는 사랑이라는 것을 가장 중심에 놓고 그것이 바탕이 되고 얼개가 되고 겉모양이 되는 그런 공동체, 그런 세상, 세상을 멀리 내다보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고, 그런 세상을 개척해 나가려고 하는 그런 어떤 영혼들을 이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런 곳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기분 좋을 거라 생각해요.
저기 벽에 보니까,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 이건 아마도 사랑어린학교의 부제 같은, 학교가 정말 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풀어서 붙인 이름이다고 생각되는데, 저는 ‘사랑어린학교’라는 이름보다는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이 참 마음에 들어요. 재미난 말들을 골라서 붙인 거 같아요. 그런 집이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쉬운 게 있다면 저런 거예요. 함께, ‘함께’라는 말 속에 뭐가 있습니까? 거기에 열 명이 있다면, 열 명이 함께 하려면 열 명이 다 참여해야 돼요. 하나만 빠져도 ‘함께’가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니까 ‘함께’라는 단어 속에 무슨 뜻이 있느냐 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소외되거나 따돌림 받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게 ‘함께’라는 단어예요. 이 배움터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따돌림 받거나 소외당하거나 하는 그런 학생이나, 그런 부모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함께’라는 단어가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몸처럼! 우리 몸을 봐요. 얼굴, 가슴, 배, 다리 여러 부분들이 조합을 이뤄서 몸을 형성하잖아요. 어느 하나도 소외 당하지 않아요. 한 군데가 아프면 다 아파요.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 가슴으로 테이프를 끊잖아요? 머리로 끊으면 무효예요. 손으로 끊어도 무효고, 가슴으로 끊어야 1등으로 쳐줘요. 그렇죠?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맞습니다.) 맞으면 맞다고 얘길 해주고 그러세요.(웃음) 그런다고 해서 가슴만 상 받는 거 아니잖아요. 자기 혼자 받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속한 학교가 받아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하면 개인의 금메달뿐 아니라 그 나라의 금메달인 거예요. 그런 거예요! 우리가 그런 시스템에서 살고 있거든요. 몸을 보면 참으로 알 수 있어요. 누구도, 어느 기관도 다른 기관을 우습게 보지 않아요. 그런 게 몸이에요. 왜? 함께 사니까, 한 군데가 아프면 다 아프니까!
위장에 암이 생겼어요. 이걸 치료받지 않으면 위장만 죽는 게 아니에요. 그렇죠?(예~) 그래요, 함께 살고 함께 죽어요. 우리 몸은 이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렇지 않은 데가 많잖아요. 누굴 따돌리기도 하고, 어떤 이유로 격리시키기도 하고…. 그렇죠? 너는 이 사회에서 어울릴 수 없다 해서 내쫓기도 하고 그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현실에서 그런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상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이 아이를 길러봐서 아시겠지만, 어떤 아이는 머리가 굉장히 빨리빨리 돌아가는데 어떤 녀석은 잘 안 돼요. 뭐라고 얘기하면 금방 알아들어요. 근데 이 녀석은 몇 번 얘길 해도 못 알아들어요. 내 선배 중에 그런 분이 한 분 있어요. 이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밖에 몰라요. 내가 그 선배를 두고 시를 썼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그 선배한테 붙여준 별명이 곰탱이거든- 미련 곰탱이는 열을 가르쳐줘도 하나 밖에 모른다.”(웃음)
사람이라는 한 존재가 팔방미인처럼 못 해요. 그 형이 제일 잘 하는 게 뭐냐면 나무 심어서 기르는 거야. 목사인데 어딜 가든지 나무 심는 게 먼저야. 그래서 교회 전체를 숲으로 만들어요. 거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 목사가 다녀간 교회는 다 숲이야. 뒤에 사람들이 그 덕을 아주 톡톡히 보고 있어요.
그래요! 우리 몸이라고 하는 것도 보면 전 기관이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아니면 두 가지 밖에 없어요. 그렇죠? 눈은 볼 때, 코는 숨 쉴 때, 입은 밥 먹고 말하고, 코가 뭘 먹지는 못하잖아요. 눈도 뭘 먹지 못하고 대신 코는 뭘 보진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몇 가지 밖에 못 해요. 나머지는 다 다른 기관들이 하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어요. 가끔 세상에는 온갖 재주를 부리는 인간이 있어요. 그 인간은 팔자가 그래! 콧구멍만 뚫려서 숨만 들락날락하는 거 밖에 못 하는 인간도 있어요. 이 인간이 없으면 다 무너집니다. 얼마나 소중합니까? 공부 못 하는 아이가 공부 못 한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거나 멸시 당하거나 하는 건 말도 안 돼요. 분명히 그 녀석이 다른 아이보다 더 잘 하는 게 있게 되어 있다고요. 그걸 살리면 되는 거예요. 잘 할 수 있도록!
여기서 백 명 아이들이 자란다고 하면 아흔 아홉 명이 잘하고 한 명이 따돌림 당한다면 함께 가는 게 아니에요.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떤 이유로도 여기 울타리 안에서는 따돌림 당하거나 멸시 당하는 그런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함께 어울려야 돼요. 함께 뭐하나 봤더니, 싸움박질이야!(웃음) 함께 모여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운다 하면 참 곤란하지요.
틱낫한 스님이 책에 이런 얘길 썼어요. 어느 날 그림을 걸려고 망치질을 하는데 정신을 잠깐 다른 데에 뒀다가 못대가리를 때린다는 것이 자기 왼손 엄지손톱을 탁, 때린 거예요. 얼마나 아팠겠어요. 으아, 하면서 오른손이 망치를 던져버린 거예요. 오른손이 얻어맞은 왼손을 꽉 움켜쥐고 있더라는 거예요. 이게 어울리는 거예요. 왜, 한 몸이거든! 왼손이 오른손을 보고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웃음) “망치질을 그따위로 하고, 너 나한테 사감있냐?”(웃음) 그러면서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저는 가끔 우리 모두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살고 있다. 그게 뭐냐, 바로 자기 몸이다. 이게 우리 선생이다. 자기 손가락을 쳤어요. 맞은 손가락한테 미안해하지도 않고 맞은 놈도 화내지 않고 같이 아픔을 표현하는 거예요. 이런 게 우리 몸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스타일로 우리가 살면 천국이에요. 그래서 함께 어울려서, 어울린다는 말을 한문으로 쓰면 소위, 평화平和하다, 화和자예요. 우리가 노래할 때 테너, 베이스 같은 화음을 넣잖아요. 화음이예요, 화음. 어울려주는 음악! 멜로디가 쭉 흐르는데 그 멜로디를 따라서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르지만 어울려주는 거예요. 엉뚱한 소리를 막 내질러서 얘를 죽이자는 것이 아니고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결과적으로 멜로디를 살려주는 거, 그게 어울려주는 거예요. ‘너 왜 나한테 안 어울리냐?’ 그런 마음을 가지고선 참, 안 돼요.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떻게 하면 어울려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면 길이 보여요, 길이!
엊그제 한알학교 선생님들 하고도 그런 얘길 했는데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아, 그렇구나!’하는 걸 배운 적이 있어요. 뭐냐 하면 어울려주는 게 어떤 건가, 얼마나 중요한가, 어울린다는 게. 우리나라 말에 ‘어울려준다’ 그러잖아요? 어울려줘요. 참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인데, 가정이 있어야 되고 사회가 있어서 같이 살아야 되고 어차피 함께 살아야할 텐데. 이때는 함께 어울리는 법, 이걸 공부했으면 좋겠다.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고 공부할 필요가 있잖아요.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가 하면, 우리 조상님들도 그렇고 다 자기 중심이 되기 쉬워요. 에고Ego라는 것의 특성이 그래요. 언제나 자기중심이에요.
선교사가 아프리카 어떤 추장한테 성경말씀을 가르치면서 선과 악을 알게 하려는데 그 아프리카 토인들의 언어로, 그 사람들 말로 선과 악이라는 말이 없더래요. 번역할 단어가 없는 거예요. 그런 종족도 있어요. 선과 악이라고 하는 단어가 없어요. 이걸 설명해야할 텐데, 그래서 선교사가 이랬대요. 좋은 게 선이고 나쁜 게 악이다. 그러니까 그 추장이 “아, 그러면 선이 뭔지, 악이 뭔지 알겠다.”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교사가 선이 뭐냐고 물으니, “내가 저쪽 부족하고 싸움을 해서 저쪽 추장의 마누라를 전부 뺏어오는 거다. 그게 선이다.” 그럼 악이 뭐냐 하니까, “내가 싸움에 져서 저쪽 추장에게 내 마누라를 다 뺏기는 거다. 그게 악이다.”(웃음)
그러니까 좋다, 나쁘다는 생각을 언제나 자기중심에서 판단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두 번째예요. 첫 번째가 아니에요. 그렇게 돼 있어요. 누구는 그렇고 누구는 안 그렇고 그런 게 말이 안 돼요. 자주 하는 얘기지만 에고Ego의 특성이에요. 에고는 간디의 에고나 히틀러의 에고나 똑 같아요. 자기중심이라고 하는…. 그런데 간디는 에고가 하자는 대로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히틀러는 될 수 있으면 에고가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이에요. 그게 차이가 있을 뿐이지, 에고 자체는 하나님이 원래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는, 그렇기 때문에 어울린다는 단어를 놓고 생각 한다는 게 남들이 자기한테 어울려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보다 진정한 어울림이라고 하는 것은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 바라는 게 다 달라! 그래서 서로 상대방이 나한테 맞춰주길 바라는 한, 길이 없어요. 저 사람이 나한테 맞춰주길 내가 바라거든요. 어쩌다 저 사람이 나한테 맞춰주면 난 기분이 좋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은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도 저 인간이 나한테 맞춰주질 않아요. 맞춰주지 않는다기 보다는 내가 볼 때 거의 못 해! 할 힘이 없어요. 그래서 그래!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내 중심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어울려줄 수 있을까? 이런 쪽으로 궁리를 하면 답이 나와요. 그래서 함께 어울려서 뭐 하냐? 놀자 이거지요.
난 저 ‘논다’는 말이 제일 좋아요. 아이들은 놀 줄 알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에 다니면서 슬슬 놀 줄 모르게 돼요. 그래가지고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놀려고 그러면 예산 짜야 돼. 놀기 위해서 계획을 짜! 놀러가서 뭐 하나 봤더니 그 시간표 맞추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놀러가서 돈 쓰고…. 놀려면 뭘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놀 줄을 몰라요.
아이들은 그냥 데려다놓으면 막 놀아요. 숲 속에다 그냥 데려다놓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별거별거 다 가지고 놀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자랐잖아요. 장난감이 많이 있어서 논 게 아니에요. 종이 하나 가지고도 충분히 놀 수 있는데 흙 가지고 놀고…. 이렇게 놀 줄 알아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이 성장하면서 노는 법을 잊어버리고 일 하는 사람이 돼요. 그게 문제라고 봐요. 여러분께서는 논다는 걸 계속해서 많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잘 노는 부모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놀이마당’하면 거기에는 다 좋은 것만 있어요. 거기서 떼를 썼다고 책망하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도 머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살벌해져요. 그래서 아이들은 놀면서 크지요. 무럭무럭 자랍니다. 놀면서 친구하고 사귀는 법, 의견 충돌이 됐을 때 푸는 법 이런 걸 놀면서 배워요. 자기들끼리 잘 하고 자라요. “이거는 니가 해” “넌 딴 거 잘하니까 그거 해” 하면서 서로 자기 역할을 찾고 남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하면서 재미있게 놀이를 하면서 사회생활 하는 방법, 이웃과 어울려 사는 법, 난관에 부딪혔을 때 뚫고 나가는 법, 공동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푸는가 등 이런 여러 가지 인생 살면서 겪는 문제들을 숨바꼭질을 하고, 술래잡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배워가는 거지요.
이런 걸 어른들 사회까지 연장해보자는 거예요. 어른들도 놀 줄 아는 걸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저절로 크는 거예요. 아이들이 놀면서 크는 것처럼! 그런 사회를 꿈꿔보자. 되든 안 되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에 내가 참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걸 같이 고민하고 같이 찾아가는 그런 배움터, 이게 사랑어린배움터의 모습이 아닌가 제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동의하신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누가 자라는가? 누가 커요? 이 학교에서. 다 크지요. 안 그래요? 선생이 크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요.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큰다 할 때 이 ‘함께’ 속에는 교사도 들어있고, 학생도 들어있고, 학부모도 들어있고 관계된 모든 사람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함께’ 어울려요. 이건 이 사람이 잘 하니까 이 사람에게 맡기고, 저건 저 사람에게 맡기고 도움을 받는 거예요. 서로 도와주고 그러면서 함께 조화롭게 잘 어울려서 마치 눈은 잘 보고, 코는 냄새 잘 맡고, 귀는 소리를 잘 듣고, 발은 걸어 다니고 이런 것처럼 각자 자기 일을 재미있게 하면서 같이 어울려 노는 거예요.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어요. 놀이의 원칙은 뭐냐 하면 재밌어야 돼요. 재미없으면 놀지 않아요. 그러면 인생 자체가 재미있어요. 살면서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자. 생각만 해도 재밌잖아요. 재밌게 살자는 거예요.
제가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연세가 80 중반 쯤 됐나,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께서 고개를 숙이고 무슨 책을 보고 있어요. 그런 장면이 보기 드물어서 눈에 쏙 들어와요. 반가워서 봤어요. 그랬더니 불한사전을 보고 계세요. 할아버지께서 명상책도 아니고 사전을 보고 있나, 무슨 사전을 보고 계시냐고 여쭸더니, 이게 재미있대. 골목길이라는 말을 프랑스놈들은 뭐라고 하는지 알아보고 싶다 이 말이야. 모르는 걸 알아가면 재밌잖아! 그래가지고 아이들한테 “야, 너희들 프랑스말로 골목길이 뭔지 알아 이놈들아?”(웃음) 알 리가 없지.(웃음) 그때 딱 얘기해주면 그 맛이 좋다 이거야!
쓰잘 데 없는 거지만 재밌단 말이에요. 나는 그 할아버지한테 배웠어요. 진지하고 심각한 철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거 없단 말이죠. 버스 타고 가면 어차피 시간 가는 거 그때 콘사이스 가지고 그런 놀이를 한단 말이에요. 우리 모두 그렇게 살 수 있는데 살지 않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사는 법을 한번 배워보자.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크는 거예요. 아이들만 자라는 학교라고 착각하지 마시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이 학교에서 자라야 돼요, 커야 돼요.
이제부터 저에게 여러분 생각을 말씀 해주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주시면 제 나름대로 대답을 해드리겠어요.(한참 침묵이 흐른 뒤) 아이들은 뭐 질문해라고 하면 이렇게 뜸 안 들여요. 수염 왜 길러요?(웃음) 금방 나와요. 그게 아이들이에요. 놀 줄 알아요. 진지하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라는 책이 있어요. 죽음의 세계를 경험한 인도사람이 쓴 책인데, 갔다 와서 이 땅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권했던 말 중 하나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말자. 가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 살면서 그게 다인 것처럼 진지하고 심각하게 살았는데 막상 이 세상 정리하고 가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 제일 좋은 거는 순간순간 행복하게 즐겁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더라.” 이런 얘길 하면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요.
미국 어떤 의사가 임종을 앞둔 사람들만 골라서 설문조사를 한 논문을 제가 읽었어요. 그러니까 그 의사는 환자가 자기 죽음을 인정한 사람들만 골라서 숨지기 전에 인터뷰를 한 거예요. 나는 며칠 안에, 몇 시간 안에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질문을 던진 거예요. 그 중에서 제일 기억나는 게, ‘살아온 삶에서 가장 후회한 게 뭐냐?’ 그랬더니 1등이 “너무 시리어스Serious하게 살았다. 내가 이 자리에서 지켜보니까 그때 지랄맞게 그럴 게 아닌데, 별 거 아닌 거 가지고 왜 그렇게 세상이 뒤집어진 것처럼 진지하게 그랬던지, 후회스럽다.” 이런 얘기를 제일 많이 하더래요. 그런 것도 참조해볼만 하잖아요. 어차피 우리도 그 자리에 갈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하느니 이제부터라도, 그렇다고 막 아무렇게나 살아라, 그런 게 아니고(웃음) 진지하게 사는데 진지하지 않아! 그게 놀이예요. 아이들 노는 거 보세요. 굉장히 진지해, 그렇죠? 불러도 들리지도 않아요. 그게 게임이에요. 그런데 끝났어, “밥 먹으러 와” 이러면 갈 때 뒤도 안 돌아봐요. 진지하지가 않아요.(웃음)
내가 인생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살아가는데 이 과정에 어떻게 하면 얽매이지 않을까, 거기로부터 내가 자유로울까, 내가 하는 일로부터 구속당하지 않고, 그 일의 결과 때문에 앞당겨서 걱정하지 않고, 내가 재밌게 내 인생을 살면서 그 결과에 좌우당하지 않는, 진지하면서 진지하지 않는 그렇게 놀아야 해요. 아이들이 노는 것에서 그런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르주 루오(Georges-Henri Rouault, 1871~1958)라고 하는 프랑스 화가가 있어요. 이 사람은 평생 자기 그림을 고집했어요. 시대의 흐름 같은 것에 영합하지 않고 자기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신학적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니까 한 장 한 장 심혈을 기울여서 그렸겠지요. 그런데 제가 어떤 책을 읽다보니까 이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어마어마하게 많이 쌓아놨던 그림을 전부 태워버렸더라구요. 왜 그랬을까요? 한 장 한 장 그릴 때는 자기의 정성를 다해서 그렸겠지만 그것이 무슨 대단한 업적인 것처럼 생각해서 내가 거기에 구속당하지 않겠다.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는 그림을 그린 화가가 이 사람한테는 더 중요한 거예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의 노예가 되기 쉬워요. 그래서 재미가 없어요. 일을 진지하게 한다는 것과 그 일에 구속당하는 것 그런 걸 아이들 놀이판에서 배웠으면 좋겠어요. 선생들은 노는 아이들한테서 배우시고 잊어버렸던 걸 찾고 점점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질문을 하시라고 해놓고 또 떠들었네요.(웃음)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라는 분을 아시죠? 이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의식수준으로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 문제를 일으킨 그 의식을 가지고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말인데, 오늘날 한국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입시위주 교육, 아이들을 닦달하면서 소위, 출세하고 성공을 위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되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실력이 있어야 되니까 어려서부터 힘들게 해요. 그 논리 때문에 부작용이 많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폭력이 난무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지 못 했던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 때문이에요. 그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는 한, 한국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저 엉뚱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큰다는 말에 경쟁한다'는 말은 없지요? 발상 자체가 엉뚱해요 그러니 이 학교에 수백 명 수천 명이 몰려올 리가 없어요.(웃음) 그러면 수상해요.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라는 사람이 그런 얘길 했잖아요. 세계 역사의 터닝포인트에서 자유로운 세상의 지평을 열어가는, 인류 문명의 발전이랄까 하는 그런 포인트에서 발견한 게 항상 Creative Minority, 창조적인 소수 이 친구들이 역사를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했어요. Creative Minority는 창조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는 소수예요. 그들에 의해서 역사가 발전하는 거예요.(잠시 침묵)
사랑어린학교의 학부모와 선생님들은 내공이 상당히 깊어요. 얘기하는 사람이 얘기하다 말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서 딴전을 부리는데도 동요하지를 않아 어떻게 된 게!(웃음) 여러분 그게 쉽지 않아요.
한번은 친구하고 어디를 가려고 전철을 타러 갔어요.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저쪽에서 전철이 오는 게 보여요.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자연히 급해지지 저걸 타야 하니까. 나하고 같이 가던 친구도 막 뛰어가더라고.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뛰고 싶지 않았어요. 긔고 바쁘지도 않았고. 우리가 의기투합해서 가려는 데가 겨우 다방이었거든. 그날 커피 한잔 하자고 가는 중이었거든요. 급할 거 하나도 없잖아. 그래서 나는 내 속도로 내려갔어요. 계단을 내려서는데 전철문이 닫히더라고 그러니까 먼저 탔던 친구가 문이 닫히려는 순간, 다시 내렸어요. 그러다가 문에 끼었어요. 화가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당연히 화가 났지! 안 내도 되거든, 그럴 때 화를 안 낼 수 있거든! 그런데 우리는 화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내는 게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럴 때 화를 내지 않는 법을 생각해보는 거예요.이럴 때 내가 꼭 화를 내야 되나? 화를 낸 게 나한테 도움이 되나? 내가 다른 방법으로 대처할 수는 없을까? 이런 궁리를 하는 게 Creative Minority예요. 다르게 생각해보는 거예요. 맨날 똑같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번 다르게 생각해보자.
그 친구가 나와서 열심히 화를 내더라고요. 누가, 어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화를 낼 때는 그 사람을 쳐다보면 안 돼요. 외면하는 거예요. 딴청을 부려야 돼요. 그 얼굴을 보면서 변명하면 더 질러대는 거니까! "아, 뭘 그런 걸 가지고 화를 내!" 이러면 휘발유를 붓는 거예요.(웃음) 화를 낼 때는 그래야 돼요. 딴청을 부리는 게 제일 수야, 어쨌든 간에! 그리고 한 5분 있으면 또 차가 오잖아요. 한 5분 쯤 지나서 이렇게 보니까 화가 풀렸어. 지가 풀리지 뭐, 내가 계속 자극하지 않는데 지가 어떡해 풀어야지! 또 내가 선배거든.(웃음) 어느 정도 화가 풀린 것 같아서 웃으며 "아무개야, 너 바쁘냐? 바쁘지 않잖아. 그런데 왜 뛰냐, 전철 왔다고 뛰냐? 전철이 와서 세 걸음 앞에서 기다리는데, 그걸 뛰지 않고 자기 걸음으로 걸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웃음) 그게 여간한 내공 아니면 안 돼요. 그러면서 웃었던 적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소한 일상사가 우리에게 마음공부 하는 지혜가 될 수 있어요.
-사실 작년에도 선생님께서 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했죠! 맨날 레파토리가 똑같아요.(웃음)
-말씀하신 내용을 읽었는데 저에게 드는 마음이, 저 같아도 전철이 오고 있으면 후다닥 뛰거든요. 그걸 당연시하고 살아 왔어요. 다가오는 전철을 보내도 된다고 자신의 걸음으로 가신 건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저도 바쁘면 뛰어요.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난 바쁘면 전철 안에서도 뛴다고요.(웃음) 내가 바쁜데 안 뛰어요? 당연히 뛰어야죠. 그런데 지금은 내가 바쁜 이유가 없다고요. 이게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실제로 해보세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오랫동안 가져온 습習, 버릇 같은 거예요. 일단 와서 문을 열면 뛰게 돼 있어. 오랫동안 내가 그래 왔어요. 그런 내 버릇에 브레이크를 거는 거란 말이에요. 자기 자신한테! 그러니까 이건 정신을 좀 차리지 않으면 안 돼요. 정신을 놔버리면 안 됩니다. 깨어있다는 게 그래서 중요해요. 평소에 늘 깨어있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러다보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좀 다르게 대처하는 방법이 생각나는 것이지요.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는 버릇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김유신 장군 이야기 잘 아시죠. 어머니가 걱정하니까 다시는 술집에 안 가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말 위에서 잤어요. 그러니 말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자기한테 없는 거야. 잤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말이 주인이에요. 내가 말의 주인이 아니라 말이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잔다는 게 그런 겁니다. 잠들어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내 몸에 들어와 있던 버릇이 나를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이 술집으로 가요. 고삐를 잡지 않았는데도. 김유신이 가서 보고는 말의 목을 내리쳤다는 거 아니에요.
전설 같은 얘기고 해결하는 방법도 상당히 무사적인 얘기긴 합니다만, 말의 목을 쳤다는 건 상징적인 거예요. 자기 버릇을 잘라버린 거예요. 좋지 못한 버릇은 그렇게 잘라버릴 필요가 있어요. 하면 되거든요. 깨어 있으면 되는데 깨어 있지 않으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예요. 잠들어 있으니까!
평소에 깨어있기 훈련, 『영성 수련의 기본』인가 하는 책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잖아요. 도움을 받아서 평소에 깨어있기 훈련을 해보세요. 어떤 사람이 그랬으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 이런 생각하지 말아요. 누가 그렇게 했다더라. 그래? 그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날 어쩌다 제가 좀 깨어 있어서 그랬지.(웃음) 예를 들면 한도 없을 거예요. 그래도 내가 골라서 거기에 있었던 거지!
---공동수련 중 관옥 선생님 말씀 일부분입니다.---
노구를 이끌고 원로에 귀한 말씀을 주셨는데 올리는 게 늦었습니다.
급한 대로 일부라도 게시합니다.
게으름과 한눈 파느라 늦어져 죄송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전문을 담겠습니다.
다음 주면 아이들 개학이네요.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았던 것 같기도 한,
그런 겨울이 막바지에 다달았습니다...^^
첫댓글 고생하십니다. 화이팅! 바람개비야 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