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을 사는 것(가난한 행복)
- 김경일 신부(성공회김제성당관할사제)
뭐든지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어야 받아들이는 20대 초반,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 정말 모르겠다고 느끼게 하는 부분은 죽은 사람을 살렸다던가, 물 위를 걷는다던가하는 기적예화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로 시작하는 산상수훈이 오히려 더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하다는 건가. 가난도 등급이 있다. 솔직히 나는 굶주려 본 적이 없다. 아내도 의사집안의 딸이었고, 나 역시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이 내일 양식을 걱정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산상수훈을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여기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는 영국의 부루더호프 공동체를 만나고 난 뒤, 산상수훈이야말로 복음의 진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세계 제 2 차 대전 중에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양심에 의거하여,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거부하였으며, 이런 그들에게 조국은 추방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반대론자인 그들을 받아준 유일한 나라인 파라과이까지 가서, 밀림을 개발하며 20 년을 살았다. 그들은 밀림 속에서 긴 세월 끔찍한 가난을 견디며 살았지만, 그 때가 하느님의 체온을 가장 가까?! ? 느꼈던 행복했던 시기라고 기억한다. 그래서 부자로 살게 된 지금에도 그 때를 기억하기 위해 가끔 기간을 정해 아주 간소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들은 쫓겨나고 핍박 받고 굶주리는 실제 삶에서 산상수훈이 진리임을 체험하고 산 것이다.
산상수훈은 몸소 굶주리고, 쫓겨나고 핍박받지 않으면 그 말씀이 진리임을 알 수 없는 복음이다. 역시 내가 어디 서 있느냐의 문제다. 확실히 가난과 핍박은 하느님의 음성에 촉각을 기울이게 만든다. 평소 나는 가난에 대해 둔감하다. 솔직히 교회 언저리에서 맴돌다보면 그런대로 먹고는 산다. 워낙 빈약한 교회에서 시무하다 보니 급여가 거의 나오는 게 없고, 교구에서 보내주는 최소한의 지원금으로 생활하려니 때로 불편할 때도 있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을 뿐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회로 인사이동이 될까 걱정이다.
대체로 그런 교회는 기존의 틀이 딱 잡혀있어, 변화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이미 정해진 역할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해내야 한다. 그러니 호봉대로 맞추어 주는 급여가 마치 족쇄처럼 느껴진다. 예수의 삶을 본받아 살겠다는 처음의 굳은 각오와 결심은 조직의 논리에 흔들리며 적당히 타협하기 십상이다.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조종하는 끈이 달리지 않은 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여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우리 교회 신자들은 늘 미안하고 죄송한 표정으로 나를 대하고, 덤으로 구멍 뚫린 나의 인격적 결함도 너그럽게 용인 받는다. 가난한 교회가 은혜롭고 좋은 이유다. 혹자는 사목을 열심히 해서 급여를 제대로 받으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면 사목을 열심히 하는 이유가 급여를 위한 것이냐고 되받아 치게 된다. 강론 중에 진리를 선포하다가도 헌금을 주제로 무언가 말을 꺼내려면 그만 김이 새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아무리 성경의 관련문구로 합리화하려해도 힘이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내가 신학원에 입학했을 때,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들 중에는 서슬이 시퍼래서 ‘쌀독에 내일 먹을 쌀 밖에 없어야 한다. 지금 있는 교회보다 더 열악한 교회가 아니면 움직일 생각을 하지 말라. 성직생활을 끝내고, 만약에 집안의 재산이 사목 시작할 때보다 불었다면 도둑질을 한 거로 알라’고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 있었다. 그 교수님들은 이제 은퇴하셨지만, 그런 분들의 꼿꼿한 지조와 기개를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가슴 아프다.
10 여 년 전에 열성신자들이 개척한 셋방살이 교회에서 사목을 한 적이 있다.
부임 첫 미사를 드리고 나니 원로급 신자들이 나에게 따지 듯이 물었다.
“신부님은 우리 교회에 부임하시면서 어떤 목표를 정하셨습니까? 당연히 교회부흥이시겠죠? 부흥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까?”
“글쎄요. 교회를 왜 그렇게 부흥시키려고 하십니까?”
“신자가 많이 늘어야 교회발전도 되고, 성전건축도 해야 하니 헌금도 많이 들어와야겠고...”
“새 신자가 와서 자리 잡으려면, 우선 기존신자들이 따뜻하고 성숙한 신앙을 보여주면서 아름답게 살면 될 것이고. 헌금 문제라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 두 세배 더 내면 문제 해결이고. 설마 새 신자의 주머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니겠죠?”
“교회부흥하자는 게 뭐 잘못된 것입니까?”
“발상도 잘못되었고, 목표도 잘못되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신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옛날 얘기 하나 하죠. 제 친구 중에 대안학교인 풀무농업학교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하루는 저와 맥주 한 잔 하면서 무슨 얘기 끝에 ‘한 학년의 학생 정원이 20 명이었을 때만 해도, 학생이 집을 나가면 학부형과 함께 전국을 뒤지고 다녔고, 학생이 정신 차릴 때까지 붙들고 씨름을 할 수 있었는데, 어느 해부터 정원이 25 명으로 늘자, 한계선이 어느 정도 그어지는데 너무나 달라지는 자기 자신을 보며 이래도 내가 과연 선생이라 불릴 자격이 있나 싶어 비탄에 빠진다.’며 눈물을 쏟는 겁니다. 그러더니 그 다음에 하는 말이 그런데 교회 목사님은 어떻게 그 많은 신자들을 돌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 하더군요. 자신은 25 명만 되어도 감당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신자가 25 명 이상 넘어가면 사목이 어렵다 이 말인가요?”
“교인이 단 열 명이라도, 손 붙들고, 같이 간다고 생각하고 살면,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바쁜 법이요. 교인 숫자 많이 채우면 뭘 합니까? 한 영혼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 하면서. 나 아무래도 이 교회에서 쫓겨날 각오를 해야 교회 꼴이 바로 서겠네요. 여러분하고 저하고는 많이 부딪쳐야 할 것 같고. 이 교회에서 제 목표는 여러분들처럼 성공 지향적이고 성장제일주의 신자들에게 순교 당하는 것입니다.”
나는 2 년을 그 교회에 머물다 떠났다.
누가 왜 그렇게 빨리 떠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기도와 인내의 부족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댓글 좋은 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