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둘레 땅’ 철원, 후삼국 최강 태봉의 도읍지
지금은 비무장지대에 갇혀, 분단의 멍에만…
최근 통일연구원에 의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국민 70% 정도가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도 통일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66%에 달했다. 통일이 당위론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그 실질적 가치에 대한 확신은 확산되지 않은 현실을 짚어주는 한 단면이다. 통일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이런 ‘괴리’ 현상에는 통일 관련 다양한 사실 정보의 소통과 이에 대한 논의 자체의 부족함도 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강원희망신문은 일상적인 뉴스 가치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들의 통일 관련 합리적 선택에 필요한 다양한 사실, 의미 등을 찾아 ‘통일리포트’에 담기로 한다. 그 첫 기록을 위해, 분단의 상징들이 곳곳에 목격되는 중부최전방 DMZ ’철원 생태평화공원’을 찾았다. <편집자주>
23일 오전 11시 신철원 버스터미널에서 동송읍에 위치한 고석정으로 향하는 길은 적막감에 포위돼 있었다. 경기도 파주, 강원도 고성과 함께 세계평화공원조성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철원 DMZ생태평화공원. 강원도 중부전선 최전방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끔씩 지나다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한산했다. 길 옆 풍경도 을씨년스러웠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과 벼 벤 후 텅빈 들판의 황량함으로.
철원은 신탁통치이후 38선 이북으로 넘어갔다가 한국전쟁 이후 그 일부를 되찾았는데 현재의 철원은 당초의 4분의 1정도를 되찾은 결과다. 관계자에 따르면, 철원지역 대부분이 군사 통제 지역이라 건물 한 채를 지을 때도 그 절차가 까다롭다. 예전에 번화했던 철원은 적막한 구철원으로 둔갑, 곳곳에 빨간색 ‘지뢰’ 주의 문구와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군 초소가 포진해 있다. 불과 몇 년 전 민통선이 북상했다지만 여전히 민통선 이북 지역에는 주민이 살지 않는다. 농사철에만 출입영농을 하는데 이마저도 신분증을 맡기고 정해진 의상을 착용해 정해진 시간에 돌아와야 한다.
철원은 군사분계선(DMZ)의 3분의 1이 관할 구역에 포함돼, 접경지 지자체 중 가장 긴 구간을 차지한다. 한국전 당시 최대 격전지인 백마고지 전적비, 저격능선, 철의삼각지대, 노동당사 건물 등 전쟁의 흔적이 전쟁 발발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평화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철원 평야와 함께 철원군이 조성한 생태평화공원이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온다. 비무장지대 안에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후삼국시대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며 한반도 최강으로 떠올랐던 궁예의 태봉국 도읍지도 있다. 외성 12.5km, 내성 7.7km에 이르는 이 옛 성터는 잠시 밀봉해둔 역사책의 한 페이지처럼 비무장지대 안의 갇혀, 통일 후 재개봉을 고대하고 있는 듯했다.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로서 냉전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는 철원이 정부가 주도하는 DMZ세계평화공원 조성 후보지로 올랐다. 통일부는 평화공원 조성 선정기준으로 평화 상징성, 환경성, 접근성 등을 뽑았다. 철원은 전쟁의 상흔, 역사적 유물이 갖는 평화 상징성 뿐 아니라 다양한 생태환경성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탄강, 산명호, 토교저수지, 아이스크림고지 등 산지, 습지, 평지를 두루 갖춰 공원 조성에 적합한 이점이 있다. 또 가을 추수가 끝난 철원평야는 떨어진 낙곡이 풍부한 먹이원으로 제공돼 철새들의 낙원이 되고 있다.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진 DMZ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민통선 이북지역 저수지에 모여 철새들의 보금자리를 만든 탓이다. 겨울철이면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재두루미 등 각종 희귀조류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 관광지이기도 하다. 또 한반도 중앙이라 지리적 접근성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과의 이동시간은 1시간 30분가량. 옛 경원선(서울-연천-철원-원산-시베리아)이 복원된다면 경유지로서 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한반도 분단은 세계 평화 증진의 차원에서 전세계적인 이슈중의 하나로 간주돼 왔다. 과거 UN이 금강산과 설악산을 묶어 세계평화공원으로 만들자거나, DMZ를 관광지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최문순 현 도지사도 부임 초기부터 철원과 인근 DMZ 지역에 평화생태벨트 조성 등 한반도 통일 기반 구축에 필요한 사업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쇠둘레 땅, 철원’이 분단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평화’와 ‘생태’라는 미래가치를 구현하는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