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이해와 온전한 사랑을 위하여 –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을 보고
흔히 ‘강(물)’하면 떠오르는 것이 ‘인생’이다. 아마 ‘흐른다’는 속성의 교집합 때문에 함께 엮이는가 보다. ‘강(물)’과 인생은 변화와 순환적 흐름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리라.
영화의 제목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의 뜻이 무엇일까?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교집합의 속성은 무엇일까.
우선 예측 불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날벌레낚싯밥 낚시(fly-fishing)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강물은 물 흐름의 방향도 예측하기 어렵고, 물 흐름의 속도도 그 완급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곡 속의 크고 작은 돌맹이와 바위들도 불규칙하게 흐트러진 채 어지럽게 널려 있다. 낚시질은 바로 그 강물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그만큼 예측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그 속도도 조절이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생길에서 만나게 되는 쉼 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와 일들은 거의 예상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을 뿐만 아니라 어지럽게 흘러가게 마련이다. 이렇듯 강물과 인생은 미리 점쳐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흐르는 강물’과 ‘인생’은 항시 시련을 만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흐르는 강물’과 ‘인생’이 예측 불가능하기에 그것들은 고난과 시련을 품에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근원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이 예측 불가능성을 가진 흐르는 강물에서 날벌레낚싯밥 낚시(fly-fishing)를 한다는 것은 항시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둘째 아들 폴이 낚시할 때 목숨을 건 위험함을 무릅쓰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살이도 그렇게 위험천만을 무릅쓰고 살 수 밖에 없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폴이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우여곡절의 인생여정을 보여주는 데서도 실감할 수 있다.
또 강물이나 인생살이는 모두 질서와 절제된 훈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도록까지 말이다. 강(江)은 우주만물의 창조자인 조물주라는 장인(工)이 우주의 질서와 섭리(절제)의 과정을 거쳐 물(水)이 흐르도록 만들어졌다. 현재의 강물로 흐르게 되기까지 수천 수 만 년의 세월 동안 수없는 시련을 거쳐 왔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연스런 흐름으로 결과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살이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고도로 절제된 훈련의 과정을 거쳐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야만 한다. 영화 속에서도 어린 아들들이 글을 써오면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는 ‘반으로 줄이라’, 또 반으로 줄여서 고쳐오면 다시 ‘반으로 줄이라’고 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은 명료함과 간결함속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장인)의 예술이라는 질서를 터득하기 위한 훈련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큰 아들 노먼은 아름다운 시를 이야기하는 문학 교수로 질서를 잡게 되고, 부모에게 한 없이 자랑스럽고 믿음을 주는 우아미를 연출하게 된다.
또한 큰 아들 노먼이 “우리 가족에게는 종교와 플라이 낚시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라고 회고하듯 아버지인 맥클레인 목사는 메트로놈을 놓고 어린 형제에게 4박자에 맞춰 낚싯줄을 10시와 2시 방향으로 던지는 훈련을 시킨다. 이것은 우아함과 질서, 절제, 나아가서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훈련의 과정인 것이다. 고향에 남아 이 과정을 더욱 심화시킨 동생 폴의 연어 낚시 모습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라고 감탄할 할만하다. 그러기에 동생의 낚시 솜씨에 시기심을 가졌던 형 노먼도 동생의 낚시질 모습에 대하여 "그 순간 나는 완벽을 목격했다는 걸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동생 폴은 빅블랙풋 강둑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초월해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또한 인생은 예술품이 아니고 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고 회고하며 예술로 승화된 질서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끝으로 강물이나 인생의 공통 속성은 이해와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낚시는 예술이고 인생”이라고 말할 만큼 강물과 낚시에 대하여 달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또한 혼자 외롭게 몬태나 강에서 낚시를 하면서 “어슴푸레한 계곡에 홀로 있을 때면 모든 존재가 내 영혼과 기억, 그리고 강의 소리, 낚싯대를 던지는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A river runs through it)’라고 말하는 할아버지 노만의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보아 두 아들 역시 강물과 인생에 대하여 넉넉한 관조와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낚시와 강물과 인생과 영혼 등에 대하여 이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초월한 인간의 모습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이해와 사랑의 압권은 아버지 맥클레인 목사의 마지막 설교에서이다. 멕그레이 목사님은 예배시간에 죽은 아들 폴을 생각하며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 중 어느 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묻게 되겠죠. ‘우리는 기꺼이 널 도와줄 거야, 필요한 게 무엇이니?’
‘우리는 내가 가진 무엇을 그들에게 주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주어야만 하는 도움은 그들이 원치 않는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장 잘 이해해 주어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둘째 아들 폴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고백과 함께 그래도 본질적으로 근본적으로 사랑하는 아버지의 고백을 읽게 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은 1900년대 초, 스코틀랜드 장교출신 목사 리버런드 맥클레인(톰스커릿 분)과 아들 노만(크레이그 쉐퍼 분)과 폴(브래드 피트 분), 부인(브렌다 브레딘분)과 함께 몬타주 강가의 교회에서 살면서 낚시를 종교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강물의 흐름 속에서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인생이란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영화의 원작인 노먼 맥클레인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강물은 세계의 대홍수로 인해 생겨나서 시간의 근저를 출발하여 조약돌을 만지며 흘러간다. 몇 개의 조약돌 위에서 강물은 빗방울처럼 떨어지기도 한다. 조약돌 밑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씌어 있으며 그 중 몇 개는 돌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영화는 노만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 등 가족이 모두 죽고 이제 혼자 낚시를 하며 가족과 인생 그리고 일생을 지배한 낚시에 대한 회상을 달관한 듯한 모습으로 상념에 젖어 변함없이 흐르는 강을 넋을 잃은 듯 응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치 몇 개 조약돌들 중 하나라도 된 양.
이 영화를 보면서 이해하게 된다. 강물을 다 알지 못해도 강물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듯, 아버지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고, 형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형을 사랑할 수 있고, 동생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동생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고 자식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자식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