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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가락
“아빠 잡아라.”
아내와 아들 세 사람이 치면서 네 동씩 열두 말이 가자면 죽는 게 일이다. 잎새는 살기 어렵다. 도나 개를 쳐 놓으면 곧 잡혀 달음질칠 수가 없다. 어쩌다 모나 윷이 나오면 모도나 뒷도 쪽으로 멀찌감치 도망갈 수 있다. 풋 밭에서 얼쩡거리다간 잡히기 쉽다. 방혀 쪽으로 들어가면 좀 덜 할까 했는데 모를 치면 또 붙들릴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다. 뒤쪽으로 돌아 멀리 가도 다리 놓아 쫓아 오니 불안하다.
저녁에 세상이 어떤가. 잠시 뉴스 보곤 자리 놓아 윷판을 펼친다. 겨울 긴 밤이 아니다. 정초 설이나 보름, 한가위 명절이 지나도 윷 치는 일이 재미있다. 시도 때도 없이 친다. 아예 윷 싼 포대기를 침대 밑에 뒀다. 서로 기를 쓰고 받지와 안지, 참으로 가다가 퍽 잡히는 게 신난다. 곳곳에 잡으러 달려드는 말이 버글거리니 가늠할 수가 없다.
다 가서 그렇게 되니 힘 빠지는 모습이다. 그러다 여러 번 지게 되니 돈도 잃게 된다. 뿌루퉁하다. 작은 것이라도 걸고 해야 이기려 애쓴다. 지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잘 치면 후련해서 좋다. 던져서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부리나케 달아나야 한다. 부부간에도 승부 욕이 강해서 몇 푼 잃는 날은 편치 못하다. 냉랭해지기 일쑤다. 뜬금없이 말투와 행동을 나무라며 꼬투리를 잡는다.
“더 높이 던져요.”
“굴리면 큰 사리가 나오잖아요.”
“약 오르는구먼.”
괜히 트집이다. 건더기가 없나 살피는 것 같다. 높이 던져도 질 땐 상대편 하는 게 그리 보이는가 보다. 어쩌다 여러 번 잃으면 심통이 생겨서 윷 통과 방석을 저 구석에 갖다 넣어버린다. 다시 치지 않을 심사이다. 눈치를 보며 민숭민숭 지나다가 며칠 뒤 설 가져와 깔아놓으면 씩 실없이 웃는다. 한판 하자. 야금야금 다가간다. 팽개친 걸 왜 가져왔냐고 무어라 말하지 않는다. 매몰찰 때가 있어도 따지고 자시고 할 수 없다. 그저 눅눅하게 지나야 좋다. 기가 살아 펄펄 했다간 나이 들어 곱씹을 수 있다.
“어찌 치기에 모와 윷이 자꾸 나와요.”
“낮게 굴리는가.”
몇 번 이기면 날 선 말이 또 나온다. 미안해 아무렇게나 던져도 눈치 없이 더 잘 나온다. 그러다 엎치락뒤치락 간신히 나를 이기면 양팔을 치켜세우며 좋아라고 펄펄 뛴다. 칠순이 아니라 어린애 같다. 남자들은 낮엔 이일 저일로 나돌아다닌다. 혼자 있을 때가 많은 아내에게 그거라도 있어 같이 해야 괜찮아 보여 거든다. 토닥토닥 윷 치는 모습은 정겹다. 또르르 구르다 잘 나오면 밉다. 그렇게 굴리면 모 윷이 십상이다. 아내처럼 정직하게 위로 던져 바닥에 내동댕이치면 도 개가 나온다. 모두 엎어지거나 하얗게 자빠질 땐
“모다.”
“윷이다.”
하며 소리친다. 어쩌다 나왔을 때이다. 코로나로 세상이 이리 어지러울 땐 안성맞춤이다. 요 앞엔 바둑을 뒀는데 열심이다. 오목으로 심취한 모습이 대단하다. 알을 요리조리 만지작거려 굴리며 어디 놓아야 이어지나 곰곰이 생각한다. 처음은 갓 배워서 질 때가 있었지만 점점 수가 늘어났다. 이젠 나를 이기려 바둥바둥 덤빈다. 입맛을 다시고 상대 포석을 눈치채며 놓길 잘한다. 결판이 안 나 전 판을 헤맬 때가 있다.
“휘파람 불지 마 얼굴에 바람 스쳐.”
보질 않고 툭 던지는 말이다. 조금 기울 땐 상대를 미안하게 한다. 살살 긁어야 마음이 편한가. 그 말이 맘에 걸려 그만 질 때도 있다. 자꾸 되뇌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기려는 방법이겠구나. 판을 헤집으며 눈치가 빼어나다. 마당발이다. 머그잔의 물로 마른 입안을 추겨가며 찬찬히 살필 땐 으슬으슬 서늘해진다. 가슴 속을 들여 보는 것 같다.
“빌빌 돌리지 마. 눈에 걸기적거려.”
말하려다가 참는다. 삼삼을 만들어 먼저 다섯 개 줄을 세운다. 이겨야 속이 시원한가 지고는 떠름해서 못 사는 것 같다.
“야바위 같아.”
“어찌 자꾸 이기는데.”
명절 때나 생일날에 아이들이 온다. 저녁에 딸과 외손자, 아내와 아들 모자끼리 편 윷을 한다. 시끌벅적하다. 뭐가 그리 우스운가 자지러진다. 난 내방에 늙은이 취급을 받아 들앉아 있어야 한다. 난리 통에 잠이 오나.
아랫집에서 올라오겠다. 어지간히 하고 자야지. 혼잣말하다가 그만 잠이 든다. 아스라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다음날 우우 가고 나면 좀 허전해서 위로 삼아 바둑을 둔다. 싱거운가 하다가 밀쳐놨다. 여러 날 아니 몇 달이나 오도카니 있더니 어느 날 사라졌다. 광에다 넣었다. 멀뚱멀뚱하다가 그만 어두운 곳에 갇혔다. 이겨야지 지면 묘한 기분인가.
서로 하자는 말이 없었다. 아내는 서쪽 방 거실을 차지하고 난 저 외진 끝 동쪽 방에 산다. 내방은 냉방기도 없다. 겨울엔 온풍기이고 여름은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 지낸다. 저쪽에서 이쪽까지 길다. 혹시 자다가 가위눌리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벽을 만져 알려야 한다. 두 개 버튼을 붙여놨다. 각자 누르면
“띵똥”
그러면 빨리 달려가 봐야 한다. 시험 삼아 누르고 장난삼아 몇 번 만졌더니 시끄럽다며 그만하란다. 정작 어려울 때 누르면 오기나 할까.
중간 방으로 가 바느질하다가 그대로 잔다. 계속 그래서
“어찌 그런가.”
“코 고는 게 싫애.”
가끔 피곤할 때 그런데 그런 걸 갖고 잘 자던 사람이 까탈스럽다. 어느 날 나보고 갓방으로 가란다. 무슨 사정이 있나 해서 글 쓰다가 그 자리에 누워 잤다. 하마는 오라 하려나 했는데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얘기가 없다. 주옥이가 바닥에 누워 자는 게 안됐던지 침대를 사줬다. 자다가 생각나면 일어나 쓰곤 한다. 잘 됐다. 방바닥은 일어나기 힘들고 눕기도 그렇다. 일일이 개어 올려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함께 잘 땐 늦게 들어와 자니 자다가 깬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가. 계속 꿈쩍인다. 돌아서면 때가 찾아와 밥 지어야 하고 반찬 준비며 설거지가 앞뒤로 밀렸다. 자질구레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쉴 틈이 없다. 그것뿐인가 드르륵 앉은뱅이 틀바느질에다 화초 손보는 일이 남았다. 한밤중에 빨래한다고 들랑날랑한다. 그러다 뚱땅거려 피아노를 친다. 윙 하고 청소기로 구석구석을 돈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물걸레로 곳곳을 닦아댄다. 먼지가 눈에 보인다나. 참 바지런하다. 그러니 잠자리가 늦을 수밖에.
“왜 이리 늦었어요.”
“반찬 몇 개 만들고···.”
이불도 댕겼다 밀치고 다리도 걸치고 서로 잠버릇이 있어 뒤척일 때 어렴풋이 깼다 잔다. 잠자는 데 얘길 걸어 곧잘 대답한단다. 난 기억이 없는데···. 새벽 기도 가며 일찍 일어나 교회로 간다. 시간 맞춰 울리게 해 놓아 이른 새벽에 휴대전화가 징징거린다. 초저녁 일찍 자고 깨선 두리번거린다. 같이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어긋나면 다툰다 이 새벽에.
“백일마을 이장을 만나 봐요.”
“시골 가자는 말 안 들려요.”
“외진 골짜기에 어찌 살려고.”
갓방으로 왔지만 혼자 있어 보니 만고에 편하다. 일어나라. 덮어라. 머리 감아라. 말이 없어 좋다. 그래도 섭섭하다. 쫓겨난 기분이다. 주위 사람들이 다 따로 잔단다.
“어디 그런 사람만 듣고 봤는가.”
“함께 자다가 심장이 멎은 사람 얘길 들었는데.”
“따로 자면 알 수 있나.”
모친이 아무렇게나 깎아 만들어 쓰던 윷이다. 짤막한 아카시아다. 보풀이 일어 뜨끔거린다. 그걸 갖고 놀다가 가끔 찔려 따끔할 땐 껌뻑 놀란다. 한참 치니 껍질도 설설 벗겨져 나갔다. 하나 만들자 맘먹고 유가면 장인 장모 산소에 간 김에 숲에서 몇 개 베어왔다. 밀쳐뒀다가 오랜만에 해야겠구나. 자리를 폈다. 반으로 갈라 여러 개를 만들었다. 아이들 주고 우리도 가졌다.
“골고루 나오는 걸 만들어야지.”
날렵하게 얇아야 좋다. 시중 것은 뭉툭해서 모 윷이 잘 안 나온다. 껍질을 벗겨 얼른 안팎 구분도 어렵다. 만든 건 짤그랑하는 게 쇳소리가 난다. 깎아서 가볍고 쥐면 손안에 들어와 안긴다. 던지면 굴러 모가 나오는 게 귀엽다. 어쩌다 윷도 되는데 이게 나를 즐겁게 해 준다. 상대를 쉬 쫓아갈 수 있고 붙잡거나 나는데 한몫한다.
만들고 보니 그게 무슨 나문지도 모른다. 처음은 검푸르렀는데 점점 손때 묻어선가 붉어진다. 밤나무나 싸리나무가 좋다는데. 매일 저녁 치면서 아아 잘 만들었구나 했다. 도 개 걸 윷 모가 골고루 나오니 근사하다. 거기다 붉은 색깔을 표시한 것이 하나 있다. 한발 뒤돌아 간다. 돼지와 개, 양, 소, 말을 이르며 기르는 가축들이다.
윷판을 그리면서 적을 때 놀란다. 한 바퀴 도는 게 짜임새가 있다. 자녀들도 자주 쳐서 윷말 쓰는 일이 제법이다. 눈높이로 던지는 것도 잘한다. 실 굴리면 엄마가 뭐라 한다. 더 높이 올리라고 한 말 던진다. 우리 집 군기반장이다. 주눅이 든다.
“더 올리세요. 신보씨.”
아이들 앞에 남편 이름을 들먹인다. 지니 별나게 군다. 어쩌다 잘 될 때가 있다. 아무렇게나 던져도 모와 윷이 나오고 지름길로 빠져들어 간다. 모와 걸로 바로 나기 좋게 샛길로 가거나 뒤돌다가도 뒤과에 멈춘다. 샘이 나 못 견뎠다.
“아빠 잡자.”
가 나온다. 일부러 풋 밭에 늘어놓아 따라와 잡고 거듭 쳐서 뒤따르게 했다. 앞에 가 기다리다가 넘어가면 붙드는 덫까지 놓는다.
상대를 잡고 치면 큰 사리가 잘 나온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붙잡는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칠 때도 있다. 내가 못 할 땐 좋아한다. 특히 백도를 쳐 뒤돌아가면 좋아라고 땅바닥을 친다.
“남 거꾸로 가는 게 저리 속 시원한가.”
모자가 한 편이 돼 날 잡으려 순사처럼 달려들고 눈을 부릅뜬다. 아내가 더 심하게 군다. 이 집에서 내몰리고 있다. 그러잖아도 갓방으로 갔는데. 이러니 이길 수 있나 지고 만다. 세 번 치니 빨리 끝나 몇 번 더 쳤으면 한다. 밤늦으면 주위에 미안하고 길게 하면 마음 상할 수 있어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그리 견제를 당해도 돈 통에는 내 것이 많다. 지고 잃는 것 같아도 돈이 그득한 걸 보니 잘 이기는가 보다. 그러니 삐딱해서 시샘을 내는 것인가. 어떨 땐 돈 통이 좀 빈 것 같다.
“가져다 썼소.”
“진성마트에 간다고---.”
내 돈은 벼락 맞은 쇠고기다.
탁구 칠 때 가슴팍으로 밀어 넣으니 받기가 궁색하다. 왼쪽으로 팍팍 질러주니 그 또한 힘겹다. 많이 깎인 공이 날아오면 받아치는데 그만 네트에 걸린다. 복식 때 이기려고 약은 수를 쓰면서 상대를 애먹인다. 그런 걸 잘 받아야 하지만 능숙하지 못해 자꾸 당하고 겨우 이기면 개선가가 나온다. 지고 나면 진땀을 흘렸다.
무얼 하든 이겨야지 지면 찌뿌듯해. 가벼운 마음이 아니다. 또박또박 맞춰서 점수를 올리니 헤아리기 힘들다. 안 맞을 것이 어쩌다 공교롭게 부딪치면 기분이 상한다. 미안하다고 고갤 숙이지만 속은 거북하다. 당구에 귀신이 있나 내 속을 썩인다. 안 갈 것 같이 비실비실 굴러 끝까지 닿아 맞히면 부글부글 끓는다. 빨리 서둘지 않는다. 보고 또 보며 초크를 칠한 데 덧칠하는 게 부화를 치밀게 한다.
상대가 잘하면 축하하면서도 속은 그렇잖다. 나는 왜 자꾸 지기만 할까. 탁구와 당구에 자신이 없듯이 내가 그 짝이다. 이미 삐뚜름해졌다. 날 지게 만들어 조금 화가 난다. 그래도 그득한 돈 통에 천원 지폐가 만원으로 보인다. 이 북새통에 먼저 넉동을 나게 했으니 장하다. 가끔 아내 좋아하는 사과도 사고 군밤도 한 봉지 갖고 와 까먹는다. 입이 시꺼멓다. 던질 때마다 도 개가 나오고 상대는 모 윷이 펼쳐지니 속 상하는가. 가시 돋친 말이 나왔다.
“더 높이 던지세요.”
불퉁한 말이다. 아들도 내 윷 던지는 걸 따라 한다. 아낸 폴짝 올려 떨어뜨리고 아들은 빙글 돌려 던진다. 도 개가 잘 나오고 큰 사리가 안 나오자 윷을 잡고 뒤로 빼 활모양으로 얼굴쯤 올려 던진다. 또르르 구르다 모나 윷이 나오는 걸 본다.
“와 모 윷이 잘 나오네.”
영업 비밀이 새어 나갔나.
저녁 먹고 모여앉아 치곤 가족 예배를 드린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이다. 그 시간이 우리에겐 소중하다. 모포를 겹쳐 펴고 구석에 셋이 앉는다. 한쪽은 윷판을 놓고 네 동씩 열두 동을 붉고 검게 칠해 표한 것을 세 곳으로 나눠 놓는다. 시작점을 출발해서 윷판에 올리면 가다가 잡힐 때 말을 제자리에 놓게 된다.
“풋 밭엔 놔봐야 잘 죽는다.”
붙들고 잡히고를 거듭하다가 겨우 윷 자리나 모도, 뒷모도로 가는데 그것도 앞에 징검다리를 놓아 멀리 못 간다. 그릇에 게를 담아놓으면 하나가 밖으로 나가려다 잡아당겨 들어가고 다른 놈이 빠져나가려면
“어디로 가 이리와.”
나갈 수 없다. 동 수가 많으니 잡히는 게 일이다. 명절과 생일날에 모여 분탕을 치다가 아내와 조용조용 쳤다. 바둑 두고 윷놀이도 했는데 윷이 더 재밌다. 몇 달째 석주가 내려와 같이 한다. 저녁마다 윷놀이가 일과이다. 코로나로 회사에 나가지 않으니 하릴없어 이 일이 즐거움이다. 바깥출입을 참아야 하고 나가려면 마스크 해야 한다. 가는 곳마다 통제해서 기록하고 손 소독하는 게 성가시다. 내뱉은 공길 마시니 머리가 띵하다. 숨 쉬는 게 쉽지 않다.
낮은 각방에서 책보며 지내다가 저녁이면 거실에서 만난다. 가다가 잡히면 억울하고 화나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웃음이다. 배를 잡고 꼬꾸라지거나 뒤로 벌렁 자빠진다. 그래 험난한 길을 가는데도 참을 지나 네 동을 나게 해 이긴다. 석주는 뭉쳐서 가길 좋아한다. 무거운가 조작조작 간다. 그러다 덜컥 잡히면 죽을 맛이다.
“아이고 나 죽었다.”
그게 뭐 무겁겠나. 도 개만 나오다 그만---. 뒤로 드러눕는다. 옆의 엄만 눈물이 날 정도로 웃다가 그만 오줌을 찔끔거린다. 모자간이나 모녀간은 허물이 없다. 어쨌든 이해하고 즐겁게 지나는데 나한테는 야박하게 군다. 내가 지면 괜찮으나 이기면 뿌루퉁하다. 잘하는 게 눈에 거슬린다. 짧은 순간에 지난날 미움이 살아나는가 보다. 무던히 애쓰고 아낼 위한다고 했지만 부족한가 던지는 말에 찬바람이 스친다.
“떠름한 속이 얼마나 답답했겠나.”
그런 눈치와 말투에 조금 서운하지만 참고 모른척한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방마다 다니며 움직인다. 닦고 쓸며 씻었다간 턴다. 어제 빨았는데 오늘 또 손빨래다. 아침마다 했는데 또 꿇어앉아 온 방과 집 안 구석구석을 훔친다. 밤늦게까지 딸그락거리며 쉬지 않고 건사하는데 놀란다. 타고난 부지런한 성품이 팔랑개비처럼 돌아갔다.
“아 맛나다.”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을 칭찬한다. 어깨가 으쓱하다. 기분 좋아한다. 지난날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맹꽁이다. 밥은 질고 국물은 밍밍하다. 부지런하기 이를 데 없는 아내의 밥상이 남다른 데가 있는가 했는데 도로 맛이 없다. 입맛에 안 맞아 왜 이럴까. 참다가
“밥은 질척하고 반찬이 맛없어.”
수저를 놓고 출근하면 종일 손이 떨려 일을 못 한단다. 무심코 한 말로 그 고생을 하며 만든 것들이 무슨 소용 있나. 잘한다고 애써도 맛없다니 힘 나겠나. 서로 어긋난 게 많고 맞는 게 적어 미움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 게 쌓여 참지 않고 툭툭 뱉는 말에 적잖이 상처를 입었는가 보다. 그리 상냥하던 아내가 참배 맛같이 달게 하던 사람이 조금씩 변해갔다.
“세월아 빨리 가거래이.”
혼잣말을 가끔 들었다. 점점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반대부터 한다. 아침에 무얼 부탁하면 저녁에 깜박 잊었단다. 실증이 생겨 말끝마다 다툼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이르면 필요 없다며 헛갈리게 한다. 아버지의 위치를 혼란스럽게 한다. 내 집의 일은 마음에 안 든다. 비뚜름하게 말하는 걸 듣는다. 친정 일에 소홀하다며 그만 네 집 내 집으로 갈라졌다. 사사건건 벌어져갔다.
갈 대로 가보자.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그 말을 두고두고 한다. 무슨 말끝에 들은 얘길 했더니 그만 책잡히는 말로 돌아온다. 쓸데없이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 어찌 기억을 다 한다. 언제 무슨 얘기도 말한다. 내가 그런 말을 했는가 허둥지둥한다. 여자들과 말 승강이를 하면 이길 수가 없다. 누에 실 나오듯 계속 이어져 나온다.
쌍심지가 생기고 어거지가 오가는 게 참기 어렵다. 내가 잘했다고 한마디 했다가 늘 패배의 길로 들어선다. 했던 말을 또 한다고 뭐라 한다. 그런가 해서 안 하면 몇 곱으로 더해 귀가 시끄럽다. 내 한마디면 꼬리를 달고 달아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다. 쌓이고 싸인 만년설이다. 켜켜이 서리고 서린 맺힌 말이다. 가족을 위해 새벽에 나가 일하고 밤중에 들어오는데--- 그런 건 아랑곳없다. 한번 비틀어지니 걷잡을 수 없다.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했다.
하나 막아놓으면 저쪽이 터진다. 생활하면서 의논해야 할 일은 모두 억지로 번져 빗나가고 걸핏하면 지난날 얘기가 날카롭게 나타난다. 처음 하고자 한 얘긴 간곳없고 엉뚱한 말로 뒤죽박죽이 되어 진흙탕으로 변한다. 편할 날이 없다. ʻ웬쑤ʼ가 되어 서로 똑바로 안 본다. 그러니 말이 곱게 나오겠나. 되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한다지만 첫말부터 역정으로 변했다. 서로 바른말도 굽게 들리고 비비 꼬였다.
내 말은 비웃음거리다. 말하면 듣는 것 같지 않다. 건성이다. 하나도 귀에 담아두지 않는 것 같다.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아이들 앞에 그건 소용없단다. 목소리까지 높이니 자꾸만 콩가루 집안으로 바뀌어 갔다.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니 속이 불편해 자주 체한다. 소화젤 사 먹고 지난 지가 오래다. 어떨 땐 위 경련이 일어나 급히 병원으로 가야 한다. 부부가 아니라 남들처럼 냉랭하고 무덤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비틀어지기만 해 그냥 머쓱하게 지난다.
“너는 그래라 난 내 멋대로 하련다.”
“아이들 대학 가는 걸 보고 난 훌쩍 떠나련다.”
그런 속 맘이 귀에 쟁쟁 울린다. 꽃 질 때와 해 넘어갈 무렵 석양이 아름답듯이 ʼ잘 있어ʼ하고 떠나는 임이 어여쁘다. ʻ훌쩍 떠나련다ʼ 말에 그만 커다란 절망감을 느꼈다. 슬픔이 생긴다. 막막한 사막에 혼자 남게 된 느낌이다. 어질어질 기암절벽 난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어둠이 내린 깊은 산골짝에 길 잃고 헤매는 신세다. 있을 때 몰랐던 것들이 그만 눈이 확 트였다.
그렇게 지나니 마음이 울적한가 우울증이 온 것 같다. 슬픔이 깃들어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세상 사람이 모두 내 뜻 같지 않아 싫어졌다. 빨리 천국으로 가고 싶단다. 거기다 몸도 나빠져 기침을 자주 한다. 어릴 때 홍역이 남아서란다. 어떨 땐 밤새껏 몰 기침을 해 잠을 못 잤다. 꼭 자정 넘어 한밤중에 그리 콜록콜록했다.
오십견이 와서 팔을 들 수 없다. 그러다 목디스크가 나타나 쓰리고 바늘로 찌르듯 아프다며 어떨 땐 저린 오른팔을 탁탁 두드리며 땅바닥에 누워 뚤뚤 구른다. 그렇게 아픈가. 또 있다. 얼굴에 희끄무레한 빛이 돌아 뭘까 하고 봤다. 햇볕에 그을려 벗어져 바래진 모양이다. 이게 뭘까 기민가 했더니 병원에서 백반증이란다. 깜짝 놀랐다. 그런 게 왜 생기나.
미움과 원망, 괘씸한 생각이 싹트니 못된 질병도 같이 고개를 드는가 보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아내다. 믿음이 좋아 찬양과 기도로 살면서 외도며 사악한 일은 보거나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다. 헌신과 봉사를 무작정 하려 애쓰는 가엾은 여인이다. 가족 사랑이 끝없는데 거기에 따르지 못하니 그만 울화가 나타났다. 알맞아야지 지극정성으로 달려오니. 아들딸도 손길을 뿌리치고 속을 썩일 때가 있다. 내 마음 같지 않으니 울적하다.
거기다가 목에 뭉클한 것이 만져졌다. 갑상선이 나빠 수술하란다. 암에 가깝다니 갑자기 온갖 병이 다 달라붙는다. 그게 모두 내 잘못이다. 손을 써야지 이냥 뒀다간 가출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곧 가게 생겼다. 일찍 간 사람을 보면 다 착해 보인다. 모진 사람 옆에 섰다가 벼락 맞는다고 하잖나. 어쩌면 좋아. 나이 들어 얻은 병은 질기게 같이 살다가 죽는다는데, 무슨 수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까.
가까운 진해 백일마을을 가보고 아내 고향 경주 쪽으로도 찾아봤다. 붙들자면 그리해야지 않겠나. 모두 비싸 아파트 팔아서는 어렵다. 부엌일과 청소, 빨래는 퉁퉁 부어 아무 짓도 할 줄 모른다. 어이 살겠나. 어디에 대고 얘기하며 윷과 바둑은 누구와 치고 두나. 나갔다가 들어오면 불 꺼진 빈방에 반기는 사람 없고 아침에 만졌던 것들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 얼마나 삭막하고 황량하며 숨 막힐까. 떨그럭거리는 그리운 소릴 들으며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하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높이 던져요.”
“밥 드세요란 말 목 아파요.”
짜증 섞이고 뼈있는 소리여도 좋다. 시골, 시골 해서 그 풍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 자락에 예쁘게 만들어 열무를 잔뜩 뽑아 해지도록 다듬었다. 둑에다 접시꽃과 봉숭아, 코스모스, 돌나물을 심어 꽃밭을 만들었다. 여러 개 바늘을 달아 숭어와 전어를 낚아채 끌어올리고, 돌 틈새 망둥이를 잡았다. 다시 승학산 기슭에 화전민처럼 밭을 만들어 가꿨다. 고라니와 꿩이 내려와 그물을 쳤다. 그 안에서 피리 불고 하모니카 들려주며 직박구리와 같이 노래했다.
어떨 땐 까치가 내 한 곡하면 저도 따라 한다.
“깍깍깍”
주위를 날아다니다 우리가 떠나면 숲으로 사라진다. 그렇게 산기슭에 살다 시원한 바닷가 새 아파트로 옮겼다. 드넓은 일렁이는 수평선 물결을 보고 자글자글 종일 햇볕 속에 사는 곳이다. 명지에선 학교 지을 빈터와 바닷가에 밭을 일궈 여러 채소를 심어 가꿨다. 옆 사람 사정이 생겨 함께 부치라 하자 밭이 배로 늘어났다. 산딸기나무를 키워 보름 넘게 따먹고 싸게 팔았다. 가는 곳마다 만들었다. 산골 흉내를 내며 비위를 맞춰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굽어진 맘은 수틀릴 때마다 여지없이 나타났다.
이태 살 거라 준비해서 낯선 몽골 땅을 밟았다. 믿음 좋은 아내가 선교 활동하기 좋은 곳이다. 예전엔 기독교가 들어와 믿었는데 그만 라마 불교 나라로 바뀌었다. 대놓고 선교 활동이 어려워 한국인이 세운 국제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시작해야 했다. 청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바쁘게 지났다. 낮은 영하 25도이고 밤은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진다. 응어리진 맘이 얼었다가 녹으면 봄날 새싹처럼 보드랍게 피어나겠지. 고려 때 쳐들어왔던 칭기즈칸 나라를 찾았다. 아시아와 유럽에도 들어가 세력을 넓힌 몽골 제국주의 나라를 밟았다. 그냥 며칠간 휘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살면서 차근차근 이국의 풍경을 더듬어보기 위함이다.
울란바토르 수도는 화산 분지여서 높다. 구름이 낮게 머리 위로 지나간다. 아파트에 상수도와 온수가 나와 난방도 된다. 중고차를 구해 이곳저곳 다니며 듣도 보도 못했던 낯선 곳을 구경시켰다. 신기한 곳이라며 좋아한다. 가난이 줄줄 흐른다. 우리 예전 모습이다. 거기다 추워서 얼씬거리기 힘들다.
눈이 오면 쌓이잖고 바람에 흩날리는데 아름다운 그림이다. 사르르 휘어져 굴러다닌다. 달밤에 보면 더욱 장관이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하도 깡깡 추우니 내린 눈이 쌓여 엉겨 붙지 않고 싸라기나 모래흙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그 부드러운 곡선이 비단결 같다. 떴다간 내려앉고 휩쓸려 굽이치는 게 살아서 움직인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창가에 붙어서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마냥 즐거워했다.
아직 곳곳에 그 옛날 모습인 겔 천막에서 불 지펴 산다. 광야 사막인데도 시내를 흐르는 톨강이 있다. 꽁꽁 얼어붙어 쳐들고 일어나는 얼음장 강이다. 밑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꼴꼴 꼬르륵”
개구리 우는 소리다. 유월이 왔는데도 앞산 복드산엔 눈이 쌓였다. 기슭엔 잔잔한 꽃들이 수없이 피어난다. 보니 민들레다. 노란 꽃이 흐드러졌다. 얼마나 많이 폈는지 노란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 같다. 추워선가 땅에 붙어서 핀다. 보랏빛 붓꽃과 하양, 파랑 등 자세히 보면 바닥에 아주 작은 꽃들이 수없이 보인다. 우리나라 민들레는 쓴데 여긴 나물로 데쳐 먹기 좋다. 들큼하고 미끈한 게 비벼 먹기 좋았다. 매일 강가와 산기슭으로 나물 캐러 다닌다. 노란 꽃을 피운 건 캐지 않고 덜 억센 보드라운 어린 것을 찾는다. 바닥에 붙어 피어났다. 쑥과 냉이, 달래가 있나 찾아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시골, 시골 했다가 실컷 맛봤다.
열 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죽음이라는 고비사막을 갔다. 들어가면 하도 깊고 넓어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이다. 나갈 수 없어 헤맨단다. 늑대와 호랑이가 떼거리로 다닌다니 무서워라. 황량한 드넓은 벌판을 끝없이 달려간다. 나무 전신주가 달랑 두 가닥 전선을 걸치고 함께 따라오고 있다. 동물 가죽이 펑퍼져 희끗희끗 보인다. 말과 소가 얼어 죽은 것이라 한다. 얼마나 춥길래 동사하나. 염소와 낙타는 속 털이 나와 추위를 견딘단다. 그 캐시미어와 카멜 털로 짠 것이 따습다.
모래만 있는가 했는데 드문드문 푸성귀가 보인다. 바다처럼 저 멀리 지평선 끝은 수평선처럼 하늘에 닿았다. 아득하고 막막하다. 좌우로 철조망을 쳐서 동물이 철로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듬성듬성 난 게 부추란다. 한참 신기한 밖을 보다가 그 사막이고 모래여서 그만 잠이 들었다. 고향 정구지인데 어이 이리 사막에 자랄까.
아직 언덕과 바위가 있는 것을 광야라 하고, 긴 세월 햇볕에 부서져 모래와 흙으로 바뀌어 지평선을 이루면 사막이라 한다. 맨발로 걸으니 감촉이 그저 그만이다. 긴 돌무더기가 있어 보니 나무 화석이다. 나이테와 껍질이 보여 돌로 변한 것이 틀림없다. 몇 아름 된다. 그 옛날 숲이 우거졌던 곳이다. 뜨덤뜨덤 소복소복 난 게 많이 보던 낯익은 풀이다. 겨울 그 무서운 한파에 살아나 하얀 꽃을 피운 부추를 한 줌 뜯어와 먹음직해서 삶아 먹으니 쓰다. 우리 것은 뜯으면 이내 올라와 너풀거린다. 무치고 전을 부치기도 했다. 풋풋하고 들큼해서 먹음직한데 여기 것은 그렇지 않다. 삶아 우려내도 쓴맛이 났다.
지난날 소련 군부대 전차병 막사에 교실을 만들어 청년들을 가르쳤다. 단어를 익히기 위해 그릇과 과일, 옷가지 등을 한 보따리 갖고 간다. 한글 가르치는 아내 열정이 대단하다. 가르치는 일에 정신없다. 일찍 길 나서서 수업시간에 닿으려 애쓴다. 마치고 나면 기쁨에 젖어 웃음 먹은 표정이 얼굴 가득하다. 몽골 청년들을 가르친다는 게 즐거움이다. 한 시간 열심히 하고 나면 뿌듯해하는 아내를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나란톨 시장에서 그릇을 살까 물어 짐 되니 사지 않는 게 좋겠다. 했다가 혼났다. 그만 화를 내고 내 맘대로 못하게 했다며 돌아가서 보잔다. 잘 나가다가도 벌떡벌떡 이런다. 나는 그때마다 어안이 벙벙하다. 어찌하면 좋을까. 기가 죽는다. 안간힘을 쓰고 도와주려 애써도 다 소용없다. 정말 ʼ웬쑤ʻ가 됐나.
“또 훌쩍 떠나겠단 말인가.”
잘하려 했다가 아직 남아있는 게 꿈틀거리는가 보다. 신기한 몽골에 이어 다음은 반대로 뜨거운 말레이 페낭을 갔다. 얼었다가 녹기도 하겠지만 내 맘에 서로 가라앉은 앙금을 이글거리는 더위에 녹여야 한다. 막 대했던 걸 뉘우쳐야 한다. 잘못한 사람은 뎅기열 모기에 물려 혼쭐나야 한다. 낮은 35도이고 밤에도 무덥다. 후텁지근해서 견딜 수 없다. 아파트 풀장에 들앉아 있어야 한다.
“이참에 개헤엄을 배워봐요.”
“요즘 누가 개헤엄을 하나요.”
내가 할 줄 아는 것이고 고개 들어 보면서 가는 게 좋아요. 따라 여러 날 하더니 50미터 종단은 어렵고 25미터 횡단을 했다. 매일 들어가 살았다. 다들 자유형과 평영, 접영, 배영을 하는데 개구리나 개처럼 하는 걸 어찌하는가 했다. 어릴 때 시냇물을 막은 봇물에 들어가 배운 게 가지다. 나는 그게 제일 좋은 수영법이라 믿고 풍덩거렸다. 경기 때 보니 얼굴을 물에 담그고서 저래 헤엄쳐 숨을 어찌 쉬나 여겼다.
먼 곳을 보기 위해 높은 산에도 올랐다. 머무는 곳 뒷산이다. 정상까지 오르막 철길이 놓였다. 차로 올랐는데 곳곳에 작은 원숭이들이 길가에 나앉았거나 돌아쳤다. 먹을 걸 던지니 냉큼냉큼 받아 챙긴다. 섬 전체가 다 아래로 보였다. 저 멀리 둘러싸인 바다로 이글이글 햇빛이 반사돼 눈부셨다. 한 바퀴 돌면서 바라보다가 육지로 이어진 긴 다리를 봤다. 한국 현대건설이 만든 페낭 대교가 길쭉하다. 자랑스러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몇 번 째라니 우리 토목기술이 대단하다. 숲엔 개울이 있을까 했는데 없다. 들어가기도 험하고 엉큼하다. 버려진 개들도 비리가 생긴 몸으로 나돌아다닌다. 배낭 진 할아버지 한 분이 소리 질러 불러모았다. 대여섯 마리가 금방 달려와서 주는 것을 받아먹는다.
불개미들이 이동하는데 줄줄이 가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거기도 경찰이나 헌병이 있는 듯 잘못하는 놈을 세워 야단치는 것 같다. 뱀과 모기가 있어 불편하다. 육지엔 호랑이, 코끼리 등 맹수들이 다녀 무서워 들어갈 수 없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빤한 등산로로 앞 사람 따라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아침 시장이 잠깐 열려 다녀오고 낮은 들앉아 있어야 한다. 매일 아침 찾아가는 즐거움이다. 자고 나면 가자고 서둔다. 작은 것도 저울에 올렸다가 내리며 얼마라 한다. 망고와 바나나, 파인애플도 달아 판다. 저울 눈이나 제대로 보는가. 장수가 밑지고 판다와 처녀 시집 안 간다, 늙은이 죽겠다는 게 거짓말이라 하잖는가. 사과와 귤이 있다. 단감도 보인다. 두리안은 수박만 한데 가시가 우둘투둘 났다. 비싸서 맛있는가 했는데 맛봤다가 혼났다.
“그 고약한 역겨움이 언성스럽다.”
“삭고 썩은 송장 냄새가 난다.”
박 목사는 맛있다고 수박처럼 훑어 먹다가 생각이 났는가 둥개둥개 딸 주려고 쌌다.
주일날 교회 나가 종일 예배드리고 함께 지난다. 석 달 지나면 이웃 나라로 갔다 와야지 비자가 연장된다. 북쪽 태국에 가고 오면서 보니 고무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소낙비가 갑자기 내리는 곳에서 오토바이 운전자가 급히 비옷으로 갈아입는다. 벼 논이 곳곳에 펼쳐졌다. 일 년에 세 번 농사를 지을 수 있단다. 쌀 풍년이다. 씨 뿌려 백일 지나면 거둘 수 있다.
갈아엎어 물 대고 뿌려 두면 자라 열매 맺는다. 누렇게 고개 숙인 나락이 가을 들판 같다. 머리만 잘라 추수하고 마르면 불 질러 태운다. 못자리나 기계 농사를 하는 건 안 보인다. 더운 지방이라 얼른 일하고 들어오는 것 같다. 종일 엎드려 일하는 우리네와는 다르다. 야자수처럼 생긴 팜나무가 많아 열매를 거둬 기름 짜서 여러 가지로 사용한단다. 비행기 연료로도 쓴단다.
시골 타령을 자주 해서 거기 뭣이 좋아 가려는가. 토를 달다가도 살던 곳이 그리운가 보다. 고향 건천에 들러 살던 옛집과 다니던 학교에 들어가 앉아 쉬었다. 주위에 살 만한 집이 있나 둘러봤다. 경주 포석정에도 살펴봤다. 사는 곳 가까운 불모산 아래 백일마을을 가보고 옆 골짝 대장 마을에도 두루 살폈다. 자주 갔지만 적당한 곳이 없다. 그러다가 절이 있어 맑은 물을 날랐다. 꽤 멀어 가고 오는 게 한 시간이다. 갈 땐 내가 운전하고 올 땐 아내가 몰았다.
도심에 살면서 계절이 가고 오는지 알 수 없는데 여긴 보인다. 모를 심어 물 댄 논이 찰랑찰랑하고 가을엔 익어가는 벼 논이 누런 연두색으로 온통 철갑을 했다. 나목이다가 이내 봄이 오면 산기슭에는 희고 붉은 온갖 꽃들로 치렁치렁하다. 보름에 한 번씩 간다. 서너 길 높은 비스듬한 도로 둑에 싸리나무가 있다. 한여름에 보랏빛 꽃을 피운다.
봄꽃이 거의 지고 없을 때 나타나 은은한 빛이 돋보인다. 지나면서 톱으로 몇 그루 바른 걸 베어야지 했다. 윷을 만들어야겠다 맘먹었다. 늘 잊다가 준비해 가 알맞은 것으로 잘랐다. 슬리퍼가 자꾸 벗겨져 기어오를 때마다 힘들었다.
“갈라진 저것도 베 줘요 이불 털 게.”
뒷받침 없는 신발로 다니기 거북하다. 모기는 언제 물었는지 목덜미와 팔이 얼얼하다. 집으로 가면서 온몸이 근질거려 자꾸 긁어댔다. 먹을 게 나타났다며 이때 아니면 못 먹는다고 마구 들쑤셔 파먹었는가 보다. 큰 통 두 개 페트병으로 열 개를 가져가면 두 주 정도는 부자다. 생수를 퍼 온 날은 푸근하다. 쓰레기장에 보면 생수 비닐통이 수두룩하다. 수돗물 대신 물은 사서 먹는가 보다. 산수를 나르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아니 없다면서 우리 부모 물 뜨는 게 보기 민망하단다. 아들이 걱정이다. 점점 잔소리로 변해간다. 빨리 정수기를 달아야겠다며 서둘러서 이것도 오래 못 갈성싶다. 요즘은 송정마을로 간다. 더 가까워졌다. 텃밭도 거기 있어서 오다가다 받는다. 즐거워서 하는 일인데 석주는 힘겨운 일로 보는 것 같다. 그리 찾던 고향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반가워하고 어디 이런 곳이 있나. 좋아하는 아내다. 원두막 정자도 있고 호수로 골짝 물을 받아내려 좋다. 취사도구며 잠자리도 준비해 뒀다.
“빨리 시골 갑시다.”
생떼를 썼는데 여기가 거기다.
밤중에 기침이 도지면 잠 못 자고 연속으로 해댄다. 호미를 들고 맥문동 뿌리혹을 캐러 들판으로 갔다. 번데기처럼 생긴 하얀 것을 먹이면 좀 숙지근해져 잠이 들었다. 부산의 천식 연구기관으로 지정된 대학병원 전공의를 만나 치료를 받았다. 서울 강남의 대학병원을 예약해 명의를 찾아가 목디스크와 갑상선 물혹도 치료했다. 늘 기도하고 정성스레 약을 먹어선가 더 재발하지 않고 고만고만하다. 쏟아져 나오는 몰 기침이 멎었다. 사흘이 멀다고 다니던 정형외과 견인도 이젠 그만뒀다. 씻은 듯 나았다. 진단받고 잠잠했다가 십 년 뒤에 나타난다는 백반증도 다시 어른거리지 않았다. 나한테만 좀 그렇지 자녀와 세상 사람들에게 지극히 선한 아내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좋은 건 남 주고 우린 맨날 허름한 걸 먹는다. 뭐 생기면 아들딸 챙겨 보낸다고 바쁘다. 난 항상 있는지 없는지 뒷전이다.
“허리 휘어지게 일해도 소용없다.”
“온 동네 다 퍼주는 영옥이다.”
땀에 젖어 후줄근하다. 밭일하는데 돌이 나오면 돌담을 잘 쌓는다. 마추픽추 담쌓는 석공이라 불렀다. 요리조리 맞추는 게 재밌단다. 낫으로 풀 베는 걸 곧잘 한다. 주저앉아 삭둑삭둑 소리를 내며 머리 깎듯이 잘랐다. 또 톱 들고 다니며 열매 따낸 딸기나무 베는 일도 거뜬히 해낸다. 성큼성큼 남자 하는 일을 쉽게 한다. 내 할 일을 가로챘다. 축 늘어져 길을 막는 아카시아를 마구 썰어버린다. 가시가 무섭지 않은가. 밭에 들앉아 뭘 할까 나갈 생각을 않는다.
“오훈 당구 모임에 나가야하는디.”
윷 칠 때 그 밝은 웃음이 하나도 걱정 없어 보인다. 시골 가잔 말도 쏙 들어갔다.
“모 나오라.”
하고 정말 나오면 그 환한 얼굴에 빛이 다 난다. 천연덕스레 너스레를 피울 때는 훌쩍 ʻ떠나겠다ʼ는 생각도 간 곳 없어 보인다.
참하고 어여뻐 보인다. 반짝이는 눈망울과 하얀 이, 붉은 볼이 모두 아름답다. 귀한 보석이다. 젊을 땐 멋도 모르고 허랑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정신이 든다. 하천에 수많은 조약돌을 줍는다. 녹옥과 백옥, 청옥, 홍옥 그중에
“영옥이 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