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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말을 배우던 과정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를 사용한다던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다음에 거친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여 아연실색하기도 했던 옛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지 않았던 단어라 여겼지만, 아이는 어디선가 들었던 표현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이었다. 어린이집처럼 공동생활을 하다모변, 다양한 언어 습관을 지닌 아이들 틈에서 자연스레 다른 아이들이 쓰는 표현들을 익힐 수 있기도 하다. 언어학자로서 저자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이 이처럼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에서 기반하고 있음을 논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말을 따라하면서 그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지만, 정작 그 말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책은 그러한 표현들이 지닌 문제점을 과거와 현재, 혹은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언어 사용자들 사이의 줄다리기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때로는 대다수 사람들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에 몰두하는 소식을 보도하는 TV 뉴스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거나 거친 표현을 하면서 스스로 흠칫 놀라기도 했던 경험도 있다. 이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굳어진 표현들이 지닌 문제점들을 적시하고,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충돌하는 순간’ 언어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저자의 관점은 ‘기존의 언어 공동체가 가르쳐준 대로 무조건 따라했던 표현들이 더 이상 내가 믿고 추구하는 생각을 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언어 표현이 숨기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은연중에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하기 때문에, ‘어제까지의 생각에 더 이상 동의하지 못할 때 우리는 기존의 표현을 상대로 줄다리기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두 10개의 경기장을 마련하고, 각각의 표현들이 지닌 문제점을 크게 5가지의 관점으로 분류하여 서술하고 있다. ‘비민주적 경기장’이라는 분류를 통해, 모두 2개의 경기장을 마련하여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관점 경기장’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의미와 사용 환경이 어긋나는 언어 실태의 문제점을 하나의 경기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결혼 관련 표현 경기장’에서도 역시 1개의 경기장을 펼쳐놓고 저자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아마도 저자의 문제의식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이라 할 수 있다. 모두 3개의 경기장을 마련하여, 특히 우리 연어에서 성차별적인 표현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도권 경기장’에서는 3개의 경기장에서, 언어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과 표준어의 문제 그리고 남북 간의 이질적인 언어 사용 실태에 대한 문제점을 정리하고 있다.
먼저 ‘비민주적 경기장’에서는 대통령이라는 호칭과 그 의미에 대해서, 저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각하(閣下)’라는 표현이 전근대적인 신분제 하의 관습에서 나온 용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것을 상대에 대한 경칭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이 호칭을 쓰는 것은 민주공화국을 청산하고 신분제에 기반한 군주제로 돌아가자는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다소 과격한(?) 주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접하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시가’과 ‘처가’ 형제들의 호칭이 남성중심적인 사고를 담고 있기에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 역시 언어 표현이 지닌 문제점을 자각하면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찾아나가기 위한 과정으로 크게 장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동의하기 힘든 문제는 바로 ‘대통령’이라는 호칭의 문제였다. 분명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대통령(大統領)’이라는 표현은 한자의 의미에서 ‘봉건군주제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통령을 한자의 뜻을 통해서 봉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이미 민주화된 사회에서 선거를 통하여 바꿀 수 있는 직책 가운데 하나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언어가 지닌 원래의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사용되는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할 때, 과연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다른 것으로 바꾸자는 것에 동의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연히 마주친 재건축 아파트의 현수막 문구의 정확한 의미와 그것이 사람들에게 환시하는 환경의 문제를 지적한 ‘관점 경기장’의 내용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나아가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적시하고, 글을 쓸 때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생각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또한 서류에 선택지가 ‘미혼’과 ‘기혼’만이 제시되어 있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저자의 인식에도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잇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들은 그동안 변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언어와 표현들을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차별과 불평등 표현 경기장’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성차별적인 문제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의 ‘미망인(未亡人)’이라는 표현이 지닌 문제점과 ‘여교사’ 등의 표현에서 유독 여성의 성별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남용되는 현실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청년’이란 표현도 결국 남성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동안 남성중심적인 이념이 지배적이었던 한국 사회의 인식들이 그대로 언어에 배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이라는 주제를 접하면서, 나는 일부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농촌에서 청년회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이 만65세까지라고 한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청년은 20~30대의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농촌에서는 청년이라는 용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 웃지 못 할 현실이기도 하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주도권 경기장’으로서, 언어 사용에 대한 세대간의 갈등과 ‘짜장면’으로 대표되는 관 주도의 표준어 제정의 문제 그리고 북한 지역의 지명 표기로 촉발된 남북한 간의 언어 규범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제시한 예문들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지만, 그 시차가 40년 혹은 60년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우리말에 특화된 존댓말에 얽힌 세대 간의 갈등은 아마도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일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 사이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한동안 지체되었던 사전 편찬 작업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저자가 지적한 문제들에 대해서 만북한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항목을 중심으로 우리의 언어 사용 실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그러한 현상의 분석을 토대로 심도 있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던 표현들이 특정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각각의 문제점들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제목의 ‘줄다리기’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지금도 그러한 표현들이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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