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열쇠고리에는 세 개의 열쇠가 달려 있습니다.
그 중 한 개는 차 열쇠인데, 이건 육안으로도 다른 두 개와 확실히 구별되니 별반 문제가 될 일이 없는데요.
다른 두 개의 열쇠는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중 하나는 대문 열쇠고, 나머지 하나는 어디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견출지를 붙이거나 무엇으로든 표시를 해 두면 간단한데 워낙 게을러서 귀찮기도 하고
재미삼아 그때마다 저의 운을 테스트도 해볼 겸 해서, 아직도 꿋꿋하게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 대문을 열 때 하나를 찍어서 시도하면 이론상으론 1/2의 확률로 맞아야 되는데
실제로는 신기할이만치 안 맞습니다. 마치 누구 약올리듯 거의 열에 아홉 번은 틀립니다.
원래 아주 오래 전부터 저는 50%에 굉장히 약한 놈이었습니다.
어릴 때 동전 개수 홀수 짝수 맞히기(일명 짤짤이)를 해도 저는 찍는 족족 틀렸고
오락실 오십원짜리 오락 한판 더하고 싶어서 뛰어든 짤짤이는 오락은 커녕 버스비까지 왕창 털리고 집에 허이허이 걸어오기 일쑤였죠.
학교 다닐 때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풀 때도 두 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하나를 찍으면
분명히 이론상 확률은 50%인데, 제 경우는 답이 맞을 가능성은 경험상 50%는 커녕 5%도 채 안되는 거 같더군요.
50%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단 20%만 되었어도 어쩌면 제 운명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찍기같은 그런 건 뭐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때려죽인대도 안되는거 어쩌란 말이냐 그냥 운명이지 하고 체념해 버렸죠.
전 살면서 가장 많이 써 온 말이 '하필이면', 그 다음으로 '죽겠다(=굉장히 힘들다)'입니다.
그 낮은 확률이 '하필이면' 내게 떨어질까, 아니면 남들은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좋은 확률을 적중시키며 사는데
그 좋은 확률은 '하필이면' 나만 늘 골라서 외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참 많이도 들었죠.
지하철을 타면 한국에서 필리핀에서든 플랫폼에 들어오는 하필이면 그 순간 열차는 어김없이 메롱 하고 가버립니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순간 열차가 때맞춰 도착해 있거나 막 도착하는 경우는 제 기억에 손가락 꼽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왜 차만 닦으면 그날 저녁에 어김없이 예정에도 없던 비가 와서 차는 똥차가 되고
왜 표를 살 때는 줄을 서서 몇 시간 기다리다가 늘 하필이면 제 앞에서 매진이 되기 일쑤이며
어디 가서 뭘 사면 불량률은 대체로 1%도 채 되지 않는데, 어째서 하필이면 제가 집는 건 늘 사는 족족 불량품일까요?
대학 때는 소개팅해서 누구랑 같이 다니는 듯 하다가도
동문회 같은 데에 쌍쌍파티를 하게 되거나 학교에 축제가 있거나 하는 시즌이 다가오면 왜 하필이면 그 때 때맞춰 깨져가지곤
그런 데는 늘 홀몸으로 가서 외롭게 잔심부름이나 해야 했던 건 왜 하필이면 언제나 저였을까요?
그런가하면 5학년때까지도 구구단을 못 암기했던 단 한명의 놈도 하필이면 저였고
94*37을 반에서 유일하게 혼자 계산을 못해서 막 맞고는 수치심에 펑펑 울며 집에 온 놈도 하필이면 저였고
하다못해 카페에 글줄 갈기는 것만 해도, 마누라만 해도 펜만 잡았다 하면 글도 술술 잘도 쓰던데
하필이면 왜 저는 이 조악한 글 하나를 쓰면서도 안 돌아가는 티미한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걸까요?
고등학교 졸업 내신등급은 하필이면 바로 저 앞에서 잘렸습니다.
그러니까 제 바로 앞에 놈까지 ○등급, 저부터 ○+1등급이었던 거죠.
학력고사 기본점수 2점을 잃고 이것 때문에 지원학교도 달라졌습니다.
이쯤되면 참으로 천하 만사에 재수 옴붙은 놈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도 합니다.
신께서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하나씩의 남다른 재주를 공평하게 하나씩 나누어 주던 것 같던데,
어째서 하필이면 저 하나만 깜박하셨던 걸까요?
어떤 연예인은 무슨 광고계약 하고 10억인가를 벌었다는군요.
제가 무슨 주식투자, 또는 투기, 아니면 아예 카지노를 해서 벼락을 맞지 않는 한 평생 일해도 못 벌 돈이고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은 그럴텐데, 그 연예인은 그걸 불과 하루 밤 사이에 저렇게 땡강 벌어버립니다.
무슨 각고의 노력하고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오로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외모, 즉 생김새 때문일 뿐인데도요.
근데 마누라 왈, 제가 그런 연예인같은 외모를 가지지 못했어도 자기에겐 그런 거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저 당신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영혼 하나만으로 족하다고 말하긴 하는데,
뭐 사실 전 그 말에 별로 동의하는 편도 못 됩니다.
아름다운 영혼은 문디, 알고보면 까탈스럽고 성질머리 더러운데다 머리는 든 거라곤 없이 텅텅 비어 맹하기만 한데 말이죠.
(도대체 저 여편네의 콩깎지는 언제까지 갈지요.)
그런데 설령 백 번을 양보해서 억지로 아내의 말이 사실이라 쳐도,
저의 아름다운 영혼이라면(여기 이 말은 아내 말이 맞다고 억지로 가정했다는 뜻이지 제가 실제로 그걸 가졌단 뜻은 전혀 아닙니다)
아마 그건 10억원은 커녕 단돈 10원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하나만을 가질 수 있다면 차라리 빼어난 외모를 갖고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아,
왜 하필이면 이 몸이 가진 건 십원만큼의 돈조차 되지 않는 그거냐 이 말입니다.
어릴 때 자라면서도 제가 가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 중 하나가,
어느 집 누구는 무엇도 잘하고, 무엇도 잘하던데, 또는 뭐 뒷집 누구는 어디 대회 나가서 무슨 상도 받아 왔던데
하필이면 너는 도대체 왜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하게 잘 하는 것도 그렇게도 하나도 없냐.. 뭐 이런 말이었지요.
없는 것만 해도 억울해 죽겠는데 그렇게 타박까지 하다니, 그게 어디 제 잘못인가요, 흥.
그렇지만 좀 다르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혼자가 아니다보니 전과는 달리 마음에 여유가 좀 생겨서 그런지,
예전에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도 다른 시각에서도 가끔 해보고.. 하게끔 됩니다.
같이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그런 걸 원하기도 하고요.
옛날에 어느 책에선가 봤는데 세상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 사람 / 그리고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사람.
부끄럽게도 저는 늘 대부분 두 번째 스타일에 가장 가까웠지 첫 번째 타입이었던 적은 엄격히 말해서 한 순간도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사실 이렇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 본 적이 딱히 없으니까요.
전 그저 줄곧 저만을 위해서 살아오고, 하는 일체의 행동들이 모두 '이 세상에서 제가 잘 살기 위한' 거였으니까요.
공부를 포함해서, 회사에서 일한 것도 그렇고, 심지어는 밥숟가락을 드는 행동부터 잠자기 전에 목욕을 하는 것까지
일상의 작은 습관적 행동 하나하나조차도 모두 나만을 위해 하는 행동이었지 남들에게 도움되는 무엇과는 하나같이 거리가 멀었죠.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일 한 번을 한 적 없는 제가, 당최 무슨 자격으로 먹고살기 걱정 안하면서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며
이곳의 이웃들은 왜 저를 그리도 황송할 정도로 예쁘게 봐줄까요.
머리나쁘고 센스없거나 실수투성이인 모습을 하필이면 순수한 걸로 봐주고
말을 잘 못해서 말을 안하고 있으면 그걸 하필이면 과묵한 걸로 봐주고
어쩌다 삘받아서 경망스럽게 촐싹대면 그걸 하필이면 감정풍부한 걸로 봐주고
표정없이 뚱한 걸 하필이면 생각 깊은 걸로 봐주고
깊이 모르는 걸 갖고 어쩌다 조금 아는 척을 하면 하필이면 그걸 진짜로 똑똑한 걸로 봐주고
게다가, 남들은 살면서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오지 않아서 못 하는 사람도 많은데
어째서 '하필이면' 저한테는 남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그 기회가 끊임없이 찾아오고 찾아오고 또 찾아올까요.
(그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게 항상 문제긴 하지만요)
말고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간과해왔던 좋은 의미의 하필이면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지금은 카페질을 거의 안 해서 좀 덜하지만, 지금의 아내는 예전에 한창 카페질 왕성하게 할 때는
얼굴은 커녕 심지어 어디사는 몇 살의 무엇을 하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만나고 싶다, 사귀고 싶다는 열렬한 구애쪽지
하루에만도 대여섯 통은 받아서 아예 메모함이 터져나갈 정도였던 잉간인데
아내가 선택한 사람이 어쩌다 '하필이면' 그 흔한 구애쪽지, 아니면 최소한 내가 이런 놈이라는 자기 PR조차 단 한 번을 보내본
일이라곤 전무하던(....아니 정확히는 내가 이런 놈이요 하고 딱히 자랑할 게 없어서 하려해도 못했던) 저였을까 하는 것도...
필리핀에서 한국사람들은 갖은 암투와 알력과 미움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심한 경우는 사람 잘못 만나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잃어버리도 하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숨어 지내기도 하는데
왜 '하필이면' 나는 그런 것은 커녕, 변변한 사기 한 번 당하지 않고 사기라곤 기껏해야 4년 전 처음 왔을 때 인트라무루스에서
망아지가 끌고다니는 허접한 수레 한 번 잘못 탔다가 고작 3천페소 털린 것 밖에는 없었던가 하는 것도..
제 삶에 '행복한 하필이면'도 제가 모르는 중에 얼마나 많았을까요.
원래는 없던 게 갑자기 다 생긴건 아닐겁니다. 단지 제가 일상의 것들을 지각하는 태도가 좀 바뀌었다 그뿐이겠죠.
사실 살면서 '내가 기쁜 이유'보다는 '내가 슬픈 이유'를 먼저 찾고,
'내가 행복하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보다는 '내가 불행한 놈에 속하는 이유'를 먼저 찾고,
누군가를 좋아할 이유보다는 좋아하지 못할 이유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고,
지금 기쁠 이유보다는 우울해야 할 이유를 먼저 찾고.
한번 우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어째서 우울한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순전히 우울하기로 한 나의 결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일부러 삶의 오래된 슬픈 기억까지 떠올리고
스스로의 그런 생각속에 침잠하고, 그러면서 더욱 더 많이 아픈 기억들만 골라 재생하고
그렇게... 진짜로 '나쁜 하필이면' 만을 기억 속에 남기게 되니, 딱 그만큼의 운(luck)으로만 살아왔나봅니다.
실상 얼마나 제가 여러가지로 운좋은 놈인지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저 나쁜 쪽의 '하필이면'만 선택적으로 지각하고 선택적으로 기억에 남기면서, 딱 그만큼 살고.
좋은 하필이면은 죄다 잊어넘기거나 아예 지각도 못 하고, 나쁜 하필이면은 '거봐 난 역시 이럴 수 밖에 없는 놈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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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밀린설겆이라도 하려고 보니 설겆이 할 게 하나도 없네요.
오늘밤은 간만에 요리레서피라도 좀 찾아봐야죠.
그리고 제가 지금 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할 다른 일은 없는지도 좀 살펴보고요.
한자갖고 고민도 해 보고요.
요즘 이름 지으려고 한자옥편에 폭 묻혀서 살다보니 제대로 읽어보려고 사 놓은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는 아직 채 첫 장도 못 읽고
엉뚱하게 한자도사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이것 역시 나만을 위한 그런 일은 아니니 힘들어도 할만한 일이죠.
:)
땡숙이 2011-03-27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