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왔던가. 어제일도 흐릿하다. 아무 기억이 없다. 이정도면 중증아닌지 의심스럽다. 왜, 지나간 안좋은 기억들은 잊혀지지 않는데, 정작 어제일도, 아니, 방금전에 있었던, 혹은 들었던 것들은 기억속에 저장이 안되는 것일까. 메모리가 꽉차선가. 스마트폰에서도 저장 공간이 없다는 문장이 뜨곤 하는데, 내가 할줄아는 방법이 별로 없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어느 순간 카맣게 변하게 되면 그때서야 화들짝 반응을 하게 될까. 비가 오고 있는데도 빨래중이다. 얇은 이불로 교체를 하려고 했는데, 장롱속에서 일년을 묵혔으니 냄새가 나는것도 당연하다. 뭐 비가 안오는 틈틈히 밖에다가 널더거나 주차장 한쪽에 널까 싶어서 그냥 빨래를 하고있다. 갯수로 따지면 3개씩이나 되니까 그리 쉬운 상태는 아님에도, 이런때는 참 무모하달수밖에 없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가. 맞다. 실은 진중한 사람은 못된다. 계획성도 없다. 내끼는대로 나 잘났다고 살아온 것일수도 있다. 그래, 어느 한 부분에서는 냉소적인 면도 있는것 같다. 절대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닌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날 참아주고 계신단다. 와! 이런일이!
덕정리 친구가 방학중에 방문을 하겠단다. 날 찾아와 주겠다는 사람, 사실은 아무도 없다. 반갑고 고마운 일인것은 틀림이 없지만,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것인지. 내가, 누가 찾아온다고 한들 반갑기만 할까? 내 민낫을 보이고 싶어할까? 코로나 이후로는 그나마 있던 셀모임까지도 집에서 하지않게 되었다. 며늘은 일년에 2번정도, 아들은 그보다는 좀 많이오고, 딸은 한달에 1-2번 정도. 이게 우리집 방문객 수다. 사람사는 집임에도 그렇다. 누구도 오지않는 적적함이 쓸쓸함일수는 있지만 나는 이게 오히려 좋다. 번거롭지 않아서 좋고, 허둥대거나 위선떨지 않아서 좋다. 뭔가 대접해야한다는 스트레스도 없지않는가. 찬물 한컵. 말이 그렇지 이게 어디 쉬운가. 내가 방문을 하지않는것도 빈손이 부끄럽고 싫어서다. 모처럼 가는데, 빈손으로 갈수는 없다. 봉투하나 준비하는데도 내게는 부담이다. 마치 과부의 두렙돈 처럼. 아니, 그정도는 아니지만 내 생계비를 덜어내야 하는것은 맞다. 나는 그런 손실이 싫은것이다. 그걸 감수할만끔 사랑하지 않아서 일게다. 그러니 이렇게 살수밖에. 나는 지금 어둡고 깊은 동굴안에서 작은 스텐드 하나를 밝혀놓고 살고있다. 나는 충분하다고 되뇌이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고립이고 분리다. 사회로부터 고립이고, 인간으로서의 분리다. 고려장에 처해진 사람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내일이라는 오늘을 살면서 아무 할일이 없이 그냥 기다리고 있는게 과연 충분한 것인가. 뭣이 충분하다는 것이지? 먹고 입고 숨을 쉬는게? 잠들지 못해서 뒤척이고 뒤척이다가 안방과 건너방을 오갔다. 전기 안마기에 눠서 잠을 유인해 본다. 엄청 시끄러운 소리에도 까무록 잠이 들기도 하니까. 어쩌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을 방해해선지 모르겠다. 불면증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힘없는 노인들은 더 그럴게다. 나는 다행히 잠을 많이 잔다. 뒤척이고 뒤척이다가도 어느새 잠이 들곤했다. 잠을 많이 자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말을 들은듯도 싶은데,,,. 아이들은 전화도 없다. 할미 생각은 전혀 없을까. 단조로운 나는 늘 지들 생각을 하는데,,, 섭섭해도 할수없다. 지들은 앞으로 나가고 있고, 나는 뒤로 후퇴하고 있으니까 간격은 더 멀어지겠거니 해야지. 열대야, 찜통, 열사병까지. 총동원이다. 그럼에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다행인가 감사인가. 둘다 아닌가 싶다. 이것저것 살게있어서, 어제 오는길에 찾아 갔더니 문을 닫았다. 내 기억엔 10년도 더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문을 닫았으니 이젠 뭘하고 살아야 할까. 어렵다 어렵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이것도 남 걱정할일이 아닌것인가. 여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배려할수 있었으면 좋겠다. 협력할수 있으면 더 좋겠다. 인생은 항상 헝크러진 실 꾸러미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