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말을 자주 듣게되었다. 맞는 말이다. 아는게 없으니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게 당연하다. 어쩌면 내가 곡해하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는데, 눈앞에 두고서도 못보는일이 거듭될수록 공감을 하고있는 중이다. 사람이, 가령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아는게 많을까. 모든것을, 혹은 전부를 아는 사람도 있을까. 때론 똑똑해 보이거나 아는게 많아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답답할때는 없던가. 사람이 다 알수는 없을게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어떻게 비교할수 있겠는가. 시험을 보거나 무개를 달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학교공부 머리가 있고, 일머리가 따로 있다는 말도 있다. 사람은 온갖머리, 서로다른 앞섬과 뒷섬이 공존하고 있는것도 다 쓰임이 달라서겠지. 왜 이런얘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내 무지가 불편하고 한탄스럽기까지 해서다. 누군 90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데, 내 발목을 잡고있는 것은 뭘까. 돈일까, 시간일까. 열정일까, 노력해 보려는 성의는? 개천에 용을 선망했고 흠모했지만 그들의 분투에는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 나다. 정말 공부를 갈망해본적은 없다. 성공이 가저다주는 결과에만 군침을 흘렸을뿐이다. 오늘 아침에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인을 tv에서 보았다. 원하는 삶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일단은 움켜쥐고 있는 헛된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시작할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아니, 나는 과연 원하는 삶이 있기나 한것일까. 현제는 어떤가. 어쩌면 지금 현제의 무탈한 일상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삶은 아닐까. 빈둥대고 또 빈둥대는 일상, 돈걱정 안하고 덜쓰는 것으로 만족하는 하루하루, 책을 읽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누구에게도 영향력을 끼치지 않으면서 간섭도 안받는 삶이 최상의, 누구나 부려워하는 삶을 지금 내가 살고있는 것이 아닌가. 화려하기는 커녕 남루하고 하찮기만 해도 충분히 유유자작하고 있으니 된것 아닌가 싶다. 이거나마 내가 이루어낸게 아니라는게 문제다. 은혜라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것도 불편하다. 아들 딸의 후원이 영 불편하기 때문이다. 부담이 되고 있는것은 사실이니까. 주님께서 갚아주시면 좋겠다. 주님은 내 아버지이시기도 하지만 그들의 아버지 이시기도 하니까. 우리 아들딸은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의 존재감 없이 자랐다. 아니, 하긴 누군 안그랬나. 고아도 무수히 많은 이땅인데, 아버지다운 아버지가 과연 얼마나 되겠나. 무늬만으로도 구색을 맞춘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상황이 어디 우리 아이들 뿐이겠는가. 더구나 지나간일에 그만 집착해야 한다면서도 정작 내 자신이 한발짝도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눈을 크게뜨고 정신차려서 마즈막까지 잘 살아보자! 오늘도 실내온도 30도다. 비는 안내릴것 같은데 모르지. 아이들은 잘 왔겠지? 할머니를 잊었는지 전화하나 없다. 애들이 할머니를 꼭 기억해야할까? 만나면 얼싸안는것으로는 부족한가. 아이들로인해 내가 기쁘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충분한게 아니었어? 한가한 내가 분주한 그들을 관대하게 여기지 않으면 더 힘들어질게다. 오늘은 내 시간을 채우기위해 도봉문화원을 찾아가 봐야겠다. 거긴 책이 많으니까 소일할수있는 재미있는 책이 있지않을까. 판타지나 하다못해 위경이라도. 찾아가보자. 설마 여기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