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5년차
단감나무 삭정이 부러지는 찰나, 어머니는
곁가지 당겨 눈꽃처럼 사뿐사뿐 내리셨지요 꺾인 발등 타박상은 우물물로 슬겅슬겅 닦아 해결하던 청청한 그 육신도 지척입니다 젖은 양말이나 찢어진 고무신, 온갖 잡동사니 잡히자마자 반짝반짝 빛이 나던 매직의 손가락, 그때는 몰랐습니다 ‘울 수 있는 공간’으로 영원히 곁에 남을 줄 알았는데
‘호미로 막을 기회 놓치면 무너진 서까래로 삼대 거미줄 친다’그렇게 매달아준 벙어리장갑 되새길 때마다 모가지 댕그랑댕그랑 훗훗했답니다 언제부터였나, 엄마의 겨드랑이로 쏟아지던 ‘참아야 한다’ 그 자작나무 당부에 젖을 뻔했어요 그런데 어머니, 벼랑 끝 바람 받으며 장갑 끈 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눈 쌓인 등성이와 으르렁거리는 골짜기 지나게 된 건 시국의 회오리 탓입니다. 그래요 저 아득한 평원 가로지르는 소용돌이 물길 어디쯤까지 당신의 품에 보태다가 문득 어둠의 장벽에 막히는 찰나 가슴에 유서 품은 채 두 주먹 불끈 쥐기도 하다가, 어느새 저도 지하철 무임승차권으로 경로석에 앉는 중이랍니다 돌이켜 보니
‘이 후보 꼭 찍어야 해요’
선거 때마다 소매 당기던 버릇 이제야 회수합니다 ‘내 마음에 둔 사람 있어’단호한 말씀에 다투지 않는 게 맞습니다 투표장 찾아 신새벽 헤쳐가던 모친의 발걸음 절대로 느리지 않았음도 고백합니다 아들 혼자 저만치 앞서다가 안개 나라 헤치듯 총총 기다리던 시늉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6학년 9반 늙은 아들 눈앞으로도 풀벌레 윙윙거리네요 등허리 굽고 잇몸 흔들리는 세월 받아들이며 기꺼이 하루 보냅니다 그런데 어머니 이제 집에 가도 되나요 날마다 마지막 날짜로 삼았던 요양병원 또 하루 보내며 하느님께 복수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