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와서 지열이 식었을탠데도 여전히 실내온도는 31도를 기록하고 있다. 어디선가는어제 40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재앙인가는 몰라도 너무 더워서 힘들다. 가만히 있으면 그래도 좀 나은데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한다. 예배당 안이 늘 춥다고 생각했는데, 한참동안이나 땀을 닦아냈고, 춥다는 생각은 더이상 하지않았다. 집안에서도 거이 선풍기가 멈추지 않고있다. 간밤엔 얼음팩을 2개나 사용했으니 덥긴 더운가 보다. 온열환자가 늘고, 밭에 나가 일하던 80대 노인이 목슴을 잃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더위 자체도 문제지만 모든것은 상대적인 것 같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약하다. 면역역도 떨어진다. 그걸 확실히 느끼는 때가, 병투껑을 열때 그렇다. 안열린다. 왜 이렇게 꽉 잠갔을까 하고 짜증이 나곤하는데, 사실은 손에 힘이 없어서 그런것이다. 엇그젠가. 달걀 한판을 사고 사이다를 500원에 판다기에 한병을 샀다. 양손에 나누어서 들었는데도 무거워서 힘들었다. 그랬다. 예전에는 무겁다는 생각 안했다. 돈이 없어서 못사는게 더 아쉬웠다. 지금엔 무겁다는 생각을 먼저하게 된다. 살게 많으면 손수레를 가지고 가지만, 오가는 길에 가볍게 들리게 되는때가 많다. 그런때는 무거워서 쩔쩔 매곤 하는데, 노쇠하다는게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내가 기억하기론 친할머니께서는 강건하셨다. 집안의 모든일을 주관하고 계시기도 했고. 말하자면, 할아버지께서는 밖앗출입이 많으셨고 ( 어쩌면 현실적인 분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양할머니는 안방마님이셨으니, 자연 가정의 모든 대소사가 친할머니 몫일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할머니는 몸집도 당시 분들에 비하면 우람한 편이셨다. 그분이 기력이 다하고 허리가 꼬부라지셨을때, 나는 가슴이 뭉클했고, 마치 못볼것을 본듯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것이다. 세분여인중에, ( 그러니까 백가마를 타고 시집오셨던 양할머니와, 딸하나만 남긴체 스물셋 나이에 홀로된 내 어머니중에) 그래도 가장 나은게 친할머니란 생각을 해왔는데, 친할머니의 삶 또한 결코 녹녹한게 아니었을거라는 생각을 그때서야 하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 눈엔 친할머니는 늘 강하셨다. 그래보였다. 철없는 내가 뭘 알았겠는가. 어쩌면 현실의 모진 풍파는 그분께서 다 격어내셨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금에 와서야 들곤한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우리 모녀를 거두어주시고 보살펴 주신것은 실제로 할머니셨음도 이제는 압니다. 고맙습니다. 다소 불손 했던것 이제나마 용서를 빕니다. 할머니 용서해주십시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곧 뵙게 될탠데, 또 많이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용서하세요. 다들 불쌍한 분들이다. 불행한 분들이다. 시대의 불운을 왜 그분들이 감당하셨는지 모를일이다. 지금이라면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들이 왜 그때는 당연한 일이었을까. 지금은 가정 자체가 다시 해설되어야 할 지경이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얘기도 아니다. 어원 자체가 빗나가 있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을 어머니가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편견이라면 그럼 누가 돌봐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설마 이웃집 여자가 돌보는게 맞다면, 어머니란 언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낳았다는 생물학적 어머니는 로봇이 대행할수도, 시험관이 대신할수도 있게된다는 얘길 들었다. 그럼 로봇이, 시험관이 엄마인가. 지금, 국가가 일정부분 엄마 노릇을 대행해주고 있다. 그럼 국가가 엄마인가. 하긴 북한에선 어버이 수령이란 말을 쓰기도 했고, 요즈음 어느 정치인은 개딸이라 부르기도 하니까, 내가 이해 못하는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듯 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다 살았는데 어찌되던 무슨 상관이람. 잘난 지들끼리 잘 살아갈텐데, 혹 잘 살지 못한다해도 나더러 책임지라고 할것도 아닌데,,, 그런데도 씁쓸하고 불편하다. 어쩌면 지옥이 따로 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바로 이곳, 그리고 지금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닌지 모르겠다. 덥다. 31도에 머물고 있는 실내온도는 나를 더욱 괴롭게 하고있다. 쪽방촌 좁은 방에서 홀로 견디는 어느 노인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격고있는 현실이다. 주님, 공평인가요? 지구재앙이 공평 아닙니다. 가장 먼저 내던저지는 것은 밑바닥 인생들입니다. 그게 어떤 것이던 가장 혹독하게 격어야하는 사람들은 멘 밑바닥 인생들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은혜를 배풀어 주십시요. 가련하고도 가련한 인생들입니다.이땅에 살면서 단 한번도 좋은것을 누려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자기가 못나서 입니다. 그러니 더욱 불쌍한것 아닌가요. 긍휼히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환한 세상을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