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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민족의 시인, 심연수의 정체성
엄창섭(가톨릭관동대명예교수, 김동명학회 회장)
1. 일제암흑기, 새로운 문학의 장소성과 시간대
삶의 일상에서 특정한 시인과의 만남이 때로는 운명적일 수 있듯 향토후학으로서 필자 자신이 1996년 지부장을 맡았던 강릉예총과 연변예술협회와의 협약을 맺은 관계로 2천년 벽두까지 우리현대문학사와 근친에게까지 그 존재가 생경한 ‘열혈의 문청(文靑)’인 청송(靑松) 심연수(沈連洙,1918. 5. 20∼1945. 8. 8)의 불행한 삶은 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옛 하슬라(何瑟羅)의 땅인 강릉시 난곡동 399번지에서 삼척 심씨 심운택과 최정배 사이 5남 2녀 중에 장남으로 출생하였고, 일단 그의 출현은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삶의 족적과 문학의 정체성 확립은 그 의의가 자못 지대하다. 논의에 앞서 2000년 9월에 강릉지역의 인사를 주축으로 「심연수선양사업위원」(위원장 엄창섭)가 설립되었고, 2003년 5월에 그의 향리(鄕里)인 경포호변에 추모의 표징으로 시비 「눈보라」(조각가 이재욱)가 제막되었다.
이처럼 분망한 삶의 시간대에서 A·하우저는 "작가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만족할지 모르나 자기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라는 지적은 성숙된 작가의 정신적 표상과 결부된다. 한편 한국현대문학사 기술에 있어 일제암흑기 북간도 지역에 몸담았던 문인들에게 문학 징후의 특이성이라면 비교적 자연(조국)을 제재로 한 고향상실감이 다양하게 작품으로 양산된 점이다. 따라서 광복 이후에야 그의 정신적 생산물에 자연의 일부였던 과거에 대한 존엄한 역사인식이 내포되어 ‘시대적인 갈망과 시 의미의 추구와 가치, 그리고 본질적인 세계로 회귀하려는 자연귀소 의식이 강하게 수용된 감동적 삶의 片鱗’으로 그 의미망이 확장된 사실이다.
2000년 8월 중국 연변의 언론보도에 의해 '민족의 별(星座), 또 다른 윤동주'로 그 자신의 이름이 알려진 민족시인 심연수가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 당위성은 신선한 충격으로 일제암흑기 민족의 별로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과 4~5년 짧은 시간 동안 글쓰기에 주의 집중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그는 비극적 삶을 마감한 존재이기에 그에 관한 추모의 정은 더없이 처연하다. 무릇 예술은 본질적으로 환경 생태학적인 연유로 인간이 만든 문화 중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까닭에, 학문의 독자적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 간행된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심연수 문학편)』(중국조선연변출판사, 2000)이 2004년 3월, 새롭게 육필원고의 검증을 거쳐 수정본이 출간됨에 따라 필자 또한 『민족시인 심연수의 삶과 문학』(홍익출판사, 2001)을 재출간하였다.
특히 한국현대문학사에서 관심이 증폭되는 심연수는 1940년 4월 『滿鮮日報』에 <旅窓의 밤>을 포함한 5편의 시를 발표한 족적을 남겼으나, 20세기 벽두까지 우리문단에서 이름 세자도 소외된 불확실한 실체였다. 2001년 8월 「우리문학 기림회」(회장 이명재)가 중국 용정실험소학교 교정에 시비「地平線」의 건립 직후, 비로소 그에 관한 인상 비평적이나마 그 평가가 점차 수행되었고, 중국 현지에서 “암흑기 민족의 별, 재중국조선인 문학의 산맥, 일제암흑기 대표적인 저항시인, 하나의 시성(詩聖)” 등으로 점차 조명되었다. 문학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한 그에 관하여 『한국시대사전』(을지출판공사, 2002)의 수록은 물론, 문학사적 위상과 시학에 관한 20여차의 국제학술심포지엄(2000-2018), 국제한인문학회(2003년)에서 그에 관한 테제가 집중 조명되며, 때늦은 감이 있으나 학위논문과 비중 있는 논문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심연수 시문학의 다각적인 해석을 위해 시사적 검토의 측면에서 ‘시문학과 시적 층위, 정직성과 남성다움의 시적 매력, 시적 특성과 역동성’에 관한 분할은 그의 시문학 조명에 효과적 결과이지만 필자는 동향의 후학으로서 불꽃같은 삶을 통해 민족혼을 불사른 그의 선행연구에 20여년 일관해 왔다. 그 같은 과정에서 김해응의 「沈連洙詩文學硏究」(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대학 박사학위 논문, 2004. 2)를 포함한 최종인, 박복금의 박사학위논문과 ‘허형만, 이명재, 임헌영, 오양호, 황규수 등’의 검증된 결과물, 또 『강원도민일보』(박미현 기자)의 지속적인 보도는 그 맥을 함께 하였다. 연변사회과학원의 「문학과 예술」출판부는 2000년 직후에 「심련수 문학작품연구소」를 설립하였고, 기업가로 심연수 발굴에 헌신적인 이상규 시인의 재정적 뒷받침에 의해 작품전반에 관한 총체적인 정리, 연구가 물꼬를 텄음은 주지할 바다.
그간의 연구결과에 의해 윤동주의 시가 ‘부끄러움의 미학’에 뿌리를 둔 여성적이며 비장성’에서 뛰어난 반면, 심연수의 시는 ‘남성적이며 거창함과 정신적 빈곤에서 생산된 불안의식과 심각성’이다. 용정의 통신원 김문혁은 “용정이 낳은 또 한 명의 저항시인 심련수, 그의 이름과 청춘의 뜨거운 피로 쓴 주옥같은 시편들은 이제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반면, 연변작가협회 김호근은 “자신의 피와 목숨을 바쳐 중국 조선문학을 위해 씨를 뿌린 심련수 시인”으로 또 김홍이 “민족문학의 명맥이 이어지고 일제암흑기 우리문학의 한 줄기 빛이라.”는 주장은 문학사적으로 지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연대기는 ‘강릉출생→러시아 불라디보스토크로 이주→만주 북간도의 밀산을 거쳐 신안진 이주→연변의 용정 이주(용정초등학교(5학년) 편입, 용정 동흥중학교 입학)→『만선일보』에 <旅窓의 밤>발표→고향(강릉) 방문→도일하여 일본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하고 졸업→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해 만주로 귀환(신안진과 영안현에서 소학교 교사로 근무)→백보배와 결혼→용정으로 돌아오다 왕청현에서 불신검문 중 일제에 의해 피살됨’으로 압축된다.
2. 시문학의 시사적 검토와 특이성
여기서 시적 특이성으로 ‘하소연과 공허한 삶의 넋두리, 그리고 비분을 감정의 절제 없이 표출한 심연수의 시편은, 삶의 고뇌와 흔적의 형상화로 민족의 수난과 치욕에 기인(起因)한 층위가 알맞은 정신기후로 조성된 정신적 결과물이다. 비교적 그 자신의 시편에서 유년의 그리움으로 확정할 수 없지만, ‘강과 호수, 그리고 바다’가 연계된 변전의 표징인 물(水)을 즐겨 차용한 것은 항구와 같은 고향(沙川 사기막의 물소리)이 항상 의식 속에 잠재한 탓이다. 기실 심연수에게 고향의 개념은 정지된 공간에 머물지 않은 정서적 양감으로 일제에게 강탈당한 조국의 공간임은, 이역에 거처하면서도 「紀行詩抄編」의 시편에서 새삼 선명하게 입증되고 있다.
보편적으로 그의 시력(詩歷) 구분에 있어 초기는 동흥중학 재학 당시에 창작된 시편으로 시상(詩想)에의 진실성이 체현(體現)되는 특이성이 엿보이며 비교적 시적 기교나 시어 선택의 미숙성, 시구조의 단순성과 감정의 절제미가 다소 결여된 점이다. 반면 후기의 시는 일본유학시절부터 피살되기까지의 변모된 시편으로 시적 틀 짜기와 시어의 다양성, 그리고 모더니티의 양상으로 확충된다. 바로 이 점은 시적 구조의 복잡성과 언어밀도의 정치함, 사유공간의 확장 등은 초기시편에 비해 수평에서 상승으로 이행된 시적 순환(循環)이다. 그간에 검증된 254시편에서 그 자신의 담백한 시격은 새로운 시적 지평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기에 <隕星>, <한줌의 모래>, <星座> 등에서 발견되는 미적 주권으로 확인된 눈부신 서정성은 높이 평가하여도 과장되지 아니하다. 정신적 작위(作爲)를 거쳐 인간정의와 진리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불의와 사악을 극도로 증오한 그만의 시적 매혹감은, 일제의 침략으로 주권을 빼앗긴 조선인의 비극적인 삶을 이채롭게 형사(形似)한 점이나 시대환경에 비춰 문학과 사상을 갈마들며 그가 추구한 정의와 진리로 겨레의 치욕과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려는 정황은 <빨래>에서 보다 더 투명하게 확증되고 있다.
이처럼 그 자신의 시적 긴장감을 통한 시적 특이성은 ‘시의 유연성과 병폐성, 전통의 인식과 고향 회귀성, 시의 호방성과 거창성 등’으로 구분되어진다. 까닭에 반세기 동안 실체를 파악할 수 없던 그의 문학작품은 대다수 미 발표작으로 광복 전에 창작된 것이나 해방 후 중국의 문화혁명에 의해 그의 유작이 발표될 수 없었던 점은 다시금 고려될 점이다. 그 점은 김룡운의 지적처럼 “중국조선족 시인인 심연수에 대해 투철히 연구함으로써 동양,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조선족문학에 대해 정확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여 긍정적으로 수용할 일이다. 또 하나 「시문학의 시사적 검토와 특이성」은 정직성과 남성다움의 시적 매력에 관한 합법적인 해명이다. 그의 시 의식을 심층적으로 논할 때, 일제강점기 ‘민족의 별’로 평가되는 경우, 즉물적 대상에 주저함 없이 곧장 투명한 시격으로 엮어가는 천부적 재능이 돋보임은 무론하고, 그의 시적 행보는 가공되지 않은 일상의 어법으로 처리된 질감의 투박함이 시적 특이성으로 빛나다. 때문에 그 자신의 시적 색채나 경향은 ‘정직한 시어의 구사력, 남성다움과 신념의 노래, 빛나는 서정과 시의 틀 짜기’로 분할되기에, 그의 시편은 순수한 영혼과 예리한 비판, 그리고 준엄한 자성으로 해명되어진다. 아울러 그 자신의 명백한 시정신은 우주에 가득한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삶 속에 투영되어 보다 빛나는 민족의 절박한 꿈이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즉물적 현상에 정직하게 접근하여 그의 대표시인 <소년아 봄은 오려니>에서 확증되어지듯 민감하게 감응되는 ‘거침없는 호방성과 굵은 선, 그리고 남성적인 톤은 무너짐이나 꺾임을 거부한 집념’이다. 바로 이 점은 시적 매력으로 그의 시를 떠받들고 있는 놀라운 역동성이기에 치열한 삶과 곧장 나아가 선비적인 기질은 특유의 어법과 결합하여 현대적인 시적 정조를 형성하는 새로운 인자로 작동하고 있다. 기질적으로 낭만적인 인생의 멋과 참담함에서도 개선가를 부르는 확신에 찬 결의와 불의 앞에 항거하는 날(刃) 푸른 그만의 놀라운 집념이다. 어디까지나 그의 시적 상상력은 거침없는 호흡으로 확산되어 <大地의 겨울>, <떠나는 젊은 뜻>, <海蘭江> 등의 시편에서는 독자의 정감까지 사로잡는 격한 변주로 발동되는 동력이다. 비교적 ‘체험+형상’의 틀에서 이탈하지 않는 심연수의 시적 이미지는 선이 굵고 남성적일뿐더러, 겨울은 단절과 침묵의 계절이 아닌 응당 묵언수행처럼 감당해야 할 인고(忍苦)의 시간대로 의식한 시적 의지는 지극히 건강하여 생산적이다. 대체로 그의 시편은 사회공간의 모순, 비정, 모함, 비열한 이기주의 등 동시대가 지닌 온갖 부조리로 압축되기에, 무릇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 코까지 막아라.’라고 강하게 거역하면서도 이를 자신의 시편에 수용하는 시 심리는 그 같은 조짐의 대응으로, 긴장한 삶에 짓눌려 사는 화자의 안쓰러운 일상의 반증이다. 이처럼 그의 시적 대상은 삶의 여적을 통해 확증되지만 실상은 민족이 겪는 세계고(世界苦)로 총체적 삶의 표징이다. 까닭에 빛나는 서정성을 지탱하는 독자적인 시의 메시지는 정지용보다 김기림의 모더니즘 경향에 편중하고 있다. 특이한 시적 양상과 현실인식의 자장(磁場)에서 형성된 결과물은 놀랍게도 일상의 자아에서 빛나는 서정성으로, 한국적 자연에 힘입고 형상화되어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한편 그의 시적 공시성을 환기시키는 또 다른 층위는, 시적 역동성에 대한 검토로 비중 있게 분할할 점이기에 시의 틀 짜기는 혼돈의 문학풍토에서도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아울러 인식과 삶의 실체를 해체하는 행위에 있어 그 자신이 생존했던 전통적 문학의 토양은 상황설정으로 주지할 점은, 당시는 일본의 문화지배력에 의해 인간관계가 소외되어 표현성과 실험성에 민감한 시문학의 경우에 예외 없이 정체(停滯)될 위기적 상황은 고려될 조건이다. 앞서『강원도민일보』에서 간행한 『소년아, 봄은 오려니』(민족시인 심연수시선집, 2002)의 평설에서 필자가 암담한 격랑의 시간대에 문제의 여지를 남겨두었듯이 그의 시편은 단정적으로 주제나 경향, 그리고 꼴(형식)을 무의미한 상태로 치부할 수 없다. 시대상황에 비춰 중심부의 문학권력이 하층부의 대중에게 그 나름의 상태로 유지된 연유와 상층부의 지배력 상실에 의한 문학의 보편성은 재음미할 과제이다. 까닭에 그의 시편을 종종 일제강점기 전통문학의 갈래에서 새로운 대안의 패러다임(典型)의 양식으로 국한하여 조급하게 해석하려는 조짐은, 새로운 정치권력의 변형에서 실험정신으로 문학의 생동감을 모색하는 의지에 해당한다.
각론하고 심연수의 시편에 수용된 시적 매력은,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현실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현재성의 변화발전의 지속적인 모색이기에 관심을 지니고 고뇌의 흔적을 확인할 타당성이나 변별력이 주어진다. 바로 그것은 이미지의 형상화, 시상의 관념화, 시의 현대성, 시적 처리와 기법 등은 응당 거쳐야 할 과정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감별력 있게 시의 현대성을 다각적으로 인식한 점이다. 그의 시적 모더니즘 성향에 대해 소수의 평자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 요소에 의견을 함께 하는 것을 참조할 때, 전자의 민족주의 성향은 그간에 연구되어왔지만, 비교적 후자의 현대성에 대해서는 특징적 단초로만 언급될 뿐 구체적으로 연구검토 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시어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제시로 통시적인 관점에서 설사 언어의 배열이 부수적일지라도 실험의 형태를 내포하는 형태의 모험은 주제의 사용으로서 시인의 정신작업의 문제제기에 관한 고찰은 다각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항목이다. 까닭에,「심연수문학편」에 수록된 다수의 ‘일기 및 서간, 기타 글’은 구체적으로 분할할 타당성을 지니기에 그의 시적 콘텍스트(context)에서 색채와 특성은 다양하게 확인된다. 따라서 이미지와 시어의 총합이 그려내는 전체적인 조망은 선행 작업과 연계성을 지닌다. 한편 시적 비유, 내용, 표현을 구축하는 연구로 매듭짓는 방안모색은 그의 시에 수용된 시적 요소를 이미지 중심으로 분류하여 구조적으로 재구축하는 작업과 동일성을 지니기에, 시에 표출된 제반 이미지와 시적 담론을 함축하고 지향하는 내용은 정신지리의 지형도를 그려보는 작업과는 별개의 차별성을 지닌다.
모름지기 민족의 혼과 문화인 우리글과 국토를 강탈당한 민족이 겪은 그 참담함을 불멸의 시혼으로 꽃 피운 심연수의 경우, 사랑할 조국을 상실한 비통 속에서 타자의 주관성을 강요받았음은 무론하고, 운명적으로 극한상황에 처한 시인에게 자아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유일한 방편은 문학을 ‘항거를 위한 생존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은 타자 화된 위치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역작용, 주체 탈환 의식은 그의 시에서 한층 강하게 작용되고 있다. 까닭에 정신의 전방위 현상을 발견하자면, 응당 후기의 문화비평론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나 심연수의 문학연구가 초기 비평단계에 머물고 있어 지속적인 연구가 이행되어야 할 현재성에서 그 자신의 시문학 연구에서 보완되어야 할 각론은 그림자의 이미지에 관한 문제와도 무관치는 아니하다.
일반적으로 심연수의 시편 중에 <玄海灘을 건너며>, <턴넬>, <거울 없는 화장실>을 통해 절감되는 ‘분노, 시기심, 비난, 탐욕 등은 이런 개인적 그림자의 투사로 발현하는 심리적 파상’에서 비견되는 예이나 집단적, 원형적 그림자를 투사할 경우 인종차별, 원수 만들기, 전쟁과 같은 위험한 행위에 도달한다. 그의 시적 상상력 연구가 심층적인 분석과 접근을 통하여 명료하게 천착되면, 시에 대한 비평적 패러다임 정립은 가능하다. 따라서 그의 시연구가 아직 문학콘텍스트 내에서의 비평, 민족의식 및 고향의식 연계비평 등의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시문학 전반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빛을 볼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현대시가 안고 있는 시의 철학성과 사상성의 빈약함에 비추어 1940년대 활동했던 심연수 시인이 단순히 서정적 감상주의가 아닌 보편적 세계주의나 철학적 보편주의로 진행할 가능성을 <세기의 노래>, <지구의 노래>, <우주의 노래>, <인류의 노래>와 같은 시편에서 시사적(示唆的) 의미는 보다 거창하고 지대함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의 시적 상상력과 현대성 연구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사회현상은 불안 요소로 남지만, 시대적 양상에 따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불균형의 모순 속에서의 합리적 해법으로 그 자신이 어떻게 양국의 문화 간 관계를 극복하였으며, 미학적 시 창작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는지? 또 문화 간의 이질감에서 파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그 자신이 시 창작에 주의 집중하였는가를 총체적으로 검색할 당위성은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과제이다.
3. 저항기문학의 시간과 공간 해석
저항기문학의 꽃을 다채롭게 피워낸 심연수 시문학의 위상을 확인하고 검색하여 불투명한 실체에 관한 확인 작업은 응당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이다. 저항기문학의 새로운 지평과 그의 시문학의 시간과 공간문제에 깊이 있는 해명은 문학사적으로 반드시 거쳐야할 통로이며 해결의 핵심이다. 그 같은 측면에서 「저항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에 관한 검토에 있어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의 재출간 동기를 이상규는 “받침이 틀리면 틀린 대로 기록하여 그 시대 북간도 어휘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원본 그대로를 기록하였다. 한편 국권의 상실로 민족의 비극적인 삶은 고통으로 일관된다.”라고 천명하였듯이, 그 시대환경에서 심연수가 문학과 사상을 넘나들며 추구한 정의와 진리는, 상실된 국권회복의 적극적인 행위와 수단이었으며, 순수와 정의를 주장하는 그의 시정신과 시 의미는 비교적 담백한 편이다.
특히 심연수의 문학작품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면 그의 실체는 조국과 겨레를 사랑하는 뜨거운 피의 소유자임이 확인된다. 이 같은 양상은 전체적인 작품에서 담백한 색채로 채색되어 빛나며, 기행문과 일기에서는 의분마저 분출되고 있다. <만주>에서는 순수서정이 조국을 상실한 민족의 애한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척사의 혈흔’은 조국을 상실한 민족의 고통, 증오가 치유되지 못한 피의 흔적으로 확인된다. 한편 그의 시상은 “칼날보다 날카로운 이빨(눈보라)”과 같은 집념으로 결부된다. 특히 그의 초기시편을 고찰하면 ‘망국의 설움, 민족에 대한 사랑’, 후기에는 ‘인생의 철리와 진리에 대한 추구’가 초현실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여기서 그를 대상으로 시적 우수성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현대시가 해결하지 못한 철학과 사상성의 깊이를 심도 있게 다루려고 노력한 따뜻한 감성의 시인으로 입증되기에, 이 같이 우리 앞에 실체를 드러낸 ‘별과 같은 시인’의 존재는 결코 과장되지 아니한 합리성에 근거한다.
근간 심연수 시인의 작품과 시 의식에 대한 연구가 다각적이고 총체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차지에 작은 기대라면 유학시절 현지에서 창작한 반일적 색채가 강한 자료가 가까운 시간대에 발굴된다면 초 장르적으로 활동하며 선이 굵고 다양한 역사인식으로 그 위상은 거듭 가늠될 것이다. 한편 그의 시에 수용된 미래에 대한 소명의식을 거쳐 거듭나기의 몸부림과 저항의식의 전제로 새로운 세계질서의 추구라는 ּ정체성 확인은 무론하고, 「문학사료전집」의 부록에서 심연수 시문학의 특징은 ‘비애 어린 유랑의식, 같은 민족의식과 항일정신, 민족수난과 고난 극복, 범우주적인 시야활동, 상징성과 시조양식의 활용’을 다시금 깊이 있게 참작할 타당성이 주어질 것이다. 또 하나 「시문학의 시간과 공간」의 통합에 있어, 시간은 모든 현상 일반의 형식적 조건이기에, 공간 또한 모든 외적 직관작용의 근저에 있는 필연적인 표징이다. 그의 시 전반에 수용된 시간과 공간은 시인의 시 이해를 돕는 근본요인에 해당된다. 츠베탕 토도로프가『구조시학』(정광수 역, 문학과지성사, 1983)에서 구조주의 시각으로 문학의 시간성을 ‘순서와 지속, 그리고 빈도(頻度)와 관계되는 문제’로 그 연관성을 언급했듯이 빈도는 진술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 사이의 관계가 지니는 본질적 특성에 해당한다. 까닭에 심연수의 시편에서 공간의 문제는 조동일의 『문학연구방법』(지식산업사, 1982)의 서술처럼 ‘음악의 공간적 질서는 시간적 질서에 종속’되어 있다. 이처럼 문학의 모든 장르에서 시간적 질서와 함께 공간적 질서를 문제 삼는 것은 어둠과 밝음, 보수와 진보 등이 함께 대립을 이루는 공간적 질서를 문학의 본질로 구명하는데 보다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분망한 삶에 있어 A·하우저는 "작가는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만족할지 모르지만 자기 시대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로 기술하였듯이, 이 같은 지적의 배경은 성숙된 작가의 정신적 표상에 결부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모름지기 한국현대문학사의 일제강점기, 북간도 지역에 몸담고 있던 문인들에게 일제문학 징후의 특이성은 고향상실감으로도 결속된다. 이 시기의 대다수 문인들이 조국을 제재로 한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양산했기에, 비로소 광복 55년 이후에야 그간의 족적이 점차 밝혀지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의 문학사에서 ‘암흑기 민족의 별’과 같은 그나마 그의 존재감이 ‘변곡점(變曲點)-점 P를 곡선y = f(x)’의 역할을 ‘뜨거운 대륙의 심장’으로 담당한 행위는 높이 평가하여도 지나치지 아니하다.
까닭에 그의 정신적 산물에 자연의 일부였던 과거에 대한 존엄한 역사인식을 수용하여 우리가 품고 있던 시대적인 갈망과 시 의미의 추구와 가치, 그리고 본질적인 세계로 회귀하려는 자연귀소 의식이 강하게 수용된 점은 진실로 감동적인 삶의 편린에 해당한다. 이 같은 공론의 여지는 예술이 본질적으로 환경 생태학적이어야 하는 것은 예술이 인간이 만든 문화 중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술의 생성 자체는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관습적 행위이며 제도이기에 우리의 삶에 생명감을 일깨워주는 추동력은 곧 자연회귀의 결과로 가늠되는 것이다.
4. 심연수 시인의 정신풍경과 통시적 고찰
저항기문학의 꽃을 명실 공히 피워낸 그의 정체성 검증에 있어 그간의 다각적인 연구의 결과물은 다소 미흡하지만 그의 존재를 알리고 문학사적 위상의 점검은 하나의 과정이었지만, 이제는 대중과 소통하는 방향으로의 모색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자신의 산문인 소설과 수필에서 체현된 농민의식과 민족사상 연구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수행은 통일문학을 앞당기기 위해 새삼 해결되어야 할 하나의 관심사이다. 2007년 서울 프레스센터의 「심연수 시인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오우무라 마쓰오 와세다대학교의 명예교수가 「작품 속 민족의식·항일정신 농후-심연수의 일본관」에서 ‘심연수에 대한 평가가 국내의 학계에서 아직 심층적으로 확정적인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정황은 안타깝다.’는 지적도 그러하지만, ‘윤동주와 쌍벽을 이룬다.’는 주장에서부터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문학인이라.’는 부정적인 설까지 다양한 정황에서 민족·항일시인이라는 지배적인 평가는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그간에 시적인 측면(시조 포함)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어 ‘단편소설, 각본, 평론, 수필 등’ 타 장르에 관한 연구는 미온적이었다. 혹여 ‘왜? 원고의 사진판을 사용하지 않는가?’, ‘왜? 불분명한 심연수의 작품에 총체적으로 검증을 거쳐 정리되지 않는가?’의 물음이 제기되었지만 하나의 변명은 ‘재만 조선청년의 의식과 생활단면을 면밀히 고찰할 자료의 부재’였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 자신의 시편에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이 강도 높게 수용되어 있으나 ‘항일’이란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강직한 성격의 심연수 뿐만 아니라 김기진, 윤동주 그 외 많은 유학생들이 일본을 통해 근대사상을 흡수하면서 의식적으로 성숙할 밖에 없는 문화 환경에 대한 새로운 도입의 과정임은 긍정적으로 수락할 바다. 한편 서지학적으로 거의 그 예를 찾기가 어려운 현재성에 비춰 지난 2017년 4월에 민족혼을 일깨운 심연수의 작고 72년 만에 강릉에 돌아온 시집 형태의 육필원고는 「1집 우주의 노래, 2집 여명, 3집 지평선, 4집 수평선, 5집 부두의 밤, 6집 대지의 봄, 7집 빈사초, 8집 무적보, 9집 떠나는 젊은 뜻, 10집 야업」으로 분류된 10권이다. 이처럼 그의 육필원고는 한국현대문학의 암흑기인 1940-1943년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우리현대문학사의 암흑기를 메워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북간도를 중심으로 시적 형상화에 전념주한 심연수의 ‘별, 하늘, 길’등 시어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접근하면, 시 의식의 틈새를 좁혀가는 현재성에서 ‘별’에 대한 시각이나 관점은 시의 이중거리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아울러 서구의 모더니즘이 신의 부재를 채우려는 노력으로서의 유토피아 개념이라면, 우리의 모더니즘은 상실된 고향을 회복하는 노력이다. 1920년대에 일본행 배를 탔던 카프파의 임화는 ‘적의 것을 배워 적을 물리치리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지만, 대조적으로 진정한 휴머니티의 소유자이며 평화주의자인 심연수의 일본행에는 놀랍게도 희망과 확신에 찬 양상이 표출될뿐더러 희망을 안고 도착한 일본에서 작은 감동을 겪고 난 직후, 정작 그가 느낀 것은 삶의 절박성과 처절한 인간적 외로움이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에서 저항시가 반일의 비판적 인식을 저변에 깔면서 궁극적으로 민족해방의 강한 의지를 지향한 것은 당연한 처사다. 일반적으로 저항 시는 개념적으로 민족주체의 생존과 자주독립 및 발전을 꾀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은 물론 비판과 참여의 성격을 지니기에 단순히 비판의 대상이 객체인 상대와 현실에만 참여의 의지가 국한되지는 않는다. 비판의 대상이 주체인 자아가 되면서 그의 삶과 정신에 대한 정직성을 엄정하게 통찰하면서 내면적인 참여의 의지를 가다듬는 자세도 저항적으로 간주되기에 곧 자아의 내면적 성찰은, 모더니즘의 특성으로 ‘권태, 우울, 절망, 불안, 허무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빛나는 서정성으로 한국시의 지평을 열어 보인 그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정신작업의 종사자는 삶의 공간과 환경의 변이에 지혜롭게 대응하면서 세계인식이나 가치관을 다져나가야 하기에, 심연수의 시 의식을 고찰할 때, 정직한 언어의 행보나 가식되지 않은 일상의 어법으로 처리된 질감의 투박한 특성에 의한 ‘순수한 서정성과 준엄한 자기성찰의 수행’이나 ‘사회적 모순, 비열한 이기주의 등 동시대의 부조리의 응축’은 필히 감안할 사항이다
비교문학적 측면에서 불행한 삶을 마감한 윤동주의 시가 ‘부끄러움의 미학에 뿌리를 둔 여성적이며 비장감’이 짙은 반면, 심연수의 시는 ‘남성적이고 거창함과 정신적 빈곤에서 생산된 불안의식과 심각성’이 대비되는 이론의 제기가 주어진다. 이 같은 조짐에서 저항기문학의 꽃을 명실 공히 피워낸 심연수의 위상을 다소 인상 비평적으로 검색하여, 불투명한 실체에 대한 구명작업은 지속적으로 명증할 일이다. 아울러 저항기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며 심연수의 실체와 문학 전반에 관한 구체적으로 다각적인 연구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간에 「심연수 선양사업의 현황과 전망」에 관해 제기된 주장처럼 ‘심연수 시문학의 존재를 알리고 문학사적 위상을 정립하여 대중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향으로의 모색이 전환되어야 함’은 물론 “그의 미학과 사상 탐구나 소설에 체현된 농민의식” 등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 수행은 새로운 통일문학을 앞당기기 위한 키워드다.
이처럼 그의 시편에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의 강한 표출’의 문제에 있어 단순히 ‘항일’이란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총체적인 저항의 뜻이나 의미는 결코 아니다. 모쪼록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인 심연수 뿐만 아니라, 그 외 다수의 젊은 유학출신들이 일본을 통해 근대사상과 신문화를 흡수하면서 의식적으로 성숙할 수밖에 없던 문화 환경의 새로운 현재성은 충분히 숙고되어야 하는 까닭에 흡수라는 것은 전면적 섭취와는 다른 면에서 접근할 타당성이 주어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사회가 극도로 국수화 되어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비협력적 태도를 취한 것은 역사적인 실재였음은 다시금 교시적인 스키마(schema)로 기억할 바다.
* 엄창섭 약력 : 강릉출생, 「華虹詩壇」(발행인, 1965), 「시문학」 출신,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한국시문학회 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및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고문, 심연수 기념사업회 위원장 역임, 현재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 『모던포엠』주간, 사) k-정나눔 이사장, 김동명학회 회장.
* 엄창섭 박사는 "청송(靑松) 심연수의 문학작품에 총체적으로 자연의 일부였던 과거의 세계에 대한 추억과 보편적으로 우리가 품고 있던 본원적인 기대와 갈망, 또 그 세계로 복귀하려는 고향에 대한 자연회귀 의식이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또한 긴장미의 완성을 보이는 시편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추구, 정체성이 자리해 있다. 일제강점기 그만의 빛나는 서정의 시학은 한국적 자연에 힘입고 이미지가 선명하게 형사(形似)되어 ‘체험과 형상의 틀’ 속에서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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