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추천평>
사유의 깊이와 해박한 지식
이상도의 신인 추천을 이번호에 완료한다. 총2회에 걸쳐 각각 3편씩 보내온 심사 대상 작품 중에서 <예수의 글쓰기>(통권6호)를 초회 추천작으로 선정하였고, <꼴찌의 발견>을 완료 추천작으로 결정하였다. 총6편의 작품은 모두 상당한 수준을 갖춘 것들이었다. 그의 수필은 일상적 경험의 충일로만 마무리되지 않고, 일상을 생각의 근거지로 삼아 사유의 영토를 확장하고 심화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그 동안 수십 편의 규칙적인 습작 과정에서 점수돈오(漸修頓悟)한 성과로 판단된다.
그의 수필에서 보여주는 사유는 예사롭지 않다. 그러한 사유의 힘은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에 연유한다. 이상도는 신경 및 정신과 전문의로서 오랜 기간 교수로 봉직해 왔음에도 자기 분야의 학문만을 고수하지 않고 인문학의 전문지식까지 두루 섭렵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필에 동원되는 풍부한 지식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이상도의 수필은 깊이 있는 사유와 해박한 지식을 구현해 낸다. 그러한 장점이 높은 난이도 때문에 평범한 독자들로부터 핀잔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시비를 불식시킨다는 의미에서 완료 추천작으로는 가장 평이한 작품을 선정하였다.
“예수는 과연 어떤 글쓰기를 하였을까?”라는 엉뚱한 의문으로 시작하는 <예수의 글쓰기>는 말이 적고 둔할 뿐 아니라 글을 쓰는 것도 잘하지 못하고 싫어하던 화자가 수필 쓰기를 시작한 경위를 전달하는 데서 화두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이 수필의 목적지는 글쓰기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데에 있다. 그 우려란 글쓰기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언어의 불확실성에 대한 회의이다. 언어는 신뢰할 만한 인식의 수단일 수 없고 진실을 왜곡하는가 하면, 인간의 기록문화는 현실 생활에서 본연의 임무를 오히려 방해한다는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주지를 구축하는 데에, 붓다의 무언 설법이나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의 지식이 동원되고, 간호사·교사·공무원 등의 과중한 문서작업이 예시된다. 언어는 진리에서 벗어나고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첫문장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예수도 말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제자들에게 신앙생활의 눈을 뜨게 했다는 해답이 그것이다. 결국, 글쓰기는 진실에 이르는 경로가 아니며 본연의 임무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사유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듯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고뇌를 주제로 삼은 <예수의 글쓰기>는 작가의 사유하는 힘과 배경지식의 활용 능력을 보여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꼴찌의 발견>은 전형적인 수필 형식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삶의 경험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에 경험에 대한 사색을 펼쳐 작품의 궁극적인 의미를 이끌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자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다룬 수필이다. 여기서 각성되는 자아의 존재 의미는 작가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나 삶의 보편적 진리로 읽혀질 수 있어서, 주제의 보편성을 확보한다. <예수의 글쓰기>가 여러 가지 소재들을 끌어들인 복합구성을 취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하나의 소재를 시간적 추이에 따라 집중화시킨 단일구성을 선택하였다.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연속하는 철인3종경기에 참여한 경험만을 소재로 삼았다. 평소의 기록만 믿고 60세 이상 연령별 순위에서도 우승까지 기대했었지만 꼴찌를 하고 말았다는 경험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사유를 펼쳐 나갔다. 삶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삶만을 여지껏 살아왔으나, 꼴찌로 달리면서 사색을 통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가족의 존재, 특히 꼴찌로 느리게 살아가면서도 행복해 하는 큰아들을 새로이 인식하는 데 이르고 주위에 펼쳐져 있는 자연의 소소한 아름다움까지 발견하는 데 이르는 것이다. 꼴찌로 느리게 살아가는 삶 속에 오히려 풍요로움이 있다는 삶의 아포리즘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이상도는 일 년 반에 걸쳐 매월 두어 편씩 규칙적인 수필 창작을 해 왔다. 습작의 기간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기성작가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경험에 대한 지각을 배경지식과 결부시켜 교직해 나가는 능력이나 사유를 펼쳐나가는 힘으로 볼 때, 역량 있는 수필가로 활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하다. 신경과 및 정신과 의사인 이상도가 일구어 나갈 수필가로서의 영역도 기대해 볼 만하다.
심사위원 : 김한성, 여세주(글), 전상준
<완료 추천작>
꼴찌의 발견
숨이 차다. 철인 삼종 경기에 참가하여 10km를 달리는 중이다. 다들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오직 도착점을 향한다. 하지만 난 지금 꼴찌로 달리고 있지 않는가.
달리기와 수영을 한 지가 십여 년을 훨씬 넘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산악자전거 타기도 실력이 나쁜 편은 아니다.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연속하는 3종 경기의 올림픽 코스쯤은 어렵지 않게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당한 자신감을 못마땅해 하는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3개월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실력을 다져왔다.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까지 들었다. 대회 참가자 중 60세 이상 출전자는 6명뿐이니 잘하면 연령별 순위에서도 우승까지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을 다잡았다. 평소의 동호회 활동 없이 환갑을 지난 나이로 3종 경기에 도전해서 완주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내심으론 곧 태어날 다섯 번째 손주에게 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끝은 미미하였다. 수영 1.5km는 평소라면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할 수 있는 거리여서 몸을 푸는 기분으로 경쾌하게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태교 아래 금호강에서 300여 명의 참가자가 서로 엉키어 몸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전투적 수영을 마치고 다음 종목인 자전거를 탈 때는 이미 지쳐 있었다. 연습을 할 때는 시속 30km 이상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페달을 아무리 힘껏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수십 명의 건각들이 무리를 이루어 굉음을 내면서 몇 번이고 나를 추월하였다. 왕복 10km를 세 번 돌기 전에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 나서 이유 있는 기권이라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사이클을 끝내고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이미 달리기를 마치고 경기를 완주한 참가자의 이름이 마이크를 통하여 소개되고 있었다.
그래도 자전거 경기에서 평소의 속도를 내지 않았으니 어딘가에 힘이 남아있을 것이리라고 믿는다. 평소에 나의 근육은 피로에서 빨리 회복되는 장점이 있다. 곧 힘이 날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달리기에서 지금껏 뒤쳐진 기록을 만회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하지만 힘이 더 이상 나지 않는다. 5km 반환점을 돌아오는 선수들도 거의 없었다. 나를 비롯해 앞뒤에 한두 명의 선수가 보일 뿐.
반환점을 돌면서 현실을 받아들인다. 여지껏 놓지 못하였던 성적과 등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꼴찌라는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모두가 바삐 떠나고 혼자 남아, 꼴찌로 느리게 뛰면서 나의 인생여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 세월 동안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처럼 그저 질주하는 것만 능사로 여겨왔다. 추월당하면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자책하거나 분노했다. 누군가 앞으로 끼어들려고 방향지시등을 보내면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얼씬거리지도 못 하게 하였다. 가족을 동반한 1년간의 미국 연수 기간 동안에도 숨 가쁘게 살았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방문교수였으나 쉴 틈 없이 스스로를 내몰았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자동차로 서너 시간 거리에 있다는 데도 가보지 못했다. 주말에 하루라도 틈을 내어 다녀왔더라면 세 명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내에게까지 꿈과 추억이 되었을 터인데.
강 건너 낚시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온 것 같다. 낚시를 즐겨하는 큰아들이 보고 싶다. 큰아들은 학교 성적만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다소 뒤쳐져 있었다. 딸, 아들 키우고 사는 지금에도 경제적으로 간신히 자립하고 있는 형편이다. 큰아들은 급한 것이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익힌 낚시를 지금껏 즐겨 주말이면 어김없이 바다를 향한다. 큰 아들의 학창시절 동안 단 한 번, 그것도 짧은 시간 함께 낚시를 다녀온 적이 있었을 뿐이다. 강 건너의 부자父子처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더라면 그에게 큰 격려가 되었을 텐데.
길 위에는 나만 천천히 달리고 있다. 모두가 앞장서 가버리고 덩그러이 혼자가 된 나에게 우주는 신이 내린 선물 같다. 사람들이 숨겨진 보물을 찾다가 그냥 지나쳐 버린 곳에서 보물을 발견한 아이처럼 나는 환호한다. 길가에는 청매, 홍매, 이팝나무, 개나리 등등이 꽃을 피우고 있다. 정오의 따뜻한 봄볕에 여기저기 피어난 제비꽃들은 앙증맞게 졸고 있다. 물비늘을 만들면서 느릿느릿 흘러가는 강물은 다정스럽게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다. 갈대숲이 듬성한 모래톱 사이에는 까치 몇 마리가 한가로이 놀고 있다. 구름 몇 점뿐인 하늘 위에는 반달이 희멀건 미소를 보낸다.
영혼이 바라보는 신의 세계도 이같이 아름다우리라. 모든 것을 내려두고 꼴찌로 뛰면서 나는 대자연의 숨소리를 듣는다. 꼴찌로 달리면서 외국에서 굼벵이처럼 느리게 살아가면서도 행복해 하는 두 아들이 무척 보고 싶다. 꼴찌가 나쁜 것만 아니다. 느리게 살아가는 삶 속에 풍요로움이 있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들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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