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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방탄소년단의 외국 팬들 사이에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였다. 팬레터를 쓰고, 노랫말을 따라 부르기 위해 한국어 자격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한국어가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특히 존대법이나 시제 등을 따지며 말할 때 실수를 자주 하게 된다고 한다. 실상 그러한 것들은 비단 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게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나’와 ‘저’, 그리고 ‘우리’를 사용하는 용법에 대해서도 역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우리’와 ‘나’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우리’와 ‘나’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저’에 관한 존대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외국 사람들을 자주 접하고 있는 저자의 글들에 대해서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무심코 쓰는 일상 언어로 본 우리 사회의 차별 의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외국어교육과 언어학을 전공한 연구자로, 최근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대학에서 진행한 바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인의 언어 습관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었고, 그 결과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추천사에서도 밝혔듯이 ‘한국의 다문화 인식과 관련 정책은 여전히 차이를 차별로 만들고, 다양성을 말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인의 일상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라 하겠다. 기실 그동안 우리의 언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글들은 적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처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활발히 교류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사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언어에 대해서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내용을 모두 5개의 항목으로 구분하여, 우리의 언어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1부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우리 언어’라는 제목으로, ‘우리’를 비롯한 다양한 표현에 담긴 문제점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분명 저자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언어의 문제점은 표현 그 자체에서 오는 것보다, 오히려 그릇되게 사용되면서 야기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문제점이라고 논하고 있는 것들도 대부분 ‘우리 언어’의 문제라기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저자는 ‘한국인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사고의 울타리를 함께 치고 있는 셈’이라고 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나’라는 단어 대신 사용하는 습관은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온 것이기에, 그것이 과연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우리 언어의 대표적인 사례로 적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한국어에 익숙한 외국인들의 경우, ‘우리’라는 표현을 저자처럼 ‘울타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통해 ‘우리’라는 존재들을 ‘타인’들을 차별하는 언어 습관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언어’ 자체의 문제이기보다 오히려 우리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화용)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저자는 분명히 언어 사용의 환경이 지닌 문제점을 논하면서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우리 언어’의 문제로 환치시키고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자 한다. 특히 1부의 글들은 대부분 ‘우리 언어’가 아닌 ‘언어 사용의 습관’이 지닌 문제점을 적실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차이의 기준, 단일함이라는 허상’을 다룬 2부에서는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허상이라는 것을 적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지금 학교 교육에서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을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 외국인들을 차별하는 기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지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저자가 전통의 예로 지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공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자 한다. 장례식장을 장식하고 있는 국화를 ‘일본의 국화’로 파악하거나, 상주의 왼팔에 차는 ‘상장(喪章)’을 일본 완장의 영향이라고 논하는 것은 아마도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데서 나온 오류라고 파악된다. 이와 함께 유가 문화의 상징인 상투에 대한 의미 부여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내용에서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겠으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3부에서는 우리의 역사에서 이방인으로 귀화하여 활동했던 인물들과 함께, 탈북인과 결혼 이민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논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시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할 역사와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4부에서 지적한 것처럼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영원한 우리도, 영원한 이방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에도 이민자의 신분으로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재외 국민들이 있었다. 저자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새삼 일깨워주고 있기도 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과 우리들을 겹쳐볼 때,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이민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5부에서 결론적으로 ‘차별을 없애고 상생의 언어로’ 우리의 언어생활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한 제안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의 언어에 드러난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면 당연히 깨뜨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에는 늘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인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가 강조한 ‘우리’라는 표현이 과연 ‘타파’해야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타자를 ‘차별’하는 부정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외국인과 이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한다면 현재의 문제점만을 지적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전개된 상황을 고려하여 언어 생활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호문화적 인식’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이 학교 교육 혹은 제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분명 제도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겠으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자가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은 ‘우리 언어’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가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이들의 그릇된 용법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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