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고, 또 받기를 갈망했던 때가 얼마나 오래된 이얘긴지 모르겠다. 요즈음처럼 스마트폰은 커녕 전화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엔 편지가 유일한 문화였던 것 같다. 내용을 펼처보기도 전에, 마음부터 설레던 그 편지를 써본지가 언제였더라."모두다 잘 될거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이라는 '장예은님'의 에세이가 문득 옛날 주고 받았던 편지를 생각나게 했다. 외롭고도 슬프고, 혹은 서럽기까지 한 내 마음을 향한 따뜻한 위로가 담긴, 그런 말로 내게 다가왔다. ㅎㅎㅎ. 이런 아름다운 문장을 내가 좋아했던가. 단조롭기까지한 이런 글들이 아직도 마음을 적셔주는 것을 보면 노년과 소녀는 아주 멀지는 않나보다. 그런 생각들을 해보며 입가에 슬핏 웃음이 감돌기까지 한다. 이걸 그냥 행복이라고 하면 안될려나. 아침에 실내온도가 30도로 내려갔다. 아마 조금 후면 다시 오르겠지만. 비는 그친 것인가. 햇볕은 불볕이다. 다행인것은 그늘엔 바람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큰아이 생일이다. 축하인사는 며늘에게 해야겠지만, 나는 며늘과 입도 뻥긋 안한다. 롤케익 하나와 식혜, 그리고 잡체를 샀고, 닭복음을 준비했다. 미역국도 끓였다. 금일봉도 전달하고 ㅎㅎㅎ 애 둘대리고 나만의 소꼽놀이를 한 것인가. 그랬다. 덜도 더도 아닌 그냥 소꼽놀이였다.미안하다. 인생이 소꼽놀이는 아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치고 무너진다. 공부가 다는 아닌 세상인줄은 나도 알고있다. 그럼에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학교 생활이 얼마나 즐거운가를 알지않을까. 선생님들 마저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나는 그게 부려워서 우리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길 바랐는데, 며늘은 전혀 아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되고 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게 이렇게 차이가 큰 걸까. 물론 다 제각각인 것은 안다. 그러나 포기가 쉬운가. 조금만 도움을 주면 훨씬 나아질텐데, 아이 스스로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며늘에게 과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내가 도달하지 못한 어떤것에 대한 갈망을 며늘에게 기대했다면 부당한 것이긴 하다,그리고 지금쯤엔 다 내려놓아야 했다. 다들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니까. 내 어머닌들 딸의 인생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셨을까.. 그럼에도 단 한번도 왜 이렇게 사느냐고 하진 않으셨다. 좀더 잘 살아보라고 말하고싶은 것을 얼마나 참으셨을지 지금에 와서야 좀 알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하지 않으셨고, 끝임없이 도움을 주셨다. 어머니도 결코 넉넉한 분은 아니셨다. 혼자서 늙고 힘에 붙여하시며 농사를 하셨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으셨음도 알고있다. 그걸 알기에 나도 아끼고 또 아끼며 살게 되었겠지만. 참 많이 아끼고 살고있다. 왠만한 불편은 불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휴지한장, 쓰레기봉투 정도 가지고는 무슨 해결이 되겠는가. 오히려 궁상맞기만 할뿐 아닌가. 그럼에도 그것밖에 할줄 아는게 없으니 어쩌랴. 은호야 할머니가 미안하다. 좀더 좋은것으로 줄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너희 엄마가 능력있는 사람이니 넌 아무것도 불편한게 없이 자랄수 있지않을가 했는데, 너희 엄마에 대한 할머니의 기대가 너무 컸던가 보다. 생일 축하한다. 그래 건강하게만 잘 자라거라. 다음일은 다음에 걱정하면 되겠지. 사랑한다. 많이 많이 사랑한다. 근력이 떨어저선가. 무거울게 없는데도 많이 무겁다. 끄는 바구니에 담았는데도 버거웠다. 이렇게 얼마를 더 불편해야 끝이 날까. 하나님, 몸도 무겁고 어께도 아프고 짜증은 더 많고, 오늘 하루도 그냥 그렇게 감사없이 지나가고 있읍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살펴주십시요.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