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竹茹)
진성수(나의 사랑)
처마 끝을 사그락 거리며 남풍이 불어옵니다.
열대의 더운 습기를 몰고 오는 장마가 시작 되려나 봅니다.
망고스틴이나 파인애플의 냄새가 실려 있네요.
바람의 옷자락이 스친 대숲에 들어 봅니다
서걱 이는 댓잎소리
아닌지는 알지만 혹여
당신의 목소리인가 했지요
어젯밤에 재워 둔 내 그리움이 오늘은 얼마나 컸을까
보고 싶기도 했지요
지난 계절은 이 숲속에서 살았습니다.
밤새 자라던 그리움은
아침이면 수없이 마음을 열고 닫았던
옹이진 마디 마디를 내보이며
이내 키만큼씩 자라나 있었습니다.
사나흘이면 허공의 높이로 자라던 그리움.
그리움이 다 자라면 이내 텅 텅 비어가던
겹겹이 쌓아 올린 무위(無爲)의 가슴들은 높이의 유전자만 있어
외로움에 단련된 탄탄한 껍질만 지닌 채
저 푸른 하늘을 흔듭니다.
당신은 멀리 저 바다 건너
밀림 숲속에 있다지요.
오늘 따라 바다는 더 가까워 보입니다.
저 푸른 바다 홑이불처럼 둘둘 말아
그리움이 웃자란 내 몸을 눕혀 버리면
당신은 나의 키 높이
그 만큼의 거리에 있을 것인데
먼 훗날 내 마지막 그리움마저 다한다면
텅 빈 가슴을 열어 순백의 꽃을 피울 테지요
발아래 뿌리들이 얽히고 얽힌 인연의 굴레는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죽여(竹茹)의 가슴을 깃발처럼 걸어놓고
나는 꽃 피우리라
그대 향한 개화병(開花病)을 앓으리라
*죽여(竹茹):종이처럼 얇은 껍질. 대나무 속껍질. 치열(齒熱)·토혈(吐血)에 효과가 있다고 함
*개화병(開花病): 꽃을 피운 대나무가 일제히 죽는 병
**어떤 장르의 글에서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시에서의 소재와 제목은 큰 의미와
비중을 갖는다. 소재인 그 사물에서 시상을 얻게 되었고, 시의 주제를 암시하는
함축적인 제목은 그 시 무게의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제목 ‘竹茹’는 소재와 제목이 동일하긴 하지만,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주목을 끌게 한다. 본문을 읽기도 전에 어딘가 문득, 동양적인
철학의 깊이를 느끼게 할 것 같은 예감을 주기도 한다.
시인의 그리움은 바람이 불어오는 대숲에서 그 키가 자라고, 대나무 마디처럼
옹이지기도 하지만 ‘나는 꽃피우리라/ 그대 향한 개화병을 앓으리라’의 마무리
연에서 절정을 이룬다.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은 먼 바다 건너 열대의 밀림 속에 머물러 있나 보다. 열
대의 습기를 몰고 오는 바람에서 ‘망고스틴이나 파인애풀의 냄새’를 감지할 만큼
그의 그리움은 간절하고, 바람이 스쳐가는 서걱이는 대숲 소리에서 ‘당신’의 목
소리를 듣는다. 그리움의 대상이 숲 속에 있듯이 그는 대나무 숲에 들어, 대나무
의 키처럼 그리움을 키운다. 지난 한 계절 숲 속에서 살았고, 오늘도 그리움의 키
가 얼마나 자랐는지 스스로 가늠해 보기도 한다. 사나흘이면 허공에 닿고 마디마
다 텅 빈 가슴을 쌓아 올리는 그리움은 너무도 잘 자라서 ‘외로움에 단련된 탄탄
한 꺼질만 지닌 채‘ ’높이의 유전자‘만이 ’저 푸른 하늘을 흔‘든다
1연을 읽을 때, 3행까지는 불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오해는 3연 ‘당신은 멀리 저 바다 건너/ 밀림 숲속에 있다지요’에서 풀리게 된다.
그리움에 잠을 뒤척이며 몸에 둘둘 마는 바다홑이불은 가로막힌 임과의 거리를
키만큼 으로 좁혀 오기도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시는 마무리 연인 3연에서 그리움의 절정과 해탈 같은
달관에 이르러, 찌릿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데, 한편 소재인 동시에 제목인 ‘竹茹’
를 이탈해서 ‘순백의 대나무꽃‘이나 ’개화병(開花病)‘으로 시의 초점이 옮겨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고, 어쩌면 시 전체에서의 언벨런스나 불협화 기류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본다. 눈에 보이지 않게 안으로 안으로만 쌓아
올린 ‘竹茹’의 그리움의 고뇌가 마침내 그 사랑의 절정인 꽃을 피우고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竹茹’로 인한 고도의 승화이며 표출이라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풀이해 본다. 그것은 끝에서 3행 ‘죽여(竹茹)의 가슴을 깃발처
럼 걸어놓고‘라는 구절에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좋은 시, 깊은 시로 우리를 압도하며 다가온다. 각 연마다 다소의 축
약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세 연에 다 나타나 있는 ‘그리움의 웃자람’은
그 이미지의 중복으로 약간은 걸리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1연 5행 ‘서걱이는 댓잎
소리‘ 끝에는 쉼표(,)를 해 주면 글의 본뜻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철자나 띄
어 쓰기 같은 데에도 신경을 써 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곁들인다.
*사그락거리며, 시작되려나 봅니다, 서걱이는 ... 등.
첫댓글 '죽여'가 대나무 속 그 얇은 껍질이었군요.
또 한수 배웁니다.^^
시인의 글을 해설자의 안목으로
파서 헤집어 놓은 해설 글도 볼만하네요.^^
그렇지요...
저도 죽여라는 말을 처음 들으며 배웁니다
시평은 찾아 보면 볼 수록 좋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