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과 무익을 따지면서 살았다는 생각은 없다. 그런걸 따지고 말고 할 정도의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와서라도, 나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공연히 감정 소모를 자청할만끔 착한것도 아니지 않는가. 내일, 모처럼 친 동서들과의 모임이 내게는 돌발적인 소식이긴 했어도, 어쩌면 오랜 애증의 관계를 이루며 살았던 가족들의 만남이니까 반갑고 기쁜 소식일수도 있는데, 나는 그게 왜 부담으로 불편으로만 느껴졌을까. 묵은 얘기도 싫었지만 어쩌면 나는 여기에서도 자랑질을 하고 싶고 우쭐대고도 싶었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어서 ? 나는 지금의 일상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솔직히 까발리는 것까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있다.도대체 내가 바라는 일상이 어떤 일상일까. 어떤 부귀영화를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일까. 가장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그때, 앞뒤 분별은 커녕 내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조차 분별이 어려웠던 시절에 가족으로 만났던 분들이다. 아들을 씻겨주고 배네저고리를 빨아 널어주셨던게 어쩌면 그분이 해줄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기억한다면, 단 한번도 감사하다는 말마저 한적이 없는 나는 누군가 싶다. 다들 좋은 분들이다. 모임의 밥값은 내가 내는게 옳을것 같다. 그런데도 온갖 핑개를 대며 불참을 말했다. 끝까지 싸가지가 없고 몰인정한 것은 나다. 남편은 내게 악연일지는 모른다. 남편이 내게 전혀 무익한 존제였을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와 관련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지탄의 대상은 아닐게다. 가족으로 만난 인연은 가벼운게 아니다. 고모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지 않는가. 나는 고모들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모습들이 참 좋다. 그분들이라고 다 좋기만 했을까. 어쩌면 고모들은 어머니나 내가 아닌, 자신들의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녀를 대한 것일수도 있다. 그랬다. 어머니와 나의 등뒤에는 그분들의 자식이었고 오빠였고 형님이엇던 우리아버지의 모습이 있었기에 그리 소중하게 우리 모녀를 대하셨던 것 아닐까 싶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싸움질은 여전하다. 어른들의 치졸한 싸움은 이미 한계치를 넘었다. 소신은 중요하다. 그런데 대표성을 지니면 소신을 굽혀서라도 나라의 권익을 따를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배워왔다.그런데 아닌가? 우린 모른다. 등기부를 열람해 본적도 없으니까. 세계열강중에 우리는 힘없고 연약하다. 우리가 무턱대고 우리땅이라고 주장할만 한가.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진멸하여 찾이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니까 하실수있는 말이었다. 우린 하나님이 아니다. 세상엔 자기가 하나님인줄알고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듯 싶다. 코로나가 다시 극성이라고 한다. 마스크 다시 써야하나 보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