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처입은 치유자이다(행복한 목회자)
치유받아야 치유자가 된다 열왕기상 19:1-14
몇 년 전에 우리 사회와 시대를 진단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책 제목이 ‘피로사회’였습니다. 왜 이 사회가 아픔이 클까요? 성과주의에 기인하여 ‘자기 착취’가 있다는 것입니다.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의 속도에 따라 살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몰아 세우고, 어른은 어른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아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픔에 대한 증상으로 대체로 ‘우울증’이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희망부재로 인해 육체적인 병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녹초가 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2018년 ‘고독부(ministry of loneliness)가 생겼습니다. 6600만명 중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살삶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까요?
첫째, 신앙인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욥은 어떤가요? 동방의 의인이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시험에 의해, 자신의 생일을 비관합니다.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13:1)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저런 고백을 할까요? 마음에 번민이 끊이질 않는 것, 살고 싶은 소망이 없는 것, 이것이 우울증입니다.
미국에서 인디언 선교사로 살았던 분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입니다. 그의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아주 마음이 외롭고 우울한 사막에 살고 있다. 나의 영혼은 삶의 피곤에 절어 있다. 나는 간절히 죽기를 사모한다.” 그 신실한 선교사가 오죽했으면, 그런 고백을 할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마틴 루터같은 종교 개혁자도 한때는 자신이 “영혼의 어둡고 깊은 우울의 밤을 지났다.”고 고백한 기록이 있습니다. 영성가들은 우울증에 대해,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우리 인생에 어두움과 환난을 놓은 이유는 능력을 주기 위함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을 이길 능력을 부어주기 위함입니다. 사람으로 참기 어렵고 힘든 그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가 승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빛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지만, 슬픔과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해서도 일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