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0월 19일 월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 성 이사악 조그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또는
[백] 십자가의 성 바오로 사제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1-10
형제 여러분,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21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상속받는 이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유산 상속 비율이 있을까요? 율법에도(신명 21,17 참조) 그렇고, 우리나라 상속법에도 우선순위와 비율이 있는 것을 보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분배는 있을 수 없기에 규정을 마련하여 강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어떤 사람도 유산 분배에 만족하지 못하였는지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러셨듯 지혜롭게 답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재산 문제에 개입하시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탐욕을 경계하라고 하시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비유를 보면, 부자가 자신의 소출을 부정직한 방법으로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열심히 일하고 자연도 도왔기에 많은 소출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 부자에게 부족하였던 것은 한 가지, 곧 자기 목숨을 자기 힘으로 어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애써 모은 것들과 수확의 달콤함을 누리지 못한 채, 부자는 하느님 앞에 나서게 되겠지요.
우리는 재산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믿기에 오늘도 경제 뉴스를 찾아보고 재테크 정보도 얻어 가며 재산을 늘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늘려야 하는 것은 하느님으로 채울 공간입니다. 겸손하되 하느님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온전히 부유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지혜를 청해 봅니다.(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유산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유산 분배 문제로 형제 자매들 간의 우애가 깨지고 가족 꼴이 가관이 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유산 상속법에 정해진 룰에 따라 정확히 분배하면 될 것인데, 누군가가 과욕을 부립니다. 그 꼴을 못 보고 따지고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법률대리인까지 등장하고, 그 길로 형제도 자매도 인연이 끝입니다.
그럴 때 마다 차라리 유산이 없었더라면 이런 분란이 일어나지도 않았을텐데...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남기신 유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예 유산이 없다 보니 기대도 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고 분란도 없습니다.
유산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따져보니 있더군요. 유산 중의 유산 가톨릭 신앙을 남겨주셨습니다. 이런저런 시련 속에서도 그러려니 하고 너그럽게 만사를 바라볼 줄 아는 낙천성을 선물로 남겨주셨습니다.
혹독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고통에 짓눌리지 않고 충만한 기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여유로움을 유산으로 남겨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니 재물이라는 것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재물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재물이 있어야 어디 가서든 사람 노릇 할수 있고 어깨를 펼수 있습니다.
문제는 과도함입니다. 재물을 하느님보다 더 높은 위치에 두고 평생 돈돈 하며 모을줄만 알지 나눌줄 모르는 부자의 최후는 참혹합니다.
평생 쌓아올린 재물의 탑, 그거 절대 천국까지 가져갈 수 없습니다. 목숨 끊어지면 순식간에 내 손을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평생 돈돈 하며 살았기에 그런 부모의 모습을 자녀들이 그대로 답습합니다. 한푼이라도 더 유산을 챙기려고 야수처럼 서로 물어뜯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찰되지 않는 부의 결말은 끔찍합니다. 패가망신이며 가족의 파탄입니다.
내게 주어진 재물을 볼 때 마다 고민과 성찰을 거듭해야 하겠습니다. 이 부는 과연 어디서 왔는가? 하느님께서 이 부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인공 지능 시대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똑같은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20%의 성과를 얻었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20%의 손실을 보았다고 합니다. 인공 지능 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과 태도에서 차이가 생긴 것입니다. 인공 지능은 우리가 무엇을 묻고, 어떻게 지시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놓습니다. 정확하게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표현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지만, 잘못된 정보와 그릇된 의도를 넣으면 그에 맞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공 지능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지혜와 마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 폰으로 글을 읽으면서 ‘F자 형태’로 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처음 몇 줄을 읽고, 중간의 일부만 훑어본 뒤 곧바로 마지막 결론으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글의 전체 맥락과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듣고 싶은 말씀만 듣고, 부담스러운 말씀은 건너뛰며, 하느님의 뜻보다 내가 원하는 결론만 찾을 수 있습니다. 인공 지능을 잘 사용하려면 문해력이 필요하듯이,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려면 삶을 바라보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공 지능도 재물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풍성한 수확은 죄가 아니며, 더 큰 곳간을 마련하는 것도 그 자체로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의 마음속에 하느님도 없고 이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오직 자신만을 위해 쌓아두었습니다. 재물이 많았지만 감사할 줄 몰랐고, 나눌 줄 몰랐으며, 자신의 생명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재물이 그의 마음을 넓혀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마음을 닫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장례에 함께해 준 동창 신부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뉴욕에 있어서 직접 갈 수 없었기에 동창회장 신부님에게 돈을 송금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보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실수로 동그라미 하나를 더 붙여 보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회장 신부님은 제 마음만 받고 일부를 돌려주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다른 신부님의 착오로 적지 않은 금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정을 말씀드리자, 신부님은 이왕 그렇게 되었으니 본당 건축기금으로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돈은 사람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고, 사람을 욕심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돈이 감사와 신뢰를 전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선행은 잘못 전달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선행은 큰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 자선, 희생, 봉사, 나눔뿐만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친절한 미소,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인내, 용서와 겸손도 모두 선행입니다. 식당 탁자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마치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산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형편이 어려워서 선행을 미루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입니다.
인공 지능도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고 유익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재물도 가족을 돌보고, 공동체를 세우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 지능이 우리의 양심을 대신할 수 없고, 재물이 우리의 생명을 보장해 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이며,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과 재물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곳간만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와 나눔과 선행으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곳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루카 12,17)
네가 있어
참 좋다
너를
나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
이렇게
나로 채울
네가 있기에
내가 맘껏
자라도 좋으니
내 곁에 네가
참 고맙다
내가 있어
참 좋지
나를
너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
이렇게
너로 채울
내가 있기에
네가 맘껏
자라도 좋으니
네 곁에 내가
참 고맙지
우리가 있어
참 좋다
우리
서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
이렇게
서로 채울
우리가 있기에
우리가 맘껏
자라도 좋으니
서로 곁에 우리가
참 고맙다
오늘의 성인
성 요한 드 브레뵈프(John de Brebeuf)
신분: 선교사, 순교자
활동지역: 캐나다(Canada)
활동연도: 1593-1649
같은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콩데(Conde)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성 요한(Joannes)은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길 원하였다.
그러나 사제직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몸이 약하였다.
하지만 그는 1617년에 루앙(Rouen)의 예수회에 입회하여 1615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선교사를 지원하여 캐나다 퀘벡 주로 떠났으며, 주로 인디언 휴런족(Huron)이 많이 거주하는 동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캐나다로 온 이후 그는 인디언들 사이에서 34년 동안이나 전교활동을 개척한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고초는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1629년 영국인들이 퀘벡을 점령하고 예수회원들을 몰아낼 때 그도 쫓겨나서 하는 수 없이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1633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같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1637년 천연두가 만연하여 수천 명의 인디언들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선교사들이 재앙을 몰고 온 악마로 간주되어 인디언 마술사들로부터 큰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요한은 그 와중에도 인디언들 곁을 떠나지 않고 1640년까지 함께 거주하였다.
그가 잠시 퀘벡으로 갔다가 다시 인디언 부락으로 왔을 때, 프랑스와 가장 적대적이던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들로부터 체포당하여 처참하게 살해당하였다
성 요한 드 브레뵈프 사제와 동료 순교자
캐나다와 미국에서 후론족과 이로케족 인디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하고 있던 8명의 예수회 회원들은 1642년과 1649년 사이에 잔인한 고초를 당한 후 순교했다.
그중에 이사악 조게스는 1647년 10월 18일에 순교했고 요한 드브레뵈프는 1648년 3월 16일에 순교했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콩데-쉬르-비르에서 태어난 요한 드브레뵈프은 카앙 근교에서 대학교를 다녔지만, 그의 양친은 가나한 농부였다.
그는 1617년에 루앙의 예수회에 입회했고, 1622년에 사제로 서품되자 지원하여 캐나다 선교사로 길을 떠난 후로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후론족과 이로케족 인디언들 사이에서 24년동안이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파한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고초는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1629년, 영국인들이 퀘백을 점령하고 예수회원들을 몰아낼때 그도 쫓겨 나자 하는 수 없이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1633년에 재차 선교사의 길에 올랐다.
1637년, 천연두가 만연되어 수천 명의 인디언들이 죽게 되자, 선교사들은 재앙을 몰고 온 악마라고 간주되어 그 부족의 마술사들로부터 큰 곤욕을 치루었지만, 그는 1640년까지 인디언들과 함께 거주했다
그는 잠시 퀘백으로 갔다가 다시 인디언 부락으로 왔을 때 프랑스의 가장 적대적이었던 이로케족 인디언들로부터 동료 8명과 함게 체포당하여 1642년과 1649년 사이에 잔인한 고초를 당한 후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가 보인 용기와 성덕은 수많은 인디언들을 감동시켜 그가 죽고난 후에도 약 7천명의 인디언 개종자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는 후론족의 사전과 교리서를 만들었다.
그중에 이사악 조게스는 1647년 10월 18일에 순교했고 요한 드 브레뵈프는 1648년 3월 16일에 순교했다.
그들은 1930년에 시성되었다.
그들의 신앙과 영웅적인 삶은 북아메리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깊이 심어 주었으며, 북아메리카 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써 일어난 것입니다
성 바오로(십자가의)(Paul of the Cross)
활동년도 : 1694-1775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이탈리아의 오바다(Ovada) 태생인 성 바오로 프란치스코 다네이(Paolo Francesco Danei)는 몰락한 어느 귀족의 맏이로 태어났고, 부모의 신앙 유산을 물려받은 탓인지 15세 때에 이미 카스텔라초의 자기 집에서 엄격한 고행과 보속을 행하였다. 1714년 그는 터키인들과 싸우는 베네치아(Venezia) 공국의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기도와 보속생활에 이끌려 명예 제대를 하고 귀향하였다.
그는 결혼도 마다하면서 몇 해를 은거하던 중 1720년에 예수의 성명과 흰 십자가가 그려진 고난의 문장을 검은 옷에 단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그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설교하는 수도회 설립을 명하셨다고 한다. 그의 환시가 올바른 사실임을 인정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부터 수도회 설립에 관한 허가를 받게 된 바오로(Paulus)는 40일간의 피정을 통하여 회칙 초안을 마련하였다. 그는 자기 동생인 요한 밥티스타와 함께 로마(Roma)로 가서 교황청의 허가를 신청하였다. 처음에는 거절당하였으나 1725년의 방문에서는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로부터 수련자를 받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1727년에는 자신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들은 몬테 아르젠타리오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처음에는 규칙이 너무 엄격했던 탓으로 많은 수련자를 잃었다고 한다. 1737년에는 첫 수도원의 문을 열었고, 1741년에는 교황 베네딕투스 14세로부터 개정 회칙을 승인받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와 고난의 맨발 성직 수도회'(예수 고난회)가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바오로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초대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누비며 선교 여행을 하였고, 그의 설교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그는 초자연적인 은혜로써 축복을 내렸고, 치유의 기적과 원거리에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기적 등이 나타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설교가였다. 그는 예수 고난회의 최종 승인을 1769년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로부터 받았다. 또한 그의 노력에 의하여 여자 수도회 수녀들이 코르네토에 첫 수도원을 갖게 되었다. 그는 3년 동안의 병고로 고생하다가 1775년 10월 18일 로마에서 운명하였고, 1867년 비오 9세(Pius IX)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활동년도 : +4세기경
신분 : 과부
지역 : 시리아(Syria)
같은 이름 : 글레오빠뜨라, 글레오파트라
막시미누스 황제 치하의 박해 때 순교한 성 바루스(Varus, 10월 19일)의 유해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어느 신자 과부에 의하여 털로 만든 가마니에 숨겨서 아드라하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성녀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았으므로 그들은 순교자의 무덤을 중심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녀의 아들 요한(Joannes)이 군인이 되었을 때 그녀는 성 바루스를 공경하는 대성당을 짓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성당을 완공한 날에 그 아들이 갑자기 병을 얻어 죽어버렸다.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몸부림치다가 하느님께 당신의 외아들을 살려주십사고 늘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꿈에 성 바루스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내게 보여 준 사랑을 내가 잊은 듯싶은가? 내가 그대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은 듯 보이는가? 보라. 이제 그 응답이 왔다. 그는 이제 기력을 되찾았다.” 성녀는 “이제 만족합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성인과 내 아들과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자, “안 된다. 나는 네 아들과 함께 있어야 하니 좀 더 기다리면 우리가 영접할 것이다." 하고 성인이 대답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성녀는 지금까지의 모든 슬픔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순교자에 대한 사랑으로 여생을 살다가 운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성 바루스와 아들 요한 곁의 대성당에 안장하여 공경해 왔다.
성 필립보 하워드(Philip Howard)
활동년도 : +1595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영국 잉글랜드(England) 동부 노퍽(Norfolk)의 네 번째 공작인 토마스 하워드(Thomas Howard)는 1572년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명에 의하여 참수를 당하였기 때문에 그의 아들 성 필리푸스 하워드(Philippus Howard, 또는 필립보 하워드)는 노퍽의 공작 지위를 계승하지 못하였다. 그는 12세 때에 데크르(Dacre) 경의 딸 앤(Anne)과 결혼하였다. 그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궁전으로 갔을 때, 그는 더 이상 당할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여왕의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아내를 무시하고 또 여왕의 환심을 사려고도 노력하였으나, 런던탑의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아내와 결합하고 또 예수회원인 윌리엄 웨스턴 신부의 도움으로 교회와 화해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재차 투옥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피신시키고 여왕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필리푸스 하워드는 결국 38세의 일기로 순교했는데, 10여 년 이상을 감옥에서 지냈다. 그의 개종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위였고, 틈만 나면 신심서적들을 저술하거나 번역하여 영국내의 가톨릭 운동에 기여했다. 그는 일주일에 3일씩 단식함으로써 건강이 좋지 못하였으며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기도를 바친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안토니오 다니엘 (Anthony Daniel)
활동년도 : 1601-1648년
신분 : 선교사, 순교자
지역 : 캐나다(Canada)
같은 이름 : 대니얼,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당
프랑스 디프 태생인 성 안토니우스 다니엘(Antonius Daniel, 또는 안토니오)은 처음에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곧 이를 포기하고 1621년 루앙(Rouen)의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4년 동안 가르치면서 동시에 신학을 공부하여 163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잠시 외(Yeu)의 대학교에 봉직하다가 다른 세 명의 사제와 함께 케이프 브리턴 섬과 아르카디아, 뉴프랑스(New France, 캐나다)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1년 후에 그는 다시 퀘벡으로 갔다.
그는 휴런족(Huron) 인디언들과의 선교활동이 대성공을 거두자, 인디언 아동들을 위한 학교를 퀘벡에 세웠다. 그러나 휴런족과 늘 적대관계에 있던 이로쿼이족(Iroquois)들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때는 1648년 7월 4일이었고, 온타리오주(Ontario) 힐스데일 근교의 테노스테이의 인디언 마을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다니엘은 캐나다에서 순교한 동료 예수회원 7명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베드로 (Peter)
활동년도 : 1499-1562년
신분 : 신부, 신비가
지역 : 알칸타라(Alcantara)
같은 이름 :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에스파냐 중서부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의 알칸타라 지방장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가라비토(Petrus Garavito)는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16세 때에 만하레테스(Manxarretes)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엄격한 보속 생활을 실시하던 중에 바다호스(Badajoz)로 파견되었고, 152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에서 설교하면서, 로브레딜로(Robredillo), 플라센시아(Plasencia), 라파(Lapa) 그리고 에스트레마두라 수도원의 원장으로 봉사하였으며, 라파 수도원을 봉쇄수도원으로 요청하여 허가를 받기도 하였다. 또 한때 그는 궁중의 전속사제로 일하다가 1538년에는 관구장이 되었다. 그는 다소 엄격한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관구 총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자 관구장직을 사임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리스본(Lisbon) 교외 아라비다(Arabida) 산에서 성 마리아의 마르티누스 수도원의 형제들과 함께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수많은 수도자들이 그들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따르려고 하였다. 관구 내에서 자신의 규칙이 통과되지 못하자 그는 코리아(Coria) 교구의 주교로부터 승인을 얻은 후 새 수도원을 세울 허가를 교황 율리우스 3세(Julius III)로부터 받았다. 이것이 바로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의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수도원들도 그의 규칙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1561년에는 성 요셉 관구가 설립되었는데,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관할 아래 두게 되었다.
1560년 그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 10월 15일)를 만나서 그의 고해신부 겸 상담자가 되었으며, 카르멜 개혁운동을 격려하였다. 그는 “기도와 묵상론”을 썼는데, 이것이 후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562년 에스트레마두라에서 사망하였고, 1622년 4월 18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된 후 1669년 4월 28일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1862년부터 브라질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위대한 신비가였다.
성 르네 구필 (Rene Goupil)
활동년도 : 1606-1642년
신분 : 선교사, 순교자
지역 : 캐나다(Canada)
같은 이름 : 레나또, 레나뚜스, 레나토, 레나투스
프랑스의 앙주(Anjou)에서 태어난 성 르네 구필은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나 건강 때문에 수도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 후 그는 완쾌되어 캐나다의 퀘벡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다른 예수회의 선교사와 합류하였다. 그는 휴런족(Huron) 인디언 선교단의 평신도 보조자가 되어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1642년에 성 이사악 조그와 함께 여행하던 중에 이로쿼이족(Iroquois) 인디언들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르네 구필은 레나투스 구필(Renatus Goupil, 또는 레나토 구필)로도 불린다.
성 가브리엘 랄르망 (Gabriel Lalemant)
활동년도 : 1610-1649년
신분 : 선교사, 순교자
지역 : 캐나다(Canada)
같은 이름 : 가별, 랄러망
성 가브리엘 랄르망은 1630년에 예수회원이 되어 외국 선교에 헌신하였으나 건강은 늘 좋지 못하였다. 2년 동안 캐나다 퀘벡에서 사목한 후 그는 성 요한 드 브레뵈프(Joannes de Brebeuf)와 합류하여 인디언 휴런족(Huron) 선교에 나섰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활동할 즈음에 이로쿼이족(Iroquois)의 습격을 받아 2명의 사제가 포로가 되어 생 이나스까지 호송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몸서리치는 고문을 받았는데 브레뵈프 신부는 몇 시간 내에 운명하였으나, 아주 묘하게도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는 그날 밤은 넘겼지만 결국은 살해되고 말았다. 랄르망 신부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가롤로 가르니에 (Charles Garnier)
활동년도 : 1606-1649년
신분 : 선교사, 순교자
지역 : 캐나다(Canada)
같은 이름 : 가니엘,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샤를,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칼
성 카롤루스 가르니에(Carolus Garnier, 또는 가롤로)는 예수회 사제로 서품된 후에 인디안 사목을 위하여 캐나다의 퀘벡으로 갔다. 1649년 그가 정착해 있던 휴런족(Huron) 인디언 마을이 적대적인 이로쿼이족(Iroquois)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자, 그는 그들을 도망가도록 하다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기어가다가 전투용 도끼를 맞고 절명하였다. 가르니에 신부의 장상은 그를 이렇게 말하였다. “웃으면서 선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르니에 신부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노엘 샤바넬 (Noel Chabanel)
활동년도 : 1613-1649년
신분 : 선교사, 순교자
지역 : 캐나다(Canada)
같은 이름:
프랑스의 망드 근교에서 출생한 성 노엘 샤바넬(또는 나탈리스 샤바넬, Natalis Chabanel)은 1630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1643년에 캐나다 뉴 프랑스의 휴론(Huron) 인디언들의 선교사로 떠났다. 그는 에타리타의 인디언 마을에서 성 카롤루스 가르니엘(Carolus Garnier) 신부의 보좌로 활동하다가, 이웃 마을인 생트 마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배교자 인디언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었다. 노엘 샤바넬은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고,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