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의 상징인 곡식 더미와 정절을 암시하는 개, 힘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참나무 ....
-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라 지나친 확신이다.
- 별실에 혼자 있으니 집중이 된다. 더 세밀해지고 꼼꼼해진다. 이게 더 낫다.
지조론(志操論) / 조지훈
천하의 명문(名文), 조지훈(趙芝薰)의 지조론(志操論)을 다시 읽어보게 하는 요즘이다.
조지훈은 초기에는 전통을 향한 향수, 불교적 서정으로 다듬어진 서정시를 주로 써오다가 후기에는 조국의 역사와 정치현실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50년대에는 자유당 말기의 혼란한 정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들을 많이 썼는데, 이 글 역시 부패한 정권과 지조없는 정치가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글 중의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지조의 정의와 가치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자신이 이런 글을 쓰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개진하고 지조에 관한 자신의 입론을 펼쳐보인다. 지사와 정치가는 다른 것임을 유연하게 인정하면서도, 난국의 지도자는 직업 정치인보다도 지사적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지조와 정조를 대비하는 단락 역시 설득력이 있다. 변절과 변절자에 대한 부분에서도 조지훈의 깊은 사색과 역사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논리의 치밀함을 읽는다. 특히 변절자에 대한 정의를 풍부한 예시를 통해 합리적으로 내려놓은 점이 훌륭하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했거나 만년에 개과천선할 수 있었다면 변절로 매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제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의 남로당 탈당, 자유당 당시 야당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는 것을 작자는 같은 궤도에 놓는다. <무너질 날이 얼마남지 않은 권력에 팔리는 행색은 딱하기 짝없다>라는 감회는 일제말에 변절한 이들을 향한 경멸이지만 실은 자유당 정치인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변절자의 말로를 보여주는 광해군 때의 고사를 소개하면서 지은이는 <지조란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라는 주제를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지조론 원문]
지조란 것은 순일 (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慨歎)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驚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 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 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과 명리(名利)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 정치인(職業政治人)보다 지사적(志士的) 품격(品格)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衷情)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공정(廉潔公正)청백강의(淸白剛毅)한 지사 정치(志士政治)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唾罵)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 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와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淫婦的) 환락의 탐혹(耽惑)빠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하고 재취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나 환부(鰥夫)가 사랑하는 옛 짝을 위하여 개가나 속현(續絃)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本能苦)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超克)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제는 일찌감치 집어 던지고 시세(時勢)에 따라 아무 권력에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口腹)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名利)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덕대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 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태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正道)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는 것은 분반(噴飯)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것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自尊) 자시(自恃)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申丹齋)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 (韓龍雲) 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 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菜根談)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백성을 속여 야당(野黨)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狡智)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박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어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의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 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 (狹義)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 전선(野黨戰線)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의 치욕에 김상헌(金尙憲)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崔鳴吉)은 다시 민족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瀋陽)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 (士)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朴重陽), 문명기(文明琦)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唾棄) 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日帝) 말기 말살되는 국어(國語)의 명맥(命脈)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의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 모음, 큰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가 국민총력연맹 조선어학회지부(國民總力聯盟 朝鮮語學會支部)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족히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좌옹(佐翁)①, 고우(古愚)②, 육당(六堂), 춘원(春園)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 말의 대일 협력(對日協力)의 이름은 그 변신(變身)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은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반민 특위(反民特委)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벗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 것도 못하고 누명만 쓸 바에야 무위(無爲)한 채로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사표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伯夷)나 숙제(叔齊)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거나 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도 한 번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연산주(燕山主)의 황음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려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도 나중에는 화간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만근 (輓近) 30년에 우리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의 남로당 탈당, 또 친구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책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同軌)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제 자신도 율(律)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났더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는 일단 모욕을 자취(自取)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쫓으면 한평생 분 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貞操)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晩年)을 더욱 힘 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飜然)히 깨우치라. 한일합방(韓日合邦) 때 자결(自決)한 지사 시인(志士詩人) 황매천(黃梅泉)은 정탈(定奪)이 매운 분으로 '매천필하 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민 충정공(閔忠正公)과 이용익(李容翊) 두 분의 초년 행적(初年行蹟)을 헐뜯는 곳이 있다. 우늘에 누가 민충정공과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히 밀려오는 망국 (亡國)의 탁류(濁流) ― 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완용(李完用)은 나라를 팔아 먹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행색은 딱하기 짝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少忍飢)." 이 말에는 뼈아픈 고사(故事)가 있다. 광해군의 난정(亂政)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청담(淸談)으로 소일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赤貧)이 여세(如洗)라,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를 위하여 점심에는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찢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사실 얘기를 하고 초연이 하는 말이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서며,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로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주인은 첫 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反正) 때 몰리어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 (刑場)으로 가는데, 길가 숲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내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永訣)하였다. 그 때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한 줄 이미 알고 방문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 밥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 꼴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 맛을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는 것은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 "소인기 소인기 소인기(少忍飢少忍飢少忍飢)하라"고 .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 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병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1.좌옹은 윤치호입니다. 1910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을 조직한 후 대성학교(大成學校) 교장으로 있다가 11년 105인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강점기 말에 한때 변절,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을 지냈으나, 8·15광복 후 친일파로 규탄받자 자결하였다.
2.고우는 최린입니다. 3·!1운동에 참가했으나 이후 변절해 1945년까지 친일행각으로 일관했다
[참조]
*순일(純一) : 온전한 하나의.
*확집(確執) : 자기의 주장을 고집함.
*위의(威儀) : 엄숙한 몸차림.
*명리(名利) : 명예와 이익.
*일조(一朝)에 : 하루 아침에. 갑자기.
*곤고(困苦) : 힘들고 어려움.
*경성(驚醒) : 타일러 일깨움.
*국리민복(國利民福) : 나라를 이롭게 하고 국민의 삶을 복되게 함.
*충정(衷情) : 진심으로 우러나는 참된 정.
*염결공정(廉結公正) : 성풍이 맑고 깨끗하며 공정함.
*청백강의(淸白剛毅) : 성품이 깨끗하고 뜻이 굳으며 씩씩함.
*타매(唾罵) : 침을 뱉듯 마구 욕을 함.
*환부(鰥夫) : 홀아비.
*속현(續絃) : 끊어진 현을 다시 이음. 아내를 여읜 뒤 재취함을 이르는 말.
*분반(噴飯) : 입에 있던 밥을 내뿜음. 참지 못하고 웃음을 이르는 말.
*자시(自恃) :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믿음.
*기벽 : 기이한 취미나 버릇으로 남과 구별되는 짓.
*교지(狡智) : 간사한 재주와 지혜.
*타기(唾棄) : 더러워 침을 뱉는 것처럼 버림.
*만근(輓近) : 근래에, 최근에
*번연(飜然)히 : 모르던 것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는 모양.
*매천필하무완인 : 매천의 붓끝 아래 완전한 사람이 없다. 매천의 날카로운 비평과 지조를 말함.
여름의 끝이 보이는데, 코로나19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수그러들기는커녕 다시 확산되고 있다. 아주 작은 구멍만 생겨도 순식간에 퍼져가는 바이러스의 생명력이 놀랍다. 백신이라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는 관리만 가능할 뿐 종식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이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말이다.
조광희 변호사
정치지도자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승리가 임박했다고 여러 번 공언했으나, 허무한 말잔치에 그쳤다. 처음 들을 때는 기대를 가졌고, 다시 들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오히려 불길한 전조처럼 여겨진다. 그런 발언의 반복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린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판단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질병관리본부의 신중하고 중립적인 언어와 대비되니 더 난감하다.
물론 정치언어는 과학언어와 다르고, 행정언어와 다르다. 언어세계의 한끝에 수학언어가 있고 다른 끝에 문학언어가 있다면, 정치언어는 상대적으로 문학언어에 가까이 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권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언어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걸쳐 있기도 하다. 정확한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정치인만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언어가 남용되거나 경계를 훌쩍 넘어서면 대중은 냉혹해진다.
코로나19와 대치하며 사용된 정치언어의 패턴은 두 가지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각오를 보여주는 방식과 ‘이기고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정치지도자가 흔히 사용할 수 있는 레토릭이다. 만일 실제로 전쟁 중이라면, 그런 헛말은 심지어 필수적이다. 전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이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30%입니다”라고 말하거나, “낙동강 사수는 솔직히 불가능합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언어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국민의 사기는 진작시키고, 적의 사기는 꺾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전쟁과 똑같지는 않다. 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사기 진작보다 국민의 냉정한 인식을 촉구하는 게 중요하다.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게 핵심인 것이다. 결사적인 의지를 천명하거나 승리가 임박했다고 선언함으로써 바이러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바이러스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조건에 따라 무심하게 확산되고 복제될 뿐이다.
정치언어의 문제점은 다른 골칫거리인 부동산에서도 드러난다. 정치인들은 부동산을 상대로도 전쟁 중이다. 시장에 대해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는 결의가 쏟아지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자기만족적인 예언이 난무한다. 물론 부동산시장은 바이러스와 또 다르다. 전쟁과 유사하게 시장참여자들의 심리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싸움 또한 정확하게 전쟁과 같지는 않다. 반드시 이기겠다고 선언하여 시장에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잡았다고 선언한다고 집값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의 움직임은 훨씬 미묘하고,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너무나 많다.
바이러스와 부동산시장에 대처하는 정치언어는 사령관의 언어와 달라야 한다. 결기를 보이기보다는 시민들에게 이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설득해야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선언하기보다는, 힘겨워도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 바이러스와 부동산시장을 다루는 정치언어의 신뢰는 이미 상당히 훼손되었다. 정확한 현실인식을 각오와 낙관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국민도 고통을 겪고, 정치지도자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어떤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 모 대학 학장과 학생대표가 만났는데, 어느 순간 학생대표가 그만 학장에게 언성을 높이고 만 것이다. 큰 목소리가 문밖까지 새나가 다른 사람들도 사정을 알게 되었다. 안건이 무엇이었는지, 누구 의견이 더 타당했는지, 전해 들은 나로서는 알기 어렵다. 다만, 누군가를 가르치게끔 되어 있는 곳인 학교에서마저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라는 말이 울려 퍼졌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식당에서 “먹으려 들지 마세요!”, 화장실에서 “오줌 누려 들지 마세요!”, 도서관에서 “책 읽으려고 들지 마세요!”, 목욕탕에서 “씻지 마세요!”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려 들지 마세요!”
근대적 지도 제작 필요성 때문에 이전에 없던 태국의 국경 그려넣어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기 보다 외부틀에 맞춰 상황 재단되기도
실로 ‘꼰대’를 싫어하는 세상이 되었다. 심지어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직업적 꼰대들도 꼰대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혹은 꼰대로 간주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직에 있는 사람들도 ‘꼰대 성향 검사’ 같은 것을 해보곤 한다. 꼰대 성향 검사란 무엇인가. 꼰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부터 꼰대가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개발한 테스트라고 한다. 수십 개의 문항을 평소 생각대로 답변하고 나면, 테스트에 임한 사람의 꼰대 지수가 나오고 그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발급된다.
예컨대 붙임성이 있으면서 꼰대 지수가 높은 사람에게는 ‘만취한 장비’ 캐릭터가 주어진다. 만취한 장비는 회식 자리 눈치 없는 부장님 캐릭터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기에, 혼자만의 취미를 즐기라는 처방을 받는다. 만취한 장비와 대비되는 캐릭터는 ‘망원동 나르시시스트’다. 망원동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가 강하기에 타인에게 자기 기준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처방을 받는다. 망원동 나르시시스트 대처법은 “오, 그러시는구나” 같은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남발하는 것이다.
동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 꼰대 성향 검사에 몰두한 한편, 나는 이내 검사를 포기하였다. 일단 질문 문항이 너무 많아 귀찮았다. 수용할 수 없는 질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항은 이렇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선호한다.” 답: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그렇다. ④매우 그렇다. 내 대답은 ①②③④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모임에 어떤 사람이 참가하느냐가 중요하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여부는 내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평소 생각을 반영하는 답은 주어진 선택지 중에 없기에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
두 번째 문항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만족하는 것보다 주변의 인정을 받는 것을 더 선호한다.” 답: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그렇다 ④매우 그렇다. 이번에도 내 대답은 ①②③④중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주변 사람을 좋아하면 주변의 인정을 구하고, 주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래도 꼰대 성향 검사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꼰대 테스트에만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메일로 종종 날아오는 설문조사들도 마찬가지다.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을 선호하시나요?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을 선호하시나요?” 이처럼 이분법으로 구성된 설문에 답하기 어렵다. 나는 여가라면 어떤 형태든 다 환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문의 선택지가 자기 마음의 풍경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면, 설문에 응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설문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나처럼 까다로운(?) 피 설문자가 늘어나면, 설문지를 돌리는 연구자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 아, 이 연구를 하려고 거액의 연구비를 받았는데, 설문지 답변이 모이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는데, 이를 어쩌지. 설문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기 시작한다. 이 설문에 응답해주시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기프티콘을 드립니다!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음, 커피 한잔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건 어쩐지 경망스럽게 느껴지는군. 영혼을 문화상품권 한 장에 파는 느낌인걸. 언젠가 길가에서 모 종교단체가 나에게 크림빵과 함께 전도용 전단을 준 적이 있다. 자기네 종교에 귀의하라는 뜻이었다. 영덕대게도 아니고 한갓 크림빵 하나에 나는 개종을 해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 영덕대게를 미끼로 제시할 경우, 혹은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호소하며 읍소할 경우, 친애하는 누군가가 아주 간곡하게 부탁할 경우, 그도 아니면 어떤 강제적 상황에 처할 경우, 자신의 평소 생각이 어떻든 일단 설문지에 답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설문지의 문항 자체를 고칠 힘은 없기에, 기존 문항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과는 다르게 자신은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고 싶어한다고 답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작성된 설문지 답안은 자신의 평소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설문지 작성의 필요로 인해 그 순간 발명한 결과에 가깝다. 평소의 자신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새로운 자신을 창조한 셈이다.
물론 그 설문의 대답이 완전히 평소 생각과는 무관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나마 어느 한쪽에 가까운 답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경우, 불완전하나마 그 설문 결과는 피설문자의 평소 생각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있다. 선택지와 딱 들어맞는 생각을 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선택지보다 마음이 복잡한 사람도 있다. 내게 사지선다 설문이 아니라 오지선다, 육지선다, 아니 백지선다 설문을 주세요! 그뿐 아니라. 평소에 그 사안에 관해서 아예 별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평소에는 그에 관한 잠재의식만 있을 뿐 표면에 드러난 생각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생각이 자주 바뀌므로 평소 생각이라는 것이 별반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자기 생각을 자기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이 ①번 답안을 선택하더라도, 그 마음의 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똑같이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치열하게 선호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쥐눈이콩만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설문 답안이 모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이런 복잡한 사정은 무시된다. 그리고 일단 설문 결과가 모이고 나면, 피설문자들의 심경이 어떠했든 일사천리로 연구는 진행된다. 그리고 해당 연구 결과는 정책 입안자에게 전달되고 그에 기반한 정책이 집행될 수도 있고, 관련된 세금이 신설될 수 있다. 그뿐이랴. 많은 파생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그 정책으로 인해 새로운 직장이 생길 수도 있고, 역으로 실직자도 생길 수도 있다. 실직자들은 쟁의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정치지형이 바뀔 수도 있다.
상황을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외부적인 틀에 맞추어 상황이 재단되는 일은 개인의 마음 차원뿐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역사학자 통차이 위니짜꾼은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이라는 저서에서 원래 명확한 국경과 영토주권이 없이 개인적 충성 관계에 기초하여 질서를 유지하던 시암(siam)이 분명한 국경과 단일한 주권이 있는 태국으로 거듭난 것은 서양의 근대적 지도 제작기술 때문이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의 여러 필요에 의해 소위 근대적 지도를 제작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 지도는 명확한 국경을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전에 없던 국경이 그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지도는 당시에 존재하던 태국의 모습을 모사하거나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 지도 제작의 요구에 따라 태국이 결정된 것이다. 근대적 지도 제작이 태국을 만든 것이지, 태국이 지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민심이 설문을 만든 게 아니라 설문지가 민심을 만들었다고 할만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민심의 창조자는 단순히 민(民)이 아니다. 민심의 창조자는 민뿐 아니라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노래하던 사람, 손에 잡히는 민심을 원하는 정치인, 모호한 상태로 부유하던 마음을 콕 집어 윤곽을 잡아준 사람, 여론조사로 밥 먹고 사는 사람, 관료적 요구에 맞는 근거를 통해 정책을 정당화해야 하는 사람, 그리고 영덕대게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여론조사 결과 보다 설문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확실히 별실이 좋다. 집중이 잘 된다. 잡념이 많이 사라진다. 그러니 성과가 더 있다. 일단 기대가 되는 점이다. 단점은 무엇일까. 동료와의 유대감이 덜 하다는 것이겠다. 덜 해진 유대감을 보충하려면 더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순간순간에 부딪히는 심사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감사하게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