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는만끔 산다던가. 아는만끔 본다고도 하고, 아는만끔 듣는다고도 한다. 결국엔 '아는만끔'이 주제어인 샘이다. 맞는 말일수도 있지만, 또 마음아프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내가 아는만끔은 얼마일까. 모른다. 어쩌면 극히 초라할지도 모르고, 극히 빈약할수도 있다. 모든 정보와 세로운 지식에서 광범위하게 뒷처저 있는 것 만끔은 확실하다. 연로하다는게 반듯시 약점은 아닐수 있지만 알려는 지식추구가 없다는 것은 답이 없다. 판타지를 왜 좋아하는데? 말이 안돼는 얘기여서? 개천의 용을 흠모하는게 왜 인데? 모든 성공에는 그만한 노력이 포함되어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뿐이다. 나는 그걸 간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투기는 혐오한다. 투자라고 포장되어 국민을 부축이는 모든 명목들이 결국엔 사기 협잡을 부르고 그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되고있다. 다들 정신차리고 투기나 협잡에 걸려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약한 국민이 누군가의 협잡대상이 되지 않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그냥 좀 불편하게 살면 안될까. 자랑할게 없어서 고개 좀 숙이고 살면 안될까. 다 잃고 감옥에 가거나 길거리에서 소리소리 지르는 짓거리를 하는 것보다는 낫지않을까. 오늘도 tv시청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바라마지 않앗던 자랑질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자랑거리보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중에서도 남편을 얼마나 부끄러워 했는지 모른다. 늘 취해있었고 냄새가 났고 호주머니는 비어있는 사람. 그뿐인가. 책임감은 1도없고 가족은 커녕 자신조차 사랑한 것 같지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사람일수가 없는 상태가 맞았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이해할수도 없었다. 조금만 협력하고 살았으면 모든게 형통할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게 내 회한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야말로 허영심으로 가득차서 현실감각마저 없는 철부지는 아니었을까. 이해받기만 원하고, 가정이 나를 위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절망하고 한탄한 것은 나였으니까. 왜 나만 이해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만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아닌가. 연화리에서는 그랬을수도 있지만 남편은 연화리 가족이 아니었다. 세상에 연화리는 더이상 없는데, 연화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다 왔다. 저기가 끝이다. 정리를 해야하고 떠날때는 아무 회한도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번뿐인 인생에 대해 내가 너무 무력하고도 가벼웟다는게 느껴진다. 맹렬하게 돌진하듯 살아보지 못했다는것도. 판타지를 너무 많이 봐선가. 이야기는 반듯이 끝이 있다. 인생들도 결국엔 다 돌아간다. 돌아가면 세로운 시작이 있으려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소멸을 바란다. 더는 시작도 끝도 없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가능하다면 흥왕한 삶을 살아보았으면 하는 헛된 망상을 해보는 것도 사실이다. 참 부질없다. 허영심은 끝내 버릴수가 없는 것일가. 물욕만으로는 부족한가.ㅎㅎㅎ. 용서하여 주십시요.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나이먹어서 망령이 난 것일수도 있구요. 바라옵건데, 제가 정신줄 놓기전에 불러주십시요. 두발로 걷는것도 좀 힘들고 숨을 쉬는것도 편치가 않습니다. 코로나는 노인들을 위협하고 있답니다. 우리 노인들이 품위를 잃지않게 하여주십시요. 은혜위에 은혜를 구합니다. 아멘 아멘. 슬기로운 노인으로 마무리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여쁜 내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