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자주 하라고 한다. 가족들에게나 혹은 이웃들에게나 친구들에게도. 참 좋은 말이다. 감미롭기까지 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 말을 건넬만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사람이 있을수는 없을까. 살아가는 동안에 단 한번도 자신을 내어준일이 없는 사람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게 슬퍼지고 억울해진다. 나는, 늘 나만 사랑해주길 바랐다. 내가 우선해야 했다. 연화리에서는 그게 가능했기도 했다. 그러나 연화리를 떠난후에는 늘 끄트머리가 나였다. 아니, 나는 어느세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눈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늦기전에 하라고? 열심히 애써서 하라고? 틀린 이야기가 아닌것은 알고있다. 그런데, 정작 누구에게 한단 말이야?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싶어하는 사람이 누군데? 살아오는 동안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진심으로 고마워서 말하기도 했고, 그냥 인삿말로 쓰기도 했다. 나에게 친절을 배풀어주는 사람들이 고마운것은 사실이다. 길에 나서면 이제는 나 스스로 할수있는 일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무수히 많다. 똑똑한 노인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는 노인들이 더 많고, 나역시 똑똑하지 않는 사람측에 속한다. 그러니 고맙다는 인사라도 달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진심으로 고맙다. '나' 라는 미천한 사람이 그동안 민페는 좀 많았겠는가.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벌써 민폐의 시작인것도 알고있다.
주일이다. 온라인 예배로 대신하면서 출석하지 않았다. 덥다는 핑개를 댔는데, 이번에는 코로나까지 하나더 붙였다. 큰아이에게 이 핑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공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할미 나이가 되면 알게될까. 아니, 그때쯤엔 할미가 있었는지도 기억이나 할까. 나의 할머니는 특별한 분이시다. 그럼에도 그리운 할머니로 남아있을뿐 다 잊었다. 나도 그런데,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내가 살던 시절에는 그냥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 당연한 가족제도 였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할머니가 가족이 되는지도 분명치가 않다. 나는 내 인생 어쩌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시간을 생계에 집중했고, 그게 당연했다. 어쩌면 그래서 쉽게 전환을 할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 육아에 전심으로 나를 내어주었다. 후회도 없고, 조금의 아까움도 없다. 단지 별로 성과가 없는 것 같아서 아쉽다. 가령 할머니 덕분에 천재 비슷한 우등생도 못되엇으니 말이다.ㅎㅎㅎ. 아이들 마음속에 할머니를 굳게세워 독점할 기회를 잡으려 했던 속셈 같은것은 정말 없었을까.ㅎㅎㅎ내 자식들도 실패했는데 하물며 손주들까지?
덥다. 이제 더이상 이보다 시원한 여름은 없다고 한다. 제앙수준이다. 32도에 머물던 실내온도가 오늘 아침엔 31도로 내려왓다. 8월의 마즈막 주간에 되엇는데도 그렇다. 이렇게 더우면 누가 이득을 봤을까. 사고사건도 많았다. 어젠가는 화제로 7명이 죽었다고 했다. 숨쉬는 것도 힘들고 짜증나는데, 계절마저 호의적이지 않다면 기댈때가 어딜까. 하나님,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선대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ㅇ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