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에서 다큐멘터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남극-북극의 오지 탐험이나, 정글 원주민들의 생활이나, 역사 유적지 탐방이나, 수중 탐사 같은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자주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내용 자체의 재미도 재미지만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제작진이 겪었을 엄청난 땀과 열정이 저를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야생 동물 특히 맹수를 다룬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하는데 맹수들의 움직임이 언제나 저를 감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몸놀림, 먹이를 노리는 강렬한 눈빛, 고도의 집중력을 무기로 삼아 종족 보존과 생존을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하는 맹수의 삶은 저를 숨막히게 합니다.
저는 또 중국 무협 영화나 서부극이나 특수부대원의 활약을 그린 소설이나 영화도 좋아하는데 그 작품의 주인공들은 어딘지 맹수를 닮아 있습니다.
고독, 집중력, 치열한 자기 수련, 적과의 목숨을 건 싸움, 난관을 헤쳐 나가는 강인한 의지, 이런 개성을 가진 인물은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끌어올리는 매력이 있습니다.
제가 판소리에 매혹 당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무살 무렵 어느 판소리 명창의 <춘향가>를 세 시간 듣는 동안 저는 인간의 성악적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명창의 피끓는 소리에 압도당했습니다.
그 뒤 오랫동안의 무대 생활을 통해 저는 관객들은 무대 위의 예술가에게 뭔가 특별한 에너지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을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무엇, 초인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관객을 집으로부터 극장으로 또는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힘입니다.
그 힘에 대한 갈증이 수많은 예술지망생을 만들어 내고 예술가들을 괴롭힙니다. 누구나 이 계통에 처음 뛰어 들었을 때는 자신의 온 몸을 던져서 훈련을 하고 목숨을 건 자세로 준비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그 에너지가 눈빛이나 몸짓에 배어 나게 됩니다. 비록 서툴지라도 온 몸을 다 바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예술가에게서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氣)가 방출됩니다.
그 기를 갈고 다듬는 데는 오랜 인고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가 어느정도 성숙한 뒤에 예술가에게 찾아오는 것은 기의 소진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잡다한 일상이 기의 집중을 방해합니다.
이때 그의 예술은 더 이상 빛을 발하고 못하고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많은 무대 예술가들이 경륜이 쌓일수록 무대에 서는 일이 무서워진다는 말을 하는데 바로 잃어 가는 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맹수들에게도 기의 쇠퇴는 찾아오게 마련이지만 그들은 최후까지 치열하게 싸우다가 고독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 모습은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저도 마지막까지 기의 상실과 싸우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영혼을 도취시켜 주는 “맹수처럼 아름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