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태풍 이름이라고 한다. 비를 몰고 일본을 강타하고, 그래선가 아님 절기 때문인가 잘 모르겠지만, 아침 저녁으론 재법 선선하게 느껴진다. 살것 같다고 해야할까. 정말 덥고 더웠다. 엇그제는 그 더운날 깨를 볶으면서 "내가 지금 뭘하지?" 했다. 블 앞에서 하필 이렇게 더운날, 누가 부탁했다면, 혹은 시켜서 였다면, 아마도 1초도 망서림없이 인연 끊자고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햇볕은 여전히 덥고, 폭염 주의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름은 물러나고 있는게 확실하다. 어쩌면 조만간 겨울 가스요금 걱정을 해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겨울을 살지 어떨지도 모르면서도 마치 백년을 살것처럼 걱정에 걱정을 하고있다. 내려놓고 말고는 이미 없다. 가저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아쉬움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언젠가, 자신의 아이를 질투하는것 같다는 시어머니 얘기를 쓴 어느 며느리의 글이 잊혀지지 않고있다. 어쩌면 내가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가 기억에도 없다. 남편 또한 형편없는 아버지였다. 어쩌면 내 삶속에서는 올바른 아버지를 구경도 못했던 같다. 그래선지 아들은 낫설다. 하나님은 어떠실까. 인간을 사랑하신단다. 그래서 독생자까지 내어주셨다. 자격이 있어서 주신것은 아니다. 달라고 애원해서도 아니었다. 은혜라고 싸잡아 말하지만 이해가 안돼는것은 마찬가지다. 자격이 있는것도, 매달려 간청한것도 아니었다. 아니, 주신것에 감사하지도 않지 않는가. 아들과 손주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 지곤 한다. 아들은 보통 자기가 좋아서 주곤하는것 같다.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다. 그렇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받고 싶은 선물이 있게 마련이다. 비싼 양말, 운동화, 옷이 반갑지 않을수도 있다는것을 나나 아들은 모른다. 아들은 평생 누려보지 못했던 것들을 한이 맷힌듯이 아이들에게 배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정작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하나님은 내게 많은것을 배풀어 주고 계신다. 그걸 깨닫기 시작한게 언제부터 였더라. 그러나 손주들처럼 나역시 시큰둥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아니어서다. 내가 원하고 꿈꾸는 선물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나는 허영심으로 가득 차있다. 탐욕이 넘치고 있다. 허탄한 내안의 욕심을 채울수는 없다. 그걸 하나님이 왜 모르시겠는가.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이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나를 이끄신다"는 이 고백이 나를 살리고 있다. 아들의 마음속에 분노가 끓고 있다면 그걸 잠재울수 있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님,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분노를 잠재워 주실분은 오직 주님 한분뿐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기왕이면 잘 살고 싶다.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분께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도 쉽지는 않는 일이다. 파이팅! 주님은 위대하시고 멋진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