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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못 감춘 사랑 (시선집 '어린 신에게' 해설)/ 정 양
마침내 못 감춘 사랑
정양(시인, 우석대 교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로얄제리나 알부민 같은 고단백 식품이 평상온도에서는 쉽게 상해버리고 마는 것처럼 그래서 그것들이 항상 냉장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 사랑하는 것 또한 감추고 또 감추지 않으면 남들의 입줄에 올라 쉽게 상해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사람들은 자기 사랑을 일단 비밀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딱히 남의 입줄에 오르면 쉽게 상해버릴 것을 염려해서라기보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그러나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끝내 감추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살면서 끝끝내 못 감추는 것이 어디 그것들뿐이랴. 그것은 사랑이 감추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꾸밈말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감쪽같이 영영 감추어진 사랑도 없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어떻게든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 감쪽같이 감추어져야 다행인 사랑도 있고 드러나야 행복해지는 사랑도 있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아서 불행해진 사랑도 있고, 감추지 못해서 불행해진 사랑도 또한 있으리라. 강인한 시인의 시와 사랑은 과연 어떠한가.
강인한 시인의 사랑시를 읽으면서 나는 먼저, 어떤 불행을 겪더라도 그것을 끝끝내 감추고자 하는 절망적 용기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간절한 그리움을 동시에 만난다.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인 그런 구분 없이 그것들은 그의 시 속에 항상 혼재되어 있고, 그것들의 혼재가 시적 긴장이나 미감을 상승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시인의 사랑시를 읽으면서 그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내심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삼십년 가까이 가끔가끔 만나서 입을 맞추어 이 사람 저 사람 흉도 보고 술도 마시고 무슨무슨 일들도 꾸며보고 여기저기 함께 돌아다니고 했으면 그가 감당한 그토록 안타깝고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사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속내를 알 법도 한 것인데, 나는 아직도 그의 사랑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그를 눈멀게 한 여인이 누구인지, 누가 그에게 불꽃으로 타올라 감쪽같은 그의 내출혈들을 까맣게 태웠는지, 누가 그의 가슴속에 아직도 꺼지지 않는 램프불로 타고 있는지를 그는 입밖에 꺼낸 일이 없다. 그의 가슴속에 꽁꽁 냉장되어 있는 그의 사랑은 왜 중년이 다 지나도록 불편하기만 한 것인지, 무슨 사연으로 '율리'라는 이름이 연인이기도 하고 귀여운 따님이기도 한 것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알 길이 없으면서도 끝끝내 감추고자 하는 그의 절망적인 용기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그의 사랑시 모음은 읽을 맛과 이런저런 궁금증을 돋운다.
그의 사랑에 대한 서사적 정보는 곳곳에서 동화적 목가풍으로 차단되고 열정과 절망감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그래서 그 궁금증들이 풀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를 읽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궁금증이 아니고 그 사랑이 그의 가슴속에서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무겁게, 점점 더 아름답게 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인한 시인의 사랑시 모음은 우선 그런 점에서 요즈음 우리 주변에 상품화되고 있는 천박한 사랑시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 그의 사랑시는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랑이 아니고, 감추다 감추다 마침내 못 감춘 사랑의 기록이다. 그의 사랑시 모음은 한꺼번에 무슨 욕심에 겨워 써버린 시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숙성되고 있는 감칠맛 나는 술이다. 다짜고짜 직선적으로 올라오는 양주나 소주 같은 술이 아니다. 그의 사랑시 모음은 나선형으로 야금야금 사람을 감고 도는 조선청주 같은 시들이 향그럽게 고여 있는 항아리다.
내가 알기로 석정(夕汀)이 강인한 시인의 시의 어머니라면, 그의 시의 맏형은 김수영이다. 그는 석정의 품안에서 시를 익혔고, 김수영의 안목으로 시인이 된 사람이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석정의 따뜻함과 서늘함, 김수영의 열정과 고통과 외로움들이 강인한 시의 안방에 건넌방에 사랑채에 어렵지 않게 똬리를 틀고 있다. 그를 눈멀게 한 여인이 누구인지는 모를지라도 나는 그의 열정과 고통과 외로움, 그의 따뜻함과 서늘함을 익히 짐작하고는 있다.
광주항쟁 직후 그는 곧바로 전주에 와서 일부러 지인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하근·강일부·이상렬 등등 주로 그의 청소년 시절 '맥랑시대' 동인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는 누구를 만날 때마다 수첩을 꺼내어 광주항쟁 기간 중의 사건일지를 억제된 목소리로 읽어주곤 했다. 수첩 속에는 또 당시 뜻있는 이들의 관심의 표적이었던 김준태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도 삭제 당하기 이전의 원문이 강인한 특유의 깨알같은, 또박또박 쓴 필치로 적혀 있었다.
아는 이를 만나면 불문곡직 수첩을 꺼내어 1980년 5월 16일 학생들의 데모상황에서부터 발포 현장, 진압군과 시민군의 총격전, 해방의 금남로, 그리고 도청 진압 당하는 과정 등등이 꼼꼼히 적힌 광주항쟁일지를 읽어주던 강인한 시인의 모습, 사람들이 다시 돌려가며 그 수첩을 읽고 있을 때 그들을 지켜보던 강인한 시인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여인들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타고난 여린 외모에 분노와 슬픔과 고통이 뒤범벅되어 가까스로 견디고 있는 그의 격정은 어쩌면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천이두 선생 댁에서 타임지에 실린 광주항쟁 관련 사진, 무장한 시민군들이 트럭을 타고 시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하면서 어디론가 내닫는 사진을 보면서 그는 불현듯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내가 그의 옆모습을 훔쳐보자 그는 무안한 듯 "이 사람들 지금 다 어디에 있지……?"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다 죽었을 거야, 다……." 나도 덩달아 눈앞이 흐렸다.
괴롭고 부끄러운 시대의 어두운 과녁을 향하여 꽂히는 화살촉 같은 시, 그 과녁에 정확히 꽂히어 부르르 떨고 있는 시, 서민적 꿈과 고통이 정교하게 직조되어 헛되이 시드는 인생을 관조하는 시, 강인한 시인의 그런 시편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번번이 광주항쟁 직후의 그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의 소위 사랑의 시편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박인희의 「하얀 조가비」나 영싸운드의 「등불」을 부르면서도, 그것이 그가 지은 노랫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나는 그의 그런 시들을 심심찮게 용돈깨나 보태주는 단순한 재미로만 알고 지내왔다. 그가 썼던 「율리의 초상」이 70년대 우리나라 연애시의 전범으로 회자되던 무렵에도 그가 써왔던 그런 류의 시편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매우 인색한 편이었다. 어둡고 괴롭고 부끄럽기만 했던 우리들의 시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사랑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안타깝고 아름답고 고통스럽던 사랑이 완벽하게 플라토닉했었다는 허망한 정보였는데, (세상에, 플라토닉이라니……) 아무리 결혼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요새 세상에 그게 어디 있을 법한 일이겠는가. 그의 사랑이 하도 안타깝고 괴로운 나머지 누군가에 의해서 욕심껏 미화된 정보겠지 싶었고 그런 점에서 그의 사랑시들을 나는 오히려 시시하게 여기고도 있었다.
이번에 그의 사랑시 모음집을 읽으면서 그의 플라토닉에 대한 그리고 그의 시에 대한 나의 견해가 얼마나 비껴서 있는 것이었던가를, 그가 감당했던 플라토닉이 그로 하여금 황폐한 시대를 온전하게 견뎌내게 한 힘이 되어 있다는 것을, 그가 써왔던 사랑의 시편들이야말로 그의 시세계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나는 서둘러 깨닫는다. 시시하게만 여겼던 그 플라토닉이 시편마다 달빛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미화된 정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서 어떻게든 감추고 싶었고 그래서 끝끝내 감추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새삼 감동적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시집의 머리말에 "삼십 년 묵은 비밀을 송두리째 고백한 셈이 되었다. 벌거숭이로 선 듯한 기분"이라고 술회하고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제일 난감한 것은 그의 고백, 그의 벌거숭이를 다시 살펴야 하는 일이다. 짓궂은 노릇이다.
이 시집 안에는 몇 명의 여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 실어증에 걸린 시인의 어머니나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인숙 여인, 그리고 빨간 기타를 치는 이웃집 아가씨 등은 이 시집의 변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더부살이하는 군식구다. 정작 중요한 여인들은 시인의 아내와 두 명의 '율리'다.
의사의 딸 율리,
여학교 때 반장을 하던 단발머리
촉촉하게 젖는 오월의 밤이슬에
외로울 때 맺히곤 했다.
내 싱거운 이야기에 곧잘 웃고
내 비겁한 이야기에도 곧잘 끄덕이고
항상 눈이 흰 겨울을 살고 싶다는 율리,
네 따스한 손바닥에
내 작은 생애를 얹어보고 싶었다.
때때로 술에 취하면 화가 나서
난폭하게 편지를 쓰고
마리안느의 사슴처럼 장밋빛의 피 흘리며
네 곁에서 죽고 싶었다.
(……)
저 먼 불빛이 영그는 풀잎 사이로
걸어가는 조브장한 어깨.
주일이면 까만 성경책 위에 얼굴을 묻고
자그마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오래 기도하는 율리,
네 작은 손바닥에 가만히
낙엽 같은 내 이름을 얹어보고 싶었다.
―「율리의 초상」 중에서
율리야, 너에게 주려고
동화책 한 권을 샀지.
서둘러서 돌아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구십원짜리 시내버스를 타고
차창 밖 까맣게 젖어서 흐르는
네모 난 밤을 내다보았지.
아빠 아빠,
삼십만 원도 안 되는 선생 노릇을
아빠는 뭐 하려고 십오 년씩이나 해?
식구들 몰래 눈물을 지우던
딸아, 내 어린 딸아.
―「밤길」중에서
의사의 딸 '율리'와 가난한 선생의 딸 '율리' 중 하나는 허명이고 하나는 실명이다. 실명의 '율리'는 몇 년 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지금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의 따님이고, 허명의 '율리'는 시인의 결혼 전 플라토닉했던 연인이다. 시집의 서문에서 시인은 "그 무렵 나는 한 주일에 한두 편씩의 시를 엽서에 써서 그녀에게 부쳤다.(……) 그것은 100에서 끝났다. 그녀가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더 이상 시를 쓸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 동안 써왔던 시 전체를 찾아서 나는 일일이 찢고, 불태워버렸다.(……) 그 후 얼마간 시의 붓을 꺾은 기간이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거니와, 그로 하여금 시를 쓰게 했고, 시의 붓을 꺾게 했던 여인, 시집의 어디를 보아도 결별을 선언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그 허명의 '율리'는 '눈먼 사내'와 '불꽃' 연작시, 그리고 「램프의 시」에 일관되어 시집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시인의 외로움과 열정과 고통과 그리움의 창문이 되어 있다. 이 시집의 어디를 보아도 시인은 그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떠난 '율리'를 야속해하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그 허명이 실명으로 전환된 뒤에도 시인에게는 허명과 실명이 여전히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다.
가장 온전한 그리움으로 그대를
생각하기 위하여
이 어둠을 조용히 불렀거니
어디만큼에서 목마른 손을 나누고
우리가 헤어졌을까
오늘은 너무 멀리 떠나와
사랑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라
희미한 달무리로 번지는
내 옛날의 소중한 아픔
긁히고 부딪치는 돌자갈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이 밤도 흘러가나니.
―「물결 노래」 전문
헛되이 불어가는 바람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익어가는 낟알의 이삭 끝에 부서지는데
산길 굽이 돌면 박하 향기, 깻잎 향기
우리 고운 인연의 향
푸르게 젖던 그대 음성도
햇살 아래 잘 마르리.
―「떠도는 이를 위하여·1」 중에서
막막한 설움을 다 쏟아
먹빛으로 저무는 산일지라도
그대 사랑보다 오히려 가볍구나
―「떠도는 이를 위하여·2」 중에서
찻물을 끓이며 생각느니
그리움도 한 스무 해쯤
까맣게 접었다가 다시 꺼내 보면
향 맑은 솔빛으로 내 안에서 우러날 거나
―「봄 회상」 중에서
푸른 하늘을
새가 날고 있다
악보를 질러가는
꽃빛 울음소리
어디에 덫이 있었을까
문득 걸려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는
점 하나
누가 숨겨논 살의가 있었나 보다
내 마음의 빈 허공에
얼음빛으로 남은
한 줄기 부재.
―「부재(不在)」 전문
그 허명은 이렇듯 이 시집의 마지막에 이르도록 "희미한 달무리"로 번지기도 하고 "박하 향기, 깻잎 향기"로 "향 맑은 솔빛"으로 그리고 "악보를 질러가는/꽃빛 울음소리"로 "내 마음의 빈 허공에""수직으로 떨어져내리"기도 하면서 아직도 '한 줄기 얼음빛'으로 남아 있다. 화자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어디에 덫이 있었을까?" "누가 숨겨논 살의가 있었나 보다"라고. 시인은 아직도 허명의 '율리'가 그에게 결별을 선언한 까닭을 모르고 있는 것만 같다. 화자의 중얼거림은 아직도 그 '덫'에 걸리어 목숨을 가늠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서 '율리'에 대한 집념에 비하여 아내에 대한 관심은 언뜻 허술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겨울 안개 스적이는데/ 아이들은 잠들고/ 한 겹 이불 밖으로/ 연년생의 꿈들이 바스락거리는/ 불빛 나직한 우리 마을을"(「우리 마을」) 지키는 아내가 있기에 "한 소쿠리 감자를 쪄 내온/ 아내 곁에"(「보랏빛 남쪽」) 시인의 졸음과 꿈은 "나비처럼" 고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의 귓밥을 판다.
채광가(採鑛家)처럼 은근히
나는 아내의 귓구멍 속에서
도란거리는 첫사랑의 말씀을 캔다.
더 멀리로는 나에 대한 애정이 파묻혀 있는
어여쁜 구멍
아내의 처녀 적 소문을
들여다보다가
슬며시 나는 그것들을 불어버린다.
―「귓밥 파기」중에서
어린것들을 재우고
자리에 누워 아내를 껴안아본다
둥그렇게 껴안아본다
팔 하나가 몸통에 눌려
무심코 거북하다.
한 팔만의 사랑은
아무래도 미지근하고
남은 한 팔이 마음에 걸린다.
―「불편한 사랑」중에서
여보, 차라리 애기 하나
더 낳는 게 낫지
못 올라가겠어요
힘들고 가파른 길이
어디 금강굴 가는 길뿐이랴 싶어
숨찬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데
아내의 살쩍머리
저 아래 비선대 흰 물소리가
한두 올 슬펐다
금강굴 예까지 오는 데
이십오 년이라니.
―「금강굴 가는 길」중에서
아내와 관계된 글들을 몇 군데 짚어본다. 치열함과 고통으로부터 한참을 비켜서 있는 듯한 이 시편들은 허명의 시에 깃들이던 화려한 수식이 없다. 아내의 귓구멍 속에서 첫사랑릐 말씀을, 처녀 적 소문을 캐고 그것을 슬며시 불어버리는 동심적 달관이나, 아내의 머리카락에 비선대 흰 물소리가 한두 올 슬프게 젖는 선적(禪的) 감성, 그리고 팔 하나가 몸통에 눌려 무심코 거북한 사랑을 불편한 채로 그런 대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서늘한 체념들은 강인한 시의 진경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허명의 시편들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강인한 시의 참맛이 허술한 듯이 보이는 아내의 곁에서 비로소 구수하게 그리고 서늘하고 짜릿하게 우러난다.
허명의 존재 자체는 물론이고 허명이 실명으로 전환되는 그 고통은 현실적으로는 고스란히 시인의 아내의 몫이었을 것이다. 물론 허명의 '율리'도 실명의 '율리'도 마음 편할 리는 없었으리라. 곡예하듯 여러 사람이 불편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실명 전환을 감행한 시인의 입장도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명의 '율리'와 아내와 시인과의 이 기묘한 사각(四角) 관계는 자칫하면 네 사람 모두를 현실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버릴 사각(死角)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의 깔끔한 언어감각이 곁들인 동화적 목가적 엑조티시즘과, 그 바탕을 이루는 플라토닉한 열정, 그리도 까닭도 모른 채 헤어졌으면서도 결코 원망하지 않는 그리움 등등 강인한 시인의 시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물론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엮어내자고 조르는, 그 불편한 사가관계를 넉넉하게 감당하는 시인의 아내가 있기에 그의 시와 사랑은 더 넉넉하고 정답고 아름답다.
"오래 잊었던 일/ 새록새록 죄 다짐으로 살아나서// 아픔의 잎잎이/ 내 안에서 돋아난다/ 사금파리처럼// 때로는 붉은 번개로/ 창자를 긋는 밤이 있어"(「산수유꽃 피기 전」) 산수유꽃 피기 전에 미리 눈뜨는 그의 시와 사랑이 아무리 외롭고 아프고 슬플지라도, 가족들 뒤치닥거리에 '한약 냄새' 떠날 길이 없으면서도 허명과 실명과의 아슬아슬한 거리를 정답게 넉넉하게 감당하는 아내 때문에 강인한 시인은 그의 시안(詩眼)이 점점 더 맑아질 수 있을 것이다.
* 시선집 『어린 신에게』(1998, 문학동네)의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