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많은 책들의 무개에 눌려 우선은 준욱이 들고, 이 많은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설래고 조금 반갑고 또 긴장되기도 하면서 행복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은, 보기만 해도 좋다. 꼭 읽지않아도 그냥 좋다. 이것도 허영심의 발로일까 싶긴하다. 빌릴 책을 고르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볍게 아무거나 고르고 싶다가도 또 기왕이면 읽고싶은 이야기에 가까히 가고싶어 지기도 한다/ 내가 정말 읽고싶은 이야기가 있던가. 알고싶거나 기대하거나 그런게 있을리 없다. 남는 시간을 때우기위해 책을 읽고있는 중이다. 내 희망수명은 작년까지였다. 그런데 나는 여전하고 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78 나이의 커탠이 쫙 열렸을때,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앞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아니라, 당혹스럽지 않을수 없는 기분이었다. 평생을 돈 돈 거리며 살다가 손주 육아를 시작으로 아들 딸이 주는 생활비로 만족하고 사는데 지금은 익숙해 졌다. 뭐 더 바라는 것도 없다. 그런데 77살이 지나버린 것이다. 나는, 77까지만 살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발로 걷고, 스스로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는,,, 그랬다. 그런데 77이 지나고도 죽을 기미는 전혀 없다. 고집과 편견은 어찌그리 많은지, 대책이 없는듯 하다.
지난번에 큰글짜 책을 한권 읽다가 왔다. 제목을 기억할수 있을것 같았다. 무슨 뱃짱으로 그리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랬다. 책 앞에 서서야 내가 제목을 기억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찾기는 찾았다. 어처구니 없는 장님 문꼬리 잡는 형태였다. 오늘도 반쯤 읽고 페이지를 기억하리라고 장담했다. 그런대, 지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제목은 물론이고 페이지는 더욱 그렇다. 다음에 가서 또 어찌어찌 찾게 되겠지. 아마 다 읽을 무렵에는 제목도 기억하게 되려나.
방금 오랜 지인과 통화를 했다. 그분은 나를 모범생이라고,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나를 아는 분이라면 내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편견이 많고, 인내심이라고는 없는 빈 캉통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탠데,,, 나보다 6년 연상이시니 언제가도 좋을것 같은데, 목소리는 싱싱하고 명쾌했다. 우리집엘 방문한적이 있는 분이기도 했는데, 여기 그대로 살고있다고 하니까, 좀 옮겨보지 그러냐고 한마디 하셨다. 반지하가 가난의 극치이니 당연한 충고인가. 나는 격의없이 가난한 과부에 고아라고 시인하며 살고있다. 이번추석에도 교회에서 금일봉을 준단다. 나는 교회에서 돈 받고 교횔다니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까보다. 그런데, 정말 교회돈 받아서 냉큼 털어넣어도 괜찮을까. 양심에 털나면 어쩌지? 나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을것 같지가 않는데, 현실은 어떤지 모르겠다. 정말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기꺼히 양보할텐데, 쌩돈 내는것도 아니고 받은돈 내놓는 것은 좀 쉬운일이니까. 우리 셀 식구들 면면을 보면, 우선 대게는 남편들이 있다. 제정상태는 다 모르지만 적어도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없는듯 하다. 홀로된 이권사만해도 3층짜리 단독주택 소유자다. 사위 두분이 다 우리교회 안수집사다. 그러니 형편 어려운 사람에게 지급하는 위로금을 주기란 어렵지 않겠는가. 아마도 당분간은 내가 독점하지 않겠나 싶은데, 좋아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공짜 좋아한다고, 밥 얻어먹는거 아주 아주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정말 그런사람은 없다. 아무도 없다. 받기만 하는 사람의 부끄러움은 격는 사람만 안다. 주님, 축복하여 주십시요. 주님의 축복이 간절합니다. 이제 명절도 없고, 남은것은 지루하고 곤고한 날들 뿐일수도 있습니다. 제발 복주셔서 남은 날들이 즐겁고 기쁜날 되게 하여주시고, 감사한 마음만 남게되길 원합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