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 데이토나의 프레임에다가 NORCO의 스톰을 해체하여 철티비의 프레임에다가 올 데오레급의 구동부품으로 개조할 궁리를 하다가 도저히 넘을 수가 없는 난관에 봉착했다. 근본적으로 보급품의 자전거 프레임에다가는 데오레급의 변속기를 달수가 없는 것이었다. 망연히 데오레급의 드레일러를 쳐다 보다가 일단은 안장을 바꿔달고서 얼마나 편한지를 검토할 생각으로 게리피셔의 HKEK를 본트레거 안장을 제거하고 삼천리자전거의 스프링안장을 분해하여 레일만을 싯 포스트에 거치했다.
그리고는 한강 자전거 도로에 나가서 테스팅을 해볼 생각이었다. 이 문제는 HKEK의 프레임을 좀더 편하다고 하는 Zigurat의 카본스테이 프레임으로 바꾸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신월동에서 복개천으로 거쳐서 목동에 이르렀다가 나는 자전거를 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배낭을 찾았다.
그런데 배낭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수가 없어서 등산복에다가 L형렌치세트와 6인치 플라이어와 펑크용패치 5개를 주머니에 넣고 평소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 자전거용 펌프를 탑튜브에 달았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가지고 단돈 현금 10만원을 지갑에 넣고 집을 나섰다.
가자 동해바다로~!
두시간 반만에 하남삼거리를 지나 팔당대교와 팔당터널을 지났다.
도로표지판의 이정표는 홍천까지 78km....
양평까지는 전번에 DM데이토나로 다녀보았기 때문에 도로의 상태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양평을 지나면서 부터였다. 6번국도를 직선화하고 고속화한 것은 어디까지나 자동차를 위주로 하여 그렇게 개조를 한 모양이었다.
산 모퉁이 구비를 돌아서 멀리 사라지던 자동차의 모습대신에 아스라한 언덕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아야 했다. 날씨는 9월 중순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더웁다. 그것도 한 낮이다. 내가 길을 떠난 뱃장은 속초까지 무박2일 여정으로 최소한 추정거리가 450km가 넘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것이었다.
대략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의 컨디션을 최대한으로 늘여서 절대로 오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도 위주의 라이딩이 아니라 숨차지 않고 다리가 편한 방법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혼자가는 주행이기 망정이지 여러사람이 팀을 짜서 간다면 불가능하리라.
저녁 6시경에 홍천에 당도했다.
십 수년전에 효성 스즈키 GSX250E를 타고 뻔질나게 지나다니던 동네였기에 낯선길은 아니었다. 단지 도로를 시내외곽으로 처리를 하여 패스하도록 한것이었다.
무궁화를 모토로 하는 홍천이라?
누구의 발상인지는 몰라도 고개를 갸웃하고는 핸드폰에 배터리를 끼웠다.
핸드폰의 배터리는 소프트웨어로 전원을 끄고 켜기 때문에 배터리가 끼워진 상태로는 핸드폰의 전원을 꺼도 전기가 소모된다. 배터리 한 개로 최소한 2일간은 버텨야 하기 때문에 내가 연락을 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기 위하여 배터리를 장착하지 않고 가져온것이었다. 내가 몇 달전부터 설악산을 일주할 작정을 한 때문에 집에 연락했을 때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순전히 인력으로 주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에 대략 6000~7000칼로리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즉 보통사람이 거의 3일동안 먹어야할 식사량을 하루에 해치워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식 식당에 들어가서 잡채밥을 시켰다. 양과 함께 골고루 섞어 먺는 음식으로 멀리 돌아다닐 경우에 애용하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오히려 집을 나서면 마땅히 식당에서 사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고 사 먹는다고해도 가리는 음식이 많아서 적어도 3분지1정도는 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리고는 했다. 어린아이도 아니면서 가리는 음식이 많다는 것이 웃기는 노릇이지만 애시당초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으면 신체의 상태가 어린애와 다를게 없어서 신체에 맞지 않는 음식은 어린아이처럼 뱉어버리지는 않더라도 다시 먹지 않게 된다.
아 그런데 이 중국식 음식점의 잡채밥에는 내가 싫어하는 풋고추를 무슨 나물처럼 썰어넣어서 영 파이였다. 웬만하면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리려고 했는데 다시 오고 싶지 않았다.
자 이제 날이 어두워진다.
야간주행을 대비하여 백색LED램프를 달고 왔지만 상황이 어떠할지 모른다. 홍천을 떠나서 인제로 가는 도로는 군데군데 공사판 천지였다. 그리고 경사가 만만치 않아서 업힐 할때는 절대로 무리하지 않게 가다 보니까 1_2으로 거의 보행자 속도 정도로 올라가는 언덕이 여러번 나왔다. 더구나 차가 다니지 않는 공사구간 포장했지만 차량통행을 금지하는 A형펜스 옆을 지나다가 미쳐 펜스에 걸쳐 놓은 36밀리 파이프를 보지 못해서 넘어갈수는 없고 급정지를 했더니만 자전거는 완전히 덤블링을 하여 뒤집어지고 나는 핸들위로 뜀틀넘기를 하여 OTZ 형태로 착지를 하고 말았다.
천신이 보우하고 부처님의 가호였는지 천만요행으로 몸도 다치지 않고 자전거도 상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은 내가 세상에서 살아 있어야 하는 업보가 남은 모양이다.
도시의 도로와 달리 지방의 국도 구간은 가로등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깜박이는 LED라이트에 비치는 백색 도로경계선을 따라서 주행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야간에 장거리 지방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라면 상태편 차로에서 달리는 운전자와 조우하면 라이틀르 하향하여야 한다. 아니면 상대쪽 운전자는 잠깐이지만 암순응 반응시간동안은 전혀 눈이 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쪽에서 오는 자동차의 행렬중에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자전거 쯤은 차량으로 보지도 않는지 그냥스쳐가는 차량이 절반은 넘는 상황이었다.
신남휴게소
당도해 보니 저녁 10시경이어서 휴게소에 들어가보니 영업이 끝나서 식사가 안된단다.
식사하러 들어온것은 아니지만 오다가 느낀것이만 주유소의 싸인보드는 꺼져 있기 일수이고 십수년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던 도로변 대형휴게소가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는게 난감할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휴게소 조차도 야밤에 쉬어갈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캔 식혜와 버터쿠키를 두봉지 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서 의자에 앉아서 눈앞에 달려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과자 두 봉지를 다 먹어버렸다. 예전에는 서울근교의 산에 올라갈때는 주로 1000ml짜리 우유에 건빵 한봉지가 전부였다. 산에 올라가서 골짜기에 연기를 피워가면서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의 행태를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은 산신에 불경하고 생명있는 중생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먹는 다는 것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업보라고 생각하지 않고 먹는다는 것 자체를 즐긴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사랑스럽고 자비스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게 나는 토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기를 거부하고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내 스스로 영생불사하는 신선이 되고자 연기행공을 하던 세월에도 그랬으니 이미 전생부터 어쩔수 없는 불자 였음에랴....
예전에 소양강댐 주변을 굽이굽이 돌아가던 도로는 동네 입출입도로가 되어 버렸고 호수위로 가로질러가는 도로를 지겹게 달려갔다. 낮이라면 주변의 경관이라도 구경하지만 하늘의 별과 오고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불빛만이 명멸할뿐이다.
긴 언덕을 다 올라가니 터널이 나왔다.
길이 976m 팔당터널이 연속으로 5개나 되고 홍천근처에서도 터널을 만났지만 거의 1km나 되는 터널을 자전거로 통과하자니 일순 난감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의 터널은 약간의 경사를 두어서 자연적인 통기가 이루어지게 만든것이었다.
80년대 이전에 만든 도로의 터널은 철도터널터럼 수평으로 만들어서 그 속은 자동차의 매연으로 굴뚝속을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어?
터널을 통과하자 휘황한 불빛이 온 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아무리 15년의 세월동안 돌아보지 않았다고는 해도 인제라는 산골의 도시가 무슨 이유로 야간에 불빛이 휘황한 동네가 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 정도면 오늘 밤중으로 설악산을 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